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호텔은 정,재계 인사가 많이 찾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접대를 받는 걸 누누이 봅니다.
대부분 최고급 양주나 회를 드시니까, 그 날도 노무현 국회의원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저희 호텔로 왔을 때. 최고급 양주와 싱싱한 횟감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노무현에게 물었습니다.
"무얼 드시겠습니까?"
그러자 노무현 의원이 말했습니다.
"아가씨. 죽 한 그릇만 주십시오."
나도 모르게 눈이 휘둥그레져 물었습니다.
"네?"
그와 동시에 같이 동석한 기업대표가 뜨악한 얼굴로 저를 보고는,
"아, 왜 그러십니까?, 아가씨 젤 비싸고 좋은 걸로 갖다주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노무현 국회의원이 말했습니다.
"아가씨, 나도 얻어먹는 건 죽어도 싫고, 내 돈 내고 먹을라니, 죽 밖에 먹을 수밖에
없어. 그러니 죽 한 그릇 가져오세요!"
그 후로도 매번 그는 우리 호텔에 오실 때마다 죽만 드셨습니다.
.......권보영.
법관으로 예비군 훈련을 빠지지 않은 사람은 노무현 뿐이다
(혹시 / 2009-05-24)
안녕하세요. 닉네임 브래드우 입니다..
오늘 정말 믿을수 없는 일을 접하고 저또한 그분에게 개인적으로 추억이 있기에 비통하기 그지 없습니다..
저와 노무현 대통령님 과의 추억을 들어 보시렵니까..? 이하 노무현 전 대통령님 욕하셨던 분들은 꼭봐주세요.
2007년 당시 저는 대전정부청사 전기 안전 관리자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출근하니 로비부터 해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회의때 들어보니 이틀뒤 대통령 각하께서 대전청사에 방문 일정이 잡혔다더군요.
저희야 뭐 우리가 '무슨 상관이야' 하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죠.
시간은 흘러 이틀후 대통령 각하께서 헬기를 타고 오셨습니다.
청사경호대에서 사람이 와서는 방문이 끝날때 까지는 출입을 자제해 달라고 하더군요.
띵가띵가 놀고 있다가 검침시간이 돼서 사수와 함께 전기실로 가고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이없게 노무현 전대통령님과 맞닥뜨렸습니다. 거리는 40미터쯤.
사수가 "야 얼렁 튀자." 종종 걸음으로 그자리를 피하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부르더군요.
순간 쫄아서 뒤를 바라보니 대통령께서 손을 흔드시며 저희를 불러세우더군요.
대통령의 포스란..여직살면서 사람에게 쫄아본적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분 특유의 따뜻한 미소로 저에게 묻습니다.
"이곳에서 무슨일을 하십니까.?"
"네?..네 전 이곳에서 전기안전관리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그러시군요. 어떻게 일은 할만 하십니까?"
"네..?네..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요즘 경기가 좋지않아서 젋은분들에게 미안합니다."
"아..아닙니다.."
"하지만 언제나 안좋은일만 있겠습니까.좋은날이 오도록 노력하고있으니 근로자 입장에서
열심히 일해주세요"(제손을 잡으시며)
"네..알겠습니다.."
그때 일이 저에겐 친구들한테 자랑할수있는 추억이 되었고..
오늘 다시금 그분의 살가운 말씀과 미소가 떠오릅니다.
그분을 욕하시는 분들. 저는 삶보다 숭고한 종교도, 가족보다 신성한 경전도 알지 못하는 부족한 사람이지만 사람의 진실함과 따뜻한 마음은 느낄줄은 압니다.
오늘 술약속이 있지만 나가지 않을 생각입니다..
노무현대통령님.. 그때 사회초년생으로 사회생활에 뛰어든 저에게 따뜻한손 내밀어주시며 좋은 말씀 해주신거 가슴깊이 묻고 있지 않겠습니다.
부디 그곳에선 자유롭고 평온하게 잠드시길 기도합니다..
- 당신을 기억하는 한 근로자가.. -
-루리웹펌-
1.
나는 대전에서 사는 평범한 직장인 입니다...
오늘, 점심을 먹으면서 나는 우연히 노무현님의 초임 법관시절 얘기를 듣고 콧등이 시큰해 오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당시 그분을 가까이서 같이 근무한 법원 직원(지금은 퇴직한)이 전한 말입니다.
노무현님이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젊은 나이에 처음 근무한 곳이 대전 지방법원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군대가고 군대제대하면 예비군 훈련을 받고 예비군을 마치면 민방위로 편성되어 의무를 다하는 것이지요....
당시 노무현님은 예비군이었답니다
당시 법원직원의 말씀
" 법관으로써 한번도 예비군 훈련을 빠지지 않은 사람은 노무현 뿐이다...."
당연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훈련을 받아야죠. 그러나, 당시 빽있고 힘있다는 사람들의 권세를 상상할때 이는 실로 신선한 충격을 넘어 법원 직원들이 인정한대로 대단한 분이라고 밖에 할말이 없군요.
그리고, 덧붙여서 하는말
"그는 아무리 하위 직원이라도 함부로 대한적이 없었으며 권위를 부리지 않는 너무나 인간적으로 대하여 준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법관이었다."
2.
아마도 87년 쯤이었을 것입니다.
전 86-88년 까지 군생활을 부산에서 했습니다. 그것도 악명높은 백골단이었었죠. 남포동 부영극장으로 기억합니다. 그당시 우리부대는 워낙 인기(?)가 높아 부산시 전역을 카바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더러운 인기였지요 그만큼 진압이 빡시었으니까요.
그날 우리에게 내려진 특명은 지도부 체포였습니다. 예의 진압방식대로 우린 깊숙히 침투했고 최루탄 소리와 동시에 지도부를 잡았습니다. 자욱한 최루탄 연기가 남포동 하늘을 감싸고 비명이 메아리친다음 우린 습관처럼 전리품들을 차에 실으려 했습니다.
그때 사라진 최루탄 연기사이로 어떤 사람이 보였습니다. 눈물이 범벅이 된채로 그이는 외쳤습니다.
'이놈들아 내가 노무현이다 나를 잡아가라 노동자가 저 힘없는 저 양반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 나를 잡아가라 ....' 우는게 아니라 울부짖었습니다. 얼굴은 눈물 범벅이되어 제대로 떠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전 노무현님을 만났습니다.
중대장은 그러대요. '저 새끼는 잡지마라 독종이니까' 아마도 그 당시는 허삼수니 하는 사람이 중심인 사회였던걸로 기억 합니다.
그리곤 그 골수분자였던 사람이 정주영씨를 증인으로 세우고 정말 힘없는 노동자의 편이 되어 눈물을 흘리며 정주영씨를 몰아 부치는걸 봤습니다.
3.
이름:극장에 갔다가
2001/12/8(토) 20:26
노무현과 '와이키키 부러더스'
요즘 '와이키키 부러더스'라는 영화가 화제다. 죽었다 살아난 영화라던가. 네티즌 덕분에 이 영화도 살아 났다는 것이다.
오늘 토요일 5시.
여자 친구와 스카라 극장을 찾았다. 아직 상영시간이 안되어 밖에 의자에서 기다리는데 어! 나는 깜짝 놀랐다.
노무현이 극장문을 들어서는 게 아닌가. 딸인듯 한 20대 아가씨와 둘이서 말이다. 두 사람은 웃으며 벽에 붙어있는 좌석번호를 확인한다.
노무현은 내 앞 좌석이다. 잠시 귀를 기울여 들으니 둘은 부녀사이다.
어쩐지 얼굴이 비슷하더라니...
딸이 음료수를 사다 노무현에게 준다. 영화 상영되는 동안 자꾸만 노무현에게 신경이 간다. 영화가 끝나고 둘이 거리로 나섰다. 나도 여자 친구와 나왔다. 길가던 사람들이 노무현에게 인사를 한다. 어떤 청년은 싸인을 청한다. 나도 싸인이나 받을까.
노무현이 딸과 무엇인가 잠시 의논 하더니 바로 길 건너 낙지집으로 들어 간다. 따라 들어가서 얘기나 해볼까. 아니지. 모처럼 딸과 즐거운 시간을 갖는데 방해를 해서는 안되지.
여자 친구가 내게 말했다.
'노무현이 참 멋지지 나도 저런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동의 했다.
이름 좀 알려진 정치인이 행차를 하면 참 많은 사람들이 따라 다닌다.
얼마 전 이회창 총재가 극장에 갔는데 언론이 야단법석을 떨더군.
영화를 보러 간건지 선전을 하러 간건지.
오늘 저녁.
노무현은 참 보기 좋더라. 영화도 좋았고..
오늘은 재수 좋은 날이다. 오래 기억해야지.
4.
오늘 아침에 차를 보니까 완전히 달마시안 같더군여.. 그래서 자주가는 세차장에 세차하러 갔는데 사장님이 저보구 "대선 누구뽑을꺼냐??" 하시더군여..
바로 당연히 노무현이죠..할려다가 무슨얘기하나 들어볼려구
"저도 잘 모르겠어요.." 라구 했습니다.
그랬더니 사장님이 내가 옛날얘기 하나 해줄께..하시더군여..그러니까 사장님 나이가 한 35세~ 40세 추정되는데 정확히는 잘모릅니다.
젤 처음하는 말이.."난 노무현한테 죄를 진사람이야.."하데요..
깜짝놀래서 그게 무슨얘기냐고 물었더니 아저씨왈
"내가 군생활을 의경으로 했는데 자대가 경남 마산에 기동대로 떨어진거야.. 매일같이 닭장차(의경들타는버스)를 타고 이곳저곳 시위 막으러 가는데 하루하루 참 힘들고 그때는 시위하고 데모하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젤 나쁜놈들이라고 생각했지.. 왜냐면 내 몸이 힘드니까..
하루는 울산인가..그곳에서 데모한데길래 또 버스를 타고 거길 간거야.. 다들 내려서 대열정비하고 서있는데 누가 마이크잡고 큰 소리로 막 소리치는거야..그래서 우리부대 전체가 그사람얘기하는 걸 들었지..
그 사람 입속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가슴에 다가오던지..
말속에 진실이 묻어나왔어..진짜 그사람 피눈물 흘리는거 같더라구.. 우리는 그 사람 얘기 들으면서 한참을 그곳에 침묵하고 있었어.. 대원들끼리 여기저기 수군수군 대드라구..
저사람이 누구냐..저사람 말이 다 맞는거 아니냐.. 저사람 좀 멋있다....뭐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고갔어..난 그때 쫄병이라 조용히 있었지만 속으로는 저런 사람도 대한민국에 있구나..그런생각을 했지.
그러던중에 시위가 거세지고 한번 붙었는데 우리가 개스를 쐈어.. 그사람 있는쪽이었지..근데 그사람 그 독한가스 마시면서도 얘기를 계속하는거야..다른 사람은 개스피해서 뛰는데 그 사람은 그곳에서 개스에 목이메어도 계속 소리를 지르는거야..
우리는 다 뭐 저런사람이 다 있냐고 그랬지..
그날 밤에 내무반에 왔는데 모두 그사람 얘기하더라구 오늘 그사람이 누구냐? 노조간부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뭐 부산에서 봤다는 사람도 있고.. 하여튼 진짜 대단한 사람이라고 다들 얘기하고 개스 쏘고나서 미안해서 혼났다고도 하고 바보같이 피해야지 거서 마이크 잡고있는놈이 어딨냐고도 하고 온통 그사람 얘기였어..
그후로 몇번을 봤는데 그사람은 똑같애..하나도 안틀리고 매번 똑같더라구.. 좀 바보같다는 생각도 좀 했지..
제대하고 나서 하루는 집에서 티비를 보는데 많이 본사람이 있는거야..
국회의원이라고 하데.. 하는데 내가 국회의원중에 아는 사람이 어디있겠냐 싶어서 잘못봤나..했는데 유심히 보니까 우리가 깨스쏠때 서있던 바보라고 생각한 그사람인거야~~난 깜짝놀래서 있는데 이름이 노무현 이라고 나오더라구..
아..노무현이구나..그때 그사람이 노무현이구나..
근데 그사람 티비에 나올때마다 난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드는거야..
우리가 쏜 깨스 그사람이 다 마셨잖냐..그래서 손님들 오면 지금 이 얘기 해주면서 노무현 한표 부탁한다고 선거운동하지..
나한테는 최소한 그사람한테 진 빚 갚는 유일한 방법이잖냐....
5.
2002년도 노무현 대통령님이 대선주자로 주목 받을 때, 저는 완전 꼬마로 작은 커피숍에서 서빙할 때 였어요. 제가 일하는 커피숍에 경호원, 수행원, 권양숙 여사님 등 온갖 사람들이 다 몰려왔어요. 커피숍이 꽉 찼죠, 저는 그 분위기가 너무 싫었어요. 고압적인 분위기, 사장님은 굽실굽실하고 이거 내놔라 저거 내놔라.. 감 놔라 배 놔라 반말 찍찍에.. 노무현 님은 그냥 가만히 계셨어요. 근데 전 그 분위기가 정말 맘에 안 들었어요.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모두 떠날 때 인사도 안하고 노려보고만 있었어요. 노무현님이 마지막으로 나가시는데.. 저를 찬찬히 쳐다보시더니 (저는 고개 똑바로 들고 노려보고만 있었거든요), 저에게 90도로 인사를 하시는 거에요. 스무 살밖에 안된, 그냥 어린 하찮은 서버였는데, 노무현 대통령님만 제 기분을 아셨던 거에요. 제 마음을 읽으신 거에요. 그 후에 꼭 사과하고 싶었는데.. 그때 죄송했다고 만약 다음에 만날 일이 있으면 그러고 싶었는데, 이젠 영원히 못하겠네요. 좋은 곳으로 가세요.. 정말 죄송했습니다. -네이버 블로거 까꿍 님의 글
6.
노무현 대통령이 한겨레 신문을 변호사 하신 시절에 보셨대요 그때 신문 배달을 저희 아빠가 했는데요
어느 날 비가 왔는데 아빠가 오토바이 타느라고 우산도 못쓰고 모자도 바람에날라가서 비 쫄딱 맞고 있으니까 일찍 출근하셔서 따뜻한 우유인가? 그거 주시고 고생이 많다고 그 손으로 아빠 머리 쓰다듬어 주셨대요. 아빠 머리는 비 맞아서 찐떡찐떡 해가지고 아빠가 죄송하다고 했는데 괜찮다고 우유 맛있게 먹으라고 들어가셨대요. 자기가 거기 서있으면 창피해서 우유 못 먹을까봐? 들어가신 것 같대요. 아빠가 어제 말씀해주셨어요. - 게잡, 내싸이클릭좀 님
7.
작년 봄 전주시 여성단체 회원들 모시고 김해 봉화마을을 방문했습니다. 그때는 하루에도 수천명의 관광객이 다녀갈 때라 임시로 마련된 마을주차장은 이미 자가용과 버스등으로 만원이고 버스를 돌릴곳이 없어서 난감해하고 있는데 의경이 "사저앞을 지나면 좁은길 나오는데 그 길 따라가면 버스 돌릴 수있을거에요"하더군요. 의경 말만 믿고 버스 한 대 간신히 지나갈 만한 농로 끝까지 들어갔습니다. (도로가 아니고 시멘트 포장된 경운기 도로더군요-_-;;) 혼잣말로 xxxxx.... 여기서 어떻게 버스를 돌리냐 성질내면서 후방카메라를 켜고 몇번을 왔다갔다하면서 버스를 돌리고있는데 버스 후방카메라에 비치는 낯익은 얼굴 "헉!!!!!! 노무현 대통령!!!!!!! "
노무현 대통령이 "오라이오라이 ....스돕~~" 하더이다. 몇 분의 고생 끝에 간신히 버스를 돌려놨더니 버스옆에 서시더군요. 문을 열어줬더니 친근한 경상도 사투리로
"아이고 멀리 전북에서(버스 넘버아니면 버스옆의 「좋은곳」 홍보 문구보고 아셨겠죠^^;;) 오싯능데 이래 큰 차를 여기서 돌리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하면서 배꼽인사를 하시더라구요. 논에 갔다오시는 길인지 장화에 허름한 점퍼를 입고 있었습니다. 버스에 올라오기전 장화를 벗으시더니
"장화에 흑이 마이 무덨는데 벗고 올라가는게 예이겟찌요?"
하시길래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했는데도 그냥 맨발로 올라오셨습니다.
수행하는 세 분도 일제히 장화와 신발을 벗으시더군요. 버스 안에 올라오시자 일제히 쏟아지는 박수소리와 함성소리에 손사레를 저으시더니 마이크를 잡고
"저는 박수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평범한 농사꾼일뿐입니다"
하고 첫마디를 꺼네시더군요
그때 한 여성단체 회원이
"그라믄 농사꾼은 새꺼리로 막걸리를 한잔 찌크러부야 힘쓰제잉.. 일단 막걸리 한잔 해부쇼잉"
하며 막걸리 한사발과 김치 안주를 건네자 대통령은
"맞습니다 맞고요~(센스쟁이 ^^ㅋㅋ) "
하며 막걸리 한사발을 들이키더니 "캬~" 소리와 함께
"막걸리도 최고 김치도 최고 역시 전주는 최곱니다"
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더라구요
그렇게 10여 분을 버스에 머무르며 이런저런 얘기 나누시다가 오늘 만나볼 사람들 많다며 끝인사를 한 뒤 저에게 악수를 청하며"끝까지 안전운행 부탁드립니다"하고 버스에서 내리셨습니다.
짧은 일화지만 저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매스컴에 자주 비춰졌어도 이정도일 줄은 몰랐거든요. 제가 직접 만나본 노무현 님은 전직 대통령이었다는 거리감 등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그냥 옆집 아저씨 같았습니다. 인간다운 냄새가 나는 그냥 옆집 아저씨....
그렇게 기억되기에 어제 서거소식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해맑게 미소짓던 그 모습 많이 그리울겁니다. 이제 하고 싶은 말 거리낌없이 하며 언론, 정당, 주위 국가 눈치 안 봐도 되는 곳에서 푹 쉬었으면 좋겠습니다. 우여곡절 많은 63년 인생 살다가신 노무현 前대통령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