쩌네요,,천재희./.. 이건 뉴스 보도 자료인데..타고난 천재가 맞는듯...센스도 넘치고
예상을 뒤엎고 대박을 터뜨린 주인공은 천재희(23, 부산태산체). 대회 전 천재희의 승리를 예상하는 이는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조차 거의 없었다. 상대인 야마모토는 일본 종합격투기의 아이콘으로 과거 'K-1 히어로즈' 챔피언에 등극하는 등 14연승을 거둔 바 있다. 또한 K-1룰로 마사토와 대등한 경기를 펼칠 정도로 뛰어난 타격실력을 보유한 파이터다.
이날 천재희가 야마모토를 꺾을 수 있었던 가장 주된 비결은 주눅을 들지도 겁을 먹지도 않았다는 것. 경험이 적은 보통의 선수라면 적지에서 스타파이터와 맞붙게 되면 위축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천재희는 입장할 때부터 팔짝팔짝 뛰고 소리를 지르는 등 경기를 즐겼다. 경기가 시작된 후에도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공방전을 펼쳤다.
또한 야마모토에게 한 차례 펀치를 허용했지만, 당황하지 않았고 침착하게 대응했다.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 야마모토는 천재희에게 공격을 퍼부었지만, 그건 큰 오산이었다. 천재희는 야마모토와 펀치공방을 벌이던 중 펀치를 피한 후 오른손 어퍼컷과 왼손 훅을 정확히 적중시키며 경기를 순식간에 끝냈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승리였다.
천재희의 대범함은 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돋보였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인 2003년에 운동을 시작한 천재희는 처음 무에타이 체육관을 찾자마자 선수와 스파링을 해보겠다고 큰소리 쳤다. 태산체육관 김용호 관장은 천재희의 요청에 당시 코마에서 활동하던 문준원과 스파링을 붙였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링에 처음 오른 천재희가 문준원보다 더 많은 공격을 적중시킨 것. 아무리 다른 운동을 해봤다고 하지만, 의외의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재능을 인정받은 천재희는 한 달이 지난 후 곧바로 선수로 활동했다. 김용호 관장은 "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 라고 말한다.
이후 천재희는 5전 5승 5KO를 기록하며 순조롭게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빈인욱과 맞붙을 예정이었던 팀 동료 대신 천재희가 대신 출전하게 된 것.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당시 약 40전의 경험을 갖고 있던 빈인욱과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그러나 천재희는 빈인욱을 상대로 5라운드 동안 물러서지 않는 경기를 펼치며 2대 0 판정으로 패했다. 비록 승리하진 못했지만 불과 5전의 경험이 전부인 천재희가 강자를 상대로 대등한 경기를 펼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천재희의 선전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목포에서 열렸던 무에타이 최강자전 8강 토너먼트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것. 당시 천재희의 활약을 예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천재희는 권민석, 김한울을 차례로 꺾고 결승전에서는 최강자였던 김정섭을 상대로 연장 접전을 펼쳤다.
그 대회로 인해 천재희라는 이름이 알려졌고, 이때부터 출전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한국격투기연맹 주니어라이트급 챔피언에 등극했고, 그해 7월에는 K-1 칸 세계대항전 출전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오프닝매치에 출전한 천재희는 먼저 다운을 빼앗고도 역전패를 당했다. 그러나 화끈한 인파이팅으로 링을 달구며 많은 박수를 받았다.
태산체육관 김용호 관장은 천재희의 장점으로 " 무서움이 없고, 의욕적이다. 심지어 55kg 정도에서 활동할 때도 70kg 선수와 붙고 싶다고 큰소리쳤다. 또한 신체적인 순발력이나 타격 센스도 타고났다 " 라고 말한다.
천재희가 이번 대회에서 이변을 일으키며 많은 주목을 받고 있지만, 국제무대에서 신인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앞날은 밝다. 넘치는 자신감으로 중무장한 천재희는 올해 나이 스물 셋에 불과하다. 앞으로 더욱 노력하면 세계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파이터로 활약할 가능성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