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6.25때 중국동포들의 임무]라는 글에 대한 비판

짭샹 작성일 20.10.10 22:51:44 수정일 20.10.12 10:4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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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판 성격에 안 맞으면 글 옮기겠습니다

 

시진핑 ㄱㅅㄲ 

라고 시작해야 덜 까일거 같네요

 

아래에 [6.25때 중국동포들의 임무] 라고 올라온 글을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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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1) 1949년 7월, 1950년 4월 만주에 있던 조선인 수 만명이 북한군에 합류한다. → 사실

그러나. 이 때 만주에 살던 사람들은 [조선인]인가? [조선족]인가? 생각해봐야합니다. 

스스로를 조선인(한국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조선인이었지만 중국 정부의 보호를 받기 위해 중국인이 된 사람들도 있을테니, 하나의 균질집단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적어도 이 시기에 만주에 살던 사람들을 지금 개념의 조선족으로 보는건 무리입니다.

 

만약, 이 때 만주에 살던 사람들 = 조선족 이라면,

중국놈들이 바이두 백과전에 우기는 것처럼 간도 명동촌 출신인 윤동주도 조선족입니다.

(스피드웨건님 글: https://www.jjang0u.com/best/view/15054760/1?search=%EC%9C%A4%EB%8F%99%EC%A3%BC&search_type=title_content)

 

아무튼 이 당시 만주에 살던 사람들은 일제강점기 전후로 자의, 타의로 넘어가서 살던 조선인들입니다.

교과서만 보더라도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조선인(한국인)들의 만주 이주는 활발했습니다.

우리가 조선족에게 비판적인 이유는 그들의 최종적인 정체성이 ‘중국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당시 만주에 살던 조선인들의 정체성은 조선인(한국인)입니다. 

그들을 모두 지금 개념의 조선족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인용된 책을 저도 소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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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인호 교수님의 [조선의용군의 독립운동] 머릿말에 나오는 말입니다. 여기만 읽어도 저 게시물에서 이 책을 악의적으로 인용한 걸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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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2) 북한군에 합류한 조선인 수 만명은 누구인가

1949년 7월 중국인민해방군 166사단, 164사단이 북한으로 이동

1950년 4월 조선인으로 구성된 중국인민해방군 사단이 북한으로 이동

이들의 이력을 살펴보면

 

중국인민해방군 166사단 ← 조선의용군 1지대 ← 조선의용군 ← 조선의용대

중국인민해방군 164사단 ← 조선의용군 3지대 

 

그들은 1938년 10월에 창설된 조선의용대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조선의용대는 의열단 활동에 한계를 느낀 ‘약산 김원봉’이 중국 국민당의 지원 하에 만든 군사조직입니다. 중일전쟁 발발 후, 국민당 정부를 따라 충칭으로 이동하면서 노선갈등을 겪고 둘로 나뉩니다. 김원봉이 이끄는 그룹은 나중에 한국광복군에 합류합니다. 최창익이 이끄는 사회주의 계열은 중국공산당에 합류합니다. 당시, 중국공산당에서 활동하는 조선인 그룹과 합쳐지면서 조선의용군이 창설됩니다.

 

중국 국민당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고 임정의 독립군이 한국광복군입니다.

중국 공산당은 조선독립동맹을 지원하고 이들의 독립군이 조선의용군입니다.

임정과 광복군은 국민당을 따라 중국 내륙의 깊숙한 충칭으로 이동하지만, 

조선의용군은 중국 공산당과 화북에 남아서 항일전투를 벌입니다. 

한국광복군보다 훨씬 더 최전방에서 일본과 맞써 싸우던 1940년대 최대 규모의 독립군 조직입니다.(약 1,000여명으로 추정)

 

물론, 한국광복군은 중국 국민당이 9개 행동준승으로 광복군의 지휘권을 가지려 하자 강력히 반대해서 독립적인 활동을 하는데 반해, 조선의용군은 철저하게 중국 공산당의 지시를 따르는 한계는 있었습니다.

 

해방 이후 조선의용군은 북진을 하면서 일제에 징집된 조선인들, 중국에 있던 조선인들을 흡수하면서 세를 불립니다. 사회주의 계열이니 만큼 북한에 들어가려 하지만 김일성이 막습니다.

 

당시 북한에는 김일성을 비롯한 빨치산파, 연안파, 소련파, 남로당파의 각각의 정파가 있었습니다. 당시까지는 김일성이 완벽하게 장악하지 못했습니다. 김일성 입장에서 제일 부담스러운 정파가 바로 조선독립동맹, 조선의용군 출신의 연안파였습니다. 김일성이 북한 입국때는 소련의 지원을 받았지만, 1930년대에는 중국공산당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서열이 굉장히 낮은 당원이었던데 반해, 연안파 리더들은 중국공산당 안에서도 꽤 높은 위치였습니다. 특히, (김)무정은 대장정을 함께한 팔로군 포병사령관 출신이었고, 펑더화이(팽덕회)의 의형제였습니다. 김일성으로서는 부담되는 스펙들이었습니다. 여기에 수만명이 연안파 군대가 들어온다? 김일성으로서는 막아야했지요.

 

결국 북한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만주에서 대기중이던 조선의용군은 중국공산당 요청에 따라 국공내전에 참전합니다. 중국이 6.25 한국전쟁 때 개입한 여러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들의 국공내전 참전입니다. 말 그대로 혈맹인겁니다. 

 

1949년 국공내전에 승리하고, 김일성의 전쟁준비가 본격화되면서 이들이 북한군에 합류합니다.

 

 

팩트체크 3) 이들은 어떻게 되는가? (간부들 중심으로)

이들은 각각 북한군 제 6, 5, 12사단으로 개편됩니다. 38선에 남진한 보병 21개 연대 가운데 47%인 10개 연대를 차지합니다. 이들은 서부전선 쪽에 배치되면서 초반 무서운 기세로 대한민국 국군, 미국 군사고문단을 무섭게 몰아부칩니다. 국공내전 참전 경험이 이들을 정예병으로 만든 겁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북한군이 불리해지자 김일성은 책임을 일부 연안파에게 몰아부칩니다. 전쟁 중에 (김)무정을 비롯한 일부가 숙청당하고, 전쟁 후에 이루어진 대대적인 숙청으로 연안파 리더들은 목숨을 잃습니다.

남쪽에서는 북한군 주력이라서 빨갱이로 취급받고, 북한에서도 숙청 당하면서 잊혀지는 존재들이 됩니다.

 

1938년 조선의용대가 창설될 때부터 활동한 이들은 민족과 자신이 속한 국가와 이념을 위해 15년 가까운 기간을 전쟁터에서 보냈지만, 목숨 바쳤던 국가와 이념으로부터 버림받았습니다.

(사후에 북한에서 복권되었다고 하지만, 빨치산 중심의 국가에서 이들에 대한 평가나 연구가 제대로 됐을지는 의문입니다)

 

 

개인적으로 뒤틀린 한국 현대사에서 각장 비극적인 인물 중 한 명이 ‘약산 김원봉’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분의 탁월한 독립운동 활동에도 불구하고, 월북과 북한군 전적 때문에 인정안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찬가지의 논리로 가장 비극적인 조직이 ‘조선의용군’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북한군 주력으로 남침한 건 비판해야하지만(민간인 학살 등), 이런식으로 조선족이라는 말도 안되는 개념을 씌워서 멸시하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첨) 해당게시물이 일베를 중심으로 여러 커뮤니티에 올라오고 있는데 정확한 출처를 모르겠네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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