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이저리그(MLB) 샌프란시스코 중견수 엘리엇 라모스(25)는 지난 시즌까지 MLB 통산 타율 0.158에 불과한 타자였다. 2017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9순위로 입단한 대형 유망주였지만, 1라운드 드래프티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 또한 흔하고 흔했다. 올해로 입단 7년차, 라모스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올 시즌 드디어 잠재력을 터뜨렸다. 5월 8일(현지시간)에야 첫 출전 기회를 잡았지만, 이후 무섭게 방망이를 휘둘렀다. 지난 9일까지 55경기 동안 215타수 65안타에 13홈런, 타율 0.302, OPS 0.907을 기록하며 내셔널리그 올스타에 뽑혔다. 선발 외야수 중 1명인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샌디에이고)가 부상 중이라 라모스가 그를 대신할 가능성이 크다.
라모스가 선발로 나간다면 1971년 윌리 메이스 이후 샌프란시스코 외야수의 첫 올스타전 선발 출장이다. 샌프란시스코 외야가 올스타 선수를 배출한 것만 해도 1986년 칠리 데이비스 이후 38년 만이다. 올해 샌프란시스코 팬들은 팀을 대표하던 전설적인 외야수 메이스와 올랜도 세페다를 잇달아 떠나보냈다. 디어슬레틱은 “라모스가 작고한 메이스나 세페다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가 등장하면서 슬픔에 빠졌던 샌프란시스코는 새로운 활력소를 찾았다”고 적었다.
대형 유망주로 승승장구하던 라모스는 최근 몇 년간 크게 기세가 꺾였다. 유망주 상위 100명 순위에 늘 이름을 올렸지만, 계속된 부진으로 순위가 계속해서 떨어졌고, 2022년 이후로는 아예 명단에서 제외됐다. 가능성 하나만 보고 7년 전 푸에르토리코의 18세 어린 선수를 지명했던 샌프란시스코 역시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샌프란시스코는 빅리그에서 170홈런을 때린 베테랑 외야수 호르헤 솔레어를 영입했다. 이어 KBO 최고 타자 이정후까지 6년 1억1300만 달러 계약으로 영입했다. 라모스가 설 자리는 더 좁아졌다. 그러나 솔레어가 어깨 탈골로 부상 이탈했다. 한국 팬들은 다시 생각하기 싫은 기억이지만 이정후마저 수비 도중 펜스와 강하게 충돌해 쓰러졌다. 불운한 일이었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라모스는 기회를 잡았다.
라모스는 “힘든 시기를 겪으며 마음가짐이 바뀌었고,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중요한 순간 재능을 발견했고, 낭비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고 덧붙였다. 사실 시즌 전만 해도 라모스가 ‘계산된 전력’은 아니었다. 솔레어와 이정후 외에도 마이크 야스트렘스키, 마이클 콘포토, 오스틴 슬레이터 등 외야수들이 적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가 라모스를 끝내 트레이드하지 않은 건 1라운드 지명자에 거는 마지막 기대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라모스는 힘들었던 마이너리그 시절을 돌이키며 “압박감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그저 머리로만 느끼는 정도가 아니다”고 했다. 그가 압박감과 싸워 이겨낼 수 있었던 건 가족들의 도움 덕분이었다. 라모스는 지난 1월 딸 엘리아나를 낳았다. 그는 디어슬레틱에 “현실에 머물고 싶을 때마다 여자친구와 딸을 떠올린다”고 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일곱 살 위 형과는 지금도 꾸준히 통화한다. 과거 인터뷰에서 라모스는 “형이 내게 야구를 가르쳤다. 나는 형에게 모든 걸 배웠다.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 형은 다름 아닌 올 시즌 KBO 리그 두산에서 외국인 타자로 뛰고 있는 헨리 라모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