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 의원은 12월 3일 비상계엄의 밤 이후 소화불량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인터뷰 전날만 해도 새벽 4시 반에 겨우 잠들었다. 계엄 해제에 앞장서고 당내 윤석열 대통령 탄핵 가결에 최선을 다했지만, 이후 상황은 악화일로다.
본인의 지역구인 울산 남구갑 사무실은 쏟아지는 비난으로 패닉에 빠졌다. 사무실 앞 플래카드는 찢겨졌다. 매일 극렬한 항의 집회가 이어지니 "사무실이 불에 안 탄 것만 해도 다행"이란 소리를 듣는다. 지역구 갈 일 있으면 모자에 마스크 쓰고 옷 안에다 방검복까지 받쳐 입는다.
서울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계엄, 탄핵 의결이 진행 중일 때는 쏟아지는 온갖 욕설 항의 전화에 의원회관 사무실 전화를 한때 모두 끊었다. 지금도 동선이나 대외 일정은 되도록 알리지 않는다. 언제 어디에서 무슨 공격을 받을지 모른다는 주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부울경 지역 세대교체의 첫 번째 타자로 꼽혔고, 울산에서도 '노른자 중의 노른자'여서 당이 시킨 대로만 하면 3선은 따놓은 당상이란 지역구를 깔고 앉았는데도 스스로 '배신자'가 됐다.
-12월 3일 계엄 직후 국민의힘 의원 중 가장 먼저 국회에 도착했다.
"서초동에서 지인들과 저녁 모임이 있었다. 계엄 소식에 바로 국회로 갔다. 모두들 그러셨겠지만 12·12가, 5·18이 떠올랐다. 민주주의가 이렇게 무너지는구나, 윤 대통령 스타일상 지금 계엄을 풀지 않으면 진짜 피를 보겠구나, 그 생각뿐이었다."
본회의장에 도착했을 때 계엄 해제를 위한 의결 정족수 150명을 채우지 못한 상태였다. 동료 의원들에게 미친 듯이 전화를 돌렸다. 국회로 오라고. 계엄을 풀어야 한다고. 본회의장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을 발견했을 땐 자기도 모르게 "나라를 구해달라"고 소리쳤다.
-그때 너무 절박해 보였다.
"계엄 해제 의결 때까지 너무 경황이 없어서 사실 그때 누구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날 국회로 가면서 '뒤를 잘 부탁한다' '그간 신세만 지고 간다' '윤 대통령이라면 진압군을 보낼 테니 피를 보게 됐다' '만에 하나 죽더라도 국회에 가야 한다' 같은 얘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했다고 하더라. 그땐 유혈사태만은 막자, 그 생각뿐이었다."
-듣고 보니 유언 같은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그런 느낌인데 그땐 그냥 절박했던 마음뿐이었다."
-7일 1차 탄핵 표결 땐 반대표를, 14일 2차 땐 찬성표를 던졌다. 당내 압박이 상당했을 것 같다.
"1차 표결 전부터 엄청나게 많은 설득이 있었다. 이번 한 번만, 딱 한 번만 우리 얘기를 들어달라, 눈물로 설득하시더라. 그래도 선배 의원들이고 하니 일단 '네 알겠습니다' 했다. 하지만 탄핵 반대만 외쳐대는 의원총회에 가는 것도, 국회에 그대로 있는 것도 너무 괴로워서 지역구에나 가려고 서울역으로 가다 되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1차 표결 때 헐레벌떡 되돌아왔다.
"서울역으로 가는데 '비상계엄 해제할 때 국회에 뛰어 들어갔던 내가 지금 뭘 하는 건가' 자괴감이 밀려왔다. 모든 걸 다 잃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급히 되돌아왔다. 그때 나는 이미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는 그래도 당이 정치적으로 반응을 했다.
"박 전 대통령과 윤 대통령은 비교불가다. 박 전 대통령은 개인 비리, 그것도 약간은 애매한 부분이 있어 보이는 죄를 저질렀다면, 윤 대통령의 행위는 내란이자 국헌문란 행위로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정면으로 위배한 파시즘 친위 쿠데타다. 그런 윤 대통령을 감싸고돈다? 그건 당 자체가 망하는 길이다. 그렇기에 '보수주의를 지향하는 우리 당은 윤 대통령과 깨끗이 단절하고 내란세력 척결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그런데 당이 정반대로 가고 있다. 이렇게 되면 당 자체를 해산하란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된다."
"지금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얘기는 '윤 대통령 하나 감옥 가면 끝일 줄 아냐, 줄줄이 다 간다'는 거다. 정말 걱정들 많이 하는 것 같다. 대체 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결국 윤 대통령과 철저히 단절하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
-'계엄은 잘못이지만 지역구민 의견 때문에 탄핵엔 반대한다'던 대구 북구갑 우재준 의원의 발언은 한국 정치에서 기이하게도 몹시 현실적이다.
"우 의원이 저와 같은 고민을 공유하고 있는 의원 중 한 명이다. 사실 저도 그 소리 매일 듣는다. '너 뽑아준 사람은 우리야, 우리는 윤 대통령이 좋아, 그런데 왜 우리 말을 안 들어' 같은 얘기다. 지지자 뜻을 잘 받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론 국가이익과 소신을 좇아야 한다. 계엄을 옹호하고 탄핵을 반대하는 건, 보수주의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에 위배된다."
-김상욱 의원 개인의 신변을 걱정하는 이들도 많다.
"2차 탄핵 표결이 가결된 뒤 '두 달 안에 감옥에 보내겠다'는 말까지 이런저런 음해제보가 쏟아진다고 들었다. 지금은 여론이 심상치 않으니 내버려 두겠지만, 당 입장에서야 아무래도 나를 본보기로 삼아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 '제2의 김상욱'도 막고, 자신들도 일치단결할 수 있다 생각하지 않겠나. 다음 총선까지 남은 시간은 3년, 괴로운 시간이 오리라 각오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내란'이란 말 자체를 거부하고 헌법재판소 9인 체제 구성을 늦추고 더 나아가 탄핵 기각을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까지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윤 대통령 문제를 빨리 정리해 줘야 한다. 9인 체제가 이뤄져야 한다. 만에 하나, 그럴 일은 절대 없겠지만, 헌재의 탄핵 기각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윤 대통령이 가만있겠나. 바로 군대 동원한다. 그걸 용납할 국민이 있겠나. 충돌과 유혈사태를 피할 수 없다. 내전 상태에 돌입해 나라가 망하는 수순으로 접어든다. 내란은 아니라는 둥, 탄핵이 기각될 것이라는 둥 그런 소리를 한다면 되묻고 싶다. 정말 나라가 망하기를 원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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