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우리나라에 힙합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던 90년대 말부터 몇년간 음악활동을 했습니다. 레이블에 소속되어서 인디앨범도 제작하고, 공연 및 페스티벌에도 참여하고. 기획사와의 계약을 위한 미팅을 하기도 했고요. 이런 이야기를 듣고나면 사람들은 뭐를 했냐고 구체적으로 묻습니다. 조금 부끄럽기도 해서 대충 작곡을 했다고 둘러대고 맙니다. 하지만 이것은 정확한 답변이 아닙니다. 저는 엄연히 '프로듀싱'을 한 프로듀서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든 곡중에 앨범에 실린(직접 랩도 했습니다) 곡은 총 5곡이였는데, 전 그 5곡을 작곡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역시 지용군도 작곡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적절한 단어가 없어서 작곡을 했다, 작곡가다 라고 통용되지만 엄연히 따지자면 프로듀서겠지요. 그의 프로듀싱능력은 뛰어납니다. 양싸도 그부분을 인정하는것이고요. 그럼 힙합프로듀서가 하는일이 무엇이냐? 그들이 하는게 작곡이 아니면 뭘 하는것이냐?
지금부터 게시판에 어떤분이 궁금해 하셨던 작곡(프로듀싱) 이란걸 견학시켜 드리겠습니다. 참고로, 그 과정이나 일부 세세한 사항은 사람마다 다르고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하긴 했습니다.
먼저 모티브를 생각해냅니다. 이 부분은 딱히 계획적으로 이루워 지기 보다는 일상속에서 생겨납니다. 모티브란것은 곡 멜로디나 비트의 기초가 되는 '핵심' 입니다. 예를 들자면, 무한도전에서 윤종신과 정준하가 장난치듯이 '영계백숙! 워워워워~' 라는 걸 떠올리게 되고 그걸 바탕으로 곡을 완성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모티브입니다. 이것을 허밍이나 간단한 휴대용 악기, 또는 비트박스를 하거나 책상을 두드리는 행동따위로 표현해서 녹음을 하거나 기억합니다. 이 모티브라는 것이 음악이란것에 미쳐있을때는 하루에 수십개도 더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영감을 얻는다고도 하죠. 참고로 지드래곤이 작업한 곡중 가장 유명하고 히트한 '거짓말' 중에 지용이가 모티브라고 잡은것이 곡 처음에 나왔던 피아노 부분인 "따라라라라 라~" 과, 암쏘쏘리벗아러뷰다거짓말~ 이 두가지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 모티브라는것은 순수창작물이 아니여도 좋습니다. "이 곡은 XXXX의 곡 -가나다라마바사- 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었습니다" 라는 문구하나면 표절시비따위도 없습니다. 제가 프로듀싱한 곡중 하나도 유명한 동요의 일부분을 모티브로 해서 작업했었습니다. 웃자고 만들었던거였는데, 나중에 동요를 표절한 놈으로 놀림당하기도 했었죠;;;
지용군은 이 비트찍는 작업을 직접 하지 않는것 같습니다. 재능이 있고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YG 샘플링 데이터베이스에는 수백개의, 어쩌면 수천개의 비트가 담긴 파일이 있을테니까요. 이 수많은 원재료중에 본인이 떠올린 모티브+잡아놓은 컨셉과 잘 어울리는것을 골라내는것이죠. 이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만일 백만원을 주고 백화점에 들어가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뽑고 와라~ 한다면 정말 누구나 멋진 스타일을 완성시킬 수 있을까요? 물론 명품점에 가서 딱 봐도 이쁘고 멋진걸 걸친다거나, 브랜드옷가게에 가서 상의하의신발까지 세트로 구입할수는 있겠지만 그런건 길거리에 흔하디 흔한 스타일중에 하나가 될뿐입니다. 생전처음보는 매장에서, 그것도 그 매장 구석에 쳐밖혀 있던 멋지고 독특한 티셔츠를 발견해내는 일은 말처럼 쉬운일이 아닙니다. 물론 양질의 원재료를 공급받는 지용군의 작업환경은 열폭할만큼 부럽습니다만, 그것역시 그가 가진 축복인데 그걸 욕할수는 없는일이니까요. 제 작업환경은 그야말로... 처절했죠;;; 그 멋진 드럼비트 하나 건져보겠다고 mp3파일을 0.001초간격으로 자르고 또 자르고.. 피아노 소리 따겠다고 고요한 새벽에 마이크로 녹음하고;;
설명이 길어졌는데, 이런 비트깔기 작업이 완성되면 다음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두두둥~둥둥 하는 베이스라인도 만들어서 반복시키고, 챠챠챤~챠챠 하는 스트링사운드도 반복시키고, 딩딩딩디리~ 하는 기타사운드나 피아노사운드도 반복시키는것이죠. 이렇게 반복시킨 5~6개의 3분짜리 파일을 한꺼번에 재생시키면 MR이 왠만큼 완성됩니다. 아마 이 작업은 왠만큼 음악센스가 있는 일반인이라도 옆에서 도와만 주면 금방 만들어 낼수 있을겁니다. JK가 도와줘서 유재석도 난생처음 곡이란걸 만들어 냈죠. 사실 지드래곤은 비트가 아닌, 이정도로 완성된 상태의 소스를 제공받는것 같습니다. 이런 소스를 만들어 내는 프로듀서들이 수십명 있을테고, 그들은 하루에도 수십개의 3분짜리 음악소스를 생산해 내겠죠. 미쳤어와 마지막인사등을 만든 용감한형제도 이들중 한명이였고요이제, 이 3분짜리 소스를 들은 지용군은 그위에 멜로디를 얹습니다. "암쏘쏘리벗아러뷰다거진말~ 이야 몰랐어 이제야 알았어 니가 필요해!♬" 이런 싸비부분 멜로디를 추가 시키는것이죠. 그리고 요즘 하도 후크송후크송 하는데, 원래 후크라 하는것은 마지막인사에 나왔던 "비투더아이투더(쥐) 뱅뱅~" 따위의 랩으로 반복되는 부분을 일컷는 말이였습니다. 오래된 곡중에는 드렁큰타이거의 '난널원해' 中 "타이거이즈인더프레센스인더밤밤!"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런 후크는 상당히 중독성이 있어서 기억에 잘 남게되는데, 이런 작용을 응용해서 "내가 미쳤어~" 라면서 같은 가사나 멜로디를 중복시켜서 들려주게 된것이 후크송의 기원이라 할 수 있겠죠. 제 개인적인 추측에는 이런 싸비멜로디나 후크 부분을 지용군이 매우 잘 만들어 내나 봅니다. 간단해 보이지만 중요한 부분임으로 그가 재능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물론 이런것도 일부 외국힙합곡등을 많이 들으면서 착안을 해 내는것일겁니다. 특히 크라운제이의 경우 A-타운 이라면서 특유의 제스쳐나 멋드러진 짧은 영어랩을 자주 씨부리는데, 다 미국 애틀란타(Atlanta, A-Town)힙합씬에서 자주 사용하는 추임새들과 동일하거나 유사하죠. 예전에 유승준이 "웨슽 사이~드!" 하면서 손가락 곂치는 손동작하면서 폼잡던것도 비슷한 맥락이고요.
작곡" 은 말그래도 곡, 즉 음악을 만드는 것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저는 이 단어가 매우 구시대적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이상 작곡이라는 표현은 사용되어서도 안되고 쓰기에도 부적절한 단어가 되어버린것이죠. 비틀즈 이후 더이상 작곡은 없다라는 말도 그래서 생겨난 말이라 믿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으로 대체를 해야 하는지는 아직까지 확립된것이 없으나 전반적으로 "프로듀싱" 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 단어를 한글로는 어찌 써야 할지는 모르겠고, 굳이 한글로 바꿀 이유도 없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비욘세나 리한나를 스타로 만든 Jay-Z를 미국 힙합계의 훌륭한 작곡가라고 하지 않습니다. 프로듀서라고 하죠. 이것은 장르의 특성과도 근접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고요.
순수창작물, 천재작곡가, 공동작업... 뭐 이런 지용군의 연관이미지들이 모두 '작곡' 이라는 구시대적(적어도 힙합에서만큼은) 표현때문에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프로듀서가 하는일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전 음악작업가 라고 생각합니다. 그 작업과정에는 창조적인 일도 있고, 재해석하는 부분도 있고, 믹스하는 부분도 있고, 결합시키는 부분도 있고요. 이것이 곡을 프로듀싱하는 일이겠죠. 그렇게 여러가지를 통해 곡을 완성하기에 작업가라고 하는것이 적당해 보입니다.
지드래곤을 천재다 아니다를 따질건 없지만 있는 그대로의 그의 능력은 인정합니다. 프로듀싱능력말입니다. 그는 작곡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작곡가가 아닙니다. 그깟 몇소설 싸비 만들고 후크몇개 만든다고 작곡을 한다고 할 순 없죠. 결국 몇초짜리 샘플을 만들거나 활용하고 조합해서 곡을 완성시키는 작업을 하는 프로듀서일뿐이라는거죠. 결론은, 표절이 아니다 입니다. 아니 애초에 힙합에 표절이라는건 어울리지 않습니다. 너무 트랜드를 쫒고 유행하는곡의 비트와 컨셉을 가져온것은 조금 실망스럽습니다. 하지만 무작정, 천재라더니 표절이나 한다고 매도하는건 옳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