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www.ddanzi.com/ddanziNews/567029332
2019-07-15 18:01
아홉친구추천36 비추천0
2012년 9월, 일본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釣魚島)의 내국인 구매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이곳을 일본령으로 선언하게 된다. 2010년부터 영토 문제로 갈등을 빚던 중국은 이미 희토류 수출 금지로 일본을 압박하고 있었지만, 이 사건에 크게 반발하면서 전면적 반일 태세에 돌입했다. 대대적 반일 시위가 일어난 것이 이때다.
시작은 일본 자동차와 전자제품의 불매운동이었다. 반일 시위대는 길가던 일제 브랜드 자동차를 파손했고, 일식당의 유리창을 깨버렸다. 중국에서 시위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공안은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다. 뭐든 깨부수고 다니던 당시의 시위를 문화대혁명의 홍위병에 많이들 비유하는데, 10대 청소년들의 과격 폭력 양상이 많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9월 15일, 시안(西安)에서 수십만 명이 거리로 뛰쳐나왔고, 토요타 자동차를 몰던 리지엔리는 시위대에 둘러싸여 차 밖으로 나왔다가 두개골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다. 시안의 규모에 비할 순 없지만 이런 반일 시위는 약 3달간 각지에서 이어졌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인의 일본 관광객 수는 2012년 7월, 8월에 20만 명 수준이었으나 9월부터 12만, 7만, 5만 명으로 달마다 급격히 감소했다. 또한 일본의 대중 수출액은 2011년 1620억 달러 정도였지만 2012년 1440억, 2013년 1300억 달러로 감소했다. 이 기간 중국의 대일 수출액도 2012년 1884억에서 2013년 1808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이 분쟁은 2014년 9월 해양협의가 시작되고 그 해 12월 양국 정상회담이 열린 후 비로소 안정 국면에 들어섰다. 그 사이 일본은 희토류에 대한 중국 의존도를 낮추었고, 제조 공장을 동남아로 분산시키며 리스크를 감소시켰다. 그리고 중국의 일본 관광객은 2016년 630만을 넘어 2012년 당시보다 5배 가량 증가했다. 대규모 반일 시위가 언제 있었냐는 듯 양국의 교류는 빠르게 회복되었다. 우리가 일본과 무역 분쟁을 피할 수 없는 현실에서, 센카쿠 열도(조어도)를 둘러싼 중일 무역 분쟁이 어떤 함의를 줄 수 있을까?
예상되는 시나리오와 목적
공통점으로 삼을 요소들을 정리해보자.
1) 국가 단위의 정치적 분쟁이, 경제 분야의 무역분쟁으로 이어졌다
2) 양측 모두 경제적 손해를 입었다
3) 일방적 독점 요소(중국의 희토류)의 규제가 중요 변수로 작용했다
4) 이 중요 변수는 장기적으로는 일본 산업의 다각화와 기술 발전을 이끌어냈다
5) 안정되기까지 2년 정도의 시간을 끌었다
6) 발단이 된 정치적 분쟁은 유야무야 되었다
아베 정권은 중일 무역분쟁의 과정과 결과를 잘 알고 있다. 국제 분쟁에서 파생되는 일본의 우경화 경향은 줄곧 정권에 정치적 이득이 되었다. 때문에 우리와의 무역분쟁 역시 참의원 선거용이거나 헌법 개정을 위한 내부 결집용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 때문에 ‘곧 사그라들 소동’에 불과하다고 보는 시각은 지나친 낙관론이다. 국제 분쟁이 장기전이 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자국 경제도 해를 입는다는 점을 일본은 이미 경험했다. 일본 스스로 중국 희토류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결국 한국이 일본산 소재 의존도를 줄이는 결과도 예측 범위 안에 있다. 기술 개발에 걸리는 시간만큼 타격은 커지겠지만 말이다. 따라서 일본이 뻘짓을 했다고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이미 대차대조표 따져보고, 한국의 손해가 더 크다는 계산 아래 착수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중요하게 감안할 점은 중일 분쟁의 결론, 즉 승패가 나뉘지 않았다는 대목이다.
이번 무역 규제는 강제징용에 대한 민간 차원의 손해배상에 대해 일본이 강력히 반발하며 시작되었다. 중일 분쟁의 결론을 참고하면, ‘강제징용 손해배상을 인정해야 하는’ 일본의 일방적 패배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1년을 끌든 2년을 끌든, 그 기간에 더 고통받는 쪽인 한국이 먼저 합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설사 미국에 의해 합의가 종용되더라도 일본이 강제징용을 인정하는 합의를 할 리는 없다. 결국 아베 정권의 의도는 성공한 셈이 된다. 한국의 과거사 문제 제기에 정면으로 맞서 자기 입장을 지켜냈다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중국은 여전히 댜오위다오를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영해 문제로 동남아국가들과 계속 마찰을 빚으면서도 물러설 기색이 없다. 하지만 댜오위다오 문제를 다시 꺼내려면 이전보다 더 강한 일본의 반발에 맞설 각오를 해야 한다.마찬가지로 어떤 형태로든 양자간 합의로 종결된다면, 한국 정부는 일제시대와 연관된 문제를 다시 제기하기 어려워진다. 일본에게 재차 강경책으로 맞서면 된다는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베 정권이 ‘강한 일본’을 추구하고 있다는 분석은 여러 차례 있어 왔고, 총선 승리와 헌법 개정으로 이어지는 큰 그림 아래 이번 규제를 기획했다는 말도 있다. 다만 나는 선거나 헌법개정보다 과거사 문제에 맞서는 정치적 명분의 획득이 더 직접적인 목표라고 생각한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금지했을 때 추측되는 -기사화될 리 없는- 문제가 있다. 희토류는 대개 중국 남부 지역의 민간업체들에 의해 채굴됐는데, 당시 중국 당국은 희토류 생산과 유통 과정을 직접 관리하기 시작했다. 분명 지역 경제 위축 문제가 발생했겠으나 중국 특성상 묵살해버릴 수 있었다. 이후 시진핑은 권력을 자신에게 더욱 집중시키는 방법을 썼고, 그만큼 중국의 내부 불만은 더욱 커져왔다. 중국의 내부 갈등이 커지는 것까지 일본이 의도하진 않았더라도, 이후 중국의 정치 변화를 감안하면 이번 한일 무역분쟁으로 한국의 내부 갈등이 확대될 가능성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중국 또는 일본과 같은 사회환경은 아니다. 당연히 차이점이 있고, 이것이 향후 한일 무역분쟁에서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관제데모와 시민사회
공산당 치하의 중국에서 시위가 가능하다면, 나라가 망할 징조든지 아니면 나라에서 그러라고 부추겼을 경우일 것이다. 중국의 반일 시위는 당연히 관제데모였고, 필요할 때 묵인했다가 언제든 치워버릴 수 있는 성격의 것이었다. 한편 일본의 경우에도, 시민들의 자발적인 대규모 시위는 예상하기 어렵다. 촛불집회가 자주 있던 시절, 일본에서도 반아베 시위가 꽤 있었지만, 우리 입장에선 지극히 소수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이러한 경험의 차이는 한국의 시위가 가지는 의미를 오해하게 만든다. 앞으로 반일 시위와 불매운동이 더 본격화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시민들의 의사로 받아들이지만 일본이나 중국에선 ‘정치적으로 부추겨진’ 또는 ‘일부 극렬 세력의’ 선동으로 오해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반일 정서가 가져올 부작용, 일본 스스로의 손해를 과소평가할 수 있다.
중일 분쟁에서 결코 찾아볼 수 없는, 민간의 자발적 행위에 따른 응집력, 이것이 한일 무역분쟁의 예측을 어렵게 만드는 변수다. 아베 정권 입장에서 과소평가하거나 혹은 예측불가능한 성격의 변수가 바로 한국 국민들의 반발이다.
한국 정부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 반도체 생산에 어느 정도의 문제가 생길지, 그것이 우리 경제에 얼마나 영향을 끼칠지 계산해봐야 하고, 혹시 대일 강경책을 썼다가 경제 피해규모가 예상보다 커지지 않을지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북한처럼 경제가 바닥권이면 블러핑이라도 세게 치겠지만 그러기엔 우리나라는 잃을 게 너무 많다. 그러나 아베 정권의 속셈이 ‘강한 일본’의 재림이고, 과거사 문제든 전자산업이든 한국과 힘겨루기를 통해 한풀 꺾어놓을 생각이라면,우리 정부가 온건책을 유지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매우 곤란한 처지에 놓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일본의 무역 규제가 문재인 정권의 지지기반 약화와 향후 정권 교체까지도 감안한 포석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런 의도가 없었더라도 아베 정권에겐 자한당 정권이 훨씬 수월한 파트너임은 분명하다.
이를 역으로 생각해보자. 그러니까 일본이 바라지 않는 불리한 시나리오는, 이번 무역 규제로 문재인 정부의 지지가 오히려 강해지는 경우다. 시민들의 비폭력적이고 합리적인 반일 행위가 더욱 거세져서, 국내 경기가 위축되더라도 일본에 맞서야 된다는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정부도 대일 강경책에 착수하기가 쉬워질 것이다. 또한 민간의 정서는 문화의 형태로 전파되어, 욱일기와 위안부, 강제징용 문제가 국제 사회에서 더 확산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민간에서 벌어지는 합리적 반일 행위의 선발주자는 이제 시작된 불매운동이다. 따라서 일본에 유리한 형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불매운동의 싹을 잘라버리는 편이 좋다. 그래봤자 계란으로 바위치기고, 경제 흐름을 모르는 우매한 짓이며, 스스로 불이익을 자초한다고 혀를 찰 것이다. 한일 무역분쟁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한국인들이 이런 인식에 안주해야 일본 입장에선 변수가 줄어든다.
마이니치 신문의 사와다 가쓰미 기자는 7월 8일 칼럼에서 한국의 일제 불매운동이 실패의 역사라고 말하고 그 이유를 ‘성숙한 시민사회’에서 찾았다. 중앙일보에서 인터뷰한 이 기자의 말은 이렇다.
Q : 과거 불매운동이 왜 실패했다고 보나.
A: :“한국이 성숙한 시민사회라서 그렇다.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는 여러모로 성숙했다. 일부 정치적 동기를 가진 사람들이 부추기는 화형식 등 불매운동은 성숙한 사회에서 다수의 지지를 얻기가 어렵다.”
이 말은 선의로 해석할 수 있지만, 한국인들의 자발적 참여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담겨 있다. 앞서 말했듯이 일본이나 중국에선 대규모 시민들의 자발적인 정치 참여를 경험하기 어렵다. 이들이 박근혜 정권을 탄핵시킨 촛불집회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진다. 어쩌면 ‘누군가는 촛불을 사서 나눠줬을 것 아닌가’라던 가카처럼, 촛불집회의 핵심이 시민이 아니라 특정 정치세력이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 이해한다. 일본은 그래 본 적이 없으니까.
한일 무역분쟁의 큰 변수가 될 수 있는 이 부분을, 우리 내부에서 평가절하하고 있다는 점은 부정적인 요소다. 그 정치인들과 신문사를 나열하지는 않겠다. 전우용 교수의 말처럼, 110년 전 매국단체 일진회가 했던 짓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문화의 힘은 곧 민주주의다
백범 김구의 ‘나의 소원’에 유명한 구절이 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강한 무력이나 풍요로운 물자가 원천이 되어 문화가 확산되던 시기가 있었다. 물리적인 교통과 운수가 가능해야만 지식과 정보의 교류도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벽이 없어지고 오히려 정보가 넘쳐 흐르는 현대 사회에선, 소비하고 즐기는 개인의 자발적 선택이 ‘문화의 힘’에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된다. 우리 문화가 인구가 많은 인도와 중국보다 더 확산력이 강하고 일본을 넘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민주주의 실현에 따른 ‘개인의 자발성’ 면에서 우리가 더 나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 면에서 내가 생각하는 일본의 손해란,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반일 감정을 가지는 계기, 즉 반일 문화가 확산될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일본에 대해 원초적 반감을 가진 이전 세대에 비해, 현재 젊은 세대들은 일본과의 교류에 유연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나 역시 이전에 비하면, 일본인들도 한류를 즐기는데, 굳이 선입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역사 문제는 있지만 차차 해결해갈 수 있으리라는 안이한 낙관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반일 감정이 유례없이 강하게 확산되고 있는 상태다. 한국은 인터넷과 SNS를 통한 여론 형성이 빠르고, 특히 젊은 층에서 매우 강한 응집력을 발휘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한일 무역분쟁은 일본에 대한 우호 감정을 대폭 악화시키는, 수교 이래 최대의 자충수다.
민주주의가 발달해야 비로소 알게 되는 사실이 있다. 정부나 기업의 거시적 정책이나 투자는 통계로 집계되어 유의미하게 다뤄지곤 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잘 보이지 않는’ 일반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이야말로 결국 진짜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문화의 힘’만이 소원이라는 백범의 말을 나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중국의 반일 의식은 생각보다 깊다. 그러나 자발성이 억압된 환경에서 그들의 행위는 현실적인 응집력, 소위 ‘문화의 힘’을 보여줄 수 없다. 결국 일시적 관제데모의 범위를 넘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역시 그러한 과거를 지나왔기 때문에, 지금의 반일 시위나 불매운동, 새로이 불거진 반일 의식이 이전의 선동과는 다르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 일본의 과거사 문제가 새삼 인식되는 사회 현상이 ‘문화의 힘’에 의해 확산될 수밖에 없다. 아베 정권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계량되지 않는 이 문화적 손해야말로 불가역적이 아니겠는가.
앞서 우리가 개인의 자발성에 있어 타국보다 나은 면이 있다고 말했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우리의 민주주의 시스템, 그리고 개인의 자유를 구현하는 데 있어 걸림돌이 있다면 그건 ‘비합리성’이다. 여전히 우리에겐 억압과 차별의 비합리적 사회 구조가 존재한다. 또한 개인 차원에서도 근본주의적이고 인식과 폭력적인 언행을 찾기 쉽다. 우리의 민주주의 구현과 시민의식이 한중 무역분쟁의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면, 비합리성은 이를 악화시킬 요소다.
자한당에서 정부의 대책과 불매운동에 내놓는 대응은 비합리적이다. 국가 이익과 국격을 자주 언급하는 이들이지만 사실 총선 1석이라도 건지고 싶은 이기심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일본 출신 연예인을 보이콧하자는 주장도 그렇다. 정책으로 정부를 평가하듯이 사람은 행실로 평가되어야 하며, 국적이나 성별, 피부색 등으로 차별되어선 안되기 때문이다. 비합리적인 가짜 뉴스와 편가르기가 쉽게 없어지진 않을 것이고, 오히려 우리 스스로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를 낳는다.
현실은 그렇지만, 나는 시민들이 가진 합리적 판단이 결국 이길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고 묻는다면 다소 감성적으로,어쩌면 비합리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2년 전의 경험이 그런 믿음과 자신감을 주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