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봉현 연재소설] 백수와 백조 (9)

행동반경1m 작성일 09.09.07 21:3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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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일욜이다. 
그녀를 만난지 일주일이 넘었다.

그녀를 만나 무언가 해얄거 같은데 웬지 답이 안나오는 셈처럼 갑갑하다.
아쒸.....이럴 줄 알았으면 직장 다닐 때 돈이라도 좀 모아놀 걸.

혼자 있을 땐 돈이 그리 절실한 줄 몰랐는데 아무래도 여친이 생기니까 좀 부담스럽다.
모... 데이트야 기양 하믄 되지만
지금 이 나이에 무언가 가진게 없다는게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하긴 직장 다닐 때 빚 안진거만 해도 어디야-.-
얄팍한 통장이 오늘따라 안쓰럽게 느껴진다.

근데 저 p.c방 알바하는 애는 왜 자꾸 내가 화장실 갈때마다 불안한 눈길로 야리는 것인지..
내가 대포를 깔것처럼 보이나보다. 
아무리 동네라도 옷 좀 신경써서 입고 다녀야겠다.

 

 

 

-----백조--------------------

 

씨.....드뎌 뽀록났다.
눈치 빠른 것들.

"너 글코 그런 사이라며?"  무슨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어댔다.
근데 차마 "백수"라는 단어는 입에 올리기 뭐한지 "너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혹은 "심각한 사이니?" 하며 빙 돌려 말한다.

어떡하긴!! 내가 뭐 지금 살림이라도 차린댔나?
남자, 여자 만나는게 다 글코 그렇지. 모....
만나다가 좋으면 계속 사귀는 거고 아님 찢어지든지....
글고... 심각한 사이면 어쩔건데!

지들이 큰 언니라도 되는 듯 걱정스런 표정들이다.
냅둬, 자기 인생 자기가 사는거지.
내가 뭐 마누라 있는 유부남이랑 바람이라도 폈냐고...

더 열 받는건 그가 해준 목걸이를 보더니
"이거 짝퉁아냐?" 하는 것 이었다.

이년들이 정말 오래 살기 싫은가....
한참 열 받았는데 그 인간한테 전화가 왔다.

 

 

 

----------백수----------------

 

모하냐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근데 웬지 전화를 받는 목소리가 칼칼하다.

어디냐고 물어보니까 걍 친구들이랑 있댄다.
언제까지 있을 거냐니깐 모른단다....-.-

지가 좀 있다 전화한다고 끊으란다.
쫌 짜증이 날라 그런다.

이씨~~~~~ㅠ.ㅠ
아무래도 딴 놈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요일이자나~~~
맞선 보기 딱 존날 아니냐구.....ㅠ.ㅠ

 

 

 

---------백조-----------------

 

이 인간도 양반이랑은 거리가 먼가보다.
어쩜 지 얘기 하고 있을 때 전화를 걸게 뭐람.
눈치 빠른 기지배들이 "그럼, 그렇지......"하는 눈길로 쳐다본다.

뭐 꼭 그가 놀아서가 아니라 난 원래 남들 있는데서 애교 같은건 못 떤다.
친구들의 호기심어린 눈빛도 부담스럽고 해서 내가 좀 있다 연락한다 했더니

"아써...." 하며 뚝 끊어버린다.

이런, 씨........골뱅이, 아니 밴댕이.....
하여간 소심하긴, 꼭 울 아빠처럼.....
문득, 아이스크림 우리끼리 먹었다고 삐지는 아빠를 보며 한숨짓던 엄마의 얼굴이 생각났다.

하여간 전화도 꼭 타이밍 안 맞게 하기는.....
암튼 2차 수다는 선배 언니네 까페에서 시작하기로 하고 일어섰다.

오늘은 그를 만나기 힘들 것 같다...

 

 

 

---------백수------------------------

 

심심해라......
테트리스도 고도리도 질린다.

집에 가서 바닥이랑 놀아야 겠다.
근데, Shit!! 지갑을 놓고 왔다......ㅜ.ㅜ

씨앙....어쩐지 알바애가 째리는게 이상하더라니....
별 수 엄씨 핸펀을 놓고 집에 다녀왔다.

젠장 나이 서른 넘어서 이게 무슨 꼴이람......ㅠ.ㅠ
알바애가 싸늘한 눈길로 자리 비운새에 전화가 왔단다.

옷! 근데 그녀의 전화번호다.
우히~~~^^ 그럼 그렇지!!

만나서 모할까.^^
우리를 만나게 해 준 녀석이 지네 부부랑 여름 휴가나 같이 가자고 하던데 휴가 계획이나 세울까...

 

 

 

--------백조---------------------------

 

선배 언니네 아담한 까페가 무척 맘에 들었다.
그 전부터 생각했었지만 나도 이런 가게를 해보고 싶다.

왠만한 안주 정도는 나도 할 줄 알고....
잘 할 자신도 어느 정도 있다.
근데 결정적인 문제는 돈이다..........ㅜ.ㅜ

아니 완존 개털은 아니다.
모아둔 돈, 좀 까먹긴 했지만 아직 2천만원은 조금 넘게 있다.

과장님이 찍어주신 주식을 조금 사두었던게 큰 도움이 됐다.
그동안 논 걸 생각하면 그것도 큰 돈 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돈을 가지고 시작하기엔 힘들다.
내 마지막 보루이자 시집자금 인데...

그럼.....그 인간한테 함 물어볼까...??
모...좀 저축한 거라도 있겠지.

동업.....
부부까페.......

어머 미쳤나!!! 내가 왜 이래!!!

 

 

 

----------백수-------------------------

 

음....갈수록 예뻐 보인다.
울 동네까지 찾아오고 넘 기쁘다.

엥? 근데 웬 돈?
까페를 해 볼 생각이 없냐고 묻는다.

그...글쎄....
하긴 요즘 누구나 창업바람인 걸 보면 그것도 나쁜 생각은 아니다.

아니 꽤 괜찮은 제안이긴 하다.
그녀와 함께 같은 일을.

음.....좋다.^^
근데........개털인데 어쩐담......ㅠ.ㅠ

통장에 남은 돈은 300만원도 안 되는데....
괴롭다.......ㅜ.ㅜ

그냥 난 얼른 취직을 해서 그녀를 위해 돈을 버는게 최고란 생각이 든다.

 

 

 

-----------백조------------------------

 

별 반응이 없다.
싫은지 좋은지 의사표현이 불분명하다.

우~~~~~답답이~~~

그더니 놀러갈 계획이나 잡잖다.
....사람이 왜 이렇게 진지한지 못 한 걸까...
먹고살자니까 무슨 놀러갈 생각이나 하고오~~!!
앞으로의 일이 걱정된다.....ㅜ.ㅜ

좀 엉뚱한 얘기 좀 하지말라고 핀잔을 줬더니
머뭇머뭇 하다가 돈이 없단다.

하긴 그럼 그렇지..
기가 죽은 모습이다.

에휴....어쩌겠남...돈이 없다는 걸.
괜한 얘길 했나보다.
애교를 부려도 힘이 빠진 얼굴로 조용히 힘없이 웃는다.

에유....나라도 기를 살려 줘야지.
힘 내라고 군대까지 다녀 온 사람이 그게 뭐냐고 장난을 쳤다.

미안하단다.
미안하긴... 내가 미안하지.

아직 희망을 믿고 있다고, 조금만 참아 줄 수 있냐고 한다.
당근이지 바보야.

누군가 그러지 않았어.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백수---------------------------

 

미안하다. 그녀에게....
돈만 있다면 보태주고 싶다.

돈은 때때로 사람을 곤란하게 혹은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지난번 그녀에게 나의 불투명한 현실을 솔직하게 이야기 했지만 여전히 가슴 한 켠이 개운치 않다.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괜찮단다.
씨잉...병주고 약주남.....

힘을 내야겠다.
아쉬운 소리하고 살긴 싫었지만 돈이라도 좀 빌려봐야겠다.

그녀를 바래다 주는 길, 그녀가 조용히 팔짱을 끼워온다.
집 근처로 접어들 때쯤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며 책방으로 뛰어들어간다.
잠시 후 서류봉투에 책을 한 권 담아 가지고 나오더니 집에 돌아가는 길에 꺼내보란다.

그녀를 들여보내고 돌아오는 길.
눈물이 났다.

책 제목은
박노해 시인의 [사람만이 희망이다.] 였다....

 

 

 

=============== 10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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