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털이 긴 고양이가 사랑스럽다고 느꼈다.
거기에 특별하고 거창한 이유 같은 것은 없었다.
그냥 털이 긴 고양이가 마음에 끌린다는 것 외에, 별 다른 부연 설명이 필요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내 눈에 그렇게 비춰지니까, 내 마음이 그렇게 느끼니까.
단지 그런 것 뿐이니 말이다.
그저 순수한 내 마음 그 자체인 것이다.
그리고 하얀색 털을 가진 고양이에게 유독 아름다움을 느꼈다.
마치 누군가 정해놓은 듯이 그런 외형의 고양이에게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다.
그리고 사랑스러움을 느꼈다.
그런 내 감정을 부정할 필요도 없으며, 부정할 이유도 없었다.
내 마음이 그렇게 느끼니 말이다.
나의 첫 번째 고양이를 좋아하게 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니였다.
눈처럼 하얀 빛깔의 긴털을 도도하게 뽐내던 그 아이를 보자마자 사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니, 마음을 먹은게 아니다.
앞서 말했던 것 처럼 내 마음은 예전부터 이미 정해져있었다.
그 아이를 보는 순간, 마법에 걸린 것 처럼 사랑스러움을 느끼게 끔 말이다.
그리고 나는 내 마음이 선택한 것에 동조를 한 것 뿐이였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할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나에게 없음을 알았다.
그건 내 마음의 역할이였다.
그런 것이다.
아무런 의도 없이, 그저 순수하게 그렇게 느낄 뿐이다.
그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길 원했다.
그 아이의 등장으로 한적하게 느껴지던 나의 일상은 생기가 넘쳤다.
그 아이와 함께 소비하는 시간들은 특별하게, 유의미하게 느껴졌다.
부족했던 부분들이 채워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모든 것들이 만족스러웠다.
그런 즐거웠던 시간들 속에서 문득 이상한 의문이 들었다.
나는 이 아이의 무엇을 사랑하는 걸까?
그건 당혹스러운 우려였다.
만약 이 아이의 빛깔이 검은색으로 변하게 되거나,
혹은 그 아름다운 긴 털이 짧아지기라도 한다면,
나는 그 아이를 예전보다 덜 사랑하게 될까?
아니 어쩌면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어 버릴까?
그런 의구심에 확신이 서질 않았다.
계속 사랑할 것인가, 그만 사랑할 것인가의 결정 역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것 역시 내 마음의 역할이다.
그렇지 않은가.
의지로 감정을 컨트롤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 수록 뭔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어쩌면 나의 우려가 적중한 것일까?
내가 아끼고 사랑했던 그 고양이가 예전같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탐스러웠던 흰색 털은 왠지 바래져감이 보였고, 부드러웠던 감촉은 조금씩 거칠게 느껴졌다.
그리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아이를 예전보다 덜 사랑하게 되었다.
생기가 넘쳤던 일상 역시 어느 순간 과거의 투박한 일상으로 변해있었다.
정말이지. 거짓말처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버렸다.
이 아이를 언제나 처럼 곁에 두고 사랑해주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예전처럼 사랑스럽지 않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 아이가 이젠 나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버린 순간.
내 곁에서 떠나 보내길 소망하게 되었다.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음을, 이제는 쓸모가 없어졌음을 느꼈다.
이럴수가.
우린 어쩌면 좋니.
혼란스러워진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사랑했던 것일까?
하지만 나의 변심에 특별하고 거창한 이유 같은 것은 없었다.
그냥 내 마음이 그렇게 변했다는 것 외에 별 다른 부연 설명이 필요할 이유도 없었다.
내 눈에 그렇게 비춰지니까, 그렇게 느껴지니까.
순수하게 단지 그런 것 뿐이다.
나의 실증이 커져가던 어느 날, 여러가지 감정이 뒤섞여 격렬하게 충돌하던 어느 날,
그 아이에게 "그동안 즐거웠어"라고 말하며 짧은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렇게 내 첫번째 고양이와 작별을 했다.
내게서 멀어져가던 그 아이의 작은 뒷 모습에 안녕을 고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였다.
두번째 고양이와의 만남은
첫번째 고양이와의 기억이 흐릿해져 갈때 쯤이였다.
그 아이는 얼룩무늬 고양이였다.
귀엽고 상냥한 아이였지만, 그 아이에게 특별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나는 긴털을 가진 하얀색 고양이를 찾고 있으니까.
내 마음이 원하는 건 그것이니까.
얼룩무늬 고양이 따위는 아니니까.
하지만 그 얼룩무늬 고양이는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내 곁에 머물러 있기를 희망했다.
나를 유해한 생물들로부터 지켜주기도 했고,
나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기도 했다.
이 얼룩무늬 고양이의 마음은 나를 선택했나 보다.
하지만 내 마음은 너를 선택하지 않았는 걸,
우린 어쩌면 좋니.
할 수만 있다면,
나에게 헌신과 애정을 기꺼이 베풀어주는 이 아이를 사랑하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서로가 행복해 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수 없었다.
그건 의지로 컨트롤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내 마음은 이 아이에게서 사랑스러움을 느끼지 못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논리와 이해라는 도구로 인위적으로 생성 혹은 제거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였다.
사랑하지 않음은 순수한 내 마음 그 자체였다.
방법이 없었다.
나는 여전히 환상 속의 존재를 현실 속에서 찾기 위해 애를 쓸 뿐이였다.
풍성한 털을 가진 하얀색 고양이 말이다.
얼룩무늬 고양이가 나에게 보내는 관심이 귀찮아짐을 느끼던 어느 날,
내가 처음 사랑했던 고양이에게 그랬던 것 처럼.
이 아이에게 작별을 건냈다.
내 곁에서 떠나 줄 것을 요구했다.
그렇게 두번째 고양이와 가벼운 이별을 했다.
그 아이의 뒷 모습조차 기억 나지 않는 가벼운 이별을.
그 이후에 만나게 된 세번째 고양이.
길고 부드러운 하얀색 털을 가진 고양이.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모습을 한 고양이를 발견하였다.
우연이지만, 필연이라 믿고 싶었다.
그 아이를 보는 순간, 예전 고양이에 대한 기억과 감정들은 애초에 없었던 것 처럼.
내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보다 근사한 것을 찾았으니 말이다.
너무나 아름다웠던 그 아이와 시간을 함께 보내길 원했다.
그 아이와 가까워지기를 소망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나를 원하지 않았다.
그 아이의 마음은 왜 나를 선택하지 않은걸까.
당혹스러웠다.
나를 외면하고, 거부하려는 그 아이 태도에서
나의 무기력함을 발견했으며,
그건 너무 모멸적이였다.
그 아이의 까탈스러움이 미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아이가 사랑스러움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반짝이는 눈과 길고 하얀 털은 여전히 너무나 매력적이였다.
하지만 한결 같이 나의 접근을 허용하려 하지 않으려는 그 아이의 모습을 보며.
머리는 혼란을 겪었고,
마음은 방향 감각을 상실한 기계처럼 같은 공간을 끝없이 멤돌았다.
어떻게 받아들어야 좋을지,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감정을 마치 없었던 것처럼 잘라낼 수가 없었다.
생각으로 감정을 통제하기란 불가능했다.
그것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이건 너무 이상했다.
그저 순수한 마음 그 자체라는 것이 이렇게 잔인할 수 있었는지 몰랐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구나.
나를 싫어하는구나.
우린 어쩌면 좋니.
아니 나는.
나는 어쩌면 좋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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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가 쓴 글은 아무리 읽어봐도 만족할만한 피드백이 원만하게 이루어지기 너무 어려워요.
표현하고자 하는 바, 드러내고 싶은 의도를 사전에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말이죠.
마치 유령의 집을 연출한 제작진이 그것을 관찰하는 태도라고 할까요.
이렇게 접근하는게 좋지 않을까? 이런 요소를 넣는게 낫지 않을까? 이런 표현 방법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계속해서 의구심은 들지만 어쩔수가 없네요.
평하는 것은 결국 관찰자의 몫이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