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다가 여자 비명소리에 놀래서 깼습니다. 그냥 덥다고 아파트 놀이터에 나온 어린애들 장난질이네요..
한번 깨서 잠도 안오는 김에 아랫집 담배 냄새도 올라오고.. 그냥 담배 이야기나 해보렵니다.
흡연권이니 간접흡연이니 그런 얘기 아닙니다.
일단 제 가방에 담배가 처음 들어온 건 대학 1학년, KT&G가 아직 한글이름을 가진 공사이던 시절입니다. 버스기사분들도
한번씩 담배 피며 운전하시고, 강의실에 교수님도 가끔 흡연을 하시던, 담배연기를 얼굴에 직접 쏘지만 않으면되는..
전 그때까지 비흡연자였고 가방에 담배가 들어온 이유는 선배들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담배피냐?'고 먼저 묻지만 그때는
'담배 하나만' or '불 좀'이 우선 나왔었고, 제 인상이 당연히 흡연자 인상인지 '저 안피는데요?'하면 선배들이 혼란에
빠지곤 해서, 어느 날인가부터 가방에 담배 한 갑, 라이타 하나 요렇게 넣어 다녔습니다. 안 피더라도 수중에 담배가 있으니
자연스레 흡연무리에 끼어서 친해지기도 했고 이래저래 나쁘지 않았습니다. 물론, 환경이 저렇게 되니 자연스레 한번씩
피기도 했지만 일주일에 한 개비 피우는 정도였고 입담배에 장초로 버리기까지 했으니 그냥 간접흡연 수준이었죠.
한 달에 한갑 정도로 담배가 늘 무렵에, 여자친구가 생겼고 사회적 분위기가 금연으로 흐르기 시작하고 미국쪽 담배회사가
폐암관련 소송에서 이겼니 졌니 하는 기사들이 신문을 장식하던 때라 아예 담배와 라이터를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은 금새 지나 깡소주 한 병과 맥주 두 캔에 담배 한갑을 1시간에 걸쳐 아작을 내는 일이 발생한 후
다시 한 달에 한 갑, 술마실 때는 4~5 개비.. 요런 패턴이 이어지다가 군대를 갑니다.
훈련소에서 담배에 피말라하는 동기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제가 봐도 웃긴 수준의 흡연량이었으니 금단이니
그런 거 전혀 없었죠. 훈련 끝나고 대기타던 마지막 날 취사장 지원을 나가기 직전까지..
한여름 강원도 햇볕아래에서 동기 하나가 기간병 친구에게 겨우 얻어온 군디스 한개비를 6명이서 필터가 질펀하게
(지금 생각하니 굉장히 드럽네요..) 돌려피며 그 첫모금을 뱉어낸 순간, 담배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더군요.
취사병이 그러고 있는 우리를 봤지만 그냥 모른척 지나가 주더군요.(뭐, 지ㄹ한다고 툭 쏘긴 했습니다만.)
후반기는 가평에 있는 제3야수교로 갔습니다. 이제는 없어진 걸로 아는데, 이등병의 파라다이스라고 불리는 그곳의 유일한
지옥관문이 있었습니다. '상색리'라고.. 인원 완급조절을 위한 구형 막사를 안버리고 쓰던 곳으로 기억하는데,
일단 야수교 입소 후 상색으로 가서 1주일 정도 구르다가 다시 야수교로 넘어와서 나머지 교육기간을 편안~하게 즐기다가
자대로 가게되는 시스템인데, 전 운이 좋았던건지 어쨌는지 1개 구대 인원만 상색 수용인원 초과로 인해 딱 하루만 구르고
복귀당했?습니다.
다시 담배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부분이 문제였습니다. '상색에 간 동기들은 PX, 흡연, 자유시간이 없는데 너희들만 여기에
있다고 허락할 수 없으니 상색인원들이 다시 합류하기까지 1주일간 너희도 PX, 흡연을 통제하겠다.'는 구대장의 말.
1주일 참는거야 괜찮았으나, 이 구대장이 일병이었는데 저렇게 말하고서 머리속에서 지워버립니다.
1주일이 지나고 PX도 흡연도 말이 없고, 물어볼 수도 없고..
2주가 거의 다 채워지던 어느 날 점호시간 구대장이 말하길
'이번 기 애들은 굉장히 특이하다. 흡연자도 없고, PX 왔다갔다 하는 애들도 없다. 정말 특이하다'
동기들끼리 점호시간에 눈빛으로 대화가 되던 시기였는데, 제 맞은편 동기놈 그 순하디 순했던 그놈이 그렇게 분노하는
눈빛을 본 건 훈련소+후반기 합쳐서 그게 처음이었습니다.
어쨌거나 까먹었던 걸 쿨하게 인정한 구대장이 흡연통제를 풀어줬고, 연초 신청을 안해줘서 월급을 탈탈 털어 PX에서
담배를 사서 펴야 했지만, 제 본격적인 흡연의 시작은 이때부터였습니다.
그 때가 태풍이 올라오던 시기였는데, 흡연 허가 며칠 후에 저 구대장이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제발 비 쳐맞으면서 담배피러 가지 좀 마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