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수제버거집 운영 40대 남성, 팽목항서 자원봉사
[머니투데이 진도(전남)=박소연기자][[세월호 참사]수제버거집 운영 40대 남성, 팽목항서 자원봉사]
세월호 침몰사고 27일째인 지난 12일 오후, 적막감과 쓸쓸함이 감도는 진도 실내체육관에 순간 활기가 돌았다. 긴 기다림에 지치고 아픈 가족들이지만, 살갑고 친근한 이들에게만큼은 마음이 열렸다. 장판에 누워 있다가 부스스 일어나 햄버거를 받아드는 얼굴마다 미소가 번졌다.13일 저녁, 한사코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함께버거' 주인장과 자원봉사자들이 팽목항 실종자 가족들에게 배달할 버거를 만들고 있다. /사진=박소연 기자
"함께버거가 왔어요. 몇 개 드릴까요? 여기 감자도 드리고…많이 드세요. 바로바로 드세요."
팽목항에서 '햄버거 아저씨'로 불리는 이 40대 남성은 이날 이른 아침부터 자원봉사자 2명과 실종자 가족 100인분, 잠수사 200인분의 버거를 뚝딱 만들어 전달했다. 그는 이름을 밝히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그저 진도 팽목항 길목의 2평 남짓한 '함께버거' 천막 주인장이라는 호칭으로 만족했다.
'세월호 가족과 아픔을 함께 합니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인 이 천막은 향긋한 고기 굽는 냄새로 행인들의 발길을 잡아끈다. 하지만 스님도, 목사도, 대통령도 버거를 곧바로 먹을 수 없다. 실종자 가족들과 잠수사들이 1순위이기에 기다려야 한다.
"세월호 가족이 초점이 돼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이분들이 원하고 바라는 걸 하는 게 자원봉사라고 생각했어요."
경기도 가평에서 수제버거집을 운영하던 그는 세월호 사고 사흘째, 아픔을 곁에서 나누고자 생업을 제쳐두고 내려왔다. 시련도 많았다. 조리기구가 차에 실리지 않아 군청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정착도 어려웠다. 군청 측은 그가 인증된 단체가 아닌 개인이란 이유로 철거를 요구했다. 함께버거를 살린 건 실종자 가족들이었다.
"계속 싸우다 안 되겠다 싶어 무작정 고기를 구웠어요. 굽자마자 줄이 쫙 섰죠. 군청에서 철거하겠다고 와 있는데 가족분들이 '사고 후 처음 먹는 식사다'며 막아서니까 어떻게 하질 못하는 거죠."
가족들은 그가 배달해주는 버거를 좋아했다. 아직 남은 가족들은 한 끼에 세 개도 거뜬히 드신다. 그는 "심리적인 배고픔이다. 기다리는 것 말고는 낙이 없으니까 그렇다"며 안타까워했다.
팽목항 '함께버거'엔 두툼한 고기패티와 신선한 야채뿐만 아니라 세월호 가족들을 향한 봉사자들의 사랑이 담겨 있다. /사진=박소연 기자
갓 구운 두툼한 고기패티와 신선한 야채가 듬뿍 담긴 함께버거는 잠수사들의 추천으로 바지선에 공급돼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식어서도 맛이 좋고 에너지가 풍부해 고된 수색작업으로 입맛이 떨어진 잠수사들에게 안성맞춤이다. 몇몇 프랜차이즈버거는 바지선 공급을 중단했지만, 함께버거는 입수시간에 맞춰 거의 매일 최대 1800인분의 식사를 공급하고 있다.
"거기 상황이 말이 아니에요. 20대 한창인 애들도 많은데 목숨을 내놓고 묵묵히 일하잖아요. 그에 비하면 전 아무것도 아니죠."
벌써 사고 28일째, 가족들의 관심은 온통 잠수사들에게 쏠려 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답답해하던 실종자 어머니 세 명은 최근 링거를 맞으면서까지 함께버거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
그는 하루 100만원 가량의 자비를 들인다. 일이 고되 그간 거쳐간 자원봉사자들만 30여팀. 임시 천막은 비바람에 붕괴 직전이다. 하지만 말없이 돈봉투를 놓고 가는 따뜻한 이들도 있다. 그는 시간과 재정의 한계, 식자재 조달의 어려움으로 더 많이 만들지 못하는 게 가장 죄송하다고 했다.
"먹고 힘내서 (가족을) 찾았다고 말씀하실 때 제일 감사하죠. 근데 같이 드시고도 못 찾는 분을 볼 때가 가장 가슴 아파요."
수십 일째 가족들과 동고동락한 그는 남은 이들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온다. 주변 가족들이 하나 둘 떠나가며 '난 안 되는구나' 하는 절망감이 팽배하다. 그는 '곁에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평 집에서나 이곳에서나 마음 아프고 괴로운 건 마찬가지지만 여기선 함께 나눌 수 있잖아요. 체력적으로나 재정적으로 힘들 때도 있지만 아픔을 나눌 수 있어 기쁩니다."
머니투데이 진도(전남)=박소연기자 soyun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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