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빌미 노골적 무역보복..국산화·불매운동 '되치기'
올림픽 욕심이 자초한 禍..명분·실리 잃고 방역도 실패
(서울=뉴스1) 심언기 기자 = 냉랭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한일 양국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지난해 노골적 수출규제 무역보복은 한국 정부의 국산화 추진 되치기와 국민들의 불매운동으로 일본 정부를 당황시키고 있다.
코로나19 국면에서도 도쿄 올림픽 강행을 위해 안이한 인식과 부실대응으로 일관, 방역 실패는 물론 국제사회 신뢰도 추락을 자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치·외교 분쟁에 경제보복 카드…日 기업만 피해 '부메랑'
대법원은 지난 2018년 10월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강력히 항의하는 일본 정부에 맞서 우리 정부는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자 일본은 외교·안보·경제 분야를 가리지 않고 보복에 나섰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7월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의 핵심 소재인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폴리이미드 등 3개 품목 대한 수출을 규제했다. 한국을 수출심사 우대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도 제외했다.
초기 우리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들은 크게 당황했지만, 국내 중소중견 제조업체들이 대체품 개발·생산에 착수, 성공하면서 이같은 걱정은 기우에 그쳤다. 오히려 일본 기업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어야 했고, 안정적 매출을 담보해온 장기 공급처를 잃을 처지에 놓였다.
정부는 일본 무역보복을 계기로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추진에도 발빠르게 나섰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소재·부품·장비 강소기업 100' 프로젝트를 통해 대대적 육성 정책에 나섰고, 산자부·과기부와 공동으로 대규모 R&D 정책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핵심 소재를 일본에 의존해온 대기업들 역시 일본 무역보복을 겪으며 정치·외교적 상황이 수급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게 됐다. 이후 반도체용 포토레지시트는 유럽 등지로 공급처를 다변화했고, 액체 불화수소는 국산품으로 완전히 대체했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빌미로 한 무역보복은 우리 국민들의 반일 감정 '역린'을 건드려 대대적 불매운동으로까지 번졌다. 잇단 구설수에 오른 유니클로는 매출에 큰 타격을 입었고, 최근 일부 판매가 재개되기 시작한 일본산 맥주도 한때 매대에서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여행 보이콧 운동으로 아베 정부에게는 지방정부의 항의가 빗발치기도 했다.
한미일 군사동맹에도 파열음이 일었다. 일본 측으로부터 얻는 군사정보의 질과 속도가 뒤떨어진다고 판단한 우리 정부는 지소미아(GSOMIA·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를 통보하며 강경대응에 나섰다. 지소미아는 막판 미국의 중재로 가까스로 조건부 연장됐다.
◇올림픽 매달리다 놓친 코로나19 골든타임…행정력도 도마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양국의 희비는 더욱 극명하게 엇갈렸다. 대유행 조짐이 보이던 2~3월 골든타임에 방역 총력체제를 구축한 한국과 도쿄 올림픽 개최강행을 염두에 둔 일본의 소극적 대응이 결정적이었다.
한국은 대구 신천지발 확산으로 한때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감염국이란 불명예를 얻었다. 각국이 한국인 출입국에 빗장을 걸어닫고, 경기가 급속하게 얼어붙었지만 방역당국은 강력한 확산방지책을 뚝심 있게 밀고나갔다.
마스크 착용과 손씻기 운동, 사회적 거리두기와 더불어 개인정보 보호 논란을 무릅쓰고 확진자 동선 공개라는 극약처방을 내놨다. 메르스 사태 경험을 토대로 한 검체키트 개발·상용화가 신속하게 이뤄졌고, '드라이브 스루'와 같은 각종 아이디어도 빛을 발했다. '코로나19 3법'은 정부 주도 방역을 든든하게 뒷받침했다.
반면 일본은 국제사회의 우려 속에서도 도쿄 올림픽 개최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으면서 방역에 소극적이었다. 불안감 차단을 위해 의도적으로 검체검사 숫자를 축소했다는 의혹은 아직까지도 가시지 않고 있다. 위생 문제가 지적된 '아베 면마스크'는 조롱거리로 입길에 오르내렸다.
일본 정부는 도쿄올림픽 무산 또는 연기시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올림픽 연기에 따른 피해금액은 7조원 이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IOC와 각을 세우면서까지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도쿄올림픽은 끝내 연기됐고, IOC 및 세계 각국과 코로나19 안전성을 두고 설전을 마다하지 않았던 일본은 역풍을 맞는 모양새다. IOC는 도쿄올림픽 연기에 따른 지원금으로 8억달러(9800억원)을 책정했는데, 이중 일본에는 8000억원 가량이 지원돼 예상 피해금액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일본외국특파원협회(FCCJ)는 회보를 통해 이같은 일본 정부 행태를 꼬집은 도쿄 올림픽 로고와 코로나19 합성 이미지를 게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2021년으로 미뤄진 도쿄올림픽이 끝내 개최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백신 개발 시점이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재난지원금 지급을 두고도 양국 국민들의 지지와 비판은 이어진다. 지난달 30일 나란히 예산 승인을 받았지만 전산행정을 통해 재난지원금 신청이 간편·신속한 한국과 달리, 일본은 온라인 신청이 미숙해 관공서 서류작업에 의존하고 있다. 일본의 이같은 아날로그식 행정은 코로나19 확진 통계의 잇단 집계오류 원인으로도 지적되고 있다.
eonki@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