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저학년 하교시간 연장..교육계 "애도 교사도 부담이다"
유수인 입력 2018.08.29. 00:05 수정 2018.08.29. 02:30
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 "애들한테 물으니 '치사하다'고 하더라"
정부가 초등학교 저학년의 하교시간을 늘려 오후 3시인 고학년과 같게 맞추는 ‘더 놀이학교’를 제안하자 교육계가 반발했다. 학교에서 있는 시간을 수업으로 인식하는 아이들은 물론 교사들에게도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28일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초등교육 변화 필요성과 쟁점’ 포럼에서는 2024년 ‘더 놀이학교’를 도입하는 정책과 관련 토론이 진행됐다.
이날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부모 돌봄 공백과 사교육 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오후 1~2시인 초등학교 저학년의 하교시간을 오후 3시인 고학년의 하교시간과 같게 맞추는 ‘더 놀이학교’(가칭)를 제안했다. ‘더 놀이학교’는 저학년 학습과 휴식을 균형 배치해 여유로운 시간표를 운영하면서 초등교실 환경을 돌봄교실 수준으로 개선하는 방안이다.
발표자로 나선 홍소영 서울 고덕초등학교 교사는 “놀이, 활동 위주의 학교 재량 운영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 현장 교사들의 의견이다. 놀이활동을 늘리려면 학생에게 그저 놀 수 있는 시간을 준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라며 “놀이활동을 위한 환경개선, 학생 안전보장, 학생 간 갈등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교폭력에 대한 우려도 제기했다. 홍 교사는 “학교폭력 피해시간 통계를 보면 1위는 쉬는 시간, 2위는 점심시간이었다”며 “따라서 학생 안전과 학교폭력 등에 대비한 전문 인력 보강이 함께 돼야 정책 취지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외국에서는 학교폭력 발생 시 상담사, 변호사 등 외부에서 지원하는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놀이터 관리관이 별도로 있어 놀이시설 관리는 전문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안전요원을 배치하고 책임·관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홍 교수는 교사의 부담 또한 많이 증가할 수 있다고도 꼬집었다. 그는 “저출산위에서는 놀이 시간을 늘리는 것이므로 교사 업무 부담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그렇지만 학생의 자율적 놀이도 교사의 지도방향 및 놀이방법 제안 등의 고민 없이 진행될 수는 없다”며 “특히 초등 저학년의 경우는 교사의 별도 지도 없이 학생들에게 자유활동을 시행하면 교실 밖 활동을 거부하는 비참여 학생 문제, 참여학생 간 기구?공간 활용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학교 재량으로 운영한다는 것은 결국 놀이 시간 지도 계획, 안전 계획, 프로그램 마련 등은 온전히 교사의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며 “현재 초등 담임교사의 업무는 수업 준비와 상담 외에도 행정 업무를 맡고 있다. 15시 하교로 업무시간 축소로 인한 수업 연구나 준비 시간의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하교 시간 연장으로 늘어난 시간은 오롯이 교사의 부담이 되며 많은 학생을 쉽게 통제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 교사 수 확충 등 제도적 해결책이 없으면 교사 부담 증가로 저학년 담임기피 현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상철 서울교육대 교수는 “위원회의 안은 ‘학교 정규 운영 시간’을 1~2시간 늘리되, 놀이 및 활동 중심으로 운영함으로써 교사의 업무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초등교육 현장에 대해 조금이라도 구체적으로 생각한다면, 그 제안이 과연 현실적인지 의문이다”라고 꼬집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초등학교 교사들은 특히 저학년일수록, 아이들이 등교하는 순간부터 하교하는 시간까지 그들과 함께 생활한다. 그 전체가 교육시간인 셈이다. 점심시간을 예로 들면, 초등학교 저학년 교사들에게 점심시간은 일반 직장인들처럼 편하게 밥 먹는 시간이 아니라 아이들의 ‘식사 지도’ 시간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위원회의 생각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학교 정규 운영 시간’이 1~2시간 늘어난다면 그것은 교사의 업무 증대이다. 안전사고는 수업 시간이 아니라 쉬는 시간에 주로 발생한다”며 “이 점을 생각하면 놀이 시간에 훨씬 더 큰 부담을 교사들에게 지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왕준 경인교육대 교수는 학생들의 심리적 부담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습이든 놀이이든 저학년 학생들에게는 정규 교육과정에 대한 심적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왕준 교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거의 매일 “학교 언제 끝나요?”라는 질문을 선생님에게 한다. 유의해야 할 것은 이 질문이 학교 교육과정이 부적절하거나 선생님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의 심적 부담을 표현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인 한희정 서울 정릉초등학교 교사는 “3시 하교 정책에 대해 아이들에게 물으니 ‘치사하다’고 답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아이들은 “어른들은 자신들이 어렸을 때 학교에 오래 남아 있는 것을 좋아했나요?”, “3시에 끝나면 친구와 놀 시간이 없으며, 우리의 자유시간을 빼앗는 겁니다”, “지금도 너무 힘들어요”, “학교에 있는 것이 다 공부 같아요”, “절대 반대입니다. 제발요 두 손으로 싹싹 빌겠습니다”라고 답하며 하교시간 연장을 반기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학교는 집이 아니다. 부모가 주는 안정감을 어느 학교도, 교사도 대신할 수 없다”며 “가정 돌봄 서비스를 확대하고 마을 네트워크를 만들고, 관련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경력단절녀, 사회적 일자리, 안정적 보육을 위해 더 현명한 길”이라고 주장했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