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피아니스트:전쟁의 시작
때는 1939년 9월 1일...독일의 폴란드 침공에 대해서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인류역사상 가장 끔찍한 피해를 낳은 2차세계대전의 서막이 오른다
독일은 바르샤바를 점령하고 파죽지세로 유럽을 하나둘 점령하기 시작한다. 프랑스도 적수가 되자못하고 파리의 개선문을 히틀러의 나치군이 지나가게 된다. 나치정권은 수백만에 이르는 유대인, 폴란드인, 기타소수민족을 학살한다. 비공식적으로는 1000만명을 학살했을 것으로 보인다
2.에너미 엣 더 게이트:독-소전쟁
유럽을 점령한 나치는 오른쪽으로 눈을 돌린다. 그곳은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 우크라이나 지역으로 소비에트연방공화국 자치령에 속해있는 지역이였다. 하지만 다른 유럽국가들과 달리 소련은 쉽지 않은 상대였다. 독-소전쟁 초기엔 독일이 파죽지세로 점령하는 듯 했으나 게릴라전과 끈질긴 저항...특히 스탈린그라드에서의 6개월에 이르는 기나긴 전투는 나치군의 사기를 떨어뜨렸고 후에 독일군의 잇다른 패배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소련은 엄청난 병력의 희생을 낳았지만.... 독일이 간과한 부분은 러시아지역의 혹독하기 그지없는 겨울날씨였다... 소련군은 이에 적응이 되어있었지만 독일군 진영에서는 제대로 싸워보지 못하고 동사하는 자가 생기는 사태가 발생한다. 떨어질 대로 떨어진 나치군에 대해 독일군은 게릴라식의 전투와 함께 저격수부대를 활용해 나치군 간부들을 300명이나 사살하고 이에 나치군 사기는 더 떨어지게 된다.
3.라이언일병구하기:미국의 참전,그리고 노르망디상륙작전
미국이 2차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부터 전세가 바뀌기 시작했다.. 미국이 참전을 결정한 이유는 크게 2가지이다... 첫번째는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열받은 미국은 당시 동맹을 형성하던 일본,독일,이탈리아에 차례로 선전포고를 한다. 두번째는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작전...같은 이유로 1차세계대전에도 참전했던 미국으로썬 나치의 이같은 도발에 열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날이 밝았다... 전세를 한번에 뒤집은 전쟁사 세기의 작전..
1944년 6월6일, 미국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장군은 함선 1,200척, 항공기 1만 대, 상륙주정4,126척. 수송선 804척과 수백 대의 수륙양용 특수장갑차로 편성된 대부대가 15만 6,000명의 병력(미군 7만 3,000명, 영국·캐나다 합동군 8만 3,000명)을 노르망디에 상륙시켰는데, 13만 2,500명은 배로 영국해협을 건넜고 2만 3,500명은 공중수송되었다
4.밴드 오브 브라더스: 미군 공수부대의 활약
노르망디상륙작전과 연계되어 당시엔 신개념 전투투입 방식이였던 공수부대가 투입되고 이들은 차례차례 프랑스,네덜란드,벨기에 등 나치군 점령지를 다시 연합군 수중으로 만들며 전쟁승리에 혁혁한 공을 세운다
이 드라마는 101중대의 실화를 담고 있다.
5.작전명 발키리:독일 양심 세력의 히틀러 암살시도
독일 내에도 양심세력은 있었다. 전쟁이 발발하고 총 7차례의 히틀러,히믈러 암살 시도가 있었고 결국 실패했지만 모든 독일인이 나치같진 않다는 걸 보여주었고, 패전 후 이들은 독일의 역사교과서에 빼놓지 않고 등장하며 나치의 잔인함에 반항한 영웅들로 존경받고 있다.
6.진주만: 유럽전쟁에 이은 태평양 전쟁의 발발
독일과 연함을 구축하던 일본제죽주의는 유럽 쪽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한국,중국 만주지역, 몽골을 차례차례 점령하며 소련과 대립하게 된다. 일본으로썬 석유 등의 자원이 필요했고 몽고 이북지역의 매장지에 군침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소련군은 더이상 과거 일본이 승리했던 러일전쟁의 러시아군이 아니였고, 일본은 북쪽이 아닌 남쪽으로 눈을 돌렸다.
약한 아시아 국가들을 상대로 필리핀,인도네시아,베트남 등의 국가들의 주요 섬지역을 차례차례 점령하고 가장 남쪽 과달카나섬을 점령하면서 호주와 미국(하와이)의 코앞에까지 이르게 된다. 제국주의 아시아 제패를 꿈꾸던 일본은 미국은 껄끄러운 상대였고.. 결국 1941년 12월 7일 어떤 형식의 선전포고도 없이 미국 하와이 진주만 해군기지를 공습한다.12척의 항모와 군함이 침몰하고 188기의 전투기 파손, 2400명의 병력이 전사한다.
이에 미국은 엄청난 자극을 받았고 즉시 일본,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2차세계대전에 뛰어든다.
일본은 잠자는 사자를 건드린 것이다. 미국 건드리면 좆된다..아주 원폭맞아서 터덜터덜 너덜너덜 해질때까지 쳐맞는 거다...
7.더 퍼시픽: 미국의 일본 박살 연대기
태평양전쟁 초기엔 미국이 일본에 수세에 몰리며 전투마다 패전을 기록했다. 진주만 해군기지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은 미국으로썬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미국은 엄청난 군비 생산공장을 지어놓고 드디어 화력에서 일본을 압도하며 차례차례 일본이 점령한 섬들을 빼앗으며 북진하기 시작한다.
과달카날,글러스터 곶,펠렐리우,이오지마,오키나와 등의 전략적 요충지 상의 섬지역을 빼앗으며 전세는 미국으로 기울게 된다.
8.씬 레드 라인: 과달카날 전투
적이 아니라 더위,정글과 싸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끔찍한 전투였다. 시체는 더위에 빨리 썩었고 물이 부족해 목마름을 호소하는 병사들이 많았다. 비행장 주위 정글에 국지적으로 펼쳐져 있었던 일본군에 맞서 미군은 3방향으로 상륙작전을 펼치게 되고 해병대에 이어 육군을 상륙시키기에 이른다. 높은 고지를 하나하나 점령한 미군은 남태평양 지역 전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달카날을 점령하는데 성공한다.
9.아버지의 깃발: 이오지마 전투, 미군 최대의 피해
일본은 점령했던 모든 태평양지역 섬을 미국에 내주고 이오지마와 오키나와를 남겨두게 된다. 미군은 이에 이오지마 섬에 재한 대대적인 상륙작전을 계획한다.
1945년 2월 17일, 미국은 3만명의 병력을 상륙시킨다. 연합세력이 아닌 단일국가 로써 하는 병력상륙계획중 가장 큰 규모 였다. 당시 이오지마엔 일본군 2만여명이 주둔하고있었다. 그야말로 태평양 전투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전투였고, 미국의 피해가 일본군의 피해를 넘은 유일한 전투였다.
일본군의 강한 저항은 이전 섬들과는 달랐다. 이오지마는 그들의 영토였고 일본왕의 신성함을 지켜야 한다는 목표성이 뚜렷했다. 일본군은 투항하지 않고 끝까지 가미카제 자폭공격을 하며 저항했다.
2만 933명의 일본군 수비 병력 중, 2만 129명이 전사했다. 한편, 미군은 전사자가 6821명, 부상자가 2만 1865명으로 집계되었다.(사상자 합계:미국>일본, 다만 피해율은 일본96%, 미국40%)
한달간은 전투 끝에 미국은 이 화산섬을 점령했고 이어 오키나와까지 점령하면서 일본본토에 원폭을 투하한다. 이에 일본은 1945년 8월15일 무조건 항복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