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튄다? 그냥 있으면 안 알아줘..SNS는 내 최고 참모"
"엘리트주의 반대 말이 포퓰리즘"“수도 동파된 곳 없어요? 노숙자들은 어쩌고 있어요?”
25일 오전 8시30분 경기 성남시 수내동 자택에서 나온 이재명 성남시장은 흰색 카니발 차량에 올라타자마자 전화를 돌렸다. 이때 기온이 영하 15도. ‘언론 앞이라고 일부러 더 부산떠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속내를 읽기라도 한 듯 그가 먼저 “성남시장의 한 시간은 100만 시간(성남시 인구가 대략 100만명)이에요. 대통령의 한 시간은 5000만 시간인 거고”라고 말했다.
15분 남짓한 출근길 차 안. 그의 말은 빨랐고, 쉽게 끊이지 않았다. 계량기 교체 사업, 돌출부 없애는 도로 정비 등을 얘기하다 기자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나를 보고) 튄다, 성질이 못됐다고 한다. (그게 다) 전략이다. 사람들이 관심을 안 가지니, 내가 보여 줘야 한다. 싸우는 거 힘들지만, 그냥 있으면 뭐가 되나.”
이날 이 시장의 첫 현장 일정은 반려견 놀이터 대상지 방문이었다. 시범 케이스로 탄천 공터에 370만원을 들여 펜스치고 의자를 뒀을 뿐인데 인기가 많단다. 아이디어를 어떻게 얻었냐고 묻자 곧바로 “SNS 쪽지”라며 이렇게 말했다.
“쪽지나 댓글이 빗발친다. 웬만하면 다 보는데, 여기에 번뜩이는 게 많다.”
이 시장은 SNS를 가장 잘,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정치인으로 꼽힌다. 그래서 묻고 싶은 게 많았는데, 딱 그때 집무실 문이 열리고 누가 들어왔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였다. 성남시에서 하는 ‘행복 아카데미’에 강연하러 왔다가 이 시장 얼굴 보러 들렀다고 한다. 두 사람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최근 바른정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당적을 옮긴 남경필 지사가 화제에 올랐다.
강연차 성남시청에 온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이재명 시장의 집무실을 찾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권호 기자이 시장=“이사(당적변경)를 많이 다니면 망가지죠.” 진 교수=“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정치인인데요. 한 번 크게 걸지, 돌아가서 안타깝습니다.”이후에도 두 사람은 10여분가량 얘기했다. 비보도 전제라 옮기진 못하지만, 친문(親文) 얘기도 나왔다. 진 교수가 이 시장의 ‘스핀 닥터(정치 참모)’인지 등을 물었지만 “강연하러 왔다”고만 했다.
기초단체장이 유력 정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들어 유의미한 지지를 얻은 경우는 지난해 그가 처음이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성남시민들도 이 시장을 반겼다. 길을 걷던 60대 신사도, 아이들과 스케이트장에 왔던 40대 여성도 먼저 다가와 손 내밀었다.
그를 대중 정치인으로 키운 건 SNS다. SNS를 통해 현 여권 정치인 중 가장 먼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을 얘기했다. ‘사이다’란 별명을 얻게 된 배경이다. 이 시장은 지난해 초 펴낸 자서전 『이재명은 합니다』에서 한 챕터를 할애해 ‘세상을 바꾸려면 손가락부터 움직여보자’고 썼다.
그는 “주변에서 나를 보며 ‘빠르다’고 하는데, SNS에서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정치인 중에 먼저 옮겼을 뿐이다. SNS는 집단 지성의 총체이자, 내게 가장 중요한 참모”라고 말했다.
Q : SNS를 맹신하는 건 아닌가. 참모들도 섭섭해하겠다. A : SNS는 양날의 검인데, 베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시스템을 갖췄다. 내 계정을 10명 이상의 참모와 공유한다. 내가 올린 글이 위험하다 싶으면 그걸 본 참모 중 아무나 삭제한다.
Q : 그러고 보니 글 올리는 빈도가 줄었다. 표현도 얌전해졌고. A : 벼룩은 뛰어야 한다. 그것도 다르게 뛰어야 한다. 그런데 소가 막 뛰면 OO소 소리 듣는다.
Q : SNS의 열혈 지지층 손가혁(이재명의 손가락 혁명단)이 공식적으론 해산했다. 여전히 존재하는 이른바 '문파(文派)'가 부럽진 않나. A : 지지층은 다양하게 마련이다. ‘손가혁’이라며 당사 앞에서 경선 불복을 주장하고, 나를 ‘배신자’로 규정한 경우도 있다. 이런 극렬 지지자는 부담스럽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도 층위와 입장이 다양하다.애견테마 파크 건립 예정지를 둘러보는 이재명 시장. 그는 "SNS에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많다. 내 최고 참모다"고 말했다. 권호 기자이날 오후 첫 일정은 1/4분기 청년배당 교부현장 방문이었다. 3년 이상 성남시에 거주한 만24세 이상 청년에게 분기마다 25만원씩 주는 청년배당은 중고생 무상 교복, 무상 산후조리원과 더불어 이 시장의 대표 정책이다. 반대편에선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의 ‘싸움닭’, ‘포퓰리스트’ 이미지를 부각시킨 정책이기도 하다.
Q : 무상복지에 대한 비판도 많다. A : 상처 없이 없던 길을 낼 순 없다. 나를 공격하면 오히려 에너지가 솟는다.
Q : 포퓰리즘을 추종하는거 아닌가. A : 난 포퓰리스트다. 반대되는 말이 엘리트주의인데, 이건 국민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린 문제다. 우리 국민은 지배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다. 촛불혁명이 보여주지 않았나. 이들을 대리하는 게 정치고, 이들의 의사를 대변하는 게 곧 포퓰리즘이다.
Q : 성남이 ‘분당’으로 상징되는 부자 도시라 무상복지가 가능한 것 아닌가. A : 시민 1인당 시 예산 부담은 오히려 적다. 다른 곳은 정부 지원금이 많다. 돈이 아니라 자율의 문제고, 용기와 실력만 있으면 된다. 난 박근혜 정부와 싸웠고, 그래서 유명해졌다. 그는 한술 더 떠 ‘새로운 전쟁’을 준비한다고 했다. “지난해 인허가권이나 용도 변경으로 시에 생긴 돈 중 1800억원 정도를 시민들에게 현금으로 배당하겠다”는 거였다. 시민이 맡긴 권한과 예산으로 불로소득이 생겼으니 이를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논리였다. 이 정책이 실현되면 성남시민 1명당 약 18만원씩 현금이 지급된다.
Q : 이 돈을 왜 선호하는 복지 예산쪽으로 돌리지 않나. A : 복지정책은 한 번 만들면 계속 돈이 든다. 이 돈은 부정기적 수익이라 거기엔 안 맞다.
Q : 배당은 우파, 이른바 보수의 논리다. 이 시장은 책에다 ‘교과서론 보수, 현실엔 진보’라고 썼다. A : 민주당 자체가 잘 봐야 중도보수다. 지금 보수? 보수를 참칭한 수구다. 어떤 보수가 법을 안 지키나. 진짜 진보는 극좌 취급을 당하고, 보수라고 불려야 할 민주당이 빨갱이 덧칠을 당하고 있다.
Q : 그래서 이 시장은 보수인가 진보인가. A : 보수다. 내가 하는 얘기가 원칙, 법 잘 지키고 공평하게 가자는 거다. 법치주의인데, 진보적 요소보단 보수적 요소가 많다.
Q : 복지 확대는 전형적인 진보의 아젠다인데 스스로를 보수라고 주장하는건 모순 아닌가. A : 그건 헌법 34조2항(국가는 사회보장ㆍ사회복지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에서 합의한 사항이다. 이 원칙을 잘 지키자는 거다. 이 시장은 6월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를 노린다. 본선에 올라가기 전에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이른바 ‘3철’ 중 한 명인 전해철 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다른 후보들과 당내 경선을 치러야 한다.
Q : 예선과 본선 중 뭐가 더 어렵겠나. A : 본선이다. 선거를 앞두고 저쪽(야당 지지층)도 합칠 거고, 1대1 구도로 55대 45의 싸움이 될 거다. 여론조사 중 무응답층 다수가 저쪽 지지자다.
Q : 전해철 의원은 친문의 대표 주자 격이다. A : 내가 문 대통령과 안 친할 수는 있지만, 문재인 정부가 실패하면 나의 정치적 미래도 없다. ‘비문’이란 딱지를 붙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남경필 지사는 강자다. 아무나 나오면 이긴다? 어림없는 소리다. 인터뷰를 마치려는데 이 시장이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며 말을 이었다.
“현 정부의 과제는 적폐 청산과 불평등 해소, 한반도 평화 정착 등 크게 세 가지다. (중략) 남북문제는 흔들리지 말고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
말이 나온 김에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에 대한 20대의 반감을 어떻게 보는지 물었다. “기회 박탈에 대한 반발감 때문에 생긴 현상으로 20대의 슬픈 현실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평화 올림픽을 포기할 순 없다. 통일은 비용이 아닌 이익이란 걸 알려야 한다.”
남북문제에 관한 한 그는 '포퓰리스트'라기 보단 '아이디얼리스트'(이상주의자)의 면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