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대북 선제타격을 염두에 두고 북한 붕괴와 통일 시나리오를 언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선제타격(preemptive strike)이란 북한 핵미사일 등 치명적 위험 요소를 미리 타격하는 군사행동이다. 북한 5차 핵실험(9월9일) 이후 미국 대선 국면에서 선제타격론이 거론되고 여당 일부가 동조하던 시기였다. ‘북한 붕괴론’을 노골화한 발언을 넘어 박 대통령이 직접 북한 붕괴 시나리오를 언급한 것이다.
<시사IN>이 입수한 안종범 전 수석 업무수첩에 나오는 ‘10-13-16 VIP-①, ②’ 메모를 보자. 2016년 10월13일 대통령 지시 사항을 받아 적었다는 의미인데, ‘3. AA 신용등급 북한 risk(리스크) 반영’이라는 제목 아래 일련의 메모가 나온다. ‘but(그러나) 선제타격론 미국 wall가, 10% 이상↓, 지정학적 risk, 외환보유→북한 risk→자본유출, 신용평가사 해외 20, 미국 정책 변화, 투자 환경 변화, 무디스, 선제타격→차원 다른’ ‘JP Morgan:미국 대북정책’으로 이어지는 메모에는 ‘미국 secondary boycot’ 항목 아래 ‘중국 남중국해’와 ‘북한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선제타격’이라 쓰여 있다. ‘미국 secondary boycot’은 secondary boycott의 오기로 보이는데 대북 거래 관련 2차 제재를 뜻한다. 그 밑에 안 전 수석은 이렇게 썼다. ‘북한 risk 통제 가능, -범부처 차원 대응팀, -북한 붕괴 시 북한 시장화 -통일→잠재 risk↓→투자 효과.’
전직 통일부 고위 관계자에게 이 메모의 검토를 의뢰했다. 그의 설명이다. “역대 정부는 가급적 북한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 했다.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이 미국의 영변 핵시설 폭격을 저지한 게 대표적이다. 반면 이 지시는 선제타격을 통일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논리다. 선제타격을 곧 전쟁으로 보고 우려하는 다수 학자나 국민 여론과는 동떨어진 인식이다. 이 같은 인식은 미국이 선제타격을 강행할 경우의 부정적인 파급효과, 예를 들어 ‘제2의 한국전쟁’ 같은 한반도 확전 가능성을 경시하고 있다.”
북한 붕괴나 남북 군사충돌이 리스크
‘북한 붕괴 시 북한이 시장화하고 통일이 이뤄져 잠재 리스크가 떨어지고 투자 효과로 이어진다’는 결론에 대해서도 이 고위 관계자는 “평화통일이어도 장밋빛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데 붕괴 뒤의, 혹은 전쟁도 감수한 뒤의 통일이라면 어떻겠나? 굉장히 아마추어적이고, 위험천만하고, 천진난만한 발상이다”라고 평가했다. 국제신용평가사는 통상 한국의 리스크를 꼽을 때 북한 붕괴 등 급변 사태나 남북 군사충돌을 꼽는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북한이 붕괴돼 북한 노동자 2만명이 서울역에 오면 철도가 마비돼버린다. 더구나 북한은 핵에 더해 서울을 타격할 장사정포 수천 개도 갖고 있다. 선제타격 시 북한이 맞대응 무력시위를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나? 그런 리스크를 생각하지 않고 ‘만회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분석이다”라고 지적했다.
내용뿐 아니라 지시 계통도 엉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6년 10월에 이 메모를 남긴 안종범 전 수석은 당시 정책조정수석이었다. 참여정부 때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낸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NSC(국가안전보장회의)나 통일준비위원회 같은 자리에서 충분히 비공개로도 소화할 수 있는 내용이다. 대통령이 어디서인지 모를 곳에서 엉뚱한 보고를 받고 국가안보실장도 아닌 정책조정수석에게 지시하는 상황은 이해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