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e was not built in a day."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위의 글귀를 한번 쯤은 들어봤을 겄이다.
로마 제국을 생각하면 전성기 시절의 광대한 영토를 먼저 생각하겠지만,
실은 그렇게까지 거대한 제국이 되기까지 수많은 시련과 역경이 존재해 왔던 게 사실이다.
심지어 로마는 건국 초기에 이탈리아 중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국가에 지나지 않았기때문.
500년간 티베리스 강 유역에 자리했던 약소국이 어떻게 세계를 지배할 제국이 될 수 있었을까?
우선 로마의 건국 신화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I. 고대 로마 신화 ( ? ~ 기원전 753년)
1. 아이네아스 신화
고대 로마의 기원에 관한 신화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아이네아스(Aeneas)를 중심으로 한 라틴 인의 기원 신화와,
로물루스(Romulus)와 레무스(Remus)를 둘러싼 로마의 기원 신화이다.
아이네아스는 트로이의 동맹국이었던 다르다니아의 국왕 안키세스의 아들이었는데.
그는 장년 시절 트로이가 함락되자 도시를 탈출해서 유랑자 신세가 되었다,
위험천만한 고비와 숱한 고생을 겪으며 천신만고 끝에 그가 도착한 곳은 바로 지금의 이탈리아.
그리고 신탁이 점지한 땅, 바다 연안의 라티움(Latium)에 정착하게 되는데,
당시 라티움은 라티누스(Latinus)라는 국왕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 라티움은 현재 5개의 지방으로 구성됨.
각각 롬(ROME), 라티나(LATINA), 비테르보(VITERBO), 리에티(RIETI), 프로시노네(FROSINONE)라고 한다.
라티누스 국왕은 처음에는 아이네아스와 트로이인에게 깊은 두려움을 느꼈다고 하는데.
훗날 신의 계시에 따라 딸 라비니아를 아이네아스에게 시집보내고,
400스타디온(74㎢)의 땅도 주었다.
아이네아스는 그곳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아내의 이름을 따서 라비니움(Lavinium)이라고 명명
※ 로마(Roma)에서 남쪽으로 약 30km 떨어진 지점에 라비니움(Lavinium)이 위치하고 있다.
한편, 라비니아와 약혼한 사이였던 루툴리인의 왕 투르누스는 이 소식을 듣고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그래서 전쟁을 일으키게 되는데, 결과는 투르누스의 참패였슴.
라티누스 국왕이 세상을 뜨자 아이네아스가 왕위를 물려받게 되는데,
그는 장인 라티누스 국왕을 기리고자 자신이 데려온 트로이인과 이탈리아 토착민을 통칭하여 라틴(Latin)인이라고 불렀고.
그로부터 3년 후, 설욕전을 준비해 온 투르누스는 강성한 에트루리아인과 연합하여 아이네아스를 공격.
전쟁은 라틴인의 승리로 끝났지만, 아이네아스는 전장에서 목숨을 잃게 된다.
※ 17세기 Ferdinand Bol 의 신화적 이야기를 그린 그림. 오른쪽에 갑옷을 입고 월계관을 수여하는 사람이 아이네아스이다.
그 후 아이네아스와 라비니아 사이의 아들 아스카니우스가 왕위를 계승했다고 전해진다.
아스카니우스는 라비니움의 좁은 영토와 지리적으로 열악한 조건을 극복하고자 알바 산맥과 알바 호반 사이에 새로운 도시를 세웠는데,
이곳이 바로 알바롱가(Alba Longa)라는 도시이다. (위의 지도에서 찾아볼 수 있어.)
지리적 이점으로 알바롱가는 빠르게 번성하기 시작했고,
라틴인들은 라틴 평원 북반부에 총 30곳의 도시를 세웠슴.
그중 알바롱가를 중심 도시로 삼고 아이네아스와 라티누스를 공동 조상으로 받느는 종교의식을 행했다고 전해진다.
여기까지가 라틴인의 기원에 얽힌 신화 내용.
2. 레물루스와 로무스
아이네아스와 라티누스의 후손들은 알바롱가에서 15대를 세습하며 그들만의 역사를 이어갔다.
그다음 왕위의 주인공은 누미토르(Numitor)와 아물리우스(Amulius)형제였는데,
누미토르는 왕국을 물려받고 아물리우스는 막대한 재물을 차지했다고 함.
그런데 욕심 많은 아물리우스는 물려받은 부를 이용해서 누미토르보다 큰 권력을 등에 업고 왕국을 빼았아.
누미토르의 아들들은 모조리 죽임을 당하고, 외동딸 레아 실비아는 아물리우스의 딸 덕분에 겨우 목숨을 건지게 된다.
하지만 아물리우스는 누미토르의 대를 완전히 끊기 위해서 레아 실비아는 베스타 신전의 사제로 삼았는데,
이는 평생 처녀로 살아야 함을 의미함.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레아 실비아는 전쟁의 신 마르스와 사랑에 빠져 쌍둥이를 임신하게 되었는데,
이를 알게 된 아물리우스는 그녀를 감금하고 그녀가 출산한 쌍둥이를 바구니에 담아 티베리스 강에 떠내려 보냈다고..
바구니는 강을 타과 황량한 해안의 무화과나무 옆에 이르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한 어미 늑대가 형제에게 젖을 물리고 딱따구리가 먹을 것을 물어다 주며 아이들을 보살폈다고 함;
※ 어미 늑대의 젖을 먹는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오늘 날 로마의 대표 상징물이 된 조각상이다.
참고로 늑대와 딱따구리는 마르스에게 바져친 신성한 동물로, 이들에 대한 라틴 인의 애정은 매우 남달랐슴.
마침 파우스툴루스(Faustulus)라는 양치기가 그곳을 지나다가
그 기이한 광경을 목격하고 쌍둥이를 집으로 데려와서 키우게됨.
파우스툴루스는 두 아이에게 로물루스, 레무스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시간이 흐르고 이 둘은 건장하고 남자다우며 두려움을 모르는 호탕하고 용맹한 청년으로 자라났고...
어느 날, 레무스가 도둑맞은 양떼를 둘러싼 분쟁에 휘말려 누미토르의 앞에 서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파우스툴루스는 바로 로물루스에게 두 형제의 출생에 얽힌 비밀을 털어놓았고,
처음 발견했을 때 아기들이 누워있던 바구니를 들고 누미토르를 찾아가 레무스가 레아 실비아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자신의 출신을 알게 된 로물루스는 아물리우스에게 반감을 품은 사람들을 동원해서 반란을 일으키게 되는데,
레무스는 성 안에서 사람들을 선동하고 로물루스는 성 밖에서 진격해 들어왔다.
※ Nicolas Mignard 의 1654년 작품. 파우스툴루스가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집으로 데려온 모습을 그리고 있다.
결국 폭군 아물리우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형제에게 굴복했고 결국에는 목숨을 잃었다.
형제는 왕위를 외조부인 누미토르에게 돌려주었고,
자신들은 양아버지 파우스툴루스에게 발견되었던 그 자리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기로 계획하게 됨.
그런데 도시를 세우는 자리를 두고 둘 사이에 언쟁이 벌어졌는데,
로물루스는 로마 광장이 있는 팔라티움 언덕에, 레무스는 아벤티누스 언덕에 도시를 세우자고 주장했다.
※ 티베리스 강을 따라 가다 보면 INSULA 라는 작은 섬
그 오른편에 MONS PALATINUS가 있고, 그 아래에 MONS AVENTINUS가 보인다.
두 사람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대립했고, 결국 로물루스가 레무스를 죽임으로써 대립이 끝나게 됨.
결국 로물루스는 스스로 왕이 되어 팔라티움에 도시를 세우게 되고,
도시의 이름은 창건자 로물루스의 이름을 따서 로마라고 명명하였고 이렇게 로마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II. 로물루스 시대 (기원전 753 ~ 기원전 717년)
1. 사비니 여인 납치 사건
로마를 건설한 로물루스는 팔라티움 성을 정비하여 세력을 확장시켜 나가는 한편,
로마에 찾아온 외부인이라면 누구든지 로마의 시민권을 가질 수 있었다.
그중에서 병역을 이행할 수 있는 남자는 군대에 배치되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평민으로 분류하여 그중 명망이 두터운 100명을 의원을 임명하여 '귀족'으로 삼았다.
또 이런 귀족들이 속한 집단을 '원로원'이라고 부르게 됨.
이 당시에 부녀자를 강탈한 아주 유명한 사건이 있었는데.
로물루스가 건설한 로마에는 건장한 남자들이 넘쳐났지만 여성의 수는 턱없이 부족했다.
여성의 수가 부족한 게 왜 문제가 되냐면 바로 로마의 대가 끊길 수 있는 심각한 문제였기 때문.
로물루스는 원로원과 의논한 끝에 이웃나라에 사신을 보내기로 결정,
두 나라 사이에 서로 혼인관계를 맺자고 요청하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함 ㅜㅜ.(세크스 하고싶다!)
그런데 때마침 로마에 새로운 신전이 발견되는 일이 생겼는데,
로물루스는 이를 축하하는 성대한 축제를 계획함.
이웃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서 로마를 방문하였는데,
축제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로물루스가 미리 짜놓은 계획대로 로마 남자들이 일제히 칼을 꺼내 들고 부녀자 수백명을 납치해 갔다.(모태솔로탈출!)
※ 'The Rape of the Sabine Women' 이라는 작품. 사비니 여인들을 겁탈하는 로마 남자들이 그려져 있다.
술에 취한 이웃나라 남자들은 이렇다 할 수 없이 협박에 못 이겨 쫓겨날 수밖에 없었고.
한순간에 딸과 여동생을 강탈당한 이웃나라 남자들은 몹시 분노하며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마침내 사비니 인의 도시인 쿠레스의 왕 티투스(Titus)가 수장으로 추대되어 연합군을 이끌게 되었고.
전쟁이 발발하자 케니넨시아, 안템나이, 크루스투메리 등 세 나라는 기다렸다는 듯이 로마를 공격했지만
크게 패했고 심지어 로물루스에게 나라까지 빼앗기고 말았다.
하지만 로물루스는 로마로 이주해 오면 로마 시민으로 받아들여 차별 없이 로마인과 동등한 대우를 해주겠노라고 약속하였지.
사비니인과 로마인들 사이의 전쟁은 3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는데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있을 때였어.
로마인들과 사비니인들이 생사를 걸고 싸우는 전쟁터에 납치당했던 사비니의 여인들이 아이를 품고 나타났어.
그녀는 더 이상 납치당한 여자들이 아닌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었던 것.
※ David 의 'Intervention of the Sabine Women' 이라는 작품. 사비니 여인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전투 중에 나타났다.
로마에 정착하여 자녀를 낳은 그녀들은 더 이상 서로가 전쟁을 계속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결국 이런 사비니 여인들의 간절한 바람에 따라 로마와 사비니는 휴전을 맺게 되고 다시 협상에 들어가게 됨.
그리하여 여러가지 합의가 이루어졌는데,
우선 자신이 희망하는 사비니 여인에 한하여 남편과 계속 로마에 거주하되 방직을 제외한 중노동은 금지한다는 것,
로물루스와 티투스를 공동 통치자로 삼아 로마인과 사비니인이 로마에 함께 한다는 것 등이 있었다.
또 두 국가는 합병을 해서 국명을 로마로 정하고,
로마 시민은 사비니의 주요 도시 쿠레스의 이름을 따서 퀴리테스(Quirites)라고 불름.
이렇게 로마의 인구는 두 배가 되었고, 사비니 인 가운데서도 귀족을 100명 더 뽑아 원로원 수도 200명이 되었다.
로물루스의 외조부인 누미토르가 세상을 떠나고 왕위는 로물루스에게 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민심을 얻기 위해 모든 통치권을 알바롱가인에게 넘기고 그들을 위해 통치자 한 명을 세우는 대신
그 기한을 1년으로 제한했다.
이렇게 로마의 세도가들은 국왕이 없는 통치 체제에서 돌아가며 통치자가 될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러데 어느 날 로물루스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로마 시민과 병사들은 로물루스를 시기한 원로원의 음모라고 의심과 비난을 하였다.
후에 로물루스의 한 친구가 나타나 자신이 여행하던 중에 로물루스는 보았다고 말했는데,
그가 하늘로 올라가 로마를 지켜 주는 군신 퀴리누스(Quirinus)가 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