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멍멍이

황매력남 작성일 18.09.19 12: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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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10월 나는 성남의 한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성남에서 가장 유명한 산부인과지만 당시에는 매우 작은 병원이었다고 한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태어났을때 아들을 낳았다며 소리지르고 울고 웃고 너무나 기뻐하셨다고 한다.

첫째를 여아로 출산 한 뒤 시달린 시집살이가 많이 고달프셨으리라..

 

어느세 37살....내년이면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는 소식을 듣고 문득..길지도 그렇다고 마냥 짧은것도아닌

몇번의 죽을고비와 몇번의 죽고싶은 고비를 견뎌낸 지난 시간을 떠올려보다 누군가에게, 어딘가에 나의 이야기를 띄워 보낸다.

이글이 자서전이 될지..고해성사가 될지 아직은 모르겠다....

 

 

2008년 여름이 다가오는 7월 당시 27살이던 나는 여의도에서 성남으로 향하는 퇴근길 만원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가진것 없고 배운것 없던 나에게 비록 박봉에 야근과 철야, 그리고 술자리의 연속이던 영업이란 일은

해본적도 하게될 것이라고 생각조차 못했던 직업이지만 일을 할 수있다는 것에 감사했고 돈을 벌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한 직업이었다.

나는 남자였고, 남편이었으며, 아버지였고, 한 가정의 가장이었기 때문에 늘 피곤에 찌들어있었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이제 곧 태어난지 30일이 되어가는 딸아이가 있는 나의 안식처가 있었기에 늘 웃을 수 있었다.

 

퇴근한다는 전화를 아직 못한것을 떠올리며 걸려온 아내의 전화를 받았을때가 10년이 지난 지금도 매일같이 떠오른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비명과 고함만이 가득했다.

아아아악 아악 어떻게해 어떻게해 자기야 우리 애기 어떻게해 아아악 아악 어떻게 아악

괴성, 절규, 비명 속에서 간신히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119보다 나에게 먼저 전화했다는 것을 알았다.

25살의 아내....위급상황에서 119보다는 무의식적으로 남편에게 전화할 만큼 아내는 아직 어리고 약한 나이었다.

 

서둘러 전화를 끊고 119에 전화를 걸어 제발...제발 빨리 가주세요....제발 부탁드린다는 얘기와 아내의 전화번호를 

전달하고 나서야 버스에서 주저앉을 수 있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손발이 떨리고 심장은 터질 것 같았지만 이내 침착해야 한다는 생각만 되뇌였다.

침착해야한다 나마저 정신을 놓아선 안된다. 아이들은 가끔 숨을 안쉬었다가 다시 쉬기도 한다 했다.

별일 아닐 거야 별일 아닐거야....내가 이런데 아내는 얼마나 겁이나고 두려울까 나는 정신 차려야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버스 안의 승객들이 나를 처다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수근대고 있었다.

택시를 타고 가요 누군가 말했다.

택시...택시를 타는게 좋을까 아니다 여의도에서 성남 퇴근시간은 버스전용차선을 탈수 없는 택시가 오히려 더 

오래걸린다 버스를 타고 가는게 나을것이다.

112에 전화를 해서 도와달라고 할까....어떻게 해야 하지....고민하는 사이 버스는 이미 고속도로를 들어서고 있었다....

이제 방법이 없다 일분이라도 일초라도 버스가 목적지에 빨리 도착해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와이프에게 전화가 왔다....구급요원이란다....아이가 호흡정지란다....차병원 응급실로 서둘러 오라고 한다....

버스가 도착하기까지 한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난 조용히 흐느끼며 떠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렇게 내 인생에 가장 끔찍했던 지옥과도 같았던 여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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