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기는 시민의식입니다.
발전한 시민사회에서 전체의 의지는 개인의 의지에 앞서 있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주의나 종교와 같이 맹목적 믿음에 의한 강제를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그것은 개인의 자발적 의지에 의해 집단의 의지가 결정된다는 것을 뜻한다. 집단의 의지를 일부가 결정하고 대부분의 개인이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의지가 모여 집단의 의지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때문에 개인의 의지와 그 의지가 내릴 결정에 대한 권리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개별 의식 즉 시민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선진시민의식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 그대로 앞서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깨어있는 개인이 필요하다.
보통은 사회가 발전하면 개인 또는 집단의식도 발전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사회 발전(집단의식의 발전)은 경제적 발전과 별개의 의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발전은 개인의 희생 위에 세워지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희생된 개인들은 절대로 올바른 시민으로 자랄 수 없다.
전체의 의지 크게 보면 국가, 작게 보면 기업과 가족단위에서 개인은 그 소속된 바에 따라 혜택을 받고 그 대가로서 일종의 ‘의지’를 유산처럼 물려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집단이 잘못된 ‘의지’를 개인에게 전달하면 개인은 훌륭한 시민이 될 수 없다.
개인은 전체로부터 일정한 의지를 물려받고 스스로는 알 수 없는 상태로 개인의지가 결정되거나 적어도 그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집단의지가 오염된 상태라면 개인의지가 올바르게 깨어날 수 없는 이유이다. 때문에 집단은 먼저 깨어나야 한다. 집단이 스스로 맑은 ‘수원’이 되지 못하면 그 물을 마시고 사는 개인들이 건강하기 어렵다. 그런데, 건강한 집단이 되기 위한 그 고난한 길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개인에 대한 ‘교육’이다. 개인이 스스로 그 소속된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았다고 느낄 때, 마침내 올바른 시민이 된다. 사회에 대한 개인의 부채의식이야 말로 훌륭한 시민의식의 발로인 셈이다.
여기에서 교육이 시민의식의 근원이라는 설명에 대한 개연성을 뒷받침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바로 철학이다.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의 원초적인 형태가 바로 철학이기 때문이다. 철학적 인간은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가장 올바른 해결책을 찾기 위하여 노력한다. 개인이 스스로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하여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선진화된 시민 의식의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요소이며, 따라서 특히 철학에 대한 살아있는 교육 다시 말해 오래된 것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며 되새김질하는 죽은 교육이 아니라 오래된 것을 참고하되 가장 현실적인 고민들에 대하여 스스로 생각하는 철학 교육을 한다면 시민 스스로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사회를 정화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기틀이 될 수 있게 된다.
시민이 스스로 똑똑해질 때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 현대사회는 시민이 가장 낮으며 또한 가장 높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스스로 시민임을 ‘자각’하고 시민으로서 ‘행동’할 때에야 비로소 사회가 ‘완성’되는 것이다.
오늘의 일기 끄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