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제에서 군복무 중일 때의 일입니다.
그날은 제 생일이었습니다.
아는 녀석은 알고 모르는 녀석은 모르지만
제가 밖으로 떠들고 다니지 않는 편이라
그날 하루도 그냥 그렇게 넘어가려니 했습니다.
더구나 당시 계급은 상병 말호봉...
내무반에서 상병선임이었기 때문에
후임들 군기 잡느라 늘 어두운 표정에
욕설과 협박... 별에 별 짓을 다할 때였죠.
몇몇 고참들이 다가와서 속삭이길,
"생일인데 고생많다" 하면
화답으로 그저,
"괜찮습니다"가 전부였습니다.
일석점호를 마치고 다들 취침에 들 무렵
자기전에 담배나 한 대 필까하고 내무실을 나서려는데
내무반 막내가 갑자기
막내 : ㅇ상병님, 체력단련실에 불을 켜두고 온 것 같습니다.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나 : 어? 어... 그래.
그러고는 나간 녀석이 10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나 : 2~3분이면 될 시간인데 뭐야 이 새끼...
야! 너 한 번 가봐.
중간 : 예, 알겠습니다.
잠시후... 막내를 찾으러 갔던 녀석이 헐레벌떡 달려오더니
중간 : ㅇ상병님, 체력단련실에 한 번 가보시지 말입니다.
나 : 뭐야? 무슨 일이라도 있는거야? 이런 싯팔...
저는 순간 놀라서 한걸음에 달려갔습니다.
나 : 이...이게 뭐냐? 쵸코파이를 왜 쌓아놓고 지랄...??
막내 : ㅋㅋㅋㅋㅋ
그러더니 내무반에 제 밑에 후임들이 모두 슬금슬금 기어나와서는
어디서 구했는지 생일케익에 꽂는 초를
가장 위에 얹어진 쵸코파이에 나란히 꽂더니
막내가 불을 붙입니다.
나 : (서...설마?)
불을 붙이고는 갑자기 전등을 껐습니다.
막내 : 하나, 둘, 셋, 넷~!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ㅇ상병님 생일 축하합니다~!
나 : ㅎㅎㅎ 이런 가증스러운 것들...
너무 감격이었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 후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마냥 놀라움과 감동이 섞인 표정이었지만
생일 축하 자체가 행복한 것이 아니라
제가 그렇게 호되게 굴고 못살게 굴었는데도
이렇게까지 나를 생각해주고 챙겨주는 전우들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벅차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 많은 삶의 세월이 남아있지만,
지금까지의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과 가장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그 짧은 시간이 저에게는 잊지못할 추억이 될 것입니다.
얘들아...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