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영화 펌글
작성자 : kelv****
평점 : 9.54 / 네이버 영화 역대 평점 1위
영웅: 샐러멘더의 비밀
혼돈의 시대다. 이 시대에 영웅은 사라진지 오래고 정의도 퇴색된 지 오래다.
어릴 적 기억의 편린 저 너머에 기억된 영웅은, 오래돼 누렇게 변색된 편지지처럼 우리의 마음을 떠나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그 보다 더 낡게 닳은 창고 속 책더미 어딘가에 편지지를 구겨 넣었다. 우리는 더이상 그런 편지지를 찾지 않는다.
그렇다. 인정하긴 싫지만 니체(Nietzsche Friedrich Wilhelm)의 말대로 "신은 죽었다"
영화 <영웅 : 샐러멘더의 비밀>의 재능있는 신예 감독 알렉산드르 야킴추크 감독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의문을 제기한다. "그렇다면 영웅도 사라진 걸까"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그 순간, 당신의 마음 속엔 그 해답이 이미 나올 것이다.
그리고 영웅의 '사망선고'를 지연시키는 야킴추크 감독이 이야기하는 이시대 영웅은 배우 김보성의 연기에 의해 재연된다. 그의 연기는 영화의 미장센, 모든 씬 하나하나에 녹아들어 창고 속 어딘가에 박혀있는 누런 편지지를 관객들이 다시금 꺼내들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는 눈물을 흘린다.
▶냉철과 의리를 오가는 김보성의 섬세한 내면 연기. 그가 영웅을 말하다.
영화 <영웅 : 샐러멘더의 비밀>에서 김보성은 한국 특수부대원 장현우 역을 맡았다.
김보성의 어깨는 사뭇 무겁다. 그는 롯거 하우어, 마이클 매드슨 이라는 헐리우드의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 비중있는 주연을 맡았다.
애초부터 그가 자신의 모든 연기력을 펼친 여건이 없었다는 얘기다. 이는 마치 영화 <신세계>에서 이정재가 최민식, 황정민이라는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 자신의 연기력을 펼쳐야 했던 상황과 비슷하다.
하지만 김보성은 절대 기죽지 않는다. 절제력 넘치는 섬세한 내면 연기를 펼치며 관객들을 빠져들게 만든다.
김보성은 인류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가운데 그것을 막느냐 막지 못하느냐의 극한 상황에서 갈등한다. 그는 끊임 없이 선(善)과 악(惡)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런 연기를 김보성은 특유의 눈빛 하나로 해치운다. 마치 환경오염으로 자식을 잃은 어미 앵무새가 슬픔에 가득차 인간을 노려보듯이, 김보성의 눈빛을 빼면 이 영화는 쭉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 왼손에 총알이 박혀 피가 솟구치는데도, 동료를 살리기 위해 끝까지 끌고 간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김보성의 선의(善義)에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과거 야간자율학습을 빼먹기 위해 담을 넘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때의 친구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내가 저런 상황이어도 저렇게 행동할까" "내 피는 김보성의 저 진한 피처럼 뜨거울까"
이런 의문 속에서 우리는 영웅의 존재에 대해 다시금 상기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알렉산드리 야킴추크 감독의 철저하게 계산 된 연출이다.
축구계에 꾀많은 늙은 여우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있다면, 영화계엔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꾀많은 젊은 너구리 '야킴추크' 감독이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가 하면 김보성은 자신이 살기위해 남을 이용하는 악(惡)을 행하기도 한다.
언제라도 인간의 목숨과 의리를 위해선 자신의 목숨을 내던질 준비가 돼 보이는 김보성은 갑자기,
적의 총탄을 피하겠다며 한 사람을 총알 받이로 삼아 총을 쏴댄다.
바로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아래 장면이다.
의리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고 꼼수를 쓰지 않을 것 같던 김보성이 갑자기 변하는 것이다.
관객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저 인질은 김보성의 큰 얼굴까지 다 가려주진 못하지만 적어도 빗발치는 총탄에서 김보성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수단이 될 뿐이다. 대체 왜? 니체의 말대로 "신은 죽은 것일까?"
김보성은 선한 영웅이 아닌걸까.
하지만 놀라지 마시라. 이건 알렉산드르 야킴추크 감독의 철저하게 계산된 장면 연출이다.
그는 이야기한다. "당신의 마음 속에 영웅이 되살아 났는가? 그렇다면 그 영웅은 선인가 악인가"
우리에게 역설적으로 되묻는 것이다. 이제 영웅이 선일지 악일지는 바로 당신이 선택해야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이 대목에서 김보성의 표정연기에 집중해야한다.
그는 한 사람을 총알받이로 쓰고 있지만, 울부짖고 있다. 미간을 찌푸리고 입을 앙다문 그의 얼굴에선, 그런 영웅의 고뇌가 그대로 드러난다.
영화 '세븐'에서 케빈스페이시를 앞에두고 총을 쏠 것인지 말것인지를 고뇌하는 브래드 피트의 표정 내면연기에 비견될 정도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무릎을 탁 치게 된다.
"모든 게 감독의 철저하고 세밀한 계산에 의해 우리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구나"
우리가 그것을 깨닫게 될 때쯤,
영화 시작전 구입했던 콜라가 김이 빠지고 얼음이 녹아 밍밍해져 차가운 보성 녹차 한 컵으로 갈증을 해소하고 싶다고 느낄 때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은 올라간다.
그리고 우리는 마음 속 한구석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된다. 그리고 외칠 것이다.
"우리의 영웅은 살아있다"고.
영화 속 김보성이 흘렸던 뜨거운 피는 우리의 마음 속에 뜨거운 눈물로 울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