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

하이템 작성일 08.01.13 15:4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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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검이란 무엇일까?’


어릴적부터 나의 뇌리 속에는 한가지 생각만이 떠올라 있었다.


마치 그림자 처럼...


나의 뇌속의 그림자는 ‘검이란 무엇일까?’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나의 그림자에만 신경 쓰기에는 너무 가난했고, 궁핍했으며, 신분이 미천했다.


나의 부모님은 지주의 땅에 농사 짓는 대신에 얼마간의 수확을 지주에게 바쳤으며,


그 ‘얼마간’ 이라는 것은 정확하지는 않아도 우리가 여유롭게 살수 없음의 양을 말하는 것 이 었다.


그 사실은 풍년이든 흉년이든 동일했으나, 그래도 흉년보다는 풍년이 덜 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한 사실들을 깨달으며...


나는 농부가 되었고...


나의 뇌는 농부의 생각을 가진 뇌가 되었으나, 그림자만은 항상 검을 향하고 있었다.


낮에는 농사를 지었지만 밤에는 검술을 연마했다.


누가 가르쳐주는 사람도 신경써주는 사람도 없었지만, 가끔...그리고 묵묵히 나를 바라봐주


는 동료가 있기에 외롭지 않았다.


그 동료는 가끔...그리고 자주 밤 하늘 위에 떠서 나를 그리고 나의 검을 노란색으로 물들였다.


인정해 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과묵한 나의 동료와 그리고 사연이 담긴 나의 칼이 있었기에

나는 즐거웠다.


하지만 그러한 즐거움은 더욱 큰 행복을 바라는 나의 마음 앞에 고양이 앞의 생쥐처럼 무력해 졌으며, 위축되었다.


내가 마음에 두고 있던 ‘지주의 딸’ 이 시집을 간다는 소식...

먼발치서나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행복을 주었고,

나는 행복을 느꼈던 ‘지주의 딸이’ 시집을 간다는 소식에 나의 즐거움은 사라졌고,

그리고 칼을 쥔 손에는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3 년후 집을 나왔다.


나는 뇌의 그림자 때문에 농부가 될 수 없었고, 미천한 신분 탓에 ‘무과’에 응시 할수도 없었다.


‘칼을 마음껏 휘두르고 싶다.’


‘짐승이나 나무가 아닌...사람에게’


나는 이러한 말을 항상 읊조리며 생활하였고, 나의 인생의 선택지는 몇 가지로 압축되었다.


‘군인 병사’


칼 쓸 일이 생각보다 없으며, 남 밑에서 눈치 보며 명령에 따르는 것은 절대 할 수 없다는 마음에 이는 선택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전쟁이라도 나지 않는 이상 ‘사람을 벨’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이 싫었다.



‘도적’


사람은 마음껏 벨 수 있다는 점에서 잠시 내 마음속에 들어왔으나, 숨어 살아야 된다는 점에서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합법적으로 사람을 마음껏 벨 수 있는


‘망나니’


내가 선택한 직업이다.

농사 지면서 3년간 검을 휘두른 덕분에 마음만 먹으면 지름이 그다지 두껍지 않은 소나무는 한번에 베어 버릴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소나무가 아닌 사람의 목을 친다.


나는 나의 직업이 마음에 들었다.


오늘은 몇 명을 몸통과 목을 따로 놀게 만들까 하는 즐거움에 사형장으로 향한다.


형장에는 이미 오늘의 주인공들 세분이 와계셨다,


어차피 나의 손에 목숨을 잃는 자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똥오줌 못 가리면서 울부짖는 사람.’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


정도의 차이는 있으되 두가지로 압축 가능하겠다.


전자는 일부러 한번에 목을 분리 하지 않는다.


반쯤 목이 베어나간채 괴로워하며 피를 울컥 울컥 뿜어내는 모습은...


왠지 모르는 전율과 함께 안도감을 나에게 선사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를 보며 피눈물을 흘리고, 입을 벌려 피울음을 토한다.


나에게 닿지 않는 목소리로 나에게 외친다. ‘죽여주세요...제발’


나는 그 순간 만큼은 그자들의 ‘절대자’가 된다.


그 후...나는 기분에 따라 한번 더...또는 두 번에 걸쳐 목을 몸으로부터 떼어낸다.



하지만 후자 즉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소나무를 치듯 한번에 베어낸다.


고통없이....


왜 후자만 한번에 베는가?


누가 나에게 물어본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그냥...’


여기에는 예외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오늘 예외를 만들어야만 했다.


오늘의 주인공 세분은 모두 ‘전자’에 가깝다.


목에 큰 칼을 뒤집어 쓴 채 묶인 몸으로 울분을 토해내고들 계신다.


얼핏 듣기로는 ‘역적모의’라는 죄목이지만...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세분모두 억울하다며 목청높이 흐느끼고 있었고, 그중에 한명은 여자 였다.


내가 유일하게 잘 아는 여자.


‘지주의 딸’


두 명의 남자 사이에서 목청높여 흐느끼고 있는 여자는 ‘지주의 딸’이 분명했다.


이윽고 형리가 그 셋을 죄수 호송마차에서 짐짝처럼 꺼내서


한명씩 꿇어앉혔다.


처음 벨 놈은...‘지주’ 였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이제 얼굴을 보니 기억난다. 분명히


‘지주’ 였다.


무려 3번에 거쳐 베었다.


목을 세 번이나 치는 동안


지주가 보인 행태는...인간의 모든 고뇌를 모두 보여주는 행위예술에 가까웠다.


나는 만족했다.


두 번째 인간도 앞에 지주와 다를 것 없이 세 번에 거쳐서 끝냈다.


마지막 세 번째 ‘지주의 딸’은...애처롭게 울었다.


나에게 예외란 존재하지 않았다. 예외는 나의 칼과...나의 뇌...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므로


하지만...


나는 그녀만큼은 예외로 한번 에 쳐서 목과 몸통을 분리시켰다.


나의...내가 해줄 수 있는...나이 능력범위 내의 그녀에 대한 마지막 배려였다.


그녀의 목이 몸통에서 분리되며 해방감을 맛보는 순간...


나의 기분도...나의 칼도...나의 뇌의 그림자도 해방감을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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