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보면 발에 차이는 게 돌이다. 황금보기를 돌 같이 하라, 건넛산 돌보듯의 옛말처럼 많은 이들이 돌을 그저 하찮은 존재나 무관심의 대상으로 여긴다. 하지만 모두가 그럴 거란 섣부른 단정은 버려야 한다.
어떤 이들에게 돌은 마음을 정화시키고, 소원을 성취하게 하는 신물이요, 인생을 가르치는 스승이다. 이들의 신성한 마음이 모여 비로써 하나의 돌탑이 만들어진다.
수 년 전 언론에서 앞 다퉈 소개했던 팔룡산 돌탑은 세속의 관심이 식어가는 지금도 묵묵히 그 수를 늘려가고 있다. 현재 만들어진 돌탑만 893개. 가파른 골짜기를 에두른 탑의 위용에 저절로 입이 떡 벌어진다.
28일 팔룡산 탑골을 찾았을 때, 수더분한 노인 한 분이 탑 주위의 낙엽을 치우고 있었다. 정성스레 탑을 매만지는 손놀림에서 그가 893개의 탑을 쌓은 주인공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감은 딱 맞아 떨어졌다.
팔룡산 돌탑의 아버지 이삼용(59)씨는 올해로 14년 째 돌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 팔룡산 도사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그 행색은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수수했다. 돌을 쓰다듬는 그의 손은 마산시보건소 보건사업과장이라는 직책 또한 어색하게 할 정도로 산사람의 그것이었다.
이씨가 처음 돌을 쌓게 된 것은 14년 전 이산가족의 애끓는 마음을 엿본 후 부터다. 이후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 탑을 올리며 통일을 빌었다.
그렇게 시작된 천불탑을 향한 여정이 강산이 변한 지금까지 이어졌다. 이제 그가 소망했던 천불탑까지 107개를 남겨두고 있다.
세간의 관심에도 그는 욕심이 없었다. 이씨는 "나는 그냥 탑을 만든 사람일 뿐, 탑의 주인은 아니다. 이것들은 통일을 바라는 모든 이의 소유다"며 공명심을 경계했다.
무려 500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3시 30분 산중턱에 올라 돌짐을 나른 그의 정성에 2003년 사납던 태풍 매미도 돌탑을 비껴갔다. 당시 태풍의 기세 앞에 아름드리나무가 쭉정이마냥 쓰러졌지만 이씨가 쌓은 돌탑은 온전히 그 모습을 유지했다.
그의 소원은 통일이 되는 그날, 마지막 탑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반도 지도 모양을 한 신성한 돌을 간직하고 있다는 이씨는 "1000개의 탑을 쌓은 후 통일이 될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돌(한반도모양의 돌)을 탑 꼭대기에 올리고 싶다"며 웃었다.
돌탑에 대한 그의 철학도 범상치 않다. 돌탑이 자신의 인생스승이라던 이씨는 대뜸 사람 키를 훌쩍 넘는 탑을 가리키며 말한다.
"저기 저 맨 꼭대기에 있는 조막만한 돌 하나를 받치기 위해 수많은 돌들이 몸뚱이를 서로 맞대고 합심하고 있다. 각도가 조금만 어긋나도 무너진다. 이게 곧 합심의 미덕이자 헌신의 미덕이다."
그는 이어 커다란 돌 사이에 삐죽 나온 조그마한 돌부리를 뽑는다. 그러자 탑이 와르르 무너졌다.
"못 역할을 하는 이 조그만 돌 하나가 빠지니 공든 탑이 순식간에 해체된다. 세상이치에 어디하나 쓸모없는 것이 있나."
말을 마치고 이씨는 묵묵히 무너진 돌탑을 정리했다. 어슴푸레 지는 석양을 뒤로한 채 그는 돌과 함께 신념을 쌓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