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눈이 내리고 그 눈이 조그마한 집의 지붕을 덮었다.
그렇게 하얀 눈은 조그마한 집을 아름다운 색깔로 물들였다.
하지만 조그마한 집에서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는... 듣기 거북한 신음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흐흐헉...’
조그만 집의 조그만 방.
그 방에는 얼굴이 하얀 조그마한 소녀가 누워있었다.
그 주위로는 그 소녀의 할머니 인듯 한 사람이 걱정스럽게 그녀를 보고 있었다.
‘내...손녀를 살려주게나...’
할머니는 옆에 있는 그림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림자... 하지만 그것은 그림자가 아니었다. 단지 검은 옷을 입고 있는 또 하나의 사람이었다.
‘흐흐헉...’
조그마한 소녀가 요동치며 온몸으로 운다.
감은 눈에서는 파란 눈물이 흘러나온다.
언뜻 보면 아름답지만 자세히 보면 섬뜩한...그런 눈물을 소녀는 흘리고 있었다.
‘울지마라 소녀...이 몸,.. 너를 위해 써주마...’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동굴 같았다. 깊이가 있었고, 울림이 있었다.
“ 내...손녀만 살려준다면 자네에 대한 원한은...자네의 과거는 잊겠네”
할머니가 검은 옷을 움켜잡고 울었다.
검은 옷의 사내는 일어났다.
“당신이 잊는다는 것과 잊지 않는 다는 것 나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내 할일을 하겠다”
말을 마친 사내는 소녀의 얼굴을 한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러자 소녀의 눈에서 쉴새없이 나오던 파란눈물이 그의 손위로 흘렀다.
흐르고 흐르고...어느새 그의 팔을타고 온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검은 사내는 파란색 눈물이 되어 증발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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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찾아 볼 수 없는 어둠의 세계
거기에 완전히 동화되어 남자는 서있었다.
이윽고 한줄기 빛이 보였다.
그 빛의 끝에는 소녀가 울고 있었다.
검은 사내는 그쪽으로 걸었다...아니 그렇게 생각했지만 몸은 이미 뛰고있었다.
소녀는 고개를 돌려 검은 사내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눈에서는 계속 파란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느새 소녀 옆에선 검은 사내.
‘울지마라 소녀여. 그대는 돌아갈 것이니. 여기는 내가 남는다.’
소녀는 울음을 그치고 검은 사내를 쳐다보았다.
검은 붕대로 얼굴을 감고 눈만 드러내놓고 있는 사내.
키는 자신보다 두배는 크지만 좁은 어깨를 가진사내
그리고 무엇보다 강아지처럼 검은자위가 큰 사내의 눈.
그 밖의 모든 것을 가리고 있는 검은색 코트.
‘왜 당신이 남는거 죠?’
소녀는 울음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말하는 순간 귀을 울리는 이상한 소리.
‘웅...웅...웅’
일그러지는 어둠의 세계...일그러지는 가운데 풀어지는 파란색 물감
물에 파란색 물감을 탄듯이.. 검은색 세계에 파란 물감을 탄듯한 광경을 보며
소녀는 눈을 감았다.
눈을 떳을때 맨 처음 보이는 것은 익숙한 방의 천장...그리고 할머니의 얼굴
소녀는 일어났다. 할머니는 소녀를 부둥켜 안고 눈물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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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무사하겠군...’
어둠만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검은 사내는 나지막히 말했다.
그리고 붕대 뒤에서 아무도 볼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나와라...악몽이여...그대의 주인을 공격하려 했던 더러운 반역자여’
순간 어둠 한구석에서..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를 갉아먹는 소리가 들렸다.
‘사각...사각...사각...’
그 소리는 작았다. 하지만 점점 커지고 있었다.
‘사각...사각...사각...’
이제는 귀청을 울릴 정도로 커진 소리에 검은 사내는 귀를 틀어막았다.
‘내 녀석이냐...’
깊은 곳의 목소리. 크고...떨림이 있었다
‘내 녀석이 내가 주인이 될 기회를.....
목소리가 하고자 하는 말을 다 내뱉기도 전에, 검은 사내는 품안에서 파란 단검을 꺼내
허공에 그었다. 그리고 목소리는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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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계속내리고 있었고. 자그마한 조금만 집을 아름답게 도색해주고 있었다.
안에서는 얼굴이 하얀 조그마한 소녀가 소리 내어 웃고 있었고,
할머니는 소리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검의 옷의 사내는 그 집 반대방향으로 생기는 발자국을 만들며 걷고 있었다.
- 진압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