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0대중반 때부터 집에서 나와 차량용품점을 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30대 중반이고.. 장사를 접고 나라에서 하는 취업성공패키지라는 취업준비 프로그램에서
직업상담사를 희망으로 학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처음에 시작했던것과 달리 배우는 커리큘럼들도 꽤나 재밌는 부분이 많았고..
사람을 상대하고 상대한 사람의 발전도에 따라 성취감이나 만족도가 큰편이라..
늦은 나이에 공부지만 참 재밌게 하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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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어머니께서는 5년전에 심리학과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심리 치료사로 나라에 일을하고 계십니다.
아버지께서는 거여동에 꽤 오래동안 점파사를 하시다가 현재는 은퇴하시고 쉬시는 중이시구요.
어느 누가 뭐래도.. 전 저희 어머니, 아버지를 세상에서 재일 존경하고 살았습니다.
30대 중반인 지금.. 그 존경과 사랑은 너무 커져서 경외와 절대적인 현명함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렸을때는 아버지처럼 살지 말아야지 생각했었지만.. 제가 26살이 넘을때쯤.. 그 작고 좁은 전파사에서
집장만 하시고 아들,딸 대학까지 다보내시고 여동생은 시집보내시고 여태 부족함 한번없이 잘사신걸 생각하니..
과연 저였다면 가능했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제작년에는 "마천동 맥가이버"로 티비에 출현하셔서
친구들에게 자신감있는 저의 자랑거리였습니다.
지금은 늘 생각합니다. '더도 말고 들도말고.. 아버지처럼만 살았음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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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원래 서울 태생입니다. 서울이에서 태어나서 23년을 살고.. 24살때 혼자 안산에서 살면서 장사를 하며
34살 봄때까지 있었습니다. 나이가 서서히 먹어가니.. 이일을 평생할 자신이 없었고..
어머니,아버지의 늘어가는 주름살과 흰머리를 보니.. 할수있을때 효도 하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름대로는 큰 맘과 큰 꿈을 가지고 모든 장사를 접고 살고있던 집을 처분하고 부모님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부모님 집에 귀거하며 느끼는건.. 참 행복은 큰게 아니였단것이였습니다.
어머니 출근하시기 전에 눈뜨고 출근하시는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티비를 보시는 아버지와 같이 티비를 보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어머니께서 최근하시기 전에 몰래 먹는 막걸리 한두잔이 왜 도대체 이걸 미뤄왔던거지..
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하루하루 너무 만족스러웠습니다.
하루에 공부하는 시간이 그렇게 만지가 않다보니 부모님 두분과 있을 시간이 많아져서 참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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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머니께서 퇴근하시는길에 장에들러 정말 짜잘한 파를 4단 사오셨는대..
파가 정말 짜잘하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릴듯해.. 파를 다듬는일에 온가족이 힘을썼습니다.
그래도 너무 짜잘하니 한시간정도 걸리더군요..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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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에서 공부하는 과목중에 '직업정보론'이라는 과목이 있습니다.
정확한 직업정보를 내담자에게 제공함으로 인하여 내담자가 자신이 선택할 직업의 폭을 좁히고
자발적인 선택을 도모하는대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과목입니다.
그리고 '노동관계법규'이라는 과목도 있는대.. 근로에 관한 여러가지 법률을 공부함으로써
내담자에게 비윤리적이거나 노동력을 착취하거나 노사간의 갈등이라던가.. 정보제공과 추천하는 일자리의 형태를
상담자 스스로가 판단할수있는 목적으로 역시 꼭 필요한 과목입니다.
위의 두과목은 아무래도 법률적인 부분과 그 법률의 적용사례등이 중첩적인 부분이 많아 한 선생님께서
지도를 해주시는대..
그 선생님께서 하신말씀중에 굉장히 인상 깊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시대가 변했다. 옛날에는 한사람이 일을 하므로써 한 가정을 먹여살릴수있었다. 지금보다 더 좋은건 못먹었을지 몰라도
먹고살면서 자식 키우기 아무 문재가 없었고.. 노동의 수요가 공급보다 많아 물론 입사할때 계급의 차이는 있었을지 몰라 도..고등학교만 나온다면 누구든 일자리를 찿을수가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80년대 후반 엄청난수의 노동력들이
자본(기계)로 대채되었고.. IMF이후 기업들의 기업형태들이 바뀌어 값이 싼 외국인들로 일자리를 빼앗긴 수도
상당수가되어 버렸고.. 기업또한 직원들을 구조조정을 통해 인과수를 줄이면서 취업문은 좁아지고 그 취업을 희망하는
사람의 수는 엄청나게 많아져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어른들은 아직취업하지 못한 20대 30대를 보며..
막노동판이나 생산직의 일자리가 그렇게 많은대 '우리때는 안그랬다.'며 현시대의 젊은이들은 한심하게 본다.
IMF때 구조조정으로 짤려 노조 조차 없어 기댈곳없던 아버지가 지금은 자기 자식을 보면서 '우리때는 안그랬다.'며
'비정규직' 자리많은대 왜 들어가지 않느냐라는 말을 한다. 지금은 옛날과 다르다는걸 아직 인지못한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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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파를 다듬으면서 부모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대..
얼마전에 있었던 광화문 시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시위 사안중하나가 노동개악문재 였었는대..
시위 이야기를 한창하다가..
나: "사실상 비정규직이 더 늘어나봐야.. 짤리고 대체인력구하기의 반복일탠대..
쓸대없이 노동시장의 탄력성을 높이는거보다.. 정규직으로 안전성 있는 운영을 위해 전환을 시켜주던지..
국가적인 차원에서 일자리를 만들어주는게 맞지 않을까요.."
어머니: "지금 시위하는 애들 선봉을 누가 잡고있는지 아니? 걔들 연봉이 얼만지 알어? 기아,현대 생산직라인
니들이 들어가고 싶어도 못들어가. 왜 못들어가는대.. 걔들 지금 자식까지 일자리보장받고 연봉 7000씩
받으면서 지들 월급 조금줄어들까봐 지 애들 일자리 보장못받을까봐. 그래서 시위하는거야. 뭘알고나 말해."
나: "그게아니라..그냥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 일자리의 안전성을.."
그이후.. 듣고싶지 않았던.. 말들..
어머니: "그러니까.. 진짜 사회적 약자도 아니면서 왜 나와서 시위하는대.
지들은 철밥통차고 지들 밥통줄어들까봐 그런거지."
나: "그게아니라 엄마. 누가 주장을 하던.. 계혁인 되면 일을하는 사람들 다 좋은거잖아요. 엄마도 심리치료사 협회라던가..
그런게 있을게 아니에요. 노조처럼.."
아버지:"그러니까 니가 왜 너보다 잘사는 애들 걱정을하는대.. 노조 대표들 너보다 훨씬 돈잘벌고 잘살아 걱정붙들어매셔."
나:"그럼 아빠, 노조대표가 약자도 아니면서 자기 철밥통 지킬려고 시위를 한다면..그걸 막는 정부는 왜 그 노조대표가
다니는 기업도 아니면서 그걸 막으려고해요? 그럼 아빠는 제가 노조대표 걱정할필요없는거처럼 아빠는 기업편
들필요없는거 아니에요?; 그리고 만약에.. 사측에서 연봉계약이라던가.. 자녀의 취업을 약속했다면.. 이행해주는게
맞는게 아닌가요..?"
어머니:"그러니까... 걔들이 지금 자릴 잡고 안나오니까 니들도 지금 일자리가 없는거아니야. 니가 나중에 나이를 더
먹어야.. 보이는 부분들이 있어. 니가 지금 알고있는 일면만보고 뭔가를 판단하지마."
그 이후로.. 그냥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이고.. 더이상 말을 하지않았습니다..
말을 하면 안될거같아서.. 순간 드라마 '송곳'의 사람 10명 의자 5개의 비유가 떠오르더군요.
어차피 누군가가 앉는다면.. 누군가가 못앉는다는 뜻이고.. 그 의자에 앉으려고 쥐터지게 사람들끼리 싸우지만..
의자를 늘릴생각은 아무도 않한다고..
파를 다까고 나서.. 방에서 생각에 잠겼다가.. 물한모금 마시러.. 부엌으로 향하는대.. 저희 부모님 두분은 또..
거실에서 tv조선 뉴스를 보고계십니다. 가족들끼리도 정치적인 이념인 부분에서 말하는게 아니라는걸 잘알고잇지만..
아무리 존경하는 두분이라도.. 이해를 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궁금하고 혼란스럽습니다...
진짜 제가 단면적인 면만봐서.. 잘모르는것인지.. 정말 나이가 들면 그이상의 것들이 보이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