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철원 GOP에서 1년을 근무하다 나왔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소초는 경비구역이 2km가 넘었고,
365일 가운데 단 하루도 휴일이 없었다.
간첩이 빨간 날이라고 안 들어오진 않으니까.
제일 힘들었던 건 역시 오전에 자고 저녁에 근무를 나가는 생활.
잠깐 들어와서 2~3시간 자다가 새벽에 우르르 일어나 다시
산에 근무를 나가는 생활이 매일 반복됐다.
간간히 경계 체험을 오는 다른 부대 병사들 가운데는
새벽에 일어나는 게 힘들어 우는 애들까지 있었다.
그 외에도 힘든 건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외박, 외출 같은 건 없고. 남자들 30여 명이 산속에 갇혀 지내야 하는 상황.
군 기강이 엄혹해서 만약 소대 내 폭행사건이라도 벌어지면
무조건 은색 수갑이 채워져서 헌병대에 끌려갔다.
지휘관들은 우리에게 최전방에서 힘들게 복무하는 데 자부심을 가지라고 말했다.
모두들 너희가 힘들게 고생하는 거 알아줄거라고.
그래서 나도 후방에서 일하는 테니스병이니 공관병이니 별로 부러워하지 않으려고 했다.
안 그러면 너무 억울해서 못 견딜거 같아 그런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제 뉴스에 별 네 개짜리 대장이 자기 공관병들을 GOP에 보냈다고 한다.
그 사람 표현에 따르면 ‘처벌’의 의미로 ‘유배’를 보냈다는 것이다.
고작 일주일 경계체험을 보내놓고.
옛날 조선시대에 처벌의 일종으로 수군에 복무시켰다는 기록은 본 적은 있다.
수군의 노 젓는 일이 힘든데다, 그곳 사람들이 주로 지위가 낮은 바닷사람들이라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그런데 내가 일 년 동안 묵묵히 복무한 GOP 전방을,
그것도 사령관이 ‘유배지’처럼 내심 인식했다는데 심한 배신감마저 느낀다.
겉으로 ‘자부심’을 가지라고 외쳐놓고, 속으로는 죄수처럼 인식했다는 것 아닌가.
남의 집 귀한 아들들 데려다가 공짜로 노비처럼 부려먹는 인간의 눈에
GOP에서 고생하는 군인들이 ‘죄수’처럼 보였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똥별들이 당번병을 성추행하고 자기 자식 과외까지 시키고 했다는 얘기들은
수도 없이 들었다. 문제는 내가 군에 있을 때도 징병된 병사들을
저렇게 멋대로 부려먹어도 된다는 인식을 가진 지휘관, 장교들이
너무나 많았고, 그런 인간들이 승진 때 솎아지지 않고
별 네 개를 주렁주렁 다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것,
그게 지금 우리나라 군대의 수준이다.
자정능력을 잃은 군대는 사회의 인식 수준과 동떨어져서
저 멀리에 자기들의 ‘신분제 왕국’을 유지하고 있고,
그리고 나중에 내 자식도 저렇게 군대를 보낼 날이 또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