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이미지가 범람한다.
클릭 한번만으로 그것을 내 것인양 포장할 수 있는 시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면서 시간을 썩히는 사람도
온갖 쾌락적, 지적 유희 속에서 길을 잃은 미아도
이런 공간 속에서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양 포장할 수 있다.
멋진 카페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세련된 사람들의 모습
자욱한 담배연기 속 퇴폐적으로 눈을 찡긋거리는 화장 진한 여자들
코브라스네이크에서 긁어 온 클럽 속 코카인에 절은 사람들의 사진
이미 이것들은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유행이 되었다.
세상의 얽매이는 지금 대부분의 이들은 이를 갈구한다.
다들 꽤나 아는 척을 하면서 트렌드를 복사한다.
그리고 잘 꾸며놓은 남의 공간에서 타인의 이미지를 동경한다.
실은, 모두가 진실을 느낀다.
꾸며 놓은 포장을 벗긴 자신은 사실 나약하다는 것,
무력하고 답답한 청춘 속에서,
술에 잔뜩 절어서 보는 하늘 아래 답답함에 질식하면서,
전전긍긍하며, 내일을 걱정하거나 한탄하며..
살아간다.
눈의 환각.
감각과 말초신경이 자극받는 일이 가장 중요해진 이 시간.
문득 그 속에서 아둥바둥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한번 더 생각해본 거지만,
역시 내가 싫으면 니가 꺼져 같은 행동은 함부로 할 게 아니다.
자신에게 할당되는 엄청난 고독을 감당할 자신도 없으면서,
위화감과 불쾌감을 조성하는 행동은 역시 옳지 못하다.
왜 남을 뜯어 고치려 하지?
미성숙한 사람들, 옹졸한 마음.
더군다나 타인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외로움에 전전긍긍,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것도 참 못난 행동이다.
다시금 말하지만 쿨한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쿨함을 가장해서 피해를 주는 것이 형편없을 뿐이다.
너무 강한 자의식을 전부 드러내봤자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고
속으로 타인들은 다만 거부감을 느낄 따름인데,
이런 자신의 행동에서 비롯된 결과를 비난하는 건 성숙하지 않다.
타인에게 인정이나 따뜻함을 바란다면,
어느 정도 나를 죽여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
혹시 그러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면 고독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럴 만한 지주가 강하다면, 뭐 그것도 나름의 삶이겠다.
깨지기 쉬운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강한 척, 자신을 포장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사실 모든 것은 숨길수록 드러난다는 사실을,
나는 근 몇개월간 정말 강하게 실감하고 있다.
사랑하는 것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일,
근거 없는 자존심과 이유 없는 기싸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의미 없는 행동 속에서 자신을 잃고
또 진정함을 버리고 피상적인 것을 택하고 있는지,
조금만 유심하게 관찰한다면 놀라울 만큼 슬픈 일들이다.
삶에선 비합리적인 요소들이 너무나 많이 개입되는 것 같다.
하지만, 아무도 삶이 합리적이라고는 정의내린 적 없으니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것 밖에는 없는 것이다.
의미는 정해놓고 달리는 것이 아니고
달리는 과정에서 발견하게 될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불합리와 부조리를 만나겠지만,
상처받지 않고, 불평은 그만두고, 자신을 강하게 가꾸는 것.
당면의 과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