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뭐, 그동안이야
해놓은 거 조또 없이 하루하루 땜질하며 사는 따위의 인생이란 느낌이었다.
그러고도 쫀심은 있어서
싫은 소리 들으면 세상 다 산 현자처럼 유유하게 굴었다.
사실은 그것일 뿐이었지. 회피스킬.
2.
알고 지내던 누군가가 세시 반에 결혼을 했다.
그 식장에서, 알고 지내던 또다른 누군가는 크리스마스가 돐인 아기를 데리고 나왔다.
낯을 심하게 가리는 아기와 친해지면서,
또한 내 가방 속에 준비해두었던 목걸이가 떠오르면서,
그들과 헤어지고 난 뒤 마음은 급속도로 차분해졌다.
3.
하필이면 중요한 때에 구두 뒤축이 박살이 난 양쪽 발을 움직여
3호선에서 맨앞칸에 탄 그녀를 만나기 위해
나는 수많은 삶들을 지나쳤다.
고단한 하루의 땀내와 즐기려는 등산객의 가방, 노인들의 쉰내에 양해를 구하며
한걸음 한걸음 거치적거리는 공간 속을 나아갔다.
그러나 그녀와 만나는 건 좀 더 기다려야 했다.
수많은 삶들이 다시 완고하게 벽을 쌓고 자신들의 목적지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4.
저녁을 먹고, 조명이 켜진 거리를 거닐다가 들어선 내 단골 까페.
목걸이를 주고, 내 생일을 그녀와의 기념일로 만들면서,
기뻐하는 그녀를 볼 때.
반쯤은 내가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초조감과
반쯤은 땜질만 남아있던 인생속에서 목적이 탄생한 것에 대한 감사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녀는 웃으면서 왜 한숨을 쉬냐고 했다.
그 한숨의 의미를 다 말해줄 수 없어서
나도 그저 웃기만 했다.
5.
나는 온사방에서 떠드는 사랑의 형태 따위를 믿지 않는다.
노랫말 등등 팔아먹기 위해서 만들어내는 사랑 따위는 더더욱.
그런 것 때문에 3년 아파했으면 됐지 뭘.
사랑은 책임이고, 그걸 달콤하고 즐겁게 받아들이는 것일 뿐이다.
아마 익숙해지면 화를 내겠지. 있는 칼 없는 칼 꺼내어 상처도 주겠지.
힘들고 무거운 때도 있겠지. 그걸 만들어내는 것들은 우리 자신들이겠지.
하지만 잘 할 수 있을거야.
모르던 때라면 용서받을 수 있지만, 알고 있기에 용서받을 수 없으므로.
6.
결혼식과, 아기와, 그녀가 한꺼번에 겹쳐지는 묘한
서른 여섯의 생일,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