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검색 결과(189);
-
-
-
[엽기유머] (스포있음)택시운전사 비하인드 스토리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택시운전사' 비하인드 스토리 !!> 천만 냄새가 솔솔! 여름 극장가의 강자로 떠오른 <택시운전사>가 올해 최단기간 내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곡선을 이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택시운전사>를 보신 분, <택시운전사>를 볼 예정이신 분, <택시운전사>에 관심 있는 분까지 모두 주목! 오늘은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택시운전사> 비하인드 스토리를 준비했어요. 영화의 재미를 두 배 더 늘리는 이야기들! 스크롤 내려 확인해보시죠.* <택시운전사>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송강호와 유해진의 '첫 영화'다. 언제 어디선가 한 번쯤은 호흡을 맞췄을법한 대배우들! 송강호, 유해진은 <택시운전사>에서 처음 호흡을 맞췄습니다. 각각 서울의 택시 기사 만섭, 광주의 택시 기사 태술로 분해 찰떡궁합을 자랑했죠. 2. 조용필의 '단발머리'가 등장하는 최초의 한국 영화다. 그 언젠가 나를 위해 꽃다발을 전해주던 그 소녀~♪ 서울 택시운전사 만섭의 테마곡! 바로 조용필의 '단발머리'입니다. "음악과 함께 관객들이 그 시대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장훈 감독! 그간 조용필의 곡은 드라마나 영화에 삽입된 적이 별로 없어 빌리는 데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으나...! 훌륭한 시나리오 플러스 송강호가 주연이란 말에 조용필은 흔쾌히 이 곡을 빌려주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택시운전사>는 '단발머리'가 흘러나오는 최초의 한국 영화가 되었죠. 3. 토마스 크레취만의 선글라스는 실제 위르겐 힌츠페터의 소품이다.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를 연기한 토마스 크레취만의 놀라운 싱크로율! 극중 토마스 크레취만이 착용한 선글라스는 실제 힌츠페터 기자의 소품이라고 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힌츠페터 기자의 부인께서 장훈 감독에게 선물로 전해주었다고 하네요.4. 당시 10만 원은 현재 대략 100만 원의 가치를 지닌 금액이다. 만섭의 밀린 사글세 10만 원! 밥숟가락도 바로 놓게 만든 10만 원! 1980년대의 10만 원은 현재 100만 원(!)의 가치를 지닌 금액입니다. 당시는 택시 기본요금은 천 원도 안되던 시절이었죠. 버스 요금은 140원, 지하철 요금은 200원, 자장면 가격은 700원인 시대였습니다. 5. 송강호의 택시, 브리사의 가격은 '억대'를 자랑한다. <택시운전사>에서 빠질 수 없는 또 하나의 주인공! 만섭의 녹색 택시, 브리사입니다. 국내에서 이미 단종된 탓에, 촬영진은 동남아시아와 일본의 중고 거래 사이트를 뒤져 브리사를 찾아내야만 했는데요. 이후 해체와 재조립을 거치는 등 무려 7개월의 개조 작업을 거쳐 만섭의 '녹색 브리사'가 탄생했습니다. 이에 든 비용은 '억대'에 다다른다고 하네요. 6. 촬영 도중 브리사가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질 뻔했다. 광주로 향하는 샛길, 요리조리 녹색 브리사를 끌고 움직였던 만섭과 피터! 극중 모든 운전은 송강호가 직접 소화해냈는데요. 좁은 길을 운전하다 차가 길 아래로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습니다. 수풀에 가려져 있던 좁은 길! 알고 보니 길 아래가 바로 낭떠러지였다고 하네요. 모든 관계자들이 힘을 모아 영화의 주인공(ㅋㅋㅋ) 택시를 끌어올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7. 송강호는 촬영 내내 20여 벌의 셔츠를 갈아입었다. <택시운전사> 촬영 현장에서 배우들을 가장 힘들게 만든 것 중 하나! 바로 더위였습니다. 땡볕 아래라 모든 촬영장이 더위와의 전쟁이었지만,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은 바로 택시 안이었죠. 만섭의 택시 브리사나, 태술의 택시 포니 두 종 모두 오래된 차량이라 에어컨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는 슬픈 사실...(ㅠㅠ) 송강호는 촬영 내내 20여 벌의 유니폼을 번갈아 입었습니다. 토마스 크레취만 또한 똑같은 옷을 여러 벌 갈아입었다고 하네요. 8. 금남로 세트는 실제 금남로의 크기와 100% 일치한다. <택시운전사> 제작진은 광주의 한 공터에 실제와 같은 크기의 금남로 오픈 세트를 제작했습니다. 건물들의 디테일은 물론, 300여 명의 보조출연자가 함께하며 1980년 5월의 금남로를 생생하게 재현해냈죠. 9. 류준열은 '컷' 소리만 나면 바지를 벗었다? '바지를 벗었다고?! 왓?!' 하는 분들 일단 마음 가라앉히시고...(ㅋㅋㅋ) 시대의 특성상 두껍고 빳빳한 소재의 의상이 많았던 <택시운전사>! 더위에 못 이긴 류준열이 택한 방법이 바로 '바지 벗기'였습니다. 바지 속에 반바지를 입고, 컷 소리가 나는 즉시 바지를 벗었다고(ㅋㅋㅋㅋ)하네요. 후엔 토마스 크레취만도 그의 방법에 동참했다고 합니다. 10. 송강호는 <택시운전사> 출연 제의를 한 차례 고사했다. 송강호는 <택시운전사>의 출연 제의를 한 차례 고사했습니다. 이 거대한 이야기를 이끌어가기엔 "스스로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역사의 한 부분을 감당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는 그.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이야기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아"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11. <택시운전사>는 따로 포스터 촬영을 하지 않았다. <택시운전사>는 따로 포스터 촬영을 하지 않았습니다. 촬영 도중 쉬는 시간에 어딘가를 보고 있던 송강호. 그의 미소를 현장 스틸 작가가 담아냈고, 그 자연스러운 표정이 포스터에 고스란히 실렸죠. 12. 순천 유턴 신은 5개 이상의 버전이 있다. <택시운전사>의 명장면이죠. 홀로 광주를 빠져나왔다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송강호의 내면 연기가 빛을 발하는 이 장면! 장훈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순천 유턴 신'만 5개 이상의 버전이 있다고 합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감정이 확 올라가는 버전', '담담하게 있다가 확 올라가는 버전' 등 여럿이 있었으나 토론 끝에 영화 속에 삽입된 장면이 선택되었죠. 13. 검문소 중사가 만섭과 피터를 보내준 장면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관객들 심장 쫄깃하게 만들었던 이 장면! 송강호도 이 장면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손꼽았는데요. 검문소 중사(엄태구)가 상관의 지시를 무시하고 만섭과 피터를 보내주는 장면은 실제 위르겐 힌츠페터의 기억을 바탕으로 만든 장면입니다. 힌츠페터는 당시를 회상하며 '검문소의 군인은 내가 기자인 걸 알면서도 보내준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죠.14. 엄태구는 송강호의 '반 추천'으로 출연하게 되었다. 관객들의 환호와 공포를 동시에 불러왔던 신스틸러 엄태구! 그는 송강호의 반 추천(!)으로 <택시운전사>에 출연했습니다. 당시 오디션 진행 중인지 모르고 감독님에게 엄태구의 칭찬을 늘어놓은 송강호! 장훈 감독은 바로 엄태구에게 오디션을 제의했다고 하네요. 탁월한 캐스팅이었음은 분명합니다. 15. 후반부 카체이싱은 장훈 감독이 큰 부담을 느꼈던 장면이다. 장훈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후반부 카체이싱 장면이 '부담스러운 장면'이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영화 속 다른 부분과 결이 달라 촬영 전까지 고민을 했다는 그! 스탭들 간에 의견이 갈리기도 했지만, "광주의 평범한 사람들의 도움과 희생"을 보여주기 위해 이 장면을 넣었다고 밝혔습니다. 16. 실제 1980년 광주엔 힌츠페터 외 여러 외신 기자가 존재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그들을 취재한 건 힌츠페터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촬영을 담당한 힌츠페터 기자와 함께 녹음을 담당한 헤닝 루모어 기자가 동행했죠. 뿐만 아니라 AP 통신, 뉴욕 타임스 등 다양한 외신 매체가 광주에서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Naver 포스트 <씨네플레이>펌-막판에 엄태구 등장했을때 어후~..얼굴에 목소리만 들어도 섬짓한데다 항상 악역을 맡아 이번에도 X됐다 싶었는데..암튼 몰랐던 사실이 많네요~
-
-
-
-
[엽기유머] 서태지 죽이기
진중권 강헌 문화다방 음반 인세 관련 中 진중권 - 그때 그시절 얘기 잠깐 얘기 해보자면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이 성공한 직후. 소위 주류 언론에서 느닷없이 서태지 죽이기가 시작됐거든요. 지금들으면 좀 황당한데 당시 분위기는 그랬던거죠. 어떤 상황이었는지 좀 설명해주시죠. 강헌 - 국회, 지상파방송사들, 한국 음반산업, 언론 조중동이런.. 진중권 - 뭐가 맘에 안들었던 겁니까. 강헌 - 저는 그 한복판에 있으니까. 아니 인기있는 사람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거는 이 바닥의 순리인데 왜 그렇게 다들 싫어하는거지? 저도 정말 그때 궁금했어요. 진중권 - 사실 어떻게 뒤집어보면 서태지씨가 그때 뭔갈 건들인거죠? 확실하게? 강헌 - 영문을 채 모른채 건드린거죠. 근데 그렇다고 서태지는 신해철과는 좀 다릅니다. 정말 신해철이 그당시에는 6촌 동생이란걸 밝히지 않았을때 당시 둘이 활동할때 참 신해철씨 다운 표현을 했어요. 제가 공식질문으로 한번 물어봤습니다. 신해철씨 서태지를 어떻게 생각하냐. 그때 신해철이 뭐라고했냐면 '그는 거침없는 낙오자다. 그래서 당당하다. 승리를 거둘 자격있다. 나는 그에 비하면 고뇌하는 비겁자수준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이길수 없고, 그렇지만 나는 작지만 그의 시대에서 나는 나의 영토가 조금은 있다. 나같은 놈이 많으니까. 근데 그 고뇌하는 비겁자. 이분의 뭔가가 사실은 같은 음악에서 함축되어있습니다. 사실 그 노래의 메세지에서는 신해철이 훨씬 직설적이죠, 서태지는 직설적으로 뭔가 자신의 노래로 표현하지 않는 스타일입니다. 굉장히 뺑뺑돌리고 꼬고, 솔직히 본인도 무슨소리인지 알까 싶을 정도로 좀 미궁을 숨겨놓는. 약간 신비주의적인 스타일이라면요. 근데 거꾸로 사회적인, 특히 자신의 개인적 자유와 권리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서태지는 정말 소위 북공고 야간 1학년 중퇴자다운 거침없음과 단호함이있어요. 제가 왜 서태지를 상대로 그렇게 다 죽이려고할까. 특히 기득권층이. 제가 실제로 물어본적이있습니다. 당시 mbc 보도국에서 서태지 죽이기, 서태지를 완전히 파묻으려고 작정한 다큐를 제작했어요,그 피디가 예능제작국 피디도 아니고 굉장히 진보적인 고발 다큐멘터리를 많이 만드신분이에요. 제 대학선배이고, 근데 이제 죽이는거만 넣을수 없으니 옹호하는 사람 얘기도 들어봐야하니까 절 부른거에요. 인터뷰끝나고 개인적으로 물어봤어요.왜 그렇게 서태지를 싫어하세요? 왜 죽이려고 합니까?' 그랬더니 그분이.. 아직도 귀에 쟁쟁해요. 진중권 - 우리 애들이 걔 닮을까봐 이런건가요? 강헌 - 아뇨, '새끼가 건방지잖아. 누구때문에 떴는데.' 진중권- 황당하네요 정말 강헌 - 전 등에 식은땀이 쫙 흘렀습니다. 전 서태지가 흔히 말하는 메이저캠퍼스. 우리가 선망하는 대학, 신해철씨처럼 하다못해 중퇴라도 했거나그랬더라면 그런 공격을 저는 받지 않았을거라고 생각해요. 진중권 - 완전히 무시하고. 너 아무것도 아닌놈인데 우리가 키워줬는데 왜 까불어 이런거군요. 강헌 - 한국 사회의 상고출신 노무현에 대한 그런 이중적인 스탠스하고도 굉장히 비슷합니다. 그런 그 무시무시한 한국 기득권 내부에 또아리 틀고있는 편견이.. 굉장히 무엇이 그걸 건들였나. 왜 그사람들은 서태지보다 판을 많이 판 김건모는 안건들이고 서태지는 무엇이 그걸 건들였는가. 라고 그 방송을 기회로해서 저나름대로 추적을 해봣어요. 제가 볼때 서태지가 한 최고의 혁명은요. 대중음악에 통일의 유시를 끌어들이거나 교실이데아의 이데아로써를 만들어서가 아닙니다. 서태지가 한국 대중음악에 끼친 최고의 공헌은 최고의 혁명은요. 뮤지션이 음반 산업의 자본으로부터 독립한 것이에요. 가장 그만의 뻔뻔한 방식으로, 식민지 시대 이후로 한국의 음반 산업을 지배해왔던 이름바 음반산업의 기존질서를 한번에 붕괴시켰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조용필의 전성기는 80년대에 그 10년간의 음악,조용필의 1집부터 12집까지의 모든 음악은 누구 소유입니까? 지구레코드 소유입니다.조용필은 그 최고의 10년을 보낼때도 인세 10원도 받아본적이 없어요. 그담시 사람들의 생각은 뭐냐면 '야 이거 우리가 노래를 키워줘가지고 너가 가수로 데뷔했으니 니가 나한테 고마워해야지.그래서 너는 나때문에 유명해졌으니까 밤무대가서 돈벌면되잖아.'이게 그 당시의 논리였어요. 진중권 - 밤무대 뛰어라 이거죠? 니가 알아서 먹어라. 강헌 - 그렇죠. 근데 조용필처럼 '난 밤무대 뛰기 싫은데?' 그러면 수입이 없는거에요. 사실 조용필은 재산을 크게 가져본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돈을 가장 많이 벌어야할때 밤무대를 안뛰었기 때문에. 인세는 10원도 받지 못했고. 그러면서 마치 시혜적으로 '그래도 얘가 톱스타인데 차도 한 대 없냐. 야 용필이한테 차 한대 뽑아줘라' 마치 자신의 권리를 시혜처럼! '그래도 아파트는 한채 있어야지? 아파트 한채 뽑아줘. 그래서 그렇게 하사하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의 주인과 노예의 관계로 만들어 놨고. 이 관계를 그 똑똑하신 신해철도 꺼트리질 못했어요. 자신이 무한궤도로 처음에 프로페셔널 뮤지션이 됐는데 그 판이 그래도 40만장쯤 팔렸는데 사장님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돈을 줄 생각을 안하더래요. 그래서 이제 나머지 멤버들이 '야 해철아 그래도 니가 리더고 말도 잘하니까 우리는 언제 인세든 보너스든 언제받는지 물어봐라.' 했더니 그래서 해철이가 당당하게 기획사 사장한테 가서 저희들 판이 많이 팔린거같은데 저희는 언제 돈을 받게되나요? 했더니 사장이 크게 웃으셨다는. 니가 몰라도 너무 모르는구나. 그래서 아무말 못하고 비겁하게.. 진중권 - 그래서 비겁자라는 그말이구나. 강헌 - 비겁하게 돌아서 나왔습니다. 신해철은 또... 다음, 더 웃긴얘기해드릴까요? (중략) 노찾사출신 김광석도 2집 사랑했지만이 50만장팔렸는데 음반사로부터 받은돈이 총 500만원 받았습니다. 김광석이 먹고살수있는 돈을 번것은 라이브콘서트, 소극장 콘서트로 벌었지 이름바 노찾사하고 김광석, 이런 노래 운동권이라고 부르는 집단 조차도 자신의 경제적 권익을 되찾지 못했던 판이 이 판이에요. 근데 서태지는 일개 신인가수주제에 그냥 내가 곡을 만들고 내가 노래부르고 춤을추는데 왜 돈은 니들이 돈을 갖고가세요? 난 그런거 못하겠는데요? 전 제가 한거 제가 다 먹을거에요. 하고 아무렇지 않게 그냥 갖고 갔어요. 이 서태지의 등장이후로 사실상 수많은 일종의 봉기가 일어납니다. 그럼 나도. 나도.. 진중권 - 그럼 일종의 혁명이네요. 강헌 - 혁명이에요. 진중권- 혁명의 가장 유물론 적인. 강헌 - 그 봉기의 시작은 서태지입니다.
-
-
-
-
-
-
[엽기유머] 서태지가 위대한 이유중 하나
진중권의 문화다방 방송내용 中...서태지는 정말 소위 북공고 야간 1학년 중퇴자다운 거침없음과 단호함이있어요.제가 왜 서태지를 상대로 그렇게 다 죽이려고할까. 특히 기득권층이. 제가 실제로 물어본적이있습니다. 당시 mbc 보도국에서 서태지 죽이기, 서태지를 완전히 파묻으려고 작정한 다큐를 제작했어요,그 피디가 예능제작국 피디도 아니고 굉장히 진보적인 고발 다큐멘터리를 많이 만드신분이에요. 제 대학선배이고, 근데 이제 죽이는거만 넣을수 없으니 옹호하는 사람 얘기도 들어봐야하니까 절 부른거에요. 인터뷰끝나고 개인적으로 물어봤어요.왜 그렇게 서태지를 싫어하세요? 왜 죽이려고 합니까?' 그랬더니 그분이.. 아직도 귀에 쟁쟁해요.진중권 - 우리 애들이 걔 닮을까봐 이런건가요? 강헌 - 아뇨, '새끼가 건방지잖아. 누구때문에 떴는데.' 진중권- 황당하네요 정말강헌 - 전 등에 식은땀이 쫙 흘렀습니다. 전 서태지가 흔히 말하는 메이저캠퍼스. 우리가 선망하는 대학, 신해철씨처럼 하다못해 중퇴라도 했거나그랬더라면그런 공격을 저는 받지 않았을거라고 생각해요. 진중권 - 완전히 무시하고. 너 아무것도 아닌놈인데 우리가 키워줬는데 왜 까불어 이런거군요. 강헌 - 한국 사회의 상고출신 노무현에 대한 그런 이중적인 스탠스하고도 굉장히 비슷합니다. 그런 그 무시무시한 한국 기득권 내부에 또아리 틀고있는 편견이.. 굉장히 무엇이 그걸 건들였나. 왜 그사람들은 서태지보다 판을 많이 판 김건모는 안건들이고 서태지는 무엇이 그걸 건들였는가. 라고 그 방송을 기회로해서 저나름대로 추적을 해봣어요. 제가 볼때 서태지가 한 최고의 혁명은요. 대중음악에 통일의 유시를 끌어들이거나 교실이데아의 이데아로써를 만들어서가 아닙니다.서태지가 한국 대중음악에 끼친 최고의 공헌은 최고의 혁명은요. 뮤지션이 음반 산업의 자본으로부터 독립한 것이에요.가장 그만의 뻔뻔한 방식으로, 식민지 시대 이후로 한국의 음반 산업을 지배해왔던 이름바 음반산업의 기존질서를 한번에 붕괴시켰습니다예를 들어볼까요? 조용필의 전성기는 80년대에 그 10년간의 음악,조용필의 1집부터 12집까지의 모든 음악은 누구 소유입니까? 지구레코드 소유입니다.조용필은 그 최고의 10년을 보낼때도 인세 10원도 받아본적이 없어요. 그담시 사람들의 생각은 뭐냐면 '야 이거 우리가 노래를 키워줘가지고 너가 가수로 데뷔했으니 니가 나한테 고마워해야지.그래서 너는 나때문에 유명해졌으니까 밤무대가서 돈벌면되잖아.'이게 그 당시의 논리였어요. 진중권 - 밤무대 뛰어라 이거죠? 니가 알아서 먹어라. 강헌 - 그렇죠. 근데 조용필처럼 '난 밤무대 뛰기 싫은데?' 그러면 수입이 없는거에요. 사실 조용필은 재산을 크게 가져본적이 한번도 없습니다.돈을 가장 많이 벌어야할때 밤무대를 안뛰었기 때문에. 인세는 10원도 받지 못했고.그러면서 마치 시혜적으로 '그래도 얘가 톱스타인데 차도 한 대 없냐. 야 용필이한테 차 한대 뽑아줘라'마치 자신의 권리를 시혜처럼! '그래도 아파트는 한채 있어야지? 아파트 한채 뽑아줘. 그래서 그렇게 하사하면감사히 받겠습니다.' 의 주인과 노예의 관계로 만들어 놨고. 이 관계를 그 똑똑하신 신해철도 꺼트리질 못했어요. 자신이 무한궤도로 처음에 프로페셔널 뮤지션이 됐는데 그 판이 그래도 40만장쯤 팔렸는데 사장님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돈을 줄 생각을 안하더래요.그래서 이제 나머지 멤버들이 '야 해철아 그래도 니가 리더고 말도 잘하니까 우리는 언제 인세든 보너스든 언제받는지 물어봐라.' 했더니 그래서 해철이가 당당하게 기획사 사장한테 가서 저희들 판이 많이 팔린거같은데 저희는 언제 돈을 받게되나요?했더니 사장이 크게 웃으셨다는. 니가 몰라도 너무 모르는구나. 그래서 아무말 못하고 비겁하게..진중권 - 그래서 비겁자라는 그말이구나.강헌 - 비겁하게 돌아서 나왔습니다. 신해철은 또...다음, 더 웃긴얘기해드릴까요?(중략) 노찾사출신 김광석도 2집 사랑했지만이 50만장팔렸는데 음반사로부터 받은돈이 총 500만원 받았습니다. 김광석이 먹고살수있는 돈을 번것은 라이브콘서트, 소극장 콘서트로 벌었지 이름바 노찾사하고 김광석, 이런 노래 운동권이라고 부르는 집단 조차도 자신의 경제적 권익을 되찾지 못했던 판이 이 판이에요. 근데 서태지는 일개 신인가수주제에 그냥 내가 곡을 만들고 내가 노래부르고 춤을추는데 왜 돈은 니들이돈을 갖고가세요? 난 그런거 못하겠는데요? 전 제가 한거 제가 다 먹을거에요. 하고 아무렇지 않게 그냥 갖고 갔어요. 이 서태지의 등장이후로 사실상 수많은 일종의 봉기가 일어납니다. 그럼 나도. 나도.. 진중권 - 그럼 일종의 혁명이네요. 강헌 - 혁명이에요. 진중권- 혁명의 가장 유물론 적인. 강헌 - 그 봉기의 시작은 서태지입니다. 물론 그 전에 아예 그 주류 자체를 무시했던 정태춘형이 있긴하죠.진중권 - 그분은 약간 아웃사이더로.. 강헌 - 근데 이제 시장 밖에서 불법시장에서 그 영역을 캐치하신거고. 근데 그전에 정태춘형의 그 수많은 히트곡들다 지구레코드 소유에요.(중략) 그래서 사실상 대중들은 잘느끼지 못해도, 대중들이야 뭐 똑같은 돈주고 판 사면 끝나는 것이지 이게 누구한테 어떻게 배분되는지누구에게 이 음악적 권리가 있는지 알지 못하지않습니까? 제가 알기로는요. 아직도 서태지와 아이들 음반에 대한 판권, 저작권은 당연히 본인에게 있는거구요. 판권에 대해서 서태지는 그 당시 음반산업 공동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래에 음원수익에 대한 내용의 글이 있길래 생각나서 퍼왔습니다.
개뽀록.작성일 2015-01-05추천 25
-
-
-
-
[자유·수다] [본문스크랩] 진중권 강헌 문화다방] 서태지 죽이기의 근본적인 이유
진중권 - 그때 그시절 얘기 잠깐 얘기 해보자면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이 성공한 직후. 소위 주류 언론에서 느닷없이 서태지 죽이기가 시작됐거든요. 지금들으면 좀 황당한데 당시 분위기는 그랬던거죠. 어떤 상황이었는지 좀 설명해주시죠. 강헌 - 국회, 지상파방송사들, 한국 음반산업, 언론 조중동이런.. 진중권 - 뭐가 맘에 안들었던 겁니까. 강헌 - 저는 그 한복판에 있으니까. 아니 인기있는 사람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거는 이 바닥의 순리인데 왜 그렇게 다들 싫어하는거지?저도 정말 그때 궁금했어요. 진중권 - 사실 어떻게 뒤집어보면 서태지씨가 그때 뭔갈 건들인거죠? 확실하게?강헌 - 영문을 채 모른채 건드린거죠. 근데 그렇다고 서태지는 신해철과는 좀 다릅니다. 정말 신해철이 그당시에는 6촌 동생이란걸 밝히지 않았을때 당시 둘이 활동할때 참 신해철씨 다운 표현을 했어요. 제가 공식질문으로 한번 물어봤습니다. 신해철씨 서태지를 어떻게 생각하냐. 그때 신해철이 뭐라고했냐면 '그는 거침없는 낙오자다. 그래서 당당하다. 승리를 거둘 자격있다. 나는 그에 비하면 고뇌하는 비겁자수준이다.그래서 나는 그를 이길수 없고, 그렇지만 나는 작지만 그의 시대에서 나는 나의 영토가 조금은 있다. 나같은 놈이 많으니까.근데 그 고뇌하는 비겁자. 이분의 뭔가가 사실은 같은 음악에서 함축되어있습니다. 사실 그 노래의 메세지에서는 신해철이 훨씬 직설적이죠, 서태지는 직설적으로 뭔가 자신의 노래로 표현하지 않는 스타일입니다. 굉장히 뺑뺑돌리고 꼬고, 솔직히 본인도 무슨소리인지 알까 싶을 정도로 좀 미궁을 숨겨놓는. 약간 신비주의적인 스타일이라면요. 근데 거꾸로 사회적인, 특히 자신의 개인적 자유와 권리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서태지는 정말 소위 북공고 야간 1학년 중퇴자다운 거침없음과 단호함이있어요.제가 왜 서태지를 상대로 그렇게 다 죽이려고할까. 특히 기득권층이. 제가 실제로 물어본적이있습니다. 당시 mbc 보도국에서 서태지 죽이기, 서태지를 완전히 파묻으려고 작정한 다큐를 제작했어요,그 피디가 예능제작국 피디도 아니고 굉장히 진보적인 고발 다큐멘터리를 많이 만드신분이에요. 제 대학선배이고, 근데 이제 죽이는거만 넣을수 없으니 옹호하는 사람 얘기도 들어봐야하니까 절 부른거에요. 인터뷰끝나고 개인적으로 물어봤어요.왜 그렇게 서태지를 싫어하세요? 왜 죽이려고 합니까?' 그랬더니 그분이.. 아직도 귀에 쟁쟁해요.진중권 - 우리 애들이 걔 닮을까봐 이런건가요? 강헌 - 아뇨, '새끼가 건방지잖아. 누구때문에 떴는데.' 진중권- 황당하네요 정말강헌 - 전 등에 식은땀이 쫙 흘렀습니다. 전 서태지가 흔히 말하는 메이저캠퍼스. 우리가 선망하는 대학, 신해철씨처럼 하다못해 중퇴라도 했거나그랬더라면그런 공격을 저는 받지 않았을거라고 생각해요. 진중권 - 완전히 무시하고. 너 아무것도 아닌놈인데 우리가 키워줬는데 왜 까불어 이런거군요. 강헌 - 한국 사회의 상고출신 노무현에 대한 그런 이중적인 스탠스하고도 굉장히 비슷합니다. 그런 그 무시무시한 한국 기득권 내부에 또아리 틀고있는 편견이.. 굉장히 무엇이 그걸 건들였나. 왜 그사람들은 서태지보다 판을 많이 판 김건모는 안건들이고 서태지는 무엇이 그걸 건들였는가. 라고 그 방송을 기회로해서 저나름대로 추적을 해봣어요. 제가 볼때 서태지가 한 최고의 혁명은요. 대중음악에 통일의 유시를 끌어들이거나 교실이데아의 이데아로써를 만들어서가 아닙니다.서태지가 한국 대중음악에 끼친 최고의 공헌은 최고의 혁명은요. 뮤지션이 음반 산업의 자본으로부터 독립한 것이에요.가장 그만의 뻔뻔한 방식으로, 식민지 시대 이후로 한국의 음반 산업을 지배해왔던 이름바 음반산업의 기존질서를 한번에 붕괴시켰습니다예를 들어볼까요? 조용필의 전성기는 80년대에 그 10년간의 음악,조용필의 1집부터 12집까지의 모든 음악은 누구 소유입니까? 지구레코드 소유입니다.조용필은 그 최고의 10년을 보낼때도 인세 10원도 받아본적이 없어요. 그담시 사람들의 생각은 뭐냐면 '야 이거 우리가 노래를 키워줘가지고 너가 가수로 데뷔했으니 니가 나한테 고마워해야지.그래서 너는 나때문에 유명해졌으니까 밤무대가서 돈벌면되잖아.'이게 그 당시의 논리였어요. 진중권 - 밤무대 뛰어라 이거죠? 니가 알아서 먹어라. 강헌 - 그렇죠. 근데 조용필처럼 '난 밤무대 뛰기 싫은데?' 그러면 수입이 없는거에요. 사실 조용필은 재산을 크게 가져본적이 한번도 없습니다.돈을 가장 많이 벌어야할때 밤무대를 안뛰었기 때문에. 인세는 10원도 받지 못했고.그러면서 마치 시혜적으로 '그래도 얘가 톱스타인데 차도 한 대 없냐. 야 용필이한테 차 한대 뽑아줘라'마치 자신의 권리를 시혜처럼! '그래도 아파트는 한채 있어야지? 아파트 한채 뽑아줘. 그래서 그렇게 하사하면감사히 받겠습니다.' 의 주인과 노예의 관계로 만들어 놨고. 이 관계를 그 똑똑하신 신해철도 꺼트리질 못했어요. 자신이 무한궤도로 처음에 프로페셔널 뮤지션이 됐는데 그 판이 그래도 40만장쯤 팔렸는데 사장님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돈을 줄 생각을 안하더래요.그래서 이제 나머지 멤버들이 '야 해철아 그래도 니가 리더고 말도 잘하니까 우리는 언제 인세든 보너스든 언제받는지 물어봐라.' 했더니그래서 해철이가 당당하게 기획사 사장한테 가서 저희들 판이 많이 팔린거같은데 저희는 언제 돈을 받게되나요?했더니 사장이 크게 웃으셨다는. 니가 몰라도 너무 모르는구나. 그래서 아무말 못하고 비겁하게..진중권 - 그래서 비겁자라는 그말이구나.강헌 - 비겁하게 돌아서 나왔습니다. 신해철은 또...다음, 더 웃긴얘기해드릴까요?(중략) 노찾사출신 김광석도 2집 사랑했지만이 50만장팔렸는데 음반사로부터 받은돈이 총 500만원 받았습니다. 김광석이 먹고살수있는 돈을 번것은 라이브콘서트, 소극장 콘서트로 벌었지 이름바 노찾사하고 김광석, 이런 노래 운동권이라고 부르는 집단 조차도 자신의 경제적 권익을 되찾지 못했던 판이 이 판이에요. 근데 서태지는 일개 신인가수주제에 그냥 내가 곡을 만들고 내가 노래부르고 춤을추는데 왜 돈은 니들이돈을 갖고가세요? 난 그런거 못하겠는데요? 전 제가 한거 제가 다 먹을거에요. 하고 아무렇지 않게 그냥 갖고 갔어요. 이 서태지의 등장이후로 사실상 수많은 일종의 봉기가 일어납니다. 그럼 나도. 나도.. 진중권 - 그럼 일종의 혁명이네요. 강헌 - 혁명이에요. 진중권- 혁명의 가장 유물론 적인. 강헌 - 그 봉기의 시작은 서태지입니다. 물론 그 전에 아예 그 주류 자체를 무시했던 정태춘형이 있긴하죠.진중권 - 그분은 약간 아웃사이더로.. 강헌 - 근데 이제 시장 밖에서 불법시장에서 그 영역을 캐치하신거고. 근데 그전에 정태춘형의 그 수많은 히트곡들다 지구레코드 소유에요.(중략) 그래서 사실상 대중들은 잘느끼지 못해도, 대중들이야 뭐 똑같은 돈주고 판 사면 끝나는 것이지 이게 누구한테 어떻게 배분되는지누구에게 이 음악적 권리가 있는지 알지 못하지않습니까? 제가 알기로는요. 아직도 서태지와 아이들 음반에 대한 판권, 저작권은 당연히 본인에게 있는거구요. 판권에 대해서 서태지는 그 당시 음반산업 공동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그를 '대장'이라고 부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