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봉관련해서 계속 글이 올라오는데 북한에서의 활동에대한 내용은 없어서 적어봅니다.
김원봉이 광복과정에서의 공적은 당연히 인정받고 존경받을만하지만
북으로 올라간후 북한에서의 활동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수밖에 없습니다.
확인가능한 자료만 정리한 기사를 보면
김원봉의 월북시점은 1948년 4월 20일 남북협상에 참여하기위해 북으로가서 북한에 남게됩니다.
김원봉은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초대내각에서 국가검열상에 취임됩니다.
오늘날 장관급 직책으로 볼수있는 국가검열상은 감찰,감사기능을 맡는 기관의 장입니다.
이후 김원봉은 6.25전쟁시 군사위원회 평안북도 전권대표를 맡았는데, 군량미생산관련 임무를 맡았을것으로
추정되고있습니다.
이후 김원봉은 1952년 3월 19일에는 6.25당시의 공로로 '조국해방전쟁에서 공훈을 세운 정권기관 지도일꾼'으로 훈장을 받게됩니다. 이 훈장은 최고등급훈장보다는 낮은 훈장입니다.
같은해 5월 국가검열상에서 해임되고 노동상으로 임명됩니다.
1957년 9월 20일에는 내각 명단에서 제외되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됐습니다.
1958년 환갑을 맞아 또한번 노력훈장을 받습니다.
김원봉의 마지막 공개활동은 1958년 6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2기 제3차 회의에 참석한것이며
이후 숙청된것으로 추정되고있습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56&aid=0010688994&sid1=001
또한 김원봉은 대한민국경제혼란과 선거방해 목적으로 남파된 간첩을 지휘한점도 문제가 됩니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401260032920201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4-01-26&officeId=00032&pageNo=2&printNo=2408&publishType=00020
1954년 1월 서울시경에의해 남파된 간첩 5명이 체포되는데
이 간첩들은 김원봉의 지휘하에 6.25당시 서울에 침입하여 한국에서 활동하던 간첩들에게 자금을 조달하고
남한의 경제혼란과 선거방해목적으로 활동한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원봉은 단 한시도 쉬지않고 독립운동을 했다고 표현될만큼 광복에 큰 기여를 한 인물이지만
북한에서의 활동은 당연히 의견이 분분할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6.25당시 북한 내각실세로서 군수조달과 그 공로로훈장을 받고, 남파간첩을 지휘한점도 지적되고있는데
이런 김원봉을 광복절에 언급하는건 적하지만, 현충일에 언급하는건 부적절하다는 소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