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
질의 : 지난 1년 한국 사회를 경험해 보니 어떤 점이 가장 큰 문제란 생각이 들던가.
응답 : “ 글쎄… 북한 사람들에 비해 한국 사람들이 너무 순한 것 같다.”
질의 : 무슨 뜻인가.
응답 : “북한 말로 순하다고 하면 ‘말랑말랑하다’는 뜻이 강하다. ‘순진하다’는 뜻도 있다. 한국 사람들과 대화해 보면 종종 그런 느낌을 받게 된다. 그렇게 순해서 어떻게 북한을 상대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질의 : 김정은을 철부지, 막무가내, 미치광이 등으로 희화화하는 경향이 있지만 생각보다 스마트하고, 전략적이고, 리더십도 있다는 평가도 있다.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깝다고 보나.
응답 : “김정은은 미/친놈이 아니다. 미/친 척하는 ‘미/친놈 전략’을 쓰고 있을 뿐이다. 상당히 영리하다고 봐야 한다.”
질의 : 핵미사일 실전배치까지는 이대로 갈까.
응답 : “그렇다. 북한 당국이 군 지휘관이나 엘리트 층에 계속 강조하는 게 뭔가 하면 남한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약하다는 것이다. 북한은 자주의식이 강하지만 한국은 사대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한국은 무슨 일이 생기면 스스로 돌파할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미국에 의지해 문제를 풀려고 한다는 게 남한을 보는 북한의 시각이다. 북한은 ICBM을 완성한 뒤 ‘공포전략’으로 미국을 계속 흔들 것이다. 로스앤젤레스·시카고… 다 날려 버릴 수 있다고 계속 위협하다 보면 우리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한국 방어를 위해 북한과 싸울 필요가 있나 하는 의문이 내부에서 제기되는 순간이 올 걸로 보고 있다. 6·25 전쟁 때처럼 휴전선이 아니라 대한해협에 제2의 애치슨 라인을 긋는 사태가 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는 데다 미국이라는 버팀목까지 사라지면 한국 사회는 공포심리에 사로잡혀 금방 무너질 것으로 북한은 기대하고 있다. 제2의 베트남 사태를 노리는 것이다.”
질의 : 미국이 바보가 아닌 이상 김정은이 진짜로 미국에 핵무기를 날릴 수 있다고 생각할까.
응답 : “김정은은 미국에 미/친놈처럼 보이기를 원한다. 저러다 저놈이 진짜로 쏠 수도 있겠다 싶으면 저런 놈하고는 아예 상대를 안 하는 게 낫겠다며 뒤로 빠질 수 있다고 보는 거다.”
질의 : 그렇다면 귀하가 생각하는 해법은 뭔가.
응답 : “김정은 정권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교체하지 않으면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김정은 체제와 핵미사일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비정부기구(NGO) 손에 맡겨 쇼나 하는 정도로는 안 된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정책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선 북한 사람들을 겨냥한 맞춤형 문화 콘텐트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지금 북한 사람들이 보는 한국 드라마나 영화는 한국 사람용이지 북한 주민용이 아니다. 나도 많이 봤지만 보고 남는 것은 ‘잘사는 한국이 부럽다’는 정도지 북한 사회를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각성을 촉발하는 계몽적 역할은 거의 못 하고 있다. 우리도 한국처럼 민주화되고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콘텐트를 많이 만들어 북한에 확산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