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졸리다~~ 늘어져요..
잠이 확 깨는 짱공 게시물 보러 갈까요??
1. 짱공유 19금 썰만화 콘테스트
애들은 가라~!!! 19금 썰만화 콘테스트~~!!!
시티헌터에 가시면 짱공유 썰만화 콘테스트가 진행 중 입니 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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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공에서 이런 상품 건 적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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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요리겟에 먹방 열풍
둥둥짱이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했네요.
둥둥짱을 이겨보자 먹방 릴레이!!!
- 둥둥짱을 이겨보자
일본식 라면입니다.
사골 육수 라면으로 보시면 되는데. 이 가게가 특이한게 보통 저렇게 육수를 벌겋게 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약간 한국식 입맞에 맞게 얼큰하게 만들어서 팔더라고요.
친구와 드라이브중 급 땡겨서 찾게된 라면가게 우연찮게 맛집 찾겠되어 자주 이용중입니다.
사진에 있는 라면은 계란과, 면 , 고기 추가한 상태입니다.
술 마신 다음날 마시면, 사우나 가실필요 없습니다.
비빔밥 입니다. 가끔 집에서 막 넣어서 빔하여 먹고싶을때가 있습니다.
있는 반찬. 특히 나물류. 야채 및 채소 볶음 류와 같이 넣어서 먹어주면.
입맛도 돌아오는 동시에, 건강해지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거 같아 좋아하는 편입니다.
술도 음식이니까 되죠? 신이 내려주신 일용한 음식 절대음식 술~
친구들과 종종 보드카 및 위스키 즐기는 편인데 엡솔루트 종류별로먹어보기 중 배맛 먹는중인듯요.
자주가는 맥주집인데. 사장님이 서비스로 안주 주셨던거같네요.
보드카는 기분 좋은 분위기를 더 업시켜 줄수 있는 그런 술인거 같습니다.
카페베네 테러중입니다. 혼자서 커피 3잔을.......다 마시진 않았습니다.
카페베네는 저랑 잘 안맞는것 같습니다.
친구들과 모이면 술이 빠질 수 없죠..
수입맥주 맛있는데.. 맥주값만 저때 8~9만원인가 ....ㅎㄷㄷ..
긴말 필요없이 소고기는 사랑이죠.
근데 저곳 소고기 별로였던것 같은 기억이 있네요 가격대비.. 맛이..
간단하게 골뱅이 소면에 소주흐빕!!!!
저렇게 매콤한것 가끔 안주로 먹으면 좋은 듯 합니다.
저는 아이스크림에 술먹는 것 좋아합니다.
돌. 아이. 정. 신.. 병..자 인가요???
시원함과 부드러움은 안주로써 손색이 없는 음식~ 아이스크림~
드랍탑 에스프레소 입니다.
저는 여기 커피가 젤 입맛에 맞는거 같습니다.
저희는 왜 남자 끼리 먹는데 빵을 쳐묵쳐묵할까요? 낄낄
친구가 발견해낸 곳.. 시장통 안의 순대국밥집에서 파는..소머리국밥..
순대국만 먹다가 저때 처음으로소머리국밥 먹었는데.. 저는 왜 소기름이 싫을까요..?
입술에서 소 기름이 굳는 느낌이 싫었지만.. 맛은 나름 굳.
국이 나오기전에 스끼로 주시는 머릿고기가..짱!
요리하는 것 좋아하는 제친구 돌.아이가.. 만든 피망 치즈 볶음.. 어쩌고....
수제 입니다. 맛은.. 느끼하네요.
친구 와이프가 얻어온 술 이름은까먹었는데 꼬냑입니다.
병이 엘릭셔 병같이 생겼어요.. 기대 안하고 마셨는데. 나름 괜찮더라고요. 역시 술은 포도로~~낄낄
안주는 제친구가 군대생각나서 만든건데........어휴...
홍대에 있는.. 무슨 술집인데.. 칼칼한 떡볶이와.. 모찌셀러드..
저의 안주 선택능력은 탁원할듯합니다.
셀러드가.. 음 여성분들이 정신놓고 흡입할 맛이네요...
떡볶이도 일반 떡볶이랑 다릅니다..
매운듯 맵지않은 매운것 같은..그래서 중독됩니다.
아시는 분들을 아실 소다메의 사이드 3인방..
족발집인데 족발은 못찍었네요.. 낄낄
족발은 항상 앞다리 살로먹습니다.
검색해서 찾아간 아구찜집인데.. 양념은 먹을만했는데..
아 진짜 먹을게 너무 없어서.. 다먹고 계산 마친후에 주인하고 대화좀 했습니다.
제가 아직 30대도아니고 좀.. 동안이라. 이런음식 먹으러 다니면 바가지 씌우는 경향이 없지않아 있더라고요..
됬고.. 다신 안가기로 맘먹었네요..
친구 신혼여행 갈때 부탁한 .. 먹어보고싶던 샴페인 돔페리뇽 입니다.~~~
비록 수영장에 무대기로 띄워놓고 마시지는 못하지만 음.... 맛있네요.
입안에서 별이 터진다고 펴현을 한게 왜 그렇게 한지 알겠더라고요.
샴페인 치고 바디감이 이렇게 좋은 술 첨먹어보네용. 친구덕분에 좋은술 먹었습니다.
잔이 없어서 .. 하긴 잔따위.~~~~
같이 구매해 온 그리스 소주......
그리스 분들 이거 어떻게 드시지???
한모금 하는 순간 입안에 화장품 퍼 넣는 느끔이네요......
압센트.. 싸대기 후리는 고약함....
마지막은 돔페리뇽 정면샷입니다.~~~~~
둥둥짱님꺼 보고 저도 도전해서 올려보는데..
글을 많이안써봐서 그런지.. 익숙치가 않네요 사진 크기나.. 잘 올리는 방법이나..
이렇게 먹어도 살 안쪄서 다행입니다~~ 낄낄.
시간이 오래걸리네요 생각보다. 남은 음식후기는 다음번에~~
다들 즐거운 주말되시고 사진보다 더 좋은 , 더맛있는 음식드시길~ 낄낄
http://fun.jjang0u.com/chalkadak/view?db=278&no=4235&page=1
양은 둥둥짱이 더 많은데요? ㅋㅋㅋ
무서운글터 새로운 이야기 보따리
'촉한'님의 사연속으로~
몇 번 글을 쓰고 지우고 올릴까 말까 고민을 많이 하다가 올리게 됩니다.
먼저 글을 읽으시기 전에 욕설로 인한 불쾌감이 드실 수 있습니다. 체험한 바를 그대로 옮겨적고자 함이니 도저히 안되시겠거든 백스페이스를 눌러주시면 진심으로 감사드리겠습니다.
일부러 반말체로 적겠습니다.(욕설 때문에 필터링에 걸릴수도...;;)
올리기 전에 한 마디 사담을 드리자면 공포게시판에 올리는 이유가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이자만 아무
리 귀신이 무서워도 귀신보다 무서운 건 사람이고 또한 비슷한 상황에 있을지 모르는 어린 친구들이 참는 것
이 능사만은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싶어서이기도 합니다.
그로 인해 집안이 파탄날 뻔한 위기도 겪었으니까요
몇 번 나눠서 쓸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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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에게 아버지라는 말의 단어는 어떤식으로 가슴에 와닿을까?
좋은 이미지 애틋한 이미지 또는 나쁜 이미지 부모 어느쪽이던지 아니면 양쪽 모두 안계신 분들도 있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고 산 분들도 많이 계실 것이고 폭행과 욕설 멸시를 받고 꾹 참고 꿋꿋하게 살아오신 분들도 드러나지만 않았지 많으리라...아마도
어려서부터 한 품어왔던 생각
국민학교 시절부터 부모가 장난감을 사줬다거나 집에 컴퓨터(당시는 고급품)을 들였다던가 하는 이야기보다
나는 "화목한 가정"이 제일 부러웠다.
부모님과 손잡고 하다못해 근처 공원을 간다던지 서울랜드를 갔다던지 자연농원(에버랜드의 옛 명칭) 하다못
해 집 앞의 공원이라도 도시락이라도 싸서 가족여행을 나간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있어 그 어떤 것보다 가장
부러운 이야기였던 것 같다.
회상해보면 우리집은 부모님의 말다툼이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을 찾기가 더 쉬울 정도였기 때문이다.
부부싸움의 원인이 별 것 아닌 사소한 이유 배우자의 외도 또는 기타등등 여러가지 사유가 있겠지만
적어도 내 눈에 보이는 싸움의 발단 혹은 원인은 아버지가 많이 제공을 하고 계셨다.
어머니 몰래 한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귀가 얇아 남의 말만 믿고 한 투자가 나가리가 되어버렸다던지 그걸 또 숨기려고 거짓말에 거짓말만 반복
당연한 말이지만 거짓말이라는 부모는 거짓말이라는 자식을 낳고 거짓말이라는 자식은 또 거짓이라는 손자를 낳아주기 마련이다.
절대 거짓이라는 부모 아래 진실이라는 자식이 태어날 순 없는 노릇
차라리 좀 욕먹을 걸 각오하고 같이 손바닥으로 막았으면 막아졌을 구멍이 나중에 밝혀지면 손 쓰기가 까마득한 수준이였기 때문이였다.
그로 인한 결말은 당연히 부부싸움 실제 흉기까지 들고 대치하신 적도 있었다. 최악의 결과가 나오지 않은 건 오히려 지금 생각해도 참 다행이면서도 신기한 일이였다.
거의 부부싸움 종료의 아버지의 레파토리는 둘 중 하나였다.
에이 시X 개X같은 거 또는 에이 시X~!! 의 욕설만 내뱉고는 옷 챙겨입고 어딜 가시는지 집을 나가시곤 한참 후에나 들어오시곤 했다.
덩치로나 말싸움으로나 가정에서 아버지는 어머니를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사람과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할 때 필요한 논리가 아버지는 전혀 없는 사람 같았다.
설사 폭력을 휘두른다고 해도 어머니가 가만히 맞고 계실 분은 아니였고 설사 두 분이 리얼철권을 찍으셨다고 해도 90% 이상의 확률로 승자는 어머니였으리라
당연히 부부사이는 점점 갈등만 깊어져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뀔 때쯤엔 이미 봉합하기도 어려운 수준으로 대외적으로 보기엔 그냥 부부사이지만 그냥 같이 살고 밥만 같이 먹는 수준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였을까?
한참 무더위 시작을 알릴 초여름 중2 때 내게 늦둥이 여동생이 태어났다.
내리사랑이라고 했던가 사실 그 전에도 좋은 아버지라고 평하긴 무리가 있었지만
그 시기부터 나에 대한 구박 멸시 욕설이라는 씨앗은 본격적인 싹을 내기 시작한 시기였다.
사소한 잘못에도 난 아버지에게 병X같은 새끼 +@의 욕을 먹어야만 했다.
동생에게 보내는 눈빛과 나에게 욕설을 할 때의 눈빛은 같은 아버지가 두 자식에게 대하는 태도가 어찌 이리 다를 수 있을까 생각될 정도였다.
(동생이 아기라는 점은 감안한다고 해도...)
잘못해서 부모에게 혼나거나 설교를 듣거나 욕을 먹은 경험 체벌을 당한 경험이야 누구에게나 있으리라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의 욕설과 멸시의 눈빛은 확실히 날짜가 하루하루 바뀔 수록 그 정도가 더해지고만 있었다.
참 자식교육에 훌륭한 아버지였던 것이 얼마나 욕설을 해댔으면
한참 집안이 시끄러울 정도로 옹알이 하던 시기의 내 동생 뭘 발음해도 엄마 아빠 오빠 배고파 정도의 단답형 발음밖에 안되던 시절에도 날 보고 나름(?) 또렷한 발음으로 날 가리키며 “병X같은 새끼” 라고 했을 정도였다.
반복학습은 훌륭하다는 것의 일종의 증거로 삼아도 되는 걸까? 이거(...)
언제 한 번 아침식사 이전에 무슨 일이였던가는 기억이 희미하지만 난 또 아버지에게 욕을 먹고 있었다. 언제나 욕설공격의 원톱은 「병X같은 새끼」 로 시작이였다.
몇 번 지켜보신 모양이였지만 그 때 어머니는 집안을 한 번 뒤집어 엎으시려했다.
“너 아주 병X같은 새끼 아냐?! 보자보자 하니까 지 자식한테 뭔 그리 한이 많아서 욕질이냐 병X같은 새끼 저거 아주 또X이 아냐!? 나중에 늙어서 지 자식한테 죽도 못 얻어먹을 영감탱이 같으니!!”
식으로 아주 속사포로 욕을 먹었다.
솔직하게 심정을 토로하자면 내 속이 시원했을 정도였다.
아버지는 그 때 난 한참 멸시어린 시선으로 쏘아보다 옷을 챙겨입고 또 밖으로 나갔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할 생각은 커녕 회피하는 건 아버지의 특기였다.
그렇다고 문제가 알아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였으니
그 이후 그 버릇이 나았다면 조금이라도 괜찮아졌으면 난 이 글을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확실히 어머니가 계실 때 욕설은 많이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어머니에게 오히려 속사포로 역관광 당하기 싫었으면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대신 그 등가교환으로 어머니가 없으실 때의 욕설은 더더욱 진화하고 있었다.
욕설은 나에 대한 비하를 넘어서 너는 ㅁㅁ이(동생이름) 똥꼬나 핥으면 돼 넌 ㅁㅁ이 똥이나 빨아먹으라는 등의 말은 마음속에 모멸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하고도 넘치는 말이였다.
한참 ADSL의 다음 단계인 VDSL을 광고하고 TV만 틀면 잭필드 3종셋 39,900원을 광고하던 시기
나에게도 3종 셋이 주어졌다고 해야 하나? 병X같은 새끼라는 원톱으로는 부족하셨던 걸지
그 뒤에는 「또X이같은 새끼」 - 「뒤져버려」 또는 「뒤져 없어져 버려」 의 욕설까지 쓰리톱으로 기본옵션 장착이 되었다는 차이만 생겼을 뿐이였다.
멸시어린 눈빛이 더욱 진화했다는 건 덤이였을 뿐...
물론 저 욕설들은 기본옵션일 뿐 옵션이 끝난 후엔 어떤 욕설이 나왔는지는 세종대왕께서 백성들을 위해 만들어주신 한글을 더럽히는 짓이라고 생각되기에...쓰지 않기로 한다.
(아니 지금도 충분히 더럽히고 있는 것 같지만)
중학시절 참 기억에 남는 일화 중 하나가 다음날이 컴퓨터 활용능력 2급의 자격증 시험이 있는 날이라 내 방에서 문제집을 풀고 있던 때였다.
의외로 집중하고 있었던 모양이였다. 아버지가 들어오셨는데 갑자기 머리 뒤로 피식하는 듯한 말이 들려왔다.
"니까짓게 무슨 공부를 한다고..."
아버지 탓하려는 것 아니였지만 난 그 다음날 컴퓨터 활용능력 필기 시험에서 불합격했던 건 기억난다.
그 시험이 뭐 별거겠냐만 준비를 나름 착실히 했고 내 모의적으로 풀어본 시험지도 못해도 80점 이상의 점수는 찍었었는데 분명히 아는 문제였고 쉬운 문제였는데도 일단 결과는 많이 틀려있었다.
그 시기부터 가족끼리 하는 아침식사도 엔간해선 배가 지금 고프지 않다는 핑계로 빠지고 나중에 혼자 먹었던 것 같다. 정신적으로도 차라리 혼자 먹는 것이 편했고 밥 먹는 덴 뭐도 안건드린다고 하지만 식사시간 때 어떻게든 나에 대한 결점과 흉을 잡아 뭐라고 하는 아버지와 식사는 하는 건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조건이였다.
단순히 욕설만 진화를 한 건 아니였다.
나는 그냥 아버지에 있어선 공인 스트레스 풀이 대상 + 마당쇠 = 나 라는 존재였던 것 같다.
심부름도 어지간히 시킨다고 욕설을 먹은 이후론 어머니만 없다 싶으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든 심부름 머신이였다.
심부름의 이유는 거의 90% 이상이 군것질이였다.
떡, 빵 과자류 음료류 기타 등등
심부름을 갔다와서 길어야 5분이나 지났을까 빵을 사와라 빵을 사오고 잠시 후엔 또 콜라를 사와라 그렇게 심부름 갔다와서 쉴까 하면 또 내 이름을 부르는 듣기싫은 목소리는 100% 또 심부름을 요구하는 목소리였다.
하루에 최소 10 ~ 회 이상의 심부름을 왔다갔다 했다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나라도 못 믿을 것 같은 이상한 이야기지만 그것이 나에겐 현실이였다.
심부름을 저렇게 시키고 군것질을 해대는데 살이 안 찐다는 게 오히려 삐쩍 마른 체구라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제대로 먹는대로 살이 찌는 체질이였다면 북쪽의 모 삼부자 못지않게 살이 올랐을텐데
선천적일지 후천적일지는 몰라도 장도 좋은 편이 아니라 뭘 먹으면 화장실 왔다갔다 하면서 뭘 그리 식탐이 있으셨던 것일까?아버지의 어린시절이야 굳이 예상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전쟁 이후 이 나라가 그야말로 배고픔 + 굶주림의 세월이였으니 그것에 대한 집착이셨던 걸까?
술만 빼면 몸에 나쁘다는 건 골라서 좋아하는 성질 담배는 줄담배가 기본 커피는 어찌나 좋아하는지 커피는 그 커피믹스로 2 ~ 3개가 기본이였다.
반대로 몸에 좋다는 음식들은 입에 대려 하지도 않았다.
순전 좋아하는 것 아니면 밥을 안 먹으려 하는 반찬투정을 부리는 아이와 다를 게 없었다.
별명이 김커피였다는 전 프로야구팀 두산 베어스 김진욱 감독도 아버지 수준은 아니였으리라
그나마 아버지가 지방에서 일해서 일주일에 한 번 금요일 혹은 토요일에 와서 쉬고 월요일에 나간다는 것이
다행이였지 매일 이 생활이였으면 그 스트레스의 결말이 어떻게 되었을까??
발음도 정확하지 않았는데 알아먹을 수가 없어 네 뭐라고요? 라고 한 마디만 물어도 「귀까지 처먹었어? 병X같은 새끼」라는 욕설이 날아왔다.
어느 주말이였다.
퇴근해서 오셨는데 떡 심부름을 시키셨다 배가 고프시다고 참고로 떡집은 집에서 평균 15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떡집에 가보니 아버지가 먹고 싶으신 떡을 막 기계에서 뽑고 있는 참 잠시 기다렸다가 따끈따끈한 떡을 사다드렸는데 욕을 먹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당연한 의문을 품을지 모른다. “아니 떡 사다달라고 해서 떡 사다드렸고 따끈한 떡 뽑아다가 드렸는데 왜 욕을 먹을 상황이냐?” 라고 물어볼지 모른다.
정답을 공개한다면 「심부름도 제대로 빨리빨리 못하는 병X같은 새끼」 라는 게 이유였다.
뚝
뭐가 끊어지는 소리였을까?
그 순간 그 뜨끈뜨끈한 떡을 들어 상판에 던져버리려다가 참았던 듯하다.
이제는 상황까지 진화(?)하기 시작했다. 진화하니 무슨 포켓몬이나 디지몬도 아니고 ㅠㅠ
내 잘못이 아님에도 욕을 먹는 몇 몇 상황들이 생겼다.
커피 심부름을 했다.
수전증이 있으셨는데 분명 컵을 드리고 나서 아버지가 그걸 엎은 상황
욕은 당연히(?) 내가 먹었다. 그거 하나 똑바로 못 주냐는 것이였다.
위에서 상황 설명했듯이 컵을 드리고 난 손을 뗀지 한참이 지났는데...
슬슬 인내심에도 한계점에 부딪치던 시절 적어도 어머니와 동생 얼굴을 봐서라도 참던 시기였다.
만약 내가 편부가정이라 아버지와 단 둘이 사는 사람이였으면 모르긴 몰라도 가출을 했어도 오버 안보태고 100번은 넘게 했을 것이였다. 아니면 계급장 떼고 폐륜이라는 이름의 계급장을 새로 달고 사람의 껍데기만 가진 야수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설사 그거 하나 때문이라도 나는 어머니와 여동생의 존재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막말이지만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계급장 저 한강에 집어던져버리고 힘으로만 했어도 아버지를 누르는 건 일도 아니였을 터였다.
내 심장엔 누군가가 날 뜯어말리는 사람이라도 집을 지어 살고 있는지 마음에서는 필사적으로 자제를 요청했고 난 그 요청을 항상 받아들이곤 했다.
그 시점만 생각해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두번 했었을까?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릴 생각을 한 적도 횟수를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차라리 미X놈인척 길거리에서 "임금님귀는 당나귀귀!!"식으로 속 시원하게 소리라도 치고 싶었다.
그걸로 아버지 본인이 본인의 짜증이나 스트레스를 풀렸을지는 모르겠지만 그에 대한 등가교환의 법칙으로 그
시점에서 있었는지도 의심스러운 아버지에 대한 + 감정들은 뜨거운 태양빛 아래에 남극의 얼음이 녹듯 사그러들고만 있었고 자연히 아버지를 보는 시선은 차가워지고만 있는 것도 사실이였다.
그리고 현재 사는 아파트로 이사오기 이전 아버지에 대한 모든 감정을 증오로 환전해도 이상하지 않은 사건은 나의 주제넘은 실수로 인해 발생하게 되었다.
http://fun.jjang0u.com/articles/view?db=106&no=13889
그 때는 2002년도 한일월드컵을 한참 부산하게 준비하던 시절이였다.
당시 히딩크 감독의 별명이 오대영 감독으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첫 개최국 16강 탈락의 망신을 당하고 싶지 않거든 당장 자르고 지금이라도 다른 감독으로 교체를 해야 한다는 국내 축구계 인사들의 한결같은 말이 스포츠 뉴스의 메인으로 항상 자리잡던 시절
그리고 내 개인적으로는 아버지에 과연 나와 전생에 무슨 악연이 있었는지 하늘아래에서 절대 같이 숨을 쉬고 살 수 없었던 사이가 현생에서 부자사이로 태어난 걸까?? 라는 의문을 품어도 이상하지 않은 정신적인 학대가 최전ㅅ기를 향해 달려가던 무렵이였다.
(전ㅅ기도 금칙어에 걸리는 건 좀 너무한 것 같아요 ^^)
신문을 보실 때 글씨가 너무 작아 그야말로 온 인상을 찌푸리며 신문을 보는 아버지를 보고
“안경이나 돋보기 하나 맞추세요 아버지”라고 말씀을 드려도 내가 되돌려받는 대가는 욕설이였다.
대체 세상에 어느 아버지가 안경을 맞추실 것을 말하는 아들 앞에서 안 그래도 좋다고 할 수 없는 인상을 찌푸리며 또라이같은 새끼라고 말할 것인가??
위와 같이 무슨 일을 벌이건 간에 옆에서 보기에 아무리 답답해보이고 멍청한 짓을 벌여도 조언하는 건 포기하는 것이 좋았다.
그건 아닌 것 같아 말씀드려도 좋은 소리 들을 가능성은 동전으로 긁는 즉석복권을 긁어 1등 당첨이 될 확률이 차라리 높았을 것
이전의 글에서 마지막에서 쓴 대로 나의 주제넘은 실수는 그 때로부터 10년을 훌쩍 넘는 세월 12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가슴속의 흉측한 흉터라는 대가를 받게 되었다.
아마 내가 죽어서 세상에 존재가 사라지기 전까지 잊혀지지 않을 듯한 흉터를...
기억을 지우는 지우개가 있다면 제일 먼저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
현재 살고 있는 이 집으로 이사오기 전이였다.
막 완공한 아파트였고 전 집주인 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 들어오려고 입주공사까지 싹 다 해놓았는데 급전이 필요해서 내놓게 되었고 그 정보를 입수한 어머니께서 여기저기 꼼꼼히 알아보고 계셨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집에서 갖고 있는 자금으론 그 집을 사기가 무리였다.
대출을 좀 더 받아야 하는데 당시는 아버지의 일 전체적으로 따지자면 그 업계가 그야말로 중국발 직격탄을 맞은 상황이였다.
무슨 일을 하셨는지 자세히 밝히질 못하는 것이 안타깝지만 읽으시는 분들에게 양해를 먼저 구하고자 한다.
대충 말하자면 건설 쪽이랑 더 정확히 말하자면 건축자재랑 관련이 되어있다.
당시 아버지의 업계상황은 하다못해 IMF때도 이 정도 수준은 아니였다. 라는 말이 나올 수준의 불황이였다.
간단하게 건물하나 짓는데 필요한 건축자재 비용이 국내업체에선 아무리 못해도 100이 든다 친다면 중국 업체에선 한국으로의 배송료까지 합쳐 40~50 수준이라면??
내가 건설사 사장이라도 어느 쪽을 택했을까?
아버지 직종의 관련업계는 그 쪽 방면에는 큰 기업이라도 크게 휘청거릴 정도였다고 한다. 중소규모 업체들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설명이 따로 필요하지 않을 것...
당연히 어느 중견업체에서 도급계약으로 아버지 기계를 들여서 일을 맡아하는 아버지 일의 타격도 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기계를 들이느라 대출받은 금액도 아직 한참 남아있었다. 거기에서 더 대출을 받으면 아버지의 업계가 당장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데 과도한 빚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집은 계약을 하기 일보 직전이 상황.
당시 그래서 어머니와 상담을 했다.
더 좋은 집에 이사가는 거 자체는 좋은데 지금 안 그래도 대출금이 남아있는 상황이고 아버지 업계가 좀 많이 좋지 않은 상황이잖아? 거기서 더 대출받는 건 위험부담이 너무 큰 거 같은데 조금 신중하게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라는 식으로 어머니와 상담을 좀 했던 것 같다. 일리는 있다 생각하셨는지 어머니도 어느 정도 공감을 해 주신 것 같았다.
당시 요일은 토요일이였다. 아침식사가 끝날 때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촉한이가 이런이런 의견을 내놨는데 좀 신중하게 생각할까? 라고......
그리고 바로 그 날 점심 이후 정확히는 저녁식사가 가까워졌을 시각 그 집을 계약하기로 결정하고 어머니는 즐거우신 표정으로 가족들 저녁 식사준비를 마쳐 주시고 아파트 가계약건 때문에 밖으로 외출했다.
어머니가 나가신지 5분이나 지났을까 밥을 먹고 있던 상황
엄마가 나간 대문을 잠깐 확인한 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분명 막말이고 속 된 표현인 걸 잘 알고 있지만......
당시 나를 보는 눈빛은 「눈깔이 돌아갔다.」 라는 표현이 아주 적합해보였다.
오른쪽 뺨이 화끈해지는 통증과 함께 짜악----!!!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안경이 주방 어딘가로 날아갔다.
뿔테는 아니였다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했을까? 뿔테안경이였으면 100% 부러졌을테니...그 다음에 날라온 것은 머리와 얼굴을 향한 주먹질과 따귀의 대군이였다.
평소에 어머니만 안 보인다 싶으면 나에게 날리는 폭언과 욕설 역시 더욱 강도를 보태어서 날아왔다.
“병X같은 새끼 어디서 공부도 못하는 새끼가 감히 집안일에 나서서 참견해? 병X새끼 또X이 새끼 콱 뒤져버리지 왜 살아? 뒤져버려!! 어디서 공부도 못하는 게 감히...!!”
간략하게 줄여서 순화(?)해서 이 정도였다. 평소의 욕설보다 업그레이드 된 욕설도 포함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공부도 못하는 건 사실이였지만...
동생은 조용히 밥을 먹다가 벌어진 눈앞의 사태에 놀랐는지 숟가락을 든 채로 그대로 굳어져버렸다.
왜 병x같이 맞고만 있었던 걸까?
꼴에 아버지라고 대들면 안된다는 감정이 앞섰었던 걸까? 하기사 모르는 사람이 다짜고짜로 내 따귀를 날린 경우였으면 설사 개값을 물어주는 한이 있어도 가만 있진 않았으리라
밥이고 뭐고 뒷정리를 하고 휘어진 안경을 찾아들고 내 방으로 들어가는 내 등뒤로 익숙해질래야 익숙해지지 않는 아버지의 욕설이 들렸다.
「나가서 뒤져버려!!」
왜 밥이고 뭐고 들어가버린 내 방에서 어떻게든 멈추려고 하는 눈물이 그렇게 멈추질 않았을까? 이성은 계속 눈물을 멈추라고 지시하는데도 눈에서 한스러운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왜일까? 왜였을까? 아프지 않았는데 마음만 먹으면 덩치로 오히려 아버지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줄 수도 있었을텐데
최소한 하나는 확실한 것이 아무리 어머니만 눈에 안 보이시면 마당쇠처럼 부려먹고 욕설을 날리시고 어떻게든 구박을 줄 구실을 찾는 듯한 이미지의 아버지였다.
그래도 설마 여기까지 이 정도까지 가슴을 찢는 상처를 선사하셨을지 어리석었던 나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였다.
30대를 넘긴 지금의 시점에서도 아직도 생생한 10대 청소년기 시절의 기억
한동안 새벽에도 자다가 깨서 이를 바드득 갈던 부들부들 몸을 떨던 그 시절의 기억
세간에서는 트라우마 라고 부를 것이다.
분명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아 뜬눈으로 새벽을 보내면서 나는 마음속 끝에서 끝까지 박박 긁어봐야 얼마 나오지도 않는 아버지에 대한 최소한의 좋은 감정마저 내 마음속에서 떠나보내고 있었다.
다음날 일요일 무슨 사유였었는지 나는 집에 혼자 남아있었다.
식욕이라곤 없었고 새벽 내내 뜬눈으로 보내다시피 했는데도 피곤해도 잠이 오지 않는 정말 문자 그대로 누가 나를 봤으면 혼이 나간 듯한 사람으로 보았을지도 모른다.
친구에게 전화로 하소연이라도 할까 밖으로 나가서 산책이나 할까 했었지만 곧 그 마음을 접어야 했다. 지금 당장 뭘 하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이였다.
당시 짱공유가 메인화면에서 마징가Z가 춤을 추고 웹하드로 팝폴더를 쓰던 시절이였을까
아닌가...? 리뉴얼한 다음이였나? 그것까진 확실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에 양해를 잠시 구한다.
아무 생각없는 좀비처럼 PC를 켜고 생각 없이 마우스 클릭질을 하고 간단하게 게임으로 정신집중이라도 해보려고 했지만 뭘 해도 도저히 집중이 되지는 않았다.
뭐라도 다운받아서 좀 볼까하던 참에 어떤 영상물 제목이 눈에 띄었다.
짱구는 못말려 어른제국의 역습
일본명 크레용 신짱 : 태풍을 부르는 불타라! 어른 제국의 역습
クレヨンしんちゃん: 嵐を呼ぶ モ?レツ!オトナ帝?の逆襲
분명 ‘제목 참 웃기다’ 라고 생각하며 피식 웃었었다.
짱구는 못말려 역대 극장판 중 최고로 사람들이 평가하는 작품이였다는 건 나중에 안 이야기였지만 평소 어쩌다가 TV에서 볼 게 없을 때나 가끔보던 내 동생이나 꼭 챙겨보던 시리즈
정신차려보니 어느새 컴퓨터로 다운로드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영상을 다운로드 하고 감상하기 시작한 이후로 난 근래 영상물을 이리도 집중해서 본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몰입되기 시작했다.
당연한 말부터 한 마디 한다면 짱구는 물론 짱구엄마 짱구아빠 짱아는 물론 작중에서 등장하는 메인급 캐릭터는 원작가 故우스이 요시토(臼井義人)가 창작한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들
적어도 그 때 내가 느낀 것은 최소한 짱구 아빠(한국이름 신형만...맞나? 갑자기 헷갈리네요)는 그 애니메이션의 숨겨진 주인공이 아니였을까?
그 어른제국의 역습에서 명장면이라고 일컬어지는 어렸을 때 자기 아버지의 자전거 뒤에 타면서 낚시를 떠나던 장면부터 시작해서 짱구엄마랑 만나고 짱구가 태어나고 짱아가 태어나고 고단하고 힘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가정에선 좋은 남편과 짱구와 짱아의 좋은 아버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정신차려보니 울고 있었다.
어떤 감동물을 봐도 코끝이 찡한 때야 있었어도 운 적은 없었는데
내가 보는 그는 좋은 아버지라고 할 수 있을 사람이였기 때문이다.
꽤 헤비스모커에 술을 좋아하고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 짱구처럼 미인에 약한 모습을 보여주지만...최소한 자기 아들 짱구가 아무리 말썽을 부려도 욕설이나 폭언을 날리고 함부로 행동하는 인품을 가진 사람은 아니였기에
내가 만약 나중에 결혼해서 저러한 가정을 꾸민다고 하더라도 나는 짱구아빠만한 사람이라도 될 수 있을까...?
결국 애니가 끝나고 엔딩곡까지 끝 영상이 종료되어 영상 플레이어의 검은 화면만 남고 난 후에도 난 한참동안 여운에 잠겨 있었다.
엄마가 없으면 욕설 + 폭언에 이번의 새집 계약 사건만 해도 아버지가 얼마나 이중적인 인간임은 아버지라는 호칭의 그에게 지워지지 않는 낙인효과를 낳았다.
앞으로 그가 벌일 일을 생각하면 이건 삼류막장 드라마극의 서막에 불과했다.
대한민국 5천만 전국민을 붉은 물결에 뒤덮이게 한 2002년도의 월드컵이 끝나고 그 다음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의 집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지금 과거를 돌이켜보면 나의 인생의 1차 방황기가 시작됐다.
물론 위에 언급한대로 공부와 담을 쌓긴 했지만(...)
현재 살고 있는 이 집을 사느라 약간 무리를 한 탓에 대학 학자금 역시 빠듯한 상황이였고 내가 이 상황에서 대학을 가야 하나??학자금대출 받아서 대학을 갈까? 차라리 군대를 일찍 갔다올까? 하는 고민을 심각하게 하던 시절이였다.
그렇게 갈팡질팡하다가 내가 드디어 실성한 건지 정말 미친 결정을 해버리고 말았다.
당시 집에 있었던 아버지와 상담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촉한 : 저 아버지 저 상담 좀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아버지 : 아 뭐어어~~~!?
촉한 : (이러저러 고민말함)
아버지 : 난 너한테 투자하기 싫어 대학을 입학하던지 말던지 니 알아서 하고 대학교 가서 학사경고장이나 그런거 집에 날아오는 날에는 난 니 꼴 안 봐 나가서 뒤지던지 말던지 니가 알아서 해
(......)
타인이 보면 이 대화에서 뭘 느낄지 모르겠다.
내 마음이 나 자신을 비웃는 듯했다.
『야 이 미x놈아 저 인간이 어떤 인간인데 너한테 힘내라는 말 한마디라도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냐? ㅋㅋㅋ』
라고 날 비웃는 듯했다.
사실 내게 있어 진정으로 필요한 건 학자금이나 그런 것보다는 따뜻한 한 마디의 격려 하다못해 「그래 열심히라도 해라」 라는 말 한마디가 목이 말랐을 뿐이였는데......
절대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할 대상
힘겨울 때 등을 잠시 기대 쉴 수 있는소나무는 부러진 작은 나뭇가지 조각같았던 사람에 난 너무 큰 기대를 해버렸던 것이다.
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는 나의 한심한 기대심리였던 셈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학은 가지 않았다.
정신차려보니 직업학교에 입학해 다니고 있었다 매달 국가보조금이 지급됐고 국비로 시켜주는 교육이였고 한 달에 20여만원씩의 국비지원금도 들어왔다.
내가 선택한 학과는 컴퓨터관련 학과였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였던 것일까? 컴퓨터 관련학과를 들어갔지만 어딜 봐서 이게 컴퓨터전공 학과인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납땜질 학습의 연속이였기 때문이였다.
물론 이건 나를 위한 변명일 뿐이다.
납땜 연기로 머리가 까마득해졌을 때 쯤 난 결국 직업학교도 그만두고 말았다.
그 이후 PC방 알바등을 하면서 아무 의미없는 천금만금을 줘도 살 수 없는 시간을 무의미하게 낭비하던 세월도좀 더 흘러 내가 신검을 받고 군입대를 하던 날
306보충대로 입대해야 하는 날의 아침이였다.
어머니가 쓰러지셨다.
숨을 제대로 못 쉬시고 답답한 듯 가슴을 부여잡으시면서......
http://fun.jjang0u.com/articles/view?db=106&no=13902
다음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전 월요일부터 야근 잡혀있는데~~
여러분도 저랑 같이 야근할래요??
다그닥 다그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