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아버지 얘깁니다.
내가 어릴때 아마 국딩 4~5학년때
유독 삼촌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았음.
하나같이 인상 험악하고 문신에 칼에 담배빵 칼빵..(근데 그게 무서운건지 몰랐음 다 나한테 잘해줘서)
나중에 좀 커서 알았는데
우리 아버지가 신림역 사거리 롯데리아 맞은편 출구쪽 (몇번인지모름) 노점상을 다 관리하셨음.
우리 아버지가 내 생각엔 깡패였던것 같음. 문신도 없고 칼빵도 없고 지금은 넙데데한 아저씨지만
젊을때 사진보면 키 멀대 같이 크고 삐적 말랐는데 눈썹이 엄청 진하고 인상한번 쓰면 진짜 어릴때지만 오줌 지릴만큼 무서웠음.
아 그리고 아버지 친구들하고 찍은 사진에 깔치라고 써있는거 보니 별명이 깔치였나봄.
중학교때도 전혀 몰랐고 근데 전혀 그런일 하는사람 같지 않음.
지금도 물어보면 말을 안해주심.
어쨋든 그쪽 출구에서 아버지가 군밤기계를 최초로 개발해서 영등포 신도림 등지로 확장했었다고 함.
군밤기계의 스토리가 참 재밋는데 뻥튀기 기계를 소형화해야되는데 거기에 맞는 모터를 구할수가 없어서 큰 모터로 하다보니 전력낭비에 소음에 한마디로 원가절감이 안됐음 차라리 손으로 돌리는게 나을 정도 근데 아버지가 폐차장에서 차량에 쓰는 와이퍼 모터를 개조해서 돌려보심.. 완전 딱임.. 그걸로 자기가 모터 개발한것처럼 개런티 받고 지금 말하면 분점을 냄. 군밤은 물론 지금 기억하는걸론 쇠붙이도 자르는 칼. 비디오 묶음 판매, 자잘한 벨트같은 악세사리 등 없는게 없는데 그게다 아버지가 고용한 사람들이 파는거임. 자금관리 삥땅관리 이런건 어떻게 한지는 모르겠는데 아버지가 인망있다고 느꼈던게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 살던 집 근처에 자기들도 집얻어서 반찬해다주고 뭔일있으면 도와주고 분위기가 험악한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지금 보면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행동했던것 같음.. 애가 태어나면 나하고 내 동생 이름 한글자씩 따서 이름도 자기들이 짖고 그랬음.
노점상하는데 웃긴게 단속 공무원하고도 친구임. ㅋㅋㅋ 연락이 오면 그냥 뒷골목쪽에 매대 접고 잠깐 쉬면됨.
이렇게 해서 시골깡촌에서 19살에 빈손으로 서울오셔서 지금은 아들딸 잘키워내시고 혼자서 적적하게 사심.
누가보면 불법노점상 양아치로 보겠지만 이게 벌써 20년전 일임. 그때는 그게 삶의 한 방식이었음.
암튼 이것저것 할얘기 많은데 뭐하고있나 싶기도 해서 이만 줄임. 질문은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