좋은글 하나 발견해서 퍼와 봅니다. ^^
당연한 이야기 인데도 울림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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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자연재해를 겪은 어느 먼 나라에 성금을 보내면 "우리나라 고아들만도 얼마나 많은데"라며 혀를 차고, 우리나라 고아들에게 기부를 하면 "주변의 힘든 사람부터 도우라"고 핀잔을 주고, 주변의 힘든 사람을 성의껏 도우면 "네 한 몸이나 잘 건사하라"고 냉소하는 지인이 있다. '내 한 몸 잘 건사'는 정확히 뭔지 몰라 아직 못 해 본 관계로 반응이 어떨진 모르지만, 예감상 그 때도 그리 좋은 소리를 듣지는 못 할 것 같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곳에 난입해 뜬금없이 연평해전과 천안함 사건을 들이미는 일베류 인간들을 볼 때마다 그 지인이 생각난다. 그들이 주장은 말하자면 일종의 '형평성 논증'이다. 연평해전과 천안함 사건에 희생된 이들에 비해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국가적 보상이나 국민적 추모의 열기가 과도하므로, 그것은 잘못된 일이며, 따라서 그만큼의 보상과 관심이 마땅히 연평해전과 천안함 사건의 희생자들에게 돌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형평성이 정의에 관한 보편적 감수성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가치라는 점에서 형평성 논증은 언제나 감각적 호소력을 갖는다. 음주운전을 하다 걸려도 "왜 나만 잡느냐"고 외치고, 군대에서 후임을 때리다 문제가 되도 "다들 군소리 없이 맞았는데 왜 너만 난리냐"고 항변할 수 있는 건 그래서다. 부당하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상태(음주운전, 폭력)를 기준으로 놓고 그와의 형평성을 맞추는 것을 '퇴보적 형평'이라 하는데, 세월호 사건에 연평해전과 천안함을 들이미는 것은 정확히 거기에 부합하는 예가 된다. 게다가 이것이 무지에 의한 것이 아닌 인지된, 의도적인 주장이라는 점에서 더욱 악질적이라 할 수 있다.
국가를 보호할 '의무'를 수행하던 중 사망한 군인들과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는 민간인 -그것도 대부분 미성년자인- 을 동렬비교할 수 없음은 차치하고라도, 만일 연평해전이나 천안함 사건에 대한 국가의 보상이나 국민들의 애도가 미흡했다 여긴다면, 다른 상가집에서 깽판 칠 시간과 정성으로 천안함이나 연평해전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과 애도를 '정상화'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누군가를 끌어내려' 이루어내는 '퇴보적 형평'이 아니라 '나를 더 나은 상태로 밀어올려' 이루어지는 '진보적 형평'이 달성되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사실 '우리나라의 고아'나 '주변의 힘든 사람'이나 '내 한 몸' 중 어디에도 아무 관심 없으면서도 단지 그것들을 타인의 선행을 깍아내리고 시비를 걸기 위한 도구로 쓸 뿐인 내 지인처럼, 그들이 천안함이나 연평해전의 희생자들을 생각하는 건 오로지 세월호 추모에 똥물을 뿌리기 위해 난입하는 순간 뿐이다. 그 동기는 물론 정치적인 것이며, 이들이 입만 열면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로보트처럼 되뇌이 것도 정치에 매몰된 스스로의 자아를 그대로 타인들에게 투영해 보기 때문이다.
천안함과 연평해전의 희생자들의 목숨 또한 세월호 희생자들의 목숨보다 눈꼽만큼도 더 귀하거나 덜 귀하지 않다. 모든 죽음이 한 우주의 소멸이고 세계의 파탄이다. 어디서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따위의 개소리를 지껄이는가. 도대체 어느 정파가 잠시 이득을 얻고 말고 따위가 뭐가 그리 중요한 문제라고, 그게 당신에게 뭘 해줄 수 있다고 , 그렇게 개보다 못 한 상태로 스스로를 끌어내려야 하는가. 그 하찮은 정파적 이득을 방어하기 위해 순국장병들의 고귀한 죽음조차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과연 어느 쪽인가.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