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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인텐펌
미국은 현재 트럼프라는 전대미문의 이단아 대통령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기에
대통령직에 관한 기사가 그 어느 때보다 자주 미디어에 오르고 있다.
그 중 지난 달 시사교양주간지 “뉴요커”에 실린 글이 눈길을 끌었다.
클린턴의 연설비서로 일했던 제프 셰슬이 쓴 이 글은
대통령이라는 직책의 어려움에 대해 잘 짚어주고 있는데
이 글을 읽고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일을 잘 하고 있는 이유를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미 한 번 연습을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가장 실전에 가까운 연습을.
기사 내용을 대략 요약하자면 이렇다.
미국의 대표적인 대통령학 연구자의 1960년 연구에 따르면
대통령이 관할하는 범위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넓기 때문에
신임 대통령은 아무리 준비를 잘 하더라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든 대통령은 무지와 순진함과 오만함을 가득 품고 시작하는데
이 약점을 극복하는 데 몇 년이 걸리기도 하고
어떤 대통령은 끝내 극복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대통령은 일을 하며 배워나갈 수밖에 없는데
직책의 성격상 꾸준히 점점 더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중요 사건이 터질 때마다 배우게 되기 때문에
배움의 속도도 그 결과도 들쭉날쭉하다.
이 배움을 성공적으로 이행해나가느냐 여부는 세 가지 조건에 달려 있다.
첫째, 대통령이 모르는 분야가 무엇인가.
둘째, 그것을 겸허하게 인정하는가.
셋째, 이에 대처할 정치적, 도덕적, 지적 능력이 있는가.
기사는 케네디의 예를 든다.
일찍이 정계에 입문하여 십 수 년간 의회에서 활동했던 케네디는
국내 정치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으나
냉전시대의 국제정세에 대처하는 요령은 잘 몰랐다.
그래서 쿠바의 카스트로를 제거해야 한다는 CIA의 주장에 대해
결정을 망설이다가 결국 승인하고 마는데
그것이 바로 3일만에 참담한 실패로 끝난 1961년의 피그만 침공이다.
이 일 이후 케네디는 CIA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두게 되고
정파를 가리지 않고 능력 위주로 사람을 뽑아
자유로운 토론 후 결정을 내리는 문화를 만들어갔다.
똑똑하기로 유명했던 클린턴 역시
냉전이 끝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국제 정세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없었다.
보스니아 내전에 개입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2년간 논의를 하다가
마침내 세르비아에 대한 공격을 승인한 뒤에야
비로소 국제 무대에서의 처신에 대해 얼마간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다.
기사는 트럼프에 대해서는 물론 혹독한 평을 내린다.
트럼프가 역사상 가장 무식하고 무지한 대통령이라는 데는 모든 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게다가 자신의 무지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런 그이지만 만만치 않은 현실에 부딪치며 자기가 나이브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북한을 중국의 꼬붕으로 생각하고,
중국을 통해 북한을 견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가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일이 그 한 예인데
문제는 그가 그렇게 깨닫게 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며
또 그가 그렇게 깨달은 뒤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기사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대통령직이 어려운 이유는
현실을 정확히 인식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과거의 지혜가 통하지 않고,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리는 상황에서도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거침없이 명확한 행보를 취할 수 있는 이유를 보다 확실히 알게 되었다.
사실상 두 번째 대통령직을 맡는 셈이기 때문이다.
연임이 가능한 미국과 달리 단임제인 한국에서는 대통령직을 연습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대통령의 영이 가장 잘 서는 초기에 이런 저런 시행착오도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 임기 5년 중 4년 이상을 청와대에서 보냈다.
민정수석 1년
시민사회수석 8개월
다시 민정수석 1년 4개월
비서실장 1년
대통령이 흉금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이자 최측근으로서
대통령이 하는 일을 지켜보고 보좌하며 보낸 것이다.
달리 말해, 대통령직을 간접적으로 체험한 셈이다.
이는 아무리 원해도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다.
물론 당시 문대통령은 나중에 권력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가 마침내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여 권력의지를 갖게 되자
청와대에서 일했던 경험이 더할 나위 없는 귀중한 자산이 된 것이며
스스로도 그것을 명확히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국내 문제 국외 문제 할 것 없이 명확한 행보를 보일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오랜 친구이자 동지였던 사람이
십 년의 세월을 두고 대통령이 되어 그 뜻을 이어가는 일이 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그러나 역사에 우연은 없다는 말처럼
MB와 박근혜 정권의 암흑기가 권력의지가 없었던 문대통령에게 권력의지를 심어주었고
민중이 힘을 보태어 그를 청와대에 입성시켰으니
역사는 참으로 오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