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정권 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동 자체가 불법이므로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는 하급심 판단이 또 나왔다. 올해 들어서만 세 번째다.
긴급조치 발령은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 행위여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본
2015년 양승태 대법원 판례에 반하는 판결이다.
30일 서울중앙지법 민사16부(재판장 김동진)는 긴급조치 제9호 피해자 박아무개씨와 최아무개씨, 그 가족 등
1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일부 승소 판결하면서 국가가 이들에게 모두 4억3천여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2015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 판례와 정반대로 판단했다.
국가의 배상책임이 인정되려면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가 있어야 하는데
재판부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긴급조치 9호 발령행위가 고의적인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당시 긴급조치 9호 발령행위는
△국가긴급권 행사 요건에 어긋나고
△국민 기본권을 침해해 그 자체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국가행위가 고도의 정치성을 띠고 있다 하더라도, 헌법과 법률의 한계를 벗어나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그 행위자가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은 물론이고 기본권을 직접
침해당한 국민은 국가에 합당한 법적 책임을 묻고 피해 회복을 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2015년 대법원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긴급조치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 행위여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손해배상 청구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바 있다.
이 판례로 인해 긴급조치 피해자들은 수사과정에서 발생한 불법 행위를 입증해야만 겨우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다.
그해 ‘국가 책임을 협소하게 봤다’, ‘40년 전 은밀하게 이뤄진 가혹행위를 어떻게 입증하냐’는 비판이 쏟아졌고
대법원 판단에 반기를 드는 하급심 판단이 잇따라 나왔지만 항소심·상고심 진행 과정에서 모두 뒤집혔다.
그러나 최근 2015년 대법원 판단에 반하는 하급심 판단이 또 다시 나오고 있다.
지난 4월 서울중앙지법 민사27부(재판장 임정엽)는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긴급체포·구금된 김아무개씨 사건에서
“긴급조치 1호 발령 행위 자체가 불법”이라 판단했다. 지난 9월 서울중앙지법 민사22부(재판장 이동연) 또한
긴급조치 제9호 피해자 이아무개씨와 유족 등 19명이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는 3억 7천여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이번 사건에서 긴급조치 피해자를 대리한 서중희 변호사(법무법인 동화)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단으로 과거 판단을 바로 잡아야 하는데, 하급심에서 전향적인 판단이 하나 둘 쌓이면
대법원이 과거 잘못을 바로 잡기 용이해진다”고 밝혔다.
한겨레 고한솔 기자 https://news.v.daum.net/v/20191103070602695
개혁의 출발은 내부에서 스스로 반성하고 틀린 걸 바로잡는 것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