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어내리며 분노를 삭히고 있었다.
대회의실에는 대외협력실 직원들을 제외한 기획팀 실장부터 운영직 사원들까지 모여 사장의 불같은
분노를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새벽부터 전 직원 긴급호출되었고, 홍보실은 이미 거의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각 언론사와 광고 계약사, 대행사들에게서 쏟아지는 전화를 감당하는 것은 물론
그에 대응해서 해명,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것도 큰일이었다. 그 와중에도 거의 10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어 회의를 나누고 있었다.
"어이구"
다른 문제도 아니고… 진짜 상상 가능한 최악의 건수가 터졌다. 사실 진작부터 SNS이니 뭐니 거 불안
불안하다고 생각했다. 골빈 것들이 뭔 그리 할말들은 많다고 뭔 별 시덥잖은 짓거리들은 그리도 쭈물
딱대는지. 그나마 잘 쓰기라도 하면 또 몰라, 꼭 그게 뭐라고 맨날 그딴거 조물딱 거리다가 다들 사고
치지 않나. 배운 년놈들도 똑같이 거기서 헛짓거리 하는거 보면 그냥 그건 안하는게 답이다 싶었는데.
그래도 얘는 애가 여우처럼 야물딱지게 팬 관리해가며 잘 쓰길래 그냥 괜찮겠지, 하고 안이하게 생각
했던게 패착이었다. 역시 그래봐야 어린 기집애는 어린 기집애다.
"얘는 왜 이렇게 안 와! 어?"
사장의 노호성에 다들 움찔하다가 기획팀의 막내 소영이가 "아까 전화했는데 테헤란로래요. 금방 도착
할 거 같아요" 하고 대답했다.
생각해보면 참 너무 물렀다. 스캔들 터졌을 때 그냥 앗싸리 독하게 떼놨어야 되는데. 같은 기획사라면
또 몰라, 이건 좆되긴 이쪽이 좆된건데 사과는 우리가 해야할 상황이다. 기가 막혔다. 며칠 전에 그냥
말 나왔을 때 말로 끝낼게 아니라 진짜 실력행사를 했어야 했는데. 에효.
"도착했습니다"
김비서가 문을 열어주었고 이어 그녀와 매니저가 들어왔다.
"늦었습니다"
"죄송해요…"
화장도 제대로 못하고 얼마나 울었는지 그녀는 눈이 팅팅 부은 채로 들어왔다. 애도 애지만 사색이
된 매니저를 보니 열통이 터졌다.
"이 새끼야! 매니저라는 새끼가! 어!"
새벽에 터진 일을 매니저라고 뭐 어떻게 대처했겠냐만 적어도 지가 관리하는 연예인이 깨어있으면
매니저도 깨어있어야 한다는게 내 지론이다. 그리고 바로 제대로 대처했어야지. 마음 같아선 멱살
잡고 귀싸대기라도 날리고 싶지만 일단은 욕 한마디로 넘어가자. 수습이 중요하니까. 다음에 쪼인트
라도 까던지 하면 그만이다.
"어쩔거야"
이번에는 그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내 분명히 말했지. 조심하라고. 너 이 바닥 한 큐에 가는거 몰라? 너 아직도 애야? 너 이제 성인이야.
성인이 뭐야, 남자랑 자고 술이나 먹으면 성인이야? 행동에 책임일 질 줄 아는게 성인이야"
막말이 튀어나왔다. 고개 숙이고 있던 직원들도 움찔할 정도의 말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판
사판 나쁜 놈 되기로 했다. 대가리 컸다고, 지가 최고라고 마냥 대우해주다면 보면 그게 되바라지게
만드는 길이다. 주도권 잡고 행동거지 자숙시키면서 앞으로 돌출행동 자제시키면 될 일이다.
"오늘로 끝내. 그리고 다신 걔한테 연락도 하지마. 그리고 김 실장"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푹 숙인 그녀를 버려두고 매니저를 불렀다. 그는 주춤하며 다가왔다.
"스캔들 터졌을 때 너 뭐라고 했어.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잘 하겠다 했지? 니 입으로"
"네…"
"어쩔거야"
회의실 내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나는 쟤보다 니 문제라고 생각해. 쟤 아직 어려. 근데도 쟤는 지 할일은 다 해. 니가 할 일이 뭐야.
그냥 시간표대로 따라 움직이는게 전부야? 그건 빙신 아닌 다음에야 다 하는거고. 매니저가 뭐야.
연예인 일거수 일투족을 다 알고, 뻘짓하면 터치하고 잘하면 더 부추키고, 우울하면 힘되주고,
그게 매니저지. 그냥 졸졸 따라다니면서 시간표 따라 움직여주는건 쟤 팬 아무나 불러다 시켜줘도
더 열심히 할걸? 너한테 돈 주면서 내가 일시키는 이유가 뭐야. 케어 잘 하라고 붙여놓는거 아냐.
어?"
무어라 더 할 말이 있었지만 전화가 왔다.
"아 예…뭐…그냥 헤프닝입니다. 네, 정신없죠. 그럼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어휴, 아닙니다. 다
제 불찰이죠. 네 그럼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에"
전화를 끊고 말했다.
"다 나가 봐. 쟤랑 김 실장이랑 남고, 홍보실장 빨리 들어오라고 그래"
다들 "네에…" 하고 작게 대답하고 문 밖으로 나갔다. 아주 답답한 어수선함이 회사 내에 가득했다.
- 10시간전 -
그녀는 버튼을 누를까 말까 15분째 고민 중이었다. 이 한 번의 터치에 내일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물론 본인도 엄청난 타격을 입을게 뻔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너무너무
불안하다. 아무렇지도 않다가 나랑 스캔들이 터지지마자 이 년 저 년들이 다 오빠한테 집적댄다.
같은 여자로서 그 마음을 모르는건 아니지만 정말 너무너무 짜증나고 화가 난다.
그리고 정말이지 너무 불안하다. 한달에 한번 따로 만나기도 힘들고, 요새는 더욱 눈치가 보여서
만나기가 너무 힘들다. 그런 와중에 오빠랑 같은 기획사 애들이 꼬리치고 다닐거를 생각하면 자다
가도 눈이 번쩍 떠진다.
아예 확실하게… 도장을 찍어두고 싶었다. 그래… 오빠를 내 것으로 확실하게 인증하고 싶어…
오빤 내 꺼야…
그녀는 트윗 버튼을 눌렀다.
출처: 생각보다 짧은 시간 (stylebox.eglo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