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망이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을 친다>는 말은 지난해까지 16년 동안 13번의 3할 시즌을 만들어낸 양준혁에 대한 찬사다.
하지만 원래 주인은 단일시즌 타율 순위에서 3위(.387) 4위(.373) 6위(.369) 기록을 가지고 있는 장효조였다.
지난해까지 통산 3000타석 이상을 나선 역대 99명의 타자 중 통산 타율이 3할대인 타자는 단 10명.
그 중에서 3할2푼 이상은 오직 장효조뿐이다.
장효조(.331) 양준혁(.317) 김동주(.313) 데이비스(.313) 이병규(.312)
김태균(.308) 장성호(.306) 이승엽(.305) 이진영(.302) 이종범(.301)
이정훈(.299) 김종모(.298) 이만수(.296) 박정태(.296) 이영우(.295) 김기태(.294)
마해영(.294) 김응국-김재현-이대호(.293)
메이저리그에서 역대 1위 타이 콥(.366)과 2위 로저스 혼스비(.359)의 차이는 7리.
하지만 장효조와 양준혁의 차이는 1푼4리
다. 4차례 타격왕은 양준혁과 함께 공동 최다. 시즌 대비 숫자로는 양준혁을 앞선다.
장효조는 10시즌 동안 8차례 3할 타율을
기록했다. 또한 5위 내에 든 것이 7번, 10위 내에 든 것이 8번이었다.
가장 아쉬운 시즌은 1991년이었다.
그 해 .347를 기록한 장효조는 .348의 이정훈에 1리가 모자라 5번째 타격왕을 놓쳤다.
'비난은 순간이지막 기록은 영원하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던 김영덕 감독의 지시를 받은 빙그레 이글스 투수들이 시즌 막
판 장효조와의 승부를 피한 영향이 컸다(공교롭게도 양준혁은 장효조와 마찬가지로, 2007년 1리 차이로 5번째 타격왕을 놓쳤다).
홈런이나 타점과 달리 타격왕은 2년 연속 수상이 대단히 어려운 부분이다. 하지만 장효조는 1985년부터 1987년까지 유일한 3
연패에 성공했다. 2연패에 성공한 타자도 1991-1992년 이정훈뿐이다. 1984년 2년차 부진(.324 4위)만 아니었다면 역사적인 5
연패도 달성할 수 있었다. '5년 연속 5위 이내'도 장효조 만이 가지고 있는 기록으로, 양준혁의 최고 기록은 4년 연속이다.
1987년 장효조는 리그 평균(.265)보다 1할2푼2리가 높은 역대 3위 타율(.387)로 타격왕에 올랐다. 역사상 그보다 더 큰 차이
를 보인 타격왕은 1982년 역대 1위 타율(.412)을 만들어낸 백인천(차이 .147)과 1994년 역대 2위 타율(.393)을 기록한 이종범
(차이 .136)뿐이다. 지금까지 리그 평균과 1할 이상 차이를 낸 타격왕이 나온 것은 5번. 그 중 3번을 장효조가 만들어냈다.
장효조에 대해 가장 아쉬운 점은 다른 초창기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늦게 데뷔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장효조는 1982년 세계야
구선수권대회 대표선수에 묶여 프로 진출이 보류됐고, 이듬해 만 27세의 나이로 프로 데뷔를 이뤘다.
1983년 장효조는 타율(.369) 출루율(.469) 장타율(.618) OPS(1.087) 최다안타 장타 볼넷에서 1위를 휩쓸었고, 홈런(18)과 타점
(62)에서는 3위에 올랐다. 하지만 너무 뛰어나다는 이유로 신인왕 투표에서 배제됐다(신인왕 박종훈 .312-377-419). MVP 역
시 홈런(27) 타점(74) 1위 이만수(.294-377-555)가 차지했다. 하지만 그 해 장효조는 RC(92.23)에서 이만수(69.56)를 크게 추
월했다.
1991년 만 35세의 나이에도 .347를 기록했던 장효조가 20대 초반에 데뷔할 수 있었다면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는 훨씬 더 풍성
해졌을 것이다.
장효조에 대해 쉽게 오해하는 부분은 그가 타율만 높은 타자라는 것. 하지만 장효조의 진정한 가치는 타율보다는 출루율이었
다. 장효조는 6차례 출루율 1위에 올랐는데, 이는 타격왕 숫자보다 2개가 더 많은 것이다. 장효조를 제외하면 4번 성공한 선수
도 없다(양준혁 3회, 한대화-장성호-김기태 2회). 장효조는 1983년부터 1987년까지는 5연패에게 성공하기도 했는데, 2연패에
성공한 선수도 1989-1999년 한대화뿐이다. 장효조는 10시즌 중 8시즌에서 출루율 3위 이내에 들었다.
A : 타율 .331 출루율 .427 장타율 .459 OPS .886
B : 타율 .338 출루율 .388 장타율 .459 OPS .847
A는 장효조, B는 토니 그윈의 통산 성적이다. 공교롭게도 장효조는 1983년, 그윈은 1982년으로 거의 같은 시기에 데뷔했다.
물론 장효조보다 5살 어린 나이에 데뷔한 그윈은 장효조보다 10시즌을 더 뛰었고 4번의 타격왕을 더 차지했다.
타율이 거의 비슷하며 장타율은 아예 똑같은 두 선수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출루율이다. 둘은 똑같은 타격왕이었지만 '메이
저리그에서의 그윈'에 비하면 출루율이 4푼 가까이 높은 '한국 프로야구에서의 장효조'가 더 가치 있는 타자였다.
이만수가 1983년부터 1987년까지 5년간 4차례 타점왕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앞에서 밥먹 듯이 출루해준 장효조가 있었
기에 가능했다. 팀의 득점에 대한 기여도를 가장 잘 나타내는 지표로 평가받고 있는 RC/27에서 장효조(7.66)보다 더 좋은 통
산 성적을 기록한 타자는 2명. 이승엽(8.90)과 양준혁(8.05)뿐이다.
한국 프로야구의 타격왕 계보는 장효조로부터 출발, 양준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지난해 그 다음 계승자가 될 만한 선수
가 등장했다. 장효조가 4번째이자 마지막 타격왕을 따내고 6년 후인 1993년, 양준혁은 첫번째 타격왕을 따냈다. 양준혁이 4번
째 타격왕을 따내고 7년이 지난 지난해, 김현수는 첫번째 타격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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