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2-05-04 18:16수정 :2022-05-05 02:17
이재훈 기자 사진
차기 정부 국정과제 보니
전력·의료 등 민영화 단초 담아
“한전 독점구조, 시장에 개방”
의료 등 서비스산업기본법 추진
공공기관 인력 구조조정 태세
근로시간 선택제 확대 등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 못박아
“파탄난 신자유주의 또 꺼내”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4일 오전 철도인프라 현장 점검을 위해 강원 춘천역을 방문, 박수를 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완성한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에서 도드라지는 기조는 ‘민영화’와 ‘공공기관 구조조정’, ‘노동시장 유연화’ 등이다. 코로나19 위기로 국가의 책임과 역할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신자유주의적 국정운영 기조를 내세웠다는 비판이 나온다.
인수위가 지난 3일 공개한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를 보면, 전력과 보건의료·사회복지 관련 산업 민영화의 단초가 담겨있다. 윤석열 정부는 ‘에너지안보 확립과 에너지 신산업‧신시장 창출’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경쟁과 시장원칙에 기반한 전력시장 구축” 등을 제시했다. 새 정부는 이를 통해 “시장원칙이 작동하는 투명하고 합리적인 전력시장·요금 체계 조성”을 기대한다고 적었다. 인수위는 앞서 지난달 28일 에너지 정책 정상화를 위한 5대 정책 방향 발표 때도 “한전 독점판매 구조를 점진적으로 개방하고, 다양한 수요관리 서비스 기업을 육성”한다고 밝혔다. 전력 판매구조를 시장에 개방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전력시장을 민영화하겠다는 뜻이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인수위는 “한전의 민영화 여부를 논의한 적이 없다. 전력시장이 경쟁적 시장구조로 바뀌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미”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공공재인 전력을 수단으로 한 이윤 추구보다 안정적인 공급을 담당하고 있는 한전에 ‘독점’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부터 민영화를 염두에 둔 행보라는 우려가 여전하다.
또 다른 국정과제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 추진’도 민영화를 위한 기본 포석으로 볼 수 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농림어업·제조업을 제외한 보건의료, 사회복지, 교육, 언론, 정보통신 등을 ‘서비스 산업’으로 규정하고 이를 민영화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정부 입법으로 발의된 뒤 의료민영화 등의 우려로 지난 11년 동안 발의와 폐기를 반복했다. 현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는 이원욱(더불어민주당), 추경호·류성걸(이상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관련 법안 3건이 계류돼있다.
윤석열 정부는 △공공기관 자체 인력 효율화 △출자회사 정리 추진 시 인센티브 △공공기관 업무 상시·주기적으로 점검·재조정 등을 ‘공공기관 혁신’ 방책으로 제시하며 구조조정도 예고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이에 대해 “공공기관이 알아서 구조조정에 나서라는 의미”라며 “지금 공공기관에 필요한 것은 구조조정을 통한 기능 축소와 시장주의 도입이 아니다”라며 반발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국가의 역할을 확대하면서 업무가 겹치는 부분을 일부 정리해줄 필요는 있겠지만, 국가가 해야 하는 필수 업무들을 명확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공기관 자율로 구조조정을 맡기면 조정은 안 되고 혼란만 생긴다”고 지적했다.
‘주 120시간 노동’으로 구설에 올랐던 윤 당선자의 ‘노동 유연화’ 철학은 △근로시간 선택제 확대 △현행 1~3개월인 선택적 근로시간 정산기간 확대 △스타트업·전문직의 근로시간 규제완화 등으로 구체화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기업인들의 경영 의지를 위축시킨다”는 윤 당선자의 인식도 국정과제에서 “산업안전보건 관계법령을 정비”하고 “기업의 자율적 안건보건관리체계 구축·확산을 지원해 산업재해 예방 강화 및 실질적 사망사고를 감축”한다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한국노총은 성명을 내어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확대는 집중적인 장시간 노동을 시키고자 하는 사용자 단체의 요구에서 비롯됐다”며 “‘산업안전보건 관계법령 정비’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의미하는데, 경영책임자와 법인이 수사와 재판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세계적으로 이미 파탄 선고를 받은 신자유주의 복음을 고장 난 레코드처럼 반복하고 있다”며 “대부분의 국가들이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경제위기와 불평등 심화에 대처하기 위해 국가의 역할을 강화하는 현실을 외면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