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49&aid=0000126755
1. 피해자들의 상흔이 수류탄이나 소총에 의한것으로 보기 힘든 점.
2. 수류탄이 터졌다고 보기에는 너무 깔끔한 내무실.
3. 최초 지통실에 올라온 상황보고에는 "적 총격 9발"이라고 보고 되었음.
4. 피해자들의 상흔이 뒤가 아닌 앞에 난 점(김일병은 뒤에서 총기난사를 했다고 증언)
5. 김일병이 언론에 공개된 공개재판 당시에는 "증거도 목격자도 없는데 왜 제가 범인입니까!"라고 진술을 번복한점.
6. 실제로 범행에 쓰인 총기와 수류탄에서 김일병의 지문은 단 하나도 채취되지 않음.
이상의 근거와 함께 유가족들이 꾸준히 북한군의 소행이었으나 국방부가 당시 남북관계를 생각해 은폐했다고 주장해왔는데 그 주장이 받아져 2017년 3월 25일 해당 사건의 전면 재수사 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