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이기기 위해 몸부림쳐도
그것역시 우리 몫의 시간인 것을
첫 번째 달이 여름을 부르고
두 번째 달이 가을을 이루니
세 번째 달이 겨울을 부름은 지당한게 아닌가?
그래서 강림한 암월이 겨울을 고할때
모든 것이 다음 봄을 위해.
우리는 이제 죽어 새 씨를 잉태해야 한다.
그러나 예정된 죽음의 앞에서
설혹 교수대에 매달린 남자라 하더라도
몸부림치는게 당연치 않은가?
허나 당연한 그 몸부림도 하잘 것 없이
고통의 끝은 죽음으로써만 얻으리다.
이에 시간의 쇠락은 녹슨 못에 걸린 질그릇과 같아
이제 부딪혀 깨어지리라.
나는 영겁의 시간을 노래하였다.
나는 영원한 절망을 노래하였다.
그러나 보라
사막의 봄비 속의 풀꽃들이여.
소생의 시간을 맞이한 저 생명들이여.
운명이란 잔인한 모래시계.
저리도 아름다운 이들도 아래로 떨어지네.
저리고 고귀한 이들도 아래로 떨어지네.
모래시계의 바닥으로 운명의 나락으로 사라져갈 생명들이여.
이제는 피어도 나비하나 벌하나 만나지 못할 풀꽃들이여.
그러나 몸부림쳐라.
그러나 울어라.
그러나 기뻐하라.
그러나 사랑하라.
그러나 증오하라.
그러나 즐겨라.
그러나 살아가라.
내 삶의 모든 것이 이리 소중한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