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nel 1. 로키
주설의 지시에 따라 수비대 청사에서 대기를 했지만, 예상했던 대로 특이사항은 발생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곳에서 있는 일련의 일들이 ‘특이사항’에 속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수비대원들은 자신들이 체포한 범죄자들을 데리고 조서를 작성하고, 조서 작성이 끝나면 이들을 유치장에 넣는다. 유치장 속 범죄자들은 ‘나는 억울하다’라며 고함을 지르다가 간수들이 곤봉으로 철창을 두들기면 그 순간에는 조용해진다. 나는 이 모든 풍경을 관찰하면서, 작년 겨울, ‘우리’의 요원들이 체포되면서 이런 고초를 겪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법을 비롯한 사회적 계약에서 벗어나 내키는 대로 해 오다가, 가장 구속력 높은 사회적 계약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면...... 으음, 이런건 그냥 상상의 범주 속에서 끝내는 것이 맞겠군, 그나저나...... ‘우리’는 체포된 요원들에 대해서 어떻게 할 생각인거지?
청사의 구석진 곳에서 쪼그려 앉아 남들의 눈에 띄지 않게 지켜보는 동안, 주설이 지시했던 ‘특이사항’이라고 할 만한 일이 드디어 벌어졌다. 처음에는 청사 입구쪽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닥 소리가 크지 않았을 뿐 더러, 청사 내에서 수비대원들과 범죄자들이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워낙 시끄러운 바람에 달리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는데, 그렇게 방심하는 사이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청사의 문짝이 거칠게 열어젖혀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엄청난 수의 인파가 청사 안으로 꾸역꾸역 밀어닥쳤다.
모랫바람 속에서 한참을 뒹굴었는지, 그들에게선 쿰쿰한 모래냄새가 자욱하게 풍겨왔다. 나는 저 더러운 인파에 휩쓸리기 전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 위에 올라탔다.
“야 이 느자구 없는 새끼들아 똑바로 안걷냐?”
“염병 허구 앉았네. 팔 다리 다 묶어놓고 뭔 수로 똑바로 걷는데?”
인파의 맨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두 사람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파트너와 함께 악다구니를 치며 청사 안으로 들어왔다. 딱 보아도 대충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되었다. 리겔이라는 녀석의 패밀리들이 체포된 것이겠지. 그나저나 이번 인파들의 난입을 통해, 내 고향 프로하기온의 공권력의 수준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마피아라는 것들은 리겔녀석을 원본으로 놓고 판화를 찍은 듯이 우락부락해 보였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그들을 제압하고 질질 끌고 다니고 있지 않은가.
“어어어! 아이고 미안혀요. 얼른 지나갈랑께 잠시만 비켜 보시요.”
마피아와 실랑이를 벌이던 수비대원 하나가 내 의자에 부딪치자 내게 얼른 사과한 뒤에 곧바로 자신과 실랑이를 벌이던 이의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버둥대던 마피아는 뒤통수를 한 대 쥐어 박히자 딴에는 자존심을 부린다고 악다구니를 치다가 재차 머리통을 쥐어박히고 나서야 간신히 침묵했다.
“......”
한바탕의 소동이 끝난 뒤에, 나는 음료수라도 마실 겸 해서 의자에 내려왔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체감 상으로는 수 시간을 보낸 것 같이 목이 칼칼했다.
“어떻게 됐어요?”
“어? 왔냐?”
다행이 의자에서 내려온 직후에 주설과 답답이가 나에게 알은체를 했다. 혼이 빠져나간 듯 한 얼굴을 보니 그들도 아마 이 광경을 본 모양이다. 그 진풍경에 시선을 빼앗기는 바람에 내가 꼴사나운 모습으로 의자에 올라탄 것은 미처 신경 쓰지 못한 것 같아, 나는 그들이 내게 그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냐고 나의 행적을 추궁하기 전에 재빨리 화제 거리를 내밀었다.
“언제 여길 왔냐?”
“방금 왔어요. 와 정말...... 총독님 일 정말 시원시원하게 하시는데요?”
“응? 그게 무슨 말이냐?”
“아까 우덜이 총독을 접견혔거든, 그때 총독이 얼른 처리허겄다고 혔는디, 이렇게 빨리 처리할 줄은......”
“지금 이게...... 총독이 직접 지시한 거라고?”
“아마 그럴겨.”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보다 더 대단하구먼.”
나의 진심어린 찬사에도 불구하고 답답이는 내가 빈정거린다고 생각했는지, 얼굴을 찌푸리며 ‘그들’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죠. 라고 주억거렸다. 뜻하지 않게 오해를 산 셈이지만...... 이들의 일 처리 능력을 본 이상 굳이 입을 놀려 오해에 오해를 더하는 일은 능률적이지 못한 것 같다.
“이제 네가 말한대로 음지의 권력을 틀어쥐게 되었군. 이제는 라스알게티로 가는 건가?”
“멀었어. 안직 절반밖에 차지허지 못했구먼.”
“응? 절반이나 남았어? 뭐가 더 남았는데?”
“나가 아이리스씨 허구 온게 그거 때문이구먼....... 우덜 좀 따라와야겄다.”
“어딜 가려고 하는데?”
“따라오면 알게 될겨.”
Channel 2. 아이리스
우리는 로키군을 데리고 수비대 청사를 나와, 시리우스로 갔습니다. 로키군은 행선지에 대해 몇 마디 질문을 던졌지만, 주설씨는 대답대신 ‘인자는 쪼깐 험악하게 혀야 할겨.’라는 말만 했습니다. 이젠 주설씨의 머릿속에 있을 생각을 따라 잡는건 포기해야 할 것 같아요. 뭐...... 그녀가 생각한 것이 있으니까 우리를 이렇게 데리고 가는 걸 거라고 생각하는게 신간 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설씨가 간 곳은 프로하기온 시 청사 옆에 번듯하게 서 있는 건물이었습니다. 그 앞에는 ‘프로하기온 경제인 연합회’라고 새겨진 금속제 현판이 걸려있었어요. 마피아를 일소한 뒤에는 경제인이라....... 뭔가 연결고리가 헐거운 조합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가 왜 여기루 왔는지 쪼깐 의심스러울 지도 몰것는디유...... 원래 돈허구 주먹은 남이 아녀유.”
“......그렇겠지. 엄밀히 말하자면 견주와 사냥개 사이 아닌가?”
“예? 그게 그렇게 되요?”
저와는 달리, 로키군은 현판을 보자마자 그녀가 무슨 이유로 자신을 이곳으로 데리고 왔는지 그 의도를 파악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는 두둑 하는 소리가 나도록 목을 꺾으며 주설씨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그런 둘의 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안 따라오고 뭐해?”
“아...... 아 예! 예! 금방 가요!”
건물은 밖에서도 그랬지만, 안쪽은 훨씬 더 화려했습니다. 질서정연하게 도열한다면 수백...... 아니 수 천 명도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낮임에도 불구하고,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주광이 무색할 정도로 밝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어요. 주눅이 들 만한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런 것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오만한 태도로 홀을 뚜벅뚜벅 걸어갔습니다. 그녀는 홀의 중앙에 있는 안내데스크로 향했어요.
“어서 오세요. 무슨 일이십니까?”
“경제인 연합회 사무실엘 가봐야겄는디유?”
“혹시 예약을 하셨습니까?”
“아니유.”
“저희는 예약된 손님이 아니면 방문을 불허하고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다음에.......”
로키군은 안내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어요. 그 바람에 데스크에선 쾅하는 엄청난 소리가 났고 모두가 우리를 쳐다보았습니다. 아아...... 왜 부끄러움은 온전히 저의 몫인지 모르겠습니다. 저 천연덕스러운 얼굴을 보노라면, 감정이 없이 사는 것도 나름 메리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사장님이 지금 너네 사정 맞춰줘야 할 입장인가?”
“아니 대체 누구시길래.......”
“삼민 상단의 주설이유.”
“삼민 상단이요? 처음 듣는데?”
“댁이 뭔 셀럽 판독기유? 댁이 몰르믄...... 빙다리 핫바지구?”
“아니 그런건 아니고......”
안내원은 어떻게든 이 두 사람을 응대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만, 그 얼굴에 떠오른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은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로키군은 안내데스크 뒤편에 붙어있는 층별 현황판을 살피더니, 주설씨에게 3층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렇게 목적지의 위치를 확인한 두 사람은, 안내원이 만류하기도 전에 휭하고 3층으로 올라가버렸어요. 수습은 저의 몫이니...... 저는 안내원에게 연신 사과를 하면서 두 사람을 따라갔습니다.
층계를 올라 3층에 도착하니, 저는 1층의 규모에 감탄을 했던 불과 몇 분 전의 제가 얼마나 애송이였는지 절절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에 와서도 1층의 웅장함과 화려함은 부정하진 않아요. 다만 그것이 제가 알고 있는 단어 ‘웅장함’ 그리고 ‘화려함’의 적절한 예시라고 생각했던 건 명백한 잘못이었습니다. 3층 홀은....... 벽면 전체가 황금으로 되어있었거든요. 웅장함과 화려함에 대한 제 생각이 성숙해진 것 만큼이나, 주설씨의 대범함은 한 번 더 성숙해져서, 그런 황금 같은 건 눈에도 들어오지도 않는다는 더욱 오만해진 태도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가더니, ‘회의실’이라고 써 있는 황금 문을 벌컥 열어젖혔습니다. 그 황금 문 너머에는......
Channel 1. 로키
주설은 문 앞을 지키던 비서가 말릴 새도 없이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는
“아이고, 여기에 다들 모여계셨어유?”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그 안에 있던 사람들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여기까지만 보면, 대범하며 사교적이기까지 한 기업인의 태도를 바로 옆에서 지켜본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하지만 방안에 있던 사람들은 나의 착각에 그닥 동의할 수 없는 듯 했다.
“뭐......뭐여?”
방안의 늙은이들은 갑작스러운 타인의 등장에 놀라움에 불쾌함이 반반 뒤섞인 것 같았다. 하지만 주설은 이 모든 반응까지 예상을 했다는 투로 테이블에 빈자리를 찾아 털퍼덕 주저앉았다.
“엄청 덥네유. 근데 여긴 손님이 왔는디...... 물 한잔도 안 내오는거여유?”
“니미 물 겉은 소리허구 자빠졌네. 니들 뭐여?”
“프로하기온 치들 성격 급헌 거는 진즉에 들었다만...... 사람덜이 여유라고는 없구먼. 질문은 목 좀 축인 뒤에 받을게유.”
주설은 자신의 오른편 옆자리에 놓여진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식도를 타고 흐르는 물의 촉감에 적잖이 전율을 한 모양인가보지? 그녀는 물 잔을 다 비운 것도 모자라, 반대편의 물 잔도 잡아 그대로 쭉 들이켰다. 애초에 그녀에겐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아니, 이쯤 되면 그런 시선을 즐기고 있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한 것 같군. 그녀는 두 잔을 비우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초면에 실례허겄슈. 지 이름은 주설이어유.”
“누가 니 이름 궁금혀서 물어봤냐? 뭣허는 넘덜인겨?”
“아 그렇네유. 지는 쩌그 페어게이트짝에서 삼민상단을 운영하고 있어유. 난중에 시간나면 한번 들러유. 대접 시원허게 혀 드릴랑게.”
주설은 나름 너스레를 떤다고 떨었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누가 그딴 대접을 바라는줄 아냐?’라는 투로 쳐다봤다. 그중에서 제일 점잖아 보이는 노인이 나서서 나머지 위인들을 진정시킨 뒤에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따 각시가 배짱이 보통내기는 아닌거 같구마잉. 근디 여그가 뭣허는 디인지는 알고 찾아왔는가?”
“잉 그라쥬. 요 코딱지 만 한 도시를 째고 잘라서 나눠먹는데 아녀유?”
“묘사가 참말로 기가 멕히는구마...... 그라제, 여그는 우덜 겉은 사회 지도층 인사가 도시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가지고 다가 협의를 하는 곳이여. 근디 처자는 여그 사람도 아닌거 같은디...... 뭣헌다구 여그까지 와서 치맛자락을 펄럭거리는 것인가?”
노인도 겉은 유들유들하지만 그 속에 칼이 담긴 질문으로 역공을 펼쳤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 한번쯤은 주설이 머뭇거리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했지만, 주설 역시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그녀는 대답대신, ‘더 크루세이더즈’ 석간신문을 내밀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느 누구도 그걸 집어 들지는 않았다.
“쪼깐한 도시 여럿이서 갈라 묵으면 인건비나 건질 수 있남유? 그럴바에야 아싸리 전도유망한 한 사람헌티 몰아주는 게 도시 발전에도 긍정적일거 당연지사 아녀유? 그리고 신문이 뭐라고 찌껄여 놨는지는 읽을 생각들이 다덜 없으신 거 겉어서 지가 대신 알려드릴게유...... 오늘부로 샤울라 패밀리는 쫑 났어유. 그 외에 요 도시를 갈라묵는 딴 패밀리두 같은 길을 걸을 예정이구.”
‘사회 지도층’은 그녀의 말에 격양된 반응을 보였지만, 노인은 여전히 평정심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는 잠깐 골몰이 생각에 잠겨있는 듯 하다가, 그녀가 네민 석간신문을 집어 들었다. 그는 침침한 눈을 껌벅여 가며 기사를 읽어 내려갔고, 그걸 다 읽은 뒤에는 얼굴을 구겨가며 웃었다.
“드디어 공뭔들이 일을 허는구먼. 근디 요런 기쁜 소식을 알켜 주는 건 고마운디, 그걸 왜 굳이 우덜헌티 말하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구먼? 누가 들으믄 우덜이 마피아 고 양아치 새끼덜하구 뭔가 썸씽이 있는 거 같다구 오해하겄구마잉.”
“......글씨유? 상관이 없으믄 천만 다행이구유, 만약에 새털 만치라두 관련이 있어버리믄...... 고대로 좆 되실 거 같어서 미리 알켜드릴려구 왔어유.”
주설은 두 번째 신문을 꺼내보였다. 그것은 ‘더 문’이었다.
Channel 2. 아이리스
주설씨가 새로운 신문을 꺼내든 행동은, 그 평정심을 유지하던 노인마저도 흔들리게 만들었습니다. 돈에 대한 동물적인 감각과, 인간의 추악한 면에 대한 그녀의 통찰은 정말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 분명했어요. 그녀는 회의장의 노인들 앞에서 ‘이걸 읽을까? 말까?’하는 식으로 그들의 마음을 애태운 뒤에, ‘알았어 까짓거 읽어주지 뭐.’라는 투로 천천이 글을 읽어나갔습니다.
“프로하기온 총독 마이라는 오늘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프로하기온 내에 잔존하는 ‘마피아’들의 현황과, 그들이 일으키는 각종 문제들로 인한 경제적인 손실을 언급하면서, 오늘 24시를 기준으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였다. 기자회견에 배석한 알나슬 프로하기온 지방 수비대 총장은 마피아만을 체포하는 기존의 수사 방식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마피아의 부역자, 혹은 협조 세력들까지 수사의 범위를 확대하기로 밝혔다. 오늘 12시에 프로하기온 마피아 2대 조직인 ‘샤울라 패밀리’ 조직원 60명이 일망타진 되었고, 수사를 통해 부역자와 협조세력들을 파악할 예정이다.”
“.......”
“여그 보니께...... 수비대에서 케밥 드실 분들 몇 분 보이는 거 같은디...... 괜찮겄어유?”
“뭐시여? 아조 저 작것들이 오늘 레테강 티켓을 끊었는 갑소?”
아까부터 우리에게 험한 말을 쏟아놓던 남자는 더는 못 참겠는지 노인의 만류를 뿌리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만, 로키군이 그걸 가만히 두고 볼 인물은 아니었지요. 로키군은 알기에바를 발동했고, 그 촉수가 재빠르게 남자의 눈앞에 전개되었습니다. 알기에바의 촉수는...... 남자 앞에서 위협적으로 일렁였지요. 자신의 눈이 찔려버릴 위기에 처하자, 남자는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하며 느릿느릿 자리에 착석했습니다.
“이맨치루 약을 풀어야 간신히 양아치본성이 나오는걸 보믄 확실히 프로하기온이 신사의 도시라는 말이 허풍은 아니구먼유. 쨌든 일이 이리 되어버렸구, 어차피 여그 분들도 죄다 선수신거 다 아는디...... 본론으로 바로 넘어가 볼까유?”
“그러세....... 우덜헌티 뭣을 원허는가? 그리구 우덜헌티 뭘 혀줄 수 있는가?”
“울 아부지가, 받을라믄 먼저 줘야 헌다구 혔슈. 일단 지가 어르신들 헌티 혀드릴 수 있는 거는...... 뭣보담두 신변의 안전이겄쥬.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구...... 일단 살고 봐야 허지 않겄슈?”
“신변이라....... 거기에 우덜 돈은 포함이 되질 않은 모양이구마잉.”
“말이 쬐깐 통허네유? 어차피 시상 뒤집어져블믄....... 어르신들 모가지가 땅바닥 굴러댕기는건 시간 문제유. 여 도시에 눈깔이 몇갠디, 어르신덜이 마피아랑 붙어먹은 거 모르는 사람이 있겄슈? 코카브 겉은데 가서 조용히 가 계신다고 허믄 나가 거그까지는 신변의 보호를 혀 줄 수 있을거 같네유.”
“성님.”
“니는 일단 입 닥치고 있어봐야.”
노인은 더는 감출 필요가 없다고 판단을 했는지, 안경을 벗으며 눈을 비볐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묵은 때 같은 피곤함이 찌들어있었어요.
“목숨만은 살려준다라...... 허기사 틀린 말은 아니제. 살아야 후일도 도모하질 않겄는가. 그러믄...... 처자는 우덜헌티 뭘 받기를 바라는 것인가?”
“별거 아녀유. 사업체 다 접구. 여 도시를 뜨기만 하믄 되유.”
“인수는 안하는가?”
노인의 질문을 그녀는 뜻밖이라는 얼굴로 쳐다봤습니다. 주설씨는 대답대신 ‘인수라......’라는 혼잣말을 한참 중얼거리다가 어께를 으쓱 했습니다.
“인수는 안혀유.”
“뭔 소리여?”
“혹시나 어르신들 생각으로 지가 요 도시의 주인으로 똬리 틀고 앉을거라구 생각허신거 같은디...... 지는 이 도시를 묵을 생각은 털끝맨치두 없어유.”
“그러믄 우덜을 왜 이 도시에서 쫓가낸다는 것이여?”
“우리 사이에 뭔가 오해가 있는가 본디유, 지가 어르신덜을 여서 내보내는 거랑, 지가 요 도시를 묵는 거랑은 별개의 문제 아녀유? 어르신덜이야, 마피아 새끼덜허구 붙어묵고 갸덜이 온갖 양아치 짓거리 허는걸 방치허믄서 이 도시를 맛나게 해드셨다믄, 지는 적어도 마피아 새끼덜이 농단을 허는건 막겄다 요거유.”
“그럼 이 도시는?”
“도시유? 그걸 지한테 물어서 뭐헌대유? 참말루다가 요상시런 질문이라...... 뭐라구 대답을 혀야 헐지 난감시럽지만...... 알아서 허지 않겄슈? 암만 개판쳐두 지금보다야 잘 되겄쥬.”
“그럼 니는? 니는 이 도시의...... 뭐가 될 작정인디?”
“워매, 우물안짝 개구락지보담두 시야가 좁네유. 지가 고작 요 코딱지 만 한 도시하나 묵자고 어르신덜 앞에서 이리 빨빨거리는 줄 알았는 갑쥬? 지헌티 이 도시는...... 끽해야 관문이어유. 지가 잡을라는 거는......”
Channel 1. 로키
1624년 7월 27일
총독이 이른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지 열흘이 지났다. 길다고 하면 길고, 짧다고 하면 턱없이 짧은 시간이겠지만, 그 시간동안 총독은 ‘정부가 작정하고 덤비면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명제를 새삼스럽게 이 도시의 모든 사람들에게 각인시켜주었다.
그다지 열성적으로는 보이지 않던 이 남자가 별안간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나오는 까닭은...... ‘아무래도 상대에 대한 캐릭터 분석이 미진하여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다’는 탈출구를 만들어놓고 이야기를 해보자면, 아마 그는 이러한 기회가 오기까지 ‘발톱을 숨기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형성 된 지 오래되어 장점이든 단점이든 고착이 되어 변동성이 지극히 저조한 집단에 새로운 리더가 들어오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그의 눈에는 집단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크게 눈에 들어올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은 리더로 하여금 이 집단을 ‘썩어빠진 곳’으로 규정짓게 만들고, 그것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욕을 고취시키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집단 자체가 리더보다 수명이 길기에, 힘을 가졌다곤 하지만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개혁을 이루어내는데 어려움이 뒤따른다. 아무래도 그 폐쇄된 생태계안에서 이미 강자와 약자가 결정되었고, 그로인해서 이득을 보는 강자들의 카르텔이 공고하게 형성되어있을 터이기 때문이겠지.
성급한 리더라면 ‘그딴건 모르겠다.’라고 덤벼들 테지만,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보았을 때, 그러한 종류의 리더는 실패를 맛보거나, 심한 경우에는 목숨까지 보전하기가 어려운 지경에 놓이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와 정 반대되는 리더라면, 자신도 강자들의 카르텔의 일원이 되기 위해 부지런히 줄을 댔을 것이다, 이것 역시...... 많은 사례를 보았을 때, 전자의 경우보다는 좀 더 성공적인 리더생활을 영위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렇다면 양극단 사이에 있는 리더십은 어떤 것일까? 개혁의 의지는 있지만, 그전에 자신의 목숨부터 보전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리더라면, 일단 숨을 죽이고, 집단이 돌아가는 꼴을 관망할 것이다. 집단 속의 역학관계, 그리고 그것이 흘러가는 양태, 마지막으로 카르텔의 숨은 리더까지....... 그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암중모색을 할 것이다.
그 모든 걸 다 파악하고 나서도 곧바로 칼을 빼드는 대신에...... 기다리는 것이다. 자신이 나설 수 있는 명분이 만들어지는 ‘그 때’를 말이다. 내 추측에 의한다면 지금의 총독은 바로 그런 종류의 인간이었을 것이고, 그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은 바로 지금이 칼을 빼들 때가 됐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행동일 것이다. 뭐...... 말이 장황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부정확한 나의 상상일 뿐이고, 이런 일련의 정치적 이슈에 개입해서 이득을 챙길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나는 그저 내가 해야 할 도리만 다 하면 그만이다.
어쨌거나 그날의 사건 이후,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일상이라고 뭐 별거 있겠는가? 주설이 시켰던 대로 여전히 수비대 청사 앞에서 대기를 하고 있는 거지 뭐. 내가 이렇게 야자수 그늘에 앉아 셔벗을 축내는 동안, 주설과 답답이는 사업의 확장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을 것이다. 내 스스로를 돌아보았을 때, 경제관념이 없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없는데 왜 나만...... 녀석은 대체 무엇을 바라고 내게 이곳에서 무한정 대기를 시키는지 도저히 알 도리가 없었다.
“셔벗 하나 더 주쇼.”
“잉 고맙소.”
셔벗 하나를 더 사서 숟가락으로 꾹꾹 누르는 동안, 청사의 정문이 열리고, 그곳에서 붉은 머리칼을 한 사내가 청사 밖으로 나섰다. 그의 얼굴은 잔뜩 구겨져 있었고, 자신의 불만사항에 대해서 사람들의 공감을 사고 싶었던 모양이었는지, 청사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올리고는 그 앞에 침을 뱉었다. 이런 상황에서 클리셰처럼 등장하곤 하는 ‘내가 이짝으로 그림자라도 비치믄 사람새끼가 아니다!’라는 발악도 빠질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보노라니, 주설이 왜 나로 하여금 이곳에서 대기를 시켰는지 비로소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수고혔고, 인자 여그꺼지 와서 나랏밥 축내는 일은 허지 마시요잉.”
“잉 그럴 것이네. 나가 이짝으로는 오짐도 안쌀 것이여! 만나서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말드라고!”
그를 배웅하는 수비대원은 비웃듯이 인사를 건네면서 그에게 보자기를 던져주었다. 리겔은 자존심은 챙긴답시고, 수비대원이 청사 안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뒤에야 그 자리에 털퍼덕 주저앉아 보자기를 풀어헤쳤다. 보자기 안에는 그가 미처 챙기지 못한 그의 물건들이 고스란이 담겨있었다. 그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혹여나 놓고 온 것이 없는지 확인을 한 뒤에, 셔벗가게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는 그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야자수 뒤쪽으로 슬금슬금 발을 옮겼다.
“여그 무화과 셔벗 하나 주씨요!”
“잉 쪼깐만 기다리시오. 금방 꺼내올라니께.”
주인은 자신을 죽일 듯이 바라보는 사내의 눈길에도 불구하고 천연덕스러운 웃음을 잃지 않는 서비스정신을 보여주었다. 야자수 뒤에서 쪼그려 앉아 그녀의 담력에 찬사를 보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내게 있어서는 그저 찬사에 지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녀에게 있어서는 생계의 문제일 것이다. 그녀로서는 가급적 엮이지 않는 것이 상책인 무뢰한을 상대해야 한다는 껄끄러움보다는, 손님을 가리다가 일거리가 끊겨 생계가 위협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그녀로 하여금 천연덕스럽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찬사를 보낸다는 건...... 왕족의 영면을 위한 무덤 앞에서 기념사진 포즈를 취하는 것 만큼이나 몰상식한 행동일 것이다.
어쨌거나 가게 주인은 그에게 무화과 셔벗을 만들어 주었고, 그는 그것을 한입에 털어놓고는 우걱우걱 씹었다. 셔벗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지키지 않는 막나가는 태도가 개탄스럽기 이를 데 없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무력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어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행위가 역설적으로 자신의 약함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그 있소. 거스름돈은 알아서 허시오.”
“잉 고맙구마잉. 봉께로 출소허는거 겉은디...... 인자 여서 다시는 셔벗 사묵는 일 없도록 허시요.”
“.......”
그녀의 덕담 아닌 덕담에 리겔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가...... 한숨과 함께 아래로 떨어졌다. 리겔은 그녀에게 ‘덕담 고맙소잉.’이라는 말과 함께 휘적휘적 거리를 떠났다. 이제야 그동안 축내온 셔벗 값을 할 때가 온 것이다. 나는 그에게서 20발자국 거리를 두고 그를 따라갔다. 그는 미행이 붙었는가에 대한 최소한의 경계심조차 없었는지 뒤돌아보는 것 따윈 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리겔은 최고의 미행상대인 셈이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그의 뒤를 따랐다.
리겔은 수라파트 대로에서 쉬트가로 갈아탔다. 그 길의 끝에는 페어게이트가 있고, 샤울라 패밀리의 본거지가 그쪽이라고 하니, 짐작컨대 샤울라 패밀리의 아지트로 가는 모양이었다. 그곳에 가려는 이유는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의 복귀를 보고함과 동시에, 이른바 ‘가족’들로부터 환영인사라도 듣고 싶은 모양이었겠지. 녀석에게 ‘범죄와의 전쟁’으로 ‘네가 가려는 너의 집은 사라진지 오래다.’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오지랖을 부려 좋은 일은 없으니 일단 그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기로 했다. 리겔은 페어게이트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 멈춰서서 퇴락한 취락이 늘어서있는 그곳의 전경을 바라보며 모래 냄새나는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수비대 청사 앞에서 셔벗을 먹을 때보다 기분이 좋아진 듯 했다.
그를 따라 페어게이트의 구불구불한 길을 걸었다. 운터 브룩이 한수 접어줄 것 같은 위태위태한 가옥을 지나, 그는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한 듯 했다.
Channel 2. 아이리스
1624년 7월 27일
오늘로 프로하기온 총독님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지도 열흘이 되었습니다. 열흘, 이백사십 시간동안 이 도시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아마 이야기의 서두를 듣자마자, 그동안 마피아와 자본가들의 카르텔 아래에서 신음을 하던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해 반쯤 무정부 상태 속으로 빠져드는 프로하기온의 혼란상을 묘사할 것이라고 생각 할 지도 모르겠는데요, 이런 당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대답을 하게 된 것은 상당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물론, 당신이 짐작한 그런 움직임이 있기는 했어요. 하지만 라스알게티의 식민지배를 받은지 1000여년이 넘는 이 도시는 라스알게티보다 더 라스알게티적인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수비대의 병력들은 마피아들을 체포하는 것과 동시에, 그들과 직접적인 은원이 있는 노동조합에도 병력들을 보냈답니다. 이른바 ‘질서유지’라는 명목으로 말이죠.
총독님의 빠른 대처와, 수비대의 강경한 태도로 노동조합을 위시한 시민단체들은 자신들이 원하던 사적처벌은 내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더 문’을 비롯한 각종 신문들에서도 ‘사적 처벌을 지양하고, 법의 정의로움을 믿고 기다리자.’라는 사설로 지면을 도배하다시피 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시리우스에서 만난 자본가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굳이 우리가 재촉하지 않더라도 제 발로 프로하기온을 탈출할 기세였답니다. 그리고 그저께, 마지막 기업인이 코카브행 첫 열차에 몸을 실었어요. 법의 정의로움을 믿어보려고 했던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안 된 일이겠지만, 불필요한 희생은 막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자 여그에서 걸리적 거리는 넘덜은 죄다 떨어져나갔......어이쿠!”
역사에서 점점 멀어지는 열차의 뒷 꽁무니를 바라보던 주설씨는 개운한 얼굴로 기지개를 쭉 펼쳤습니다. 아직 팔 한쪽의 여운이 남아있었는지, 그녀는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었어요.
“주설씨.”
“잉?”
“정말로 이 도시에 대해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작정이에요?”
“.......”
주설씨는 제 질문에 대답대신 제 얼굴을 한참동안 쳐다보다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었습니다.
“아따 사람이 순진허네유. 시상에 무주공산에 깃발도 안꽂구 넘헌티 갖다 바치는 바보가 어디있겄슈?”
“네? 그러면......”
“대신에 줄을 딴데다 서는거쥬. 열차타고 뜬넘덜이야 음지의 권력헌티 줄을 댔다믄, 지는 양지의 권력에다가 줄을 댈 것이다...... 이런거유. 이미 총독나리두 비단에 헤까닥 넘어갔는디?”
“그러면 그네들하고 다를게 없잖아요.”
“이미 있던 것은 후대에 다시 있을 것이고, 이미 한 일은 후대에 다시 반복될 것이니,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 없더라.....”
그녀는 재주 좋게도 제 앞에서 경전의 말씀을 인용하기까지 했었습니다. 싱긋 웃는 그녀의 얼굴에는 ‘어디 이 말도 한 번 반박해 보지 그래?’라는 도발이 형형하게 어려 있었지요. 저는 그녀의 말을 그대로 받아칠 구절을 생각하다가, 조금은 뼈 있는 말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회오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날아가 사라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가 되리라......라는 말도 있죠.”
“이거 참, 내가 악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허니 약간 섭섭한디유?”
그녀는 제가 의도했던 바를 알아차렸는지 껄껄 웃었었어요. 그리고 제 눈을 바라보며 한 가지를 약속했었지요.
“걱정마셔유. 지는 적어두 그넘덜 보다는 더 나은 년이 될 생각이니께.”
“제가 확인할 수 있게 말인가요?”
“글츄.”
그리고 오늘이 되었어요. 그녀는 저를 데리고 프로하기온역으로 갔습니다. 역사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수하물들이 쌓여있었습니다. 카르텔이 사라지고 나서 시장이 드디어 활기를 찾았냐고요? 아쉽게도 그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 수하물들은....... 카르텔이라는 주인을 잃은 무기력한 물건들이었거든요.
저와 그녀는 무기력한 수하물들의 벽에 기대고 앉아 빈들거리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일거리가 눈앞에 있음에도, 일거리가 없는 그들은 한가하게 앉아 마작놀이를 하고 있었어요.
“한참 게임하는 중에 껴들어서 먄허지만...... 혹시 여그 대빵이 누구유?”
“대빵......? 그건 뭣허러 묻는가?”
“여그 대빵허구 할 야그가 있어서 그렇츄.”
마작놀이를 하던 남자들은 두 여자가 말을 걸어오는 것이 퍽 낯설게 느껴졌는지, 하던 놀이를 중단하고 우리를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참 이래서는 안되는걸 알지만, 그들의 시선이 주설씨의 빈 오른팔을 향하는 것이 거북하게 느껴졌어요.
“거 요즘겉이 뒤숭숭헌 시상에 가시내들 둘이서 싸돌아댕기는거 아녀. 험한꼴 당하기 전에 싸게 집으로 들어가씨요.”
“......위험허구 안허구는 우덜이 알아서 판단혀유.”
당찬 주설씨의 대답에 남자의 얼굴은 데친 우거지마냥 팍 구겨지고, 그의 친구들은 옳다구나하고 껄껄 웃어버렸습니다. 남자는 주설씨에게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의 친구들이 그 입을 막아버렸어요.
“왐마 아가씨 쎗바닥이 참말로 깡깡하구마잉. 요놈 새끼가 시방 우덜 돈을 다 뽈아묵어가꼬 실핏줄이 죄다 터져나갈라 했는디 간만에 속이 다 시원해졌소.”
그의 친구들은 친구들이 약이 바싹 오른 것이 퍽 즐거웠는지 자신들이 먹으려고 놔둔 간식거리를 우리에게 건네주기까지 했답니다. 저는 사양을 하려 했지만, 주설씨는 무슨 넉살인지 넙죽넙죽 받아먹는 바람에, 저도 그 분위기에 휩쓸려 그들이 건넨 간식을 주워 먹을 수밖에 없었어요.
“워뗘 맛이 있는가?”
“잉......잉? 맛있긴 헌디 냄시가 요상허네유? 이게 뭐여유?”
“잉, 홍어회여. 여그는 웂어서 못묵는 것이여.”
주설씨는 냄새가 이상하다고 표현했는데요, 저는 그녀의 이런 표현이 상당히 절제되어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맡은바로는 냄새는 이상한 것을 넘어서....... 지독했어요. 마치 오랫동안 방치된 화장실 냄새가 났거든요. 겉보기엔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하얀 고기에 이런 지독한 냄새가 난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했답니다. 그들은 주설씨의 반응에는 실망스러워했지만, 제가 보인 여간 고역이 아니라는 반응에는 낄낄대며 웃었습니다. 그들은 이 고약스런 고기를 붉은색 소스에 푹 담가서 먹어치웠어요.
“홍어회를 묵을줄 알아야 프로하기온 사람이라구 허는거요. 아따 요 아가씨는 아즉 멀었구마잉.”
“죄......죄송해요.”
“아녀라. 샥시가 못묵겄으면 우덜이 마저 묵으면 될것이요.”
그들은 ‘홍어회’라고 부르는 이 기이한 음식을 죄다 먹어치운 뒤에, 우리에게 자신을 찾아온 용건을 물었습니다. 그들도 아무래도 두 여자가 노동자들의 대장을 찾는다는 것이 어지간히 특이해 보였던 모양이었나봐요. 주설씨는 그들에게 우리가 찾아온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고, 그들은 처음과는 달리 사뭇 진지해진 태도로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니께, 우덜헌티 뭔가 기가 맥히는 제안을 헐거라 이거제?”
“잉 그려유.”
“그라믄 우덜이 안내 허것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