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과 친일과 극우

가륵왕검 작성일 24.08.27 08:57:41 수정일 24.08.27 08:5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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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한글창제는 중화사대주의가 뼛속까지 스며들어 모국 중국에 위해를 가할 수 없다고 여기는 사대부들과 피터지는 전쟁을 통해 얻어낸 정치 행위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조선이 무너질때까지 결국 한글은 언문으로 계급의 한계를 넘어 보편적인 글의 지위를 차지하지 못 했다.  

사대부들의 전유물 한자는 곧 종묘사직을 유지하는 근간이었고 성리학을 계승하는 지배 체계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자는 글로써 자신들만의 정신적 사회적 요체를 유지하고 지키는 보수적 입장에서는 효용성이 있지만 말로써 세상의 변화와 사람의 생각들을 온전히 옮기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고 표음 문자 한글이 성리학의 완전 붕괴와 더불어 일제 침략을 거치고도 살아남게 되었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유지하기 위한 욕심만 존재할 뿐 스스로 중심이 될 자신이 없는 조선의 사대부들은 그대로 일제의 강력한 군국주의 통치체제에 순응했고 천황이라는 가짜 신의 권능을 받아들였다.  

 

권력이 지향하는 쇄국정책과 백성이 요구하는 체제 변화 욕구가 서로 충돌했지만 자신들의 지위가 보장된다면 얼마든지 머리를 조아릴 수 있기에 먼저 백기를 든 것이다.  

 

그리고 중화사대주의 대체로써 식민사관을 인정한 것인지는 그들만이 알겠지만 목도하게된 일제의 경제 발전을 통해 매국이 곧 개인적 부의 축적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는 우리 민족 고유의 역사와 정신.. 문화의 핵심들이 사실 이성계가 중국을 등에 업고 쿠데타로 고려를 패망시켜 조선을 건국하면서  맥이 끊겼고 앞서 말한 성리학이 자리잡으면서 기존의 도교 사상과 고조선 이전의 상고사가 부정당했기 때문이며 이러한 뿌리없음과 사대주의 근성이 이어져 결국 목숨걸고 일제의 지배에 끝까지 저항하지 않은 이유가 된 것이다.  

 

그러면서 개인의 선택 즉 자유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자본주의와 경제 논리가 새롭게 그들의 의식을 잠식하게 되었고 이와 반대 지점에 있는 좌파와 공산주의에 대한 깊은 반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후 일제 패망이 되면서 친일 행적으로 인하여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길 중대한 상황에 처했지만 미국에게 빌붙어 대한민국을 건국하려했던 제2의 이성계,, 이승만이 내세운 극우 반공주의에 따라 그들은 다시 생명을 얻었고 자연스럽게 친일서 친미로 변하면서 독립운동 세력들을 좌파 색출 매카시즘의 광기에 함께 묻어 제거해버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근대에 접어들어 군부의 힘으로 국가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박정희를 통하여 국민들을 완전히 통제하던 일제의 시스템을 흉내내는 유사 군국주의 체제가 구축되었다.  

 

이에 따라 박정희는 친일의 원죄를 가진 존재들에게 스스로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원인이 되었고 지금까지 수구 보수 세력들의 정치적 구심점이 된 것이다.

 

그렇기에 진정한 애국 보수의 이념은 민족주의 국가주의 등등에 있어야 하지만 지금까지 권력 유지만 된다면 중국과 일본 미국에게 빌붙어 더럽고 추잡한 생명을 이어왔던 망령이 쌓은 허상이 바로 극우 수꼴들이 떠드는 자유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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