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룡에 대한 13가지 오해와 진실

웰컴투세개골 작성일 09.01.16 09:5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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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소룡은 순수 동양인이다!? 

 

이소룡은 중국인 아버지와 독일계 혼혈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이소룡의 외모가 전형적인 중국인의

투박한 외모가 아니라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어딘가 신비스런 이국적인 이미지를 풍기는게 바로 그런 연유입니다.

 

지난 해 2007년 4월 11월부터 5월 6일까지 피겨 아티스트 김형언의 첫번째 개인전 <김형언의 피겨 세계> 가

서울 종로구에서 열렸는데요. cf 조감독 출신인 그가 피겨 작가가 된 것은 이소룡을 향한 뜨거운 흠모의 정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무나 이소룡을 좋아하다보니 눈앞에서 입체로 보고 싶다는 소원이 생겼다. 밀랍 인형을 볼 수도 있지만

집에 두기에 크고 가지고 다닐 수는 더욱 없다. 말하자면 이소룡을 만나고 싶어서 창조한 거다.”

 

그에 대한 기사를 일부 인용하면,

 

김형언의 피겨는, 애정없이는 불가능한 집요한 관찰과 인물의 정기를 살린 세부묘사로 국내외 피겨 팬들을

매료시켰다. 지난해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코미콘(comicon)과 롱비치 무술박람회에서도 환대받았다. 그가

집중하는 곳은 얼굴. 영화를 보며 여러 각도의 숏을 캡처해 안면 골격을 세운다. 장면마다 얼굴도 미세하게

달라서 평균치를 찾아내야 한다. 김형언 작가는 그의 우상이 유난히 까다로운 얼굴을 지녔다고 애정을 담아

불평한다. “독일계 혼혈이기도 하지만 파악하기 힘든 얼굴이에요. 지금껏 그를 제대로 재현한 작품이

없었던 것이 다 이유가 있어요.”

 

다른 언론에 실린 기사를 인용합니다.

 

그는 이소룡의 무술과 무도보다 얼굴과 골격에 더 마음이 끌렸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

"나는 브루스 리가 남성으로서 가장 완벽한 골격을 갖춘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그의 이목구비는

동서양의 결합으로 완성된 신의 예술작품이나 다름없다고 느껴지기에… (그의 모친이 독일계 혼혈이다)

… 단지 그 때문에… 내가 브루스 리를 만들게 된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또다른 기사에서 그가 평가한 이소룡 입니다.

 

“이소룡의 얼굴 골격은 거의 완벽해요. 어머니가 독일계 혼혈이라 동서양이 조화된 데다 키는 작지만

팔다리가 길어 몸의 균형도 흠잡을 데 없죠.”

 

 

 

2. 이소룡은 영화배우이기 이전에 무술가였다. 그가 무술대회에서 시범연무를 하는 것이 눈에 띄어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경력을 쌓았다. 그러면서 영화스타에 대한 꿈을 키워나가게 된 것이다.

 

이소룡은 아역배우 출신입니다. 그는 태어날때부터 '영화배우' 였습니다.

 

지난 해 2007년 초에 방송된 'ebs 지식채널e - 이소룡이 이소룡에게' 를 보면(지금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동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소룡은 태어나자마자 경극배우인 아버지와 함께 '금문녀' 라는 영화에

'여자 아기' 로 출연합니다. ebs 방송에서는 '금문녀' 라는 영화에 이소룡이 아버지와 출연한 영상과 사진을

보여주는데 이소룡의 아버지는 딱 봐도 전형적인 중국인의 외모입니다.

 

이소룡은 10살때 영화 '세로상' 에 출연하여 평생의 이름인 예명 '이소룡' 을 얻게됩니다. ebs 방송에서는

당시 영화의 일부분을 보여주는데(어른에게도 공격하고 또래 아이를 두들겨 팹니다.) 10살때부터 이소룡

특유의 표정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10살때부터 천부적인 표정연기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흔히 부잣집 출신의 '아역 배우' 들이 그러하듯, 이소룡은 학교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말썽을

일으켜 수차례 전학을 갈 수 밖에 없어 아버지를 난감케 합니다.

 

19살 '차차차(댄스의 일종)' 를 열심히 추던 이소룡은 여자 파트너와 열정적인 춤을 추며 '차차차 콘테스트'

우승을 거머쥐며 천부적인 엔터테이너로서의 '끼' 를 드러냅니다.

 

'차차차 챔피언' 이소룡이 품은 꿈은 '의사' 였습니다.   

 

"저는 내년에 고등학교를 마치면 미국에 건너갈 예정입니다. 의사가 되는게 제 소망인데요.

어떻게 하면 의사가 될 수 있을까요?" -이소룡의 편지 中-

 

이소룡은 부잣집 도련님 답게 '의사' 를 꿈꿨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미국 유학 아무나 못갔습니다.) 

 

이소룡은 의사를 꿈꾸며 미국 유학을 갔는데, 당시 지도교수가 그에게 해준 말입니다.

 

"너같이 질문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철학을 배워야 한다. 철학은 인간이 무엇을 위해 사는지 너에게

대답해줄 거야."

 

결국 이소룡은 1962년 워싱턴 주립대학 심리학부 철학과에 입학하게 됩니다.

 

2007년 11월 경에 언론에 실린 기사 인용합니다.

 

미국 워싱턴대학의 몇몇 학생들이...능동주의 수업을 수강하는 학생 20여명은 이소룡이 1960년대 초

워싱턴대학에서 드라마와 철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에 착안해 27일 67번째 생일을 맞는 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한 기념비 건립 청원서에 서명을 받았다.

이들은 아직 기념비의 모양을 결정하지 못했지만 쿵후 자세를 취한 남자의 동상만은 안된다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 이소룡 기념비의 취지는 백인 유럽문화 일색인 교정에 동양 철학과 아시아인의 흔적

남기는 데 있기 때문이다.

 

 

 

3. 이소룡은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 내려오는 미신인 악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무술을 연마했다!?

 

19살 당시 미모의 여자 파트너와 열정적으로 차차차(댄스의 일종)를 춰서 '차차차 콘테스트' 에 우승한 이소룡. 

'차차차 챔피언' 이소룡의 얼굴에서 악마로 고뇌하는 무술인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이소룡은 악마로 고뇌했던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의사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했습니다. 

 

이소룡은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에게 무술을 배웠는데요. 그렇다고해서 무술에 전념하기위하여 배웠다고는

할 수가 없고, 영화와 당시 여느 중국인들처럼 건강과 호신을 위한 무술생활화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 와서 복싱, 레슬링 등 과학적인 무술을 접해본 뒤, 질문하기를 좋아하는 철학자 이소룡으로서는

똥폼만 잡는 중국무술을 이해할 수 없었을테고, 결국 그는 무술이란 것에 대해 심도있는 철학을 연구하여

그의 무술철학이 담긴 '절권도' 를 창시하게 됩니다.

 

 

 

4. 이소룡이 죽지않고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지금도 전설일까?

 

20대가 된 이소룡은 드디어 아버지의 꿈을 이어받아 헐리우드 입성을 노리게 되는데, 왜소한 동양인이

헐리우드의 벽을 무너뜨리기는 힘들었습니다. 디워가 미국에서 대박 터트리지 못한 것을 봐도 알 수 있듯,

헐리우드에서 성공하려면 어설프게 헐리우드 영화를 따라하거나 식상한 영화보다는 뭔가 미국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는 독특하고 신선하고 색다른 영화여야 합니다. 

 

그래서 이소룡은 장풍쏘고 날라다니는 식상한 중국무술 영화 대신에 실전무술을 내세웠는데,

이것은 정확히 헐리우드의 욕구를 꿰뚫어본 것입니다.

 

당시, 터질듯한 근육질 액션배우들의 투박한 액션과 서부영화 총잡이들에 식상해진 미국인들에게, 날렵한

몸매로 빠르고 화려하고 역동적인 액션을 보여주는 이소룡의 모습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으며,

그때부터 이소룡의 신격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언론은 '믿거나 말거나' 류의 기사가

많았는데요.

 

당시 미국 언론들은 대단한 무술 실력을 가진 영화배우로서 이소룡을 대대적으로 홍보를 했고, 이소룡의 영화는

전세계를 강타했으며, 이소룡은 인생 최고의 전* 시절 사망하며 그는 전설이 되었습니다.

 

다음은 상식의 오류사전 1권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스타들은 일찍 죽는다?

....많은 사람들은 스타였기 때문에 일찍 죽은게 아니라, 일찍 죽었기 때문에 스타가 되었다.

제임스 딘 같은 스타들은 일찍 죽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그들이 누군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인생의 전*에 맞는 죽음은 젊은 우상의 이미지를 시대를 초월하여 고정시킴으로써 항상

신선한 느낌을 가져다준다.....지금 노인이 된 왕년의 스타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이미 오래 전에 잊혀졌고.......

 

1955년에 개봉된 '이유없는 반항' 이란 영화에서 10대 반항아 역할을 맡았던 '제임스 딘' 은 전* 시절

사망하여 시대를 초월하여 '반항아' 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죽지않고 이후에 심하게 망가지는 역할을 하거나, 영화가 계속 흥행에 실패하여 부진하다거나,

나이가 들어 고지식한 아버지 역할을 맡았다면 지금처럼 '반항아' 의 상징처럼 남아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소룡은 당산대형(1971), 정무문(1972), 맹룡과강(1972), 용쟁호투(1973), 사망유희 에 출연하여

'절대지존 최강자' 이미지를 전세계 관객들에게 각인시켰고 최전* 시절 갑자기 사망했으니 지금도

영화속에서 보여지는 '최강자' 의 이미지로 많은 사람들에게 남아있는 겁니다.

 

사실 이소룡은 영화 이외에 시범과 대련 동영상 뿐이 없고 격투가를 실제로 실신ko시키는 영상은 없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무술영화가 그러하듯 이소룡의 영화 스토리는 지극히 단순합니다. 즉, 매니아가 아닌 이상

일반인들은 금방 싫증 내기가 쉽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만약 이소룡이 계속 비슷한 영화를 양산했다면

일반인들은 싫증을 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소룡은 딱 적절하게 5편의 히트작을 내놓고 사망했죠.

 

며칠전 효도르 vs 최홍만 경기가 끝난 뒤 영화배우 장클로드 반담이 무대위로 올라와 효도르와 함께

기념 촬영을 해 눈길을 끌기도 했는데요. 솔직히 초라함을 느꼈습니다.

 

저는 장클로드 반담이 젊은 시절 '이탈자' 라는 영화에서 지하격투계에서 최고의 포스를 뿜어냈던 강인한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는데요. 가뜩이나 나이들고 초라해진 모습에 하필이면 '60억분의 1' 효도르 옆에 서있다보니

정말 너무나 초라해보이고 환상이 무참하게 깨지더군요.

 

 

 

5. 용쟁호투에 보면 도복입은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 중 몇십명은 무술인이었다. 영화 촬영 중

그 무술인들은 이소룡에게 끊임없이 대결을 신청했다. 이소룡은 피곤한 가운데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받아들였는데, 모두 5초를 넘기지 못하고 ko패했다.

 

상식적으로 이름없는 일개 엑스트라 무술인이 '주연 배우' 에게 겁없이 대결을 신청했다는 것 자체가 황당할

뿐이며(스텝들에게 쫓겨납니다), 주연 배우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영화 촬영에 차질을 빚게 되고 감독과 스텝

등 모든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데, 쉬는 시간에 영화 촬영장 한구석에서 이소룡은 허구헌날 엑스트라들과

치고받고 싸웠다!? 정말로 이소룡이 수많은 엑스트라들에게 시기를 당하여 엑스트라들과 치고받고 했을까요?

 

성룡의 자서전을 인용합니다. (일간스포츠에서 '성룡이 말하는 스승 이소룡' 이라는 제목으로도 보도되었음.) 

 

나는 이소룡과 정무문, 용쟁호투의 스턴트맨으로서 함께 작업을 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셋트장에서 그는 항상 그에게 가까워지고 싶어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항상 이소룡에게 "당신은 최고예요, 당신은 위대해요" 라는 아부를 한다. 나도 그를 존경했지만 결코 그 무리에

함께 있진 않았다. 단지 10년이 넘게 스턴트맨으로 일했으면서 이소룡에게 아부를 떠는 그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먼발치에 서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소룡은 우리 스턴트 맨들에게 무척 잘해줬다. 즉, 약자의 편에 섰었다. 그는 감독이나 사장들의 압력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우리를 보살펴줬다. 나는 정무문 이후, 이소룡을 금의환향하게 한
용쟁호투에서 스턴트 맨으로 일을 하였다. 누군가 나에게 말하기를, 이소룡이 정무문에서 나를 높이 평가하고,
특별히 나를 그의 영화에 스턴트 팀에 참여시킬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나는 이소룡의 가장 큰 업적과 능력보다 그의 친절함을 존경한다.

 

 

 

6. 이소룡은 인체의 급소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실전 최강' 이다!

 

축구해설자가 축구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전략, 전술, 심리상태, 속임수 등을 알고있다고해서

축구선수보다 축구를 더 잘하지는 않습니다.

 

축구해설자가 축구를 잘하려면 직접 공을 차봐야만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소룡이 자신이 연구한 급소가격을

제대로 할 수 있으려면 실제 급소가격을 해봐야만 합니다.

 

예를 들면 이소룡의 핑거잽은 쉽게 말해서 실전에서 상대의 눈알을 세로로 비틀어서 죽이는 기술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소룡은 단 한번도 사람의 눈알을 세로로 비틀어서 죽여본 적이 없습니다. 이소룡이 단지 핑거잽을

연구했다고해서 이소룡이 핑거잽을 잘 사용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축구공을 차본 적도 없는

축구해설가가 그라운드 잔디에 올라가자마자 자신이 생각했던 이론대로 축구선수들을 가볍게 제치고 골을

넣을 수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절대 불가능합니다. 반드시 피나는 반복훈련과 실전을 겪어봐야 합니다.

 

이미 최고기량을 가지고 있는 '축구선수' 가 왜 계속 꾸준히 축구공을 차며 훈련할까요?

왜냐하면 이미 최고기량의 축구실력을 가지고 있다고하더라도 장기간 쉬게되면 '감각' 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아예 축구공을 차본적도 없는, 단지 축구이론에 대해 정통한 축구해설자가 그라운드에 올라가자마자

축구선수들을 다 제치고 골을 넣을 수 있을거라는 것은 망상입니다.

 

한국에 출판된 '절권도' 라는 책에 대한 리뷰가 있길래 일부 인용합니다.

 

....그렇다면 왜 별점이 3점인가? 그것은 해당 책자를 격투교재로서는 절대로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이유는 바로 급소 공격과 급소 공격을 방어하는 방법 때문인데, 이것은 매우 치명적인 단점이 된다.

과연 격투훈련을 하는 과정에서 상대의 눈과 고환을 공격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실제격투에서 그러한

기술을 사용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로, 과연 실제로 저러한 기술을 연습할 수 없다는 것이 큰 문제가 되며,

방어법조차 무의미해짐은 물론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절권도는 격투기술이라기보다는 싸움을 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으로서만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7. 이소룡은 당대 최강의 '격투가' 였다! 누구든 10초안에 박살냈다!

 

이소룡은 무술이론과 무술철학을 연구한 '무술철학가' 또는 '무술지도자' 라고는 할 수 있지만,

직접 치고받고 싸우는 '격투가' 는 아닙니다.

 

그것은 이소룡이 킥복서 조루이스의 트레이너 지도를 맡았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납니다.

 

이소룡 숭배자들은 조루이스가 이소룡을 조롱하다가 실컷 얻어터진 뒤 제자가 됐다고 하는데 터무니 없구요.

 

이소룡은 킥복서 조루이스의 트레이너 지도를 맡았는데요. 조루이스는 이소룡을 대신해서 자주 토너먼트에

나가서 절권도의 실험체가 되었으며, 조루이스는 이소룡의 절권도 기술들을 링에서 직접 사용해 본 뒤

돌아와서 이소룡에게 보고하였고, 실용성이 없는 기술들은 제거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 이소룡은 축구감독이나 축구해설자 같은 위치이지, 축구선수의 위치는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이소룡이 '파이터' 였다면 직접 스스로 여러 대회에 나가 절권도를 직접 테스트 해볼 수 있었을텐데,

굳이 킥복서 조루이스의 트레이너를 맡아 조루이스의 명성을 적절히 이용하여 '킥복서 조루이스의 트레이너'

라는 이력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조루이스가 절권도의 실험체가 된 것만 봐도, 이소룡은 무술을 연구한 사람일 뿐

직접 치고받고 싸우는 '파이터' 는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말 이소룡이 최강의 파이터였다면 '조루이스의 트레이너' 따위의 직함을 자랑하기 보다는, 링위에서 직접

조루이스를 ko시키는 것이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직접 링위에 올라서 조루이스를 10초안에 ko시켜버리고

모든 격투가들을 10초안에 ko시켰다면 누가 말 안해도 이소룡을 단지 영화배우라 하지 않고 '최고의 격투가' 로

여겼을 것이며 '절권도' 의 위력을 전세계에 증명해보일 수 있었을텐데 이소룡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소룡 광팬들이 주장하는데로 주먹 3톤 발차기 7톤? 스피드는 눈에 보이지 않게 빠르다? 그런 '슈퍼맨' 이라면

직접 링위에서 조루이스를 10초안에 ko시켜서 증명해보이지, '조루이스의 트레이너' 따위의 직함을 자랑할까요?

 

 

 

8. 이소룡은 낭심차기 같은 추잡한 기술을 안써도 빠른 펀치와 화려한 킥으로 거구의 상대를 ko시킬 수 있다!

 

단언컨데, 60kg 동양인 남자의 체중으로는 낭심차기나 눈찌르기가 아니면 영화에서처럼 일반타격으로만 헤비급

타격가를 ko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정무문 창시자 곽원갑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무인 곽원갑' 을 보면

이연걸이 일반 타격으로만 거구의 헤비급 선수를 물리치더군요. 링줄 튕겨서 발차기 등등...)

 

왜냐하면 타격기술은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도 신체적인 환경에 매우 큰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유일하게 작은 체격의 상대가 거구의 상대를 꺽을 수 있는 기술은 '깜짝관절기' 이지만, 이 역시 상대가

그라운드에 무지해야만 한번 노려볼만 합니다. '거인사냥꾼' 미노와맨이 관절기술로 거인사냥을 하며 재미를

보다가 최근 김민수와 줄루에게 무참하게 tko당한 것만 봐도 상대가 관절기에 대비한다면 힘듭니다.

 

'극진 가라데' 창시자 최영의(최배달)의 일화를 보면 잘 알 수가 있습니다.

 

80kg 최영의는 벽돌을 부수고 소뿔을 자르는 등의 격파를 개발하여 맨손으로 소뿔을 격파하여 자르는 영상으로

유명했는데, 마치 '내 주먹에 맞으면 이렇게 박살나니까 덤빌 엄두도 내지 마라!' 라는 의미로 해석되죠.

 

하지만 그가 미국에서 거구의 프로레슬러를 이기기위해 눈을 찌르고 낭심차기까지해서 관중들에게 린치를

당할 뻔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깨닫게 합니다.

 

정통타격가도 아닌 '프로레슬러' 에게 이기기위해서, 소뿔을 격파했던 타격가 최영의가 눈을 찌르고 고환을

차야만 했던 비참한 사실을... 소뿔을 격파했던 타격으로 레슬러를 때려눕히지 굳이 남자의 소중한 부위를....

 

그래서 인터넷에서보니 최영의 안티팬들은 최영의를 '소뿔격파 차력사' '고추 매니아' 라며 폄하하더군요.

 

'실전' 을 부르짖었던 최영의는 누구보다 실전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텐데, 60kg 이소룡을 세상사람들이 

최강이라고 떠받드니 최배달이 보기엔 한심해 보였을 테고 그래서 딱 한마디를 했죠. 

 

'체중을 좀 더 불려야 한다'

 

 

 

9. 이소룡은 형식에만 치우친 중국무술을 비판하며 실전을 강조했다!

 

안타깝게도 이소룡 역시 '중국인' 이었죠. 그 역시 중국인의 외적인 형식에만 치우치는 전형적인 특성을

벗어나진 못했습니다.

 

똥폼만 잡는 중국무술을 비판했던 이소룡이, 아이러니하게도 중국무술 역사상 최고의 '후까시' 를 잡았습니다.

 

사실 이소룡이 영화 속에서 보여준 표정 연기는 그 어떤 격투가도, '60억분의 1' 효도르도 절대 못따라 잡습니다.

 

밥 먹을 때조차 눈에 힘을 주고 사방 적들의 동태를 살피며 한대 가격할때마다 터져나오는 괴조음과 전율의 표정.

 

특히 최후의 일격를 날린 후에 그의 얼굴에 나타나는 알 수 없는 슬픈 표정... 왜곡된 사회에 참지 못하고

분노의 일격을 날릴때 그의 분노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서글픈 눈빛에 우리가 열광했는지도 모릅니다.

 

특히 그의 최절정 연기는 '용쟁호투' 에서 극중 여동생의 원수를 잔인하게 밟아죽일때 나타났던 슬픈 표정인데,

몇년 전 '싱하' 라는 정체불명의 괴인이 그 장면을 캡쳐하여 패러디해 유행시켰죠.  

 

사실 이소룡이 10살때 출연했던 영화만 봐도 이미 그때부터 심상치 않은 표정연기를 보여줬는데,

안타깝게도 이소룡이 그토록 부르짖었던 '실전' 에 대한 영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나마 중국무술 고수들은 '술취한 아저씨 싸움 수준' 이었을 망정, '실전 영상' 을 자료로 남겼습니다.

하지만 이소룡은 영화와 대련, 시범에서 있는대로 폼을 다 잡았은 반면(멋지고 철학적인 어록도 많이 남겼죠), 

정작 가장 중요한 '증명' 즉, 실전에서 강자를 ko시켜버리는 영상은 전혀 남기지 못했습니다.

 

사실 백마디 말보다 한번 보여주는게 더 중요한 것인데, 이소룡은 한번 보여주기보다 백마디 철학적인

어록과 영화와 시범과 대련 동영상만 남기고 떠났습니다.

 

 

 

10. 이소룡은 '450전 무패' 힉슨 그레이시와 맞먹는 전설의 파이터다!

 

이소룡은 원래 남에게 과시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료를 남기기를 좋아했던 사람입니다.

 

이소룡은 미학적으로도 기능적으로도 완벽하다고 밝혀진 자신의 근육을 카메라 앞에서 자랑스럽게 과시했으며,

영화 촬영장, 집, 야외 등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진을 남겼으며 시범과 대련 동영상도 볼 수 있구요.

 

심지어 이소룡이 19살때 해맑은 표정으로 여자 파트너와 '차차차' 를 추는 영상도 볼 수 있는데,

유일하게 이소룡이 실전에서 강자를 ko시키는 '실전 영상' 만은 절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만약 이소룡이 용쟁호투 촬영장에서 정말 모든 엑스트라 무술인들을 5초만에 ko시켰다면, 이소룡의

성격으로 미뤄봤을때 분명 영상을 찍어서 자랑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떠한 자료도 없습니다. 

 

사실 이소룡이 샌드백을 주먹으로 마구 가격하는 영상이 있는데, 60kg임을 감안하고 본다면 그다지

핸드스피드가 빠르지도 않고 위력도 없어보이더군요. 참고로 프라이드에서 가장 낮은 체급인 -73kg 라이트급

챔피언 고미의 평소체중이 80kg인데 고미가 사쿠라이 전에서 보여준 펀치가 훨씬 빠르고 위력있어 보입니다. 

 

게다가 고미가 보여준 펀치는 남들에게 보여주기위한 펀치가 아니라 실제로 경기에서 사쿠라이라는 경량급

최강자를 그로기에 빠트렸던 데미지를 입히기 위한 펀치구요. 반면 이소룡이 보여준 펀치는 현재 자료로

남아있는 영화,대련,시범 등에서 보여준 펀치는 100%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펀치인지라 애초부터

비교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 펀치를 맞고 실제 실신할 수 있는지, 아무런 영상 자료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실전' 을 부르짖었던 최영의조차 '소뿔격파 영상' 으로 자신의 타격의 무서움을 자랑해보이더니 정작

미국의 거구 프로레슬러와 붙을때는(정통 타격가도 아닌 프로레슬러) 눈찌르고 고환찼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단지 남에게 보여주기위한 펀치와 실제 싸움에서 나오는 펀치는 비교대상이 아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60kg 이소룡이 '샌드백을 두들기는 영상' 을 유심히 살펴보세요. 오히려 101kg 마이크 타이슨이 샌드백을

두들기는 영상이 훨씬 빠르고 정교해 보이더군요.(하긴 일류복서의 펀치와 이소룡의 펀치를 비교한다는게...)

 

또한 사람들이 효도르의 핸드스피드가 빠르다고 하는 것도 효도르가 실제 경기에서 보여준 펀치를 보고

판단한 겁니다. 105kg 효도르가 180kg 줄루를 펀치 한방으로 다운시켰던 실제 체중을 실은 펀치요.

 

하지만 현재 이소룡의 펀치를 볼 수 있는 자료로 남아있는 영상은 '영화,대련,시범' 영상 뿐인데,

100%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펀치인지라 체중이 실려있는지 아닌지도 판단할 수 없고, 무엇보다 이소룡이

실제 강자를 ko시키는 '실전 영상' 이 전혀 없다는 것이 그가 '파이터' 가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450전 무패' 힉슨 그레이시가 전설의 파이터로 기억되는 이유는 그가 '실전 영상' 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그레이시 액션 비디오' 에 보면 힉슨이 13살 때 1분만에 이십대의 가라테 선수를 이기거나 30초만에 러시안

유도 챔피언을 이겨버리는 장면이 나오구요.

 

그레이시 액션 비디오에서는 힉슨이 루타 리브레(luta livre)의 최강자 우고 듀와르치를 상대로 해변에서

난투극을 벌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힉슨과 해변에서 싸운 우고 듀와르치는 체격이나 체중도 헤비급인데다

루타 리브레의 제왕이라고 불렸던 파이터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는 장렬한 패배로 더 기억되는 선수입니다.

 

우선 그레이시 액션 비디오에서 힉슨에게 얻어 터지는 장면으로 유명하고, 우고는 해변에서의 싸움 이후

친구들을 데리고 힉슨의 도장으로 가서 또다시 도전했는데, 도장 바닥이 아니라 주차장에서 10분동안이나

힉슨에게 얻어 터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소룡은 이런 '실전 영상' 을 남기는 대신에 근육을 과시하는 수많은 사진과 영상만 남겼고,

기껏해야 대련이나 시범 영상 정도만 남겼기에 그의 인지도와는 달리 '파이터' 라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초능력자' 로 인정받으려면 직접 사람들 앞에서 초능력을 보여주고 엄격한 검증을 통과해야만

초능력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지, 그저 철학적인 어록과 초능력을 쏘는 포즈와 명상을 잡고 있는 사진,

주변사람들의 증언과 소문 따위만 남아있다면 그 사람은 '공식적으로는' 초능력자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11. 인터넷에서 이소룡에 대한 자료를 보면, 이소룡이 복싱 챔피언과 무에타이 챔피언를 꺾었다고 나와있다! 

 

사실 이소룡의 객관적인 경력을 보자면, 동양무술에 체계적인 웨이트 트레이닝의 적극 도입,

킥복서 조루이스의 트레이너 지도, 미국에 올바른 중국무술활보운동, 절권도의 창시,

홍콩무술영화진흥회지원, 중국무술학생 장학금지원, 이 정도라고 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위의 경력보다는 말도 안되는 엉터리 허위 날조된 자료가 더 많이 퍼져있는데,

아무래도 이소룡 광팬들이 보기에 위의 경력은 업적 같지 않아서 생략해버리고 이소룡을 신격화 하기위해

허위 날조된 정보를 퍼트렸다고 생각합니다.

 

'이소룡 광팬들이 쓴 자료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한번 더 의심해 봐야한다' 라는 말이 있는데요.

 

저도 그걸 알기에 이소룡 광팬들이 쓴 자료는 거의 신뢰하지 않는 편인데, 그나마 ufc 헤비급 챔피언 출신

바스루텐이 일반인에게 폭행당했다는 기사는 출처까지 적어놓았고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서 쉽게 검증이

가능하기때문에 '설마 이런 것까지 날조하지는 않았겠지?' 라고 생각하고 덥석 믿어버렸습니다.

 

하지만 ufc 헤비급 챔피언 바스루텐이 일반인에게 폭행당했다는 기사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신빙성 없는 기사로 밝혀졌고, 이소룡이 3년 연속 복싱챔피언 영국인 게리 에름스를 1라운드에 ko시켰다고

자료에 나와있었는데 게리 에름스란 이름을 가진 3년 연속 복싱챔피언은 없었습니다.

 

또한 이소룡이 홍콩의 유명한 복서 청? 을 2라운드에 이겼다고 했는데, 알고보니 유명한 복서가 아니라

생존여부도 불투명한 정체불명의 복서였구요.

 

게다가 어떤 분께서는 이소룡이 무에타이 챔피언을 7라운드에 ko로 눕혔다고 하길래, 제가 그 무에타이

챔피언의 이름은 무엇이며 어느 무에타이 단체의 챔피언이었는지, 체급은 어떤 체급인지, 전적은 어땠는지,

강자와 싸운 적은 있는지, 언제 싸웠다는 것인지, 동영상은 있는지 알려달라고하자 그 분은 잠적하였고

다른 분이 댓글 남기신 글을 일부분 인용하면....

 

무에타이??챔피언??? 그런 것도 전혀 없습니다. 그게 아니라 당산대형에서 영화를 찍을때 팍총에서 무에타이

선수들에게 개인지도를 받고 연습 스파링을 통해 트레이닝을 한 것이 ㅡㅡ기자들에 의해서 와전된 것입니다.

 

하긴 이소룡 성격상, 실제 무에타이 챔피언과 경기를 하여 ko시켰다면 반드시 영상을 찍어서 자랑했을 것입니다.

 

 

 

12. 이소룡은 단지 영화배우일 뿐이다!

 

이소룡이 '파이터' 가 아니라고해서 이소룡이 폄하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액션영화배우로서 전세계인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해주고 열광시켰으며, 또한 그의 저작인 '절권도' 는 이소룡의 무술철학과 기술을 집대성해

놓은 것으로서 그가 단지 '영화배우' 가 아니라 '무술철학가' '무술이론가' 임을 말해줍니다.

 

절권도에 대한 그의 어록을 보면 무술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한 '철학도' 의 향취를 진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외, 이소룡은 철학과 출신답게 무술 철학 뿐만 아니라 인생 철학에 대한 많은 어록을 남겼습니다.

 

"헐리우드에 처음 발을 디뎠을때 내 주위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나라는 사람은 없었고

단지 로봇 한대가 있었을 뿐이다. 사람은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할때 최악이 된다."

 

 

 

13. 이소룡은 건강했었는데 아무 이유없이 갑자기 사망했다!?

 

이소룡의 사망 원인은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당시 이소룡의 몸 상태는 결코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이소룡은 자신의 몸을 무리할 정도로 혹사하여 단련했으며, 그의 영화는 몸이 고달픈 액션영화장르이고

액션감독을 도맡아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소룡이 죽기 3개월 전쯤에 이미 한번 졸도한 적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그때도

이소룡이 깨어나지 않자 의사들이 달려와 신경안정제 주사를 놓는 등 부산을 떠는 끝에 깨어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소룡이 사망한 뒤 검시했을 때 마약성분이 검출됐다고 해서 한창 논란이 된 적이 있는데,

마약이 아니라 당시 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어서 진통제로 처방받은 약물이라고 합니다. 즉, 이미 사망 전에

진통제를 복용해야할 정도로 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소룡의 부인인 린다 에머리가 증언하길 이소룡은 숨지기 몇달 전 자신이 묻힐 무덤 위치를 알려주고,

100만 달러의 사망보험도 가입했다고 합니다.

 

돌연사가 아니라 미리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출처 : [직접 서술] 직접 서술

 

마지막으로 http://video.naver.com/2007101517522626297 이사이트 주소로 가셔서 보시면 동영상 나오는데 솔직하게 제가

이소룡하고 싸워도 이기겠는데요 -_-;; 누가 이소룡 손발이 너무 빨라서 필림을 몇배속으로 느리게해야됀다?????

http://www.pandora.tv/my.enterbruce/2288554이영상도 64년인가 롱비치세계공수도 대회에서 이소룡 시합장면이라는군요.

이소룡 샌드백 치는영상 http://blog.daum.net/livingloving/13515451 이동영상 마지막 사람날아가는 장면은 영화속 장면입니다.허구

추가로 영화 사망유희 NG 장면 http://boom.naver.com/BoardRead.nhn?categoryId=1&articleNum=2007052909594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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