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이자 아이러니

짠희 작성일 19.06.09 01: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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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장 김원봉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항일무장독립운동에 투신하여 자신이 설립한 의열단과 함께

무장투쟁을 전개하였으며, 이후에도 독립군 활동에 깊게 관여함.

 

광복 후 남한으로 돌아와 좌익운동에 참여.

좌우합작운동에도 힘을 썼으나 노동운동의 배후로 몰려

친일 경찰이었던 노덕술에게 잡혀 고초를 당했다.

이후에도 정치 활동을 이어가다

남북연석회의에 남측대표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했고,

이를 계기로 북한에 머무르며 북한정권수립에 참여한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에게 대항하다 간첩죄로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독립운동을 위해 입학했던 중국 국민당이 설립한 황푸 군관학교 시절 인맥이 문제되었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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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경찰 노덕술


 일제시대 독립운동가 때려잡던 고등계 형사로 출세

대표적으로 노덕술에게 고문 받은 신민회 간부가 3명이나 사망

 

해방 후 평양에서 경찰서장을 역임하던 중 공산당에게 구금되었다가 월남

당시 수도권경찰청장을 역임하던 장택상에게 발탁되어 수사과장으로 임명

반이승만 세력 숙청, 좌익분자 검거 주도

 

이 과정에서 독립운동가였던 김원봉을 체포하고 뺨을 때리며 모욕하기도 함.

 

이 후 반민특위에 체포되기도 했으나 이승만의 보호로 풀려난 후

장교로 임관하여 대공수사 업무 담당하며 승승장구하나 했지만,

 

권력싸움을 하다가 이승만의 눈 밖에 난 노덕술은 군에서 예편하고

고향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나, 

친일경력과 악질경찰로 평판을 잃은 그는 선거에서도 낙마하고

지병으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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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택상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정치인, 경찰

 

친일파의 아들이지만 독립운동을 하였고

좌익인사들과는 친했지만, 좌익운동은 탄압하였으며

독재정권에 일조했으나, 민주투사로도 활동했던

아이러니한 인물

 

구한말 탐관오리이자 거부였던 장승원의 아들.

장승원은 대한광복회의 독립자금 요구를 거부하고

일제에 밀고 하려다 사살 당함.

아버지와 그의 두 형은 진성 친일파였지만

(친일 기업가이긴 하지만, 해외 독립군에 자금을 댔다는 설도 있음)

정작 본인은 일본유학 중 한일합방 소식을 듣고 상하이로 망명. 

이후 아버지의 친구이자 독립운동가 이상설을 만나 감명을 받고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임정 구미위원회에서 활동.

 

귀국 후에도 해외로 군자금을 송금하고 독립운동가를 보호하는 등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광복 후, 영국 유학생 출신이었던 그는 유창한 영어실력을 바탕으로

미군정에서 중용되어 수도경찰청 청장 역임.

일제시절 자신을 잡아 넣었던 친일 경찰을 그대로 임용하여

좌익운동을 탄압했다.

친일경찰 노덕술을 발탁한게 바로 장택상

'pro-jap(친일)이 아닌 pro-job'라는 희대의 개드립은 덤.

 

이후 이승만 정권에 참여하여 외무부장관으로 임명되었고

6.25전쟁 기간 중 국무총리로 임명되었는데,

부산정치파동과 발췌개헌에 깊게 개입하며

이승만 독재에 앞장섰다.

 

5.16쿠데타 이후에는 야당으로 반독재운동에 참여.

박정희의 아버지는 장택상 아버지인 장승원의 마름, 박정희의 형은 소작농이었어서

박정희와의 관계가 껄끄웠다고도 한다.

 

민주화 운동의 거두인 YS와 DJ가 정계로 입문한데는

장택상의 역할도 컸다고 함.

 

 

 

참고로 장택상의 아버지 장승원은 대한광복회에게 사살되었는데,

대한광복회 소속이었던 황상규는 김원봉의 스승이자 고모부로

의열단에도 참여했었음. 

 

김원봉은 여운형과 함께 좌우합작운동을 지지.

여운형은 일제시대 부터 장택상과 친분이 있었다.

여운형 암살에는 경찰이 개입되어 있다고 추측됨.

당시 수도경찰청장은 장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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