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하루.

NEOKIDS 작성일 10.10.24 02: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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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뭐, 그동안이야

 

해놓은 거 조또 없이 하루하루 땜질하며 사는 따위의 인생이란 느낌이었다.

 

그러고도 쫀심은 있어서

 

싫은 소리 들으면 세상 다 산 현자처럼 유유하게 굴었다.

 

사실은 그것일 뿐이었지. 회피스킬.

 

 

 

2.

 

알고 지내던 누군가가 세시 반에 결혼을 했다.

 

그 식장에서, 알고 지내던 또다른 누군가는 크리스마스가 돐인 아기를 데리고 나왔다.

 

낯을 심하게 가리는 아기와 친해지면서,

 

또한 내 가방 속에 준비해두었던 목걸이가 떠오르면서,

 

그들과 헤어지고 난 뒤 마음은 급속도로 차분해졌다.

 

 

 

3.

 

하필이면 중요한 때에 구두 뒤축이 박살이 난 양쪽 발을 움직여

 

3호선에서 맨앞칸에 탄 그녀를 만나기 위해

 

나는 수많은 삶들을 지나쳤다.

 

고단한 하루의 땀내와 즐기려는 등산객의 가방, 노인들의 쉰내에 양해를 구하며

 

한걸음 한걸음 거치적거리는 공간 속을 나아갔다.

 

그러나 그녀와 만나는 건 좀 더 기다려야 했다.

 

수많은 삶들이 다시 완고하게 벽을 쌓고 자신들의 목적지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4.

 

저녁을 먹고, 조명이 켜진 거리를 거닐다가 들어선 내 단골 까페.

 

목걸이를 주고, 내 생일을 그녀와의 기념일로 만들면서,

 

기뻐하는 그녀를 볼 때.

 

반쯤은 내가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초조감과

 

반쯤은 땜질만 남아있던 인생속에서 목적이 탄생한 것에 대한 감사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녀는 웃으면서 왜 한숨을 쉬냐고 했다.

 

그 한숨의 의미를 다 말해줄 수 없어서

 

나도 그저 웃기만 했다.

 

 

 

5.

 

나는 온사방에서 떠드는 사랑의 형태 따위를 믿지 않는다.

 

노랫말 등등 팔아먹기 위해서 만들어내는 사랑 따위는 더더욱.

 

그런 것 때문에 3년 아파했으면 됐지 뭘.

 

사랑은 책임이고, 그걸 달콤하고 즐겁게 받아들이는 것일 뿐이다.

 

 

아마 익숙해지면 화를 내겠지. 있는 칼 없는 칼 꺼내어 상처도 주겠지.

 

힘들고 무거운 때도 있겠지. 그걸 만들어내는 것들은 우리 자신들이겠지.

 

 

하지만 잘 할 수 있을거야.

 

모르던 때라면 용서받을 수 있지만, 알고 있기에 용서받을 수 없으므로.

 

 

 

6.

 

결혼식과, 아기와, 그녀가 한꺼번에 겹쳐지는 묘한

 

서른 여섯의 생일,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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