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참나무마법사 작성일 11.08.13 20:4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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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어둡다.

공기는 늘 눅눅하고 찌든 곰팡내는 아무리 맡아도 익숙해지질 않는다.

" 찍찍"

귀를 거슬리는 작고 날카로운 소리. 하지만 그 소리가 내게 힘을 준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 녀석의 작은 까막눈을 들여다보며 녀석의 머리를 핥아준다.

여기는 시궁창. 여기서 태어나 여기서 살아왔고 여기서 가족을 만든 나는 시궁창 쥐다.

 

썩은 내가 진동하는 하수관을 쭉 따라가 벽을 올라타면 여기와는 다른 또 다른 천국이다.

온종일 먹을것이라고는 바퀴벌레나 곱등이만이 득실거리는 시궁창은 먹을 것이 없다.

이 작은 녀석이 벽을 오를수 있도록 먹여주고, 재워주면 된다.

천국이 멀지 않았다. 기분나쁜 냄새를 풍기는 이 단단한 문에 난 구멍만 통과하면 천국에 다다른다.

괴물들이 살지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두 달을 끼고서 굉음을 내며 달리는가 하면, 맡으면 정신이 아뜩해지는 물을 뱉는 녀석도 있고

하루 왠종일을 입에서 구름을 토해내는 괴물들도 있다.

무섭지는 않다. 사실,.. 우리같은 놈들에게는 먹을 것이 보장되는 곳이 천국이다.

 

늘 가던 길.. 굉음을 내는 괴물이 지나가고 나면 앞으로 전력으로 내달린다.

온몸이 쭈뼛거리고 머릿속에서는 공포가 괴성을 지른다.

멈춰서는 안된다. 어제 같이 가던 한 녀석은 한줄기 섬광에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

..

.

 

살아있다. 이제 밝은 곳을 찾으면 된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오렌지색으로 빛나는 땅에 먹을 것이 있다.

 

운이 좋았다. 치즈 덩어리다. 좀 썩긴 했지만 대부분 멀쩡하다.

적당히 배를 채우고 입에 넣어 물고 가기도 편하다. 그 녀석이 오늘은 좋아할 것이다...

 

굉음은 끊이질 않는다. 끊임없이 괴물들이 움직인다. 녀석들은 우리를 싫어한다.

물지도 않고, 피해를 주지도 않지만 우리를 보면 죽이려 든다.

굉음이 멈췄다. 이제 냄새나는 이 무더기에서 벗어나 달려가자.

 

...

..

.

?

 

발이 안움직인다. 너무 많이 먹었다, 아니.. 다르다... 전신에서 경고를 보내온다.

.....도망쳐라....... 헌데 발이 안떨어진다. 뭐지.. 대체....

온몸의 털이 쭈뼛서고 갑자기 몸이 떨려온다. 꼭 다문 이빨이 마구 요동친다.

 

검은 털. 기분나쁜 냄새를 풍기는 검은 털. 그리고 크게 뜨여진 두 눈.

굉음을 내지도, 액체를 뱉지도, 구름을 내뿜지도 않지만,

발가락 하나 꼼짝못하게 하는 그 두 눈은 삶의 종말을 의미한다.

 

눈이 점점 커진다. 피비린내가 여전히 묻어있는 발톱이 가까워져 온다.

' 도망쳐! 도망쳐! 도망쳐! 도망쳐! 도망ㅊ.............'

...

..

.

숨이 막힌다. 목덜미가 뜨겁고, 호흡이 가파라진다.

여전히 아무것도 할수없이 굳어진 몸은 공중에 내동댕이쳐지고

땅에 쳐박히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 죽 는 다 ]

 

목덜미에 섬뜩한 느낌이 전해져온다,.... 이윽고 추위가 급습한다.

 

 [ 죽 는 다 ]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온 내장이 요동치며 구토를 일으킬 것만 같다.

눈앞이 어두워지고, 온 세상이 거꾸로 뒤집히는 것만 같다.

 

...

..

.

 

이대론... 죽을 수 없어... 살아야 돼... 이대ㄹ....

 

" 이런..이런... 저급한 영혼이로구만... 게다가 겨우 "쥐"라니.."

" ?? "

 

"이대로 그냥 가져가면 되겠지만.. 흠... 오늘 할당량도 못채웠는데 어쩐다...?"

 

"누...누구...."

 

"아! 그래... 좋은 방법이 있구만... 너 살고 싶지?"

 

"....그야 당연하잖아... 게다가 나에겐 녀석ㄷ..."

 

"좋아.. 아직 시간도 있으니.. 내가 너를 살려주지... 그리고 저 하찮은 고양이도 죽일만큼 강력하게 해주마"

 

"!!"

 

" 단, 명심해라.  ................................... 이다."

 

 

머릿속이 빙빙 도는 느낌이다. 불쾌한 기분이 온몸을 엄습해온다.

알수없는 목소리... 마지막에 무언가 말한 것도 같았지만

당장 눈앞에는 저 기분나쁜 아가리가 나를 삼켜버리려는 순간이었다.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생각이 온 머리를 헤집고 가자, 목에 힘이 들어가고 온몸이 짜릿하다!

 

치즈색 두 눈이 갑자기 괴성을 지른다! 사형선고를 내리던 그 털이 오한이 돋은 듯 춤을 춘다.

몸이 스스로 움직인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짜릿한 느낌에 온몸이 반응하듯 땅을 박차고 튀어오른다.

 

"갸아아아오오오옹!!!!!!!!!!!!!!!!!!!!!!"

 

입 안에 불쾌한 것이 흘러들어온다.... 헌데 그 무엇과도 비할 바 없이 달콤하다.

녀석이 쓰러져간다. 밤보다도 더 깊은 그 검은 털이 끈적한 빨강으로 물들어 간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으하하하!!!!!! 힘이 넘쳐흐른다!! 달콤한 선혈을 핥으며 녀석의 온 몸을 도륙해갔다!

..

..

..

배가 부르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녀석이 날 오래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제 전력으로 저 구멍으로 들어가면 ..

 

!

"아니... 세훈아!!!!"

 

묵직한 소리... 귀를 크게 거슬리는 바람을 째는 듯한 소리.

 

"아니 이 쥐새끼가!!! 여보!!"

"무슨일이야? 아니! 세훈아!!!! 어떤 X가 이런! "

 

다르다... 불과 조금전 느꼇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공포..

헌데 두렵지가 않다! 나보다도 큰 녀석을 고깃덩어리로 만들었다.

양이 좀더 많을뿐이다. 다리에 힘을 주고 튀어올라라! 끊임없이 물어 뜯고 고깃덩이로 만들면 된다!

....

...

..

온몸에 오한이 흐른다. 기분나쁜 짐승에게 물렸을때와는 또 다른 느낌...

온몸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꿈틀댄다.

무언가에 세게 눌리자 생선뼈를 씹을때와 같은 소리가 울려퍼졌다.

호..호흡이... 물에 빠지는 것같다. 몸이 차가워지고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는 기분이다.

 



그때 생각났다...

 

날 살려주었던 소리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생각났다.

 

...

..

.

 

" 단, 네 운명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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