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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수다] [펌] 이동국 선수 관련 글이네요
알싸 펌입니다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선순데 이유 없이 미움을 많이 받는게 안타깝기도 하고 공감가는 내용도 많아서 퍼왔습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출전 하기전 치명적인 부상 후달린 악플들"이동국의 부상은 대표팀을 위해서 당연한 일""모처럼 반가운 소식이다"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결정적인 찬스를 놓친 후 댓글하지만 이동국은 대한민국을 위해 뛰다가 대한민국에 의해 망쳐진 선수다.무릎 부상이 심각했지만단지 대한민국을 위해 온 몸을 바쳐 뛰었던 선수하지만 그에겐 항상 악플만이 달렸다.그리고 그에게 달렸던 항상 달렸던 악플"이동국은 국내용"하지만 정작 이동국은 강팀과 많이 부딪혀 본 적이 없는 선수다.월드컵참가: 2회 출전시간 50분여그는 월드컵을 2회나 참가했지만 출전시간은 고작 51분그리고 그는 독일전, 코트디부아르와 같은 강팀과의 경기에서도골을 넣은 적이 있으며올리버 칸은 "세상에 어떠한 골키퍼도 저 슛을 막을 수 없다" 고평가했다.그리고 이동국선수의 EPL 실패론을 삼으며 국내용을 들먹이지만그는 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저런 무릎 상태로 진출을 했다. 실패할수 밖에없었다. 운 또한 따르지 않았다.본프레레 국가대표 감독 - “윙어들의 절망적인 크로스 때문에 너무 고생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다른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줬다.” - 이집트 전 이후 이동국의 플레이를 묻는 질문에 올리버 칸 - "한국의 두번째 골은 내가 아닌 그 누가 있었어도 막을 수 없는 골이었다.” 싸빅 - “최선을 다해 수비한다면 리그에서 내가 막지 못할 선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단, 이동국은 예외다. 이동국이 정말 미치는 날엔 무슨 수를 써도 막을 방법이 없다.” STAR TV “독일 전과 쿠웨이트 전에서 나온 이동국의 골은 그것이 설령 우연이었다고 하더라도 경배 해야 할 골이다.” “마치 바티스투타의 슛을 보는 것 같다. 아시아에서 저런 슛을 찰 수 있는 선수가 있단 말인가?” 중국 CCTV “한국의 20번이 무서운 건 가끔씩 보여주는 패싱력이다. 아시아의 스트라이커 중에 저런 패스를 보여주는 선수가 과연 있는가" 아드보카트 전 국대 감독 - "나의 황태자는 이동국이다. 그만큼 완성된 기량을 가진 공격수는찾기도 힘들뿐더러 그보다 뛰어난 원톱을 찾을 수가 없다.원톱으로서의 기량만으로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 파리아스 감독 - “지금 당장 스페인, 이탈리아 1부 리그에서 뛸 수 있는 선수. 기술이 좋고 슈팅력은 최고다. 한국에 이런 스트라이커는 이동국 밖에 없다. 전술을 이해하는 머리도 좋다.” 전미들스브로 사우스게이트 감독 - "내가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이었던 그를 데려온 것은 전성기 때의비디오 테입 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가치 있고 뛰어난 선수 인지입증 되었기 때문이다." 미하엘 발락 독일 국가대표 MF - "오늘 경기 후(한국이 독일을 3-1로 이긴 경기)느꼈다.2002년 월드컵 때 20번의 저 선수가 없었다는게 우리에게는행운이었다." 전 일본대표팀감독 트루시에감독 - "미드필더 두명 줄께 이동국 줘" - 99년부터 이동국을 지켜본 일본 감독 트루시에- "이동국이 엔트리에 떨어졌단 말인가? 한국 기자분들! 그럼 우리 나카무라 슌스케와 바꾸면 안 되겠는가?(웃음)"- 2002년 5월 1일 월드컵 최종 엔트리 발표 후 한국 기자들에게박주영 - "예나 지금이나 대표팀에서 임하는 자세가 남다르다. 나 뿐만 아니라 어린 선수들이 보고 배울게 많다.” 동국이 형과 플레이하면 플레이 할 때 편하다." 모범을 보이는 선배 이동국을 높이 평가했다. 지동원 - "한국 최고의 공격수 동국이 형이 오셔서 저한테는 더 할 나위 없이 큰 기쁨입니다. 많이 보고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동국 선배에 대해 내가 할 말은 없다, 좋은선수고 내가 판단 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다, 내가 평가 할 수 없는 레벨의 선수다. 이동국 선배와의 경쟁은 내가 판단 할 일이 아니다, 정말 좋은 기량을 지닌 선배인 만큼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 라며 이동국을 향해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남태희 - (이동국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며) "이동국 선배님은 제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최고셨지요. 동국이 형한테 말을 걸어보고 싶은데 역시 어려워서 아직 말은 못 붙여봤다." 손흥민 - "동국이 형은 한국의 스트라이커 하면 손꼽히는 선수고 선배님이다. 동국이 형이 들어와 내가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득점력을 배우고 싶다, 개인적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무섭지는 않은데 아직 어색하다." 기성용 - "동국이 형 같은 경우에는 상당히 경험이 많고 저희 후배들을 이끌어 줄 수 있는 좋은 리더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동국이 형의 플레이에 대한 기대가 상당히 큽니다." 차두리 - “고교 시절, 같은 고등학생인 선수가 그렇게 한다는 걸 난 믿을 수 없었다.” 남궁도 - “가장 존경하는 선수는 이동국. 그는 나의 우상입니다.” 정경호 - “단순히 보초를 서라고 해서 선 것이긴 하지만 진심으로 존경하는 이동국 병장님의 지시였기 때문에 조금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김상록 - “당연히 건방지고 거만 할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001년 프로에서 처음 마주하고 지금까지 5년동안 이동국에게 그러한 느낌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동국에게 건방지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건방진 행동이 이동국한테 통용 되지 않아서 하는 말 일 것이다.” 김상식 - “게으르다고 하는데 뭐가 게으른 건지 모르겠다. 이동국보다 게으른 선수는 우리나라에 엄청나게 많이 있다. 오히려 이동국 보다 더 열심히 하는 선수를 찾는게 더 어렵다.” 파리아스 감독 - “지금 당장 스페인, 이탈리아 1부리그에서 뛸 수 있는 선수. 기술이 좋고 슈팅력은 최고다. 한국에 이런 스트라이커는 이동국 밖에 없다. 전술을 이해하는 머리도 좋다.” 박종환 감독 - "저기에 순발력까지 있으면 그게 세계 최고 선수지, K리그에 뭐하러 있어? 이동국이가 못한다고? 포항에서 이동국 보낸다고 하면 안 데려 갈 놈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허정무 감독 - "국내 최고의 스트라이커다. 부상으로 장기간 쉬어서 경기 감각이 떨어지더라도 90분 풀로 뛰는것 정도는 충분히 알아서 하는 선수다.”
58작성일 2013-06-28추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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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펌]박지성아버지를 욕할 수 없는 이유
박지성 아버지가 극성이다 하는 말들 많이 봤는데그럴수 밖에 없는 이유를 써볼게요시골에 살면서 주변에서 부모들이 아이들을 많이 낳아서는제대로 뒷바라지를 못해 학교에도 보내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봤었다.나 또한 등록금이 없어 학업을 포기해야만 했던 경험이 있다.그래서 난 아내와 약속을 했었다둘도 말고 하나만 낳아서 잘 키워 보자고.그래서 지성이를 낳은 후엔 더이상 자식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그후 몸이 약했던 지성이 뒷바라지에만 헌신하기로했다지성이는 태어날 때부터 유난히 몸이 약했다.집에서 잘 놀다가도 갑자기 경기를 일으켜 수차례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하루는 아내가 경기를 일으키는 지성이를 포대기로 둘러업은 채 병원을 향해 뛰어가다가행여 아이가 잘못될까 두려운 나머지 그자리에서 털썩 주저앉고 만 일이 있었다.다행히 지나가던 대학생이 아내를 발견했는데, 등에 업힌 지성이가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지성이만 안고 근처 한의원으로 데리고 가서 침을 맞게 했다.그리고 그날 저녁 집에 들어가니 지성이는 편안한 얼굴을 한 채 잠이 들어 있었고,아내는 정신이 나간 사람마냥 눈의 초점이 흐려져 있었다.그후에도지성이는 연탄가스에 중독된 적도 있었고, 다시 경기 증세가 나타나곤해 늘 병원 옆을 떠나질 못했다.운동을 하는데 체력은 절대적이다.당시 우리는 형편이 어려워 가진게 없었고 지성이가 좋아하는 운동은 시켜야 했기에부모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몸으로 부딪히는 일뿐이었다.2000년 이후 개구리를 잡지 못하게 하는 법이 생겼지만 당시엔 그런 법이 없어서 개구리가 체력에 좋다는말에 나는 전국 방방 곡곡을 돌아 다녔다 그당시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보약은 이것뿐이라는 생각에 간절함은 더했었다나는 두번째 직장을 13년간 다녔다. 하지만 몸이 약했던 지성이의 뒷바라지를 핑계로 조퇴와 결근을 일삼게 되었고,회사에선 나의 행동을 눈감아 주기도 했다하지만 양심상 도저히 회사 생활을 지속할 수 없었다.결국 사표를 내고 정육점을 차린 후에야 전국을 누비며 자유롭게 지성이의 뒷바라지를 할수가 있었다나와 아내는 워낙 궁핍하게 사는 데 이력이 나서 결혼 후 지성이 한 명만 낳아 남부럽지 않게 키우자고 했었다가진게 많지 않은 부모가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낌 없는 희생밖에 없었기에 없는 살림에도 선수들의 밥과 숙소를 제공하며 아이들이 운동에만 전념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을 했다지성이가 세류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모두들 당연히 수원에 있는 S중학교에 입학하리라 예상했었다.그러나 입학 예정자로 중학교 축구부 훈련에 참석했던 지성이가 여기저기 멍자국을 보이며 심하게 몸살을 앓았다 아무리 추궁해도 입을 열지 않는 아이를 보며 수원에 있는 모든 축구부 선수들이 입학을 하고 싶어하는s중학교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경기도 화성에 있는 안용중학교로 방향을 틀었다선생님과 학부모들 조차도 당시 내선택이 이해 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었다하지만 아버지인 내 입장에서는 아들이 명문팀이 있는 학교에 입학 하는 것 보다폭력 없이 마음 편히 축구를 할 수 있는 학교 인지가 더 중요했다지성이가 중학교 시절 난 지성이의 실력을 과대 평가 하지 않았다오히려 과소평가 하는 쪽이었다어차피 지성이가 좋아하는 축구를 선택한 이상 건강하게 대학만 들어가도 모든 신들께 감사하고 싶은 심정이었기에 중.고등학교를 선택하는 내게 가장 큰 기준은 학교 환경과 아이들을 가르치는 지도자의 인간 됨됨이였다지성이가 고등학교 1학년때 지성이는 단한번도 주전으로 뛰지를 못했다전지훈련을 가서도 연습 경기에서 조차 벤치를 지키고 있었다하지만 나는 지성이를 일단 학교에 진학 시키면 그후엔 모든걸 지도자의 뜻에 맡겼다내 아이가 주전으로 뛰지 못하고 주전자만 들고 다닌다고 해도 지도자의 생각에 따랐다지성이가 고등학교 2학년때 기존 감독을 따르는 학부모들과 이학종 선생님을 따르는 학부모들이 파벌을 형성해 극한 대립의 양상을 띄었다파벌의 가장 큰 원인은 서로 자기 아들을 주전으로 뛰게 해달라는 학부모들의 이기심 때문이었다나는 어떤 압력이 들어와도 오로지 실력만으로 자신의 기준과 원칙을 정확히 지켜 나가는 이학종 선생님을 높이 평가했다 그후 아이들이 당하는 폭력에도 귀를 닫고 눈을 감은 기존의 감독보단우리의 아이들을 위해 이학종 선생님에게도 기회를 달라는 내게,교장선생님은 수원공고의 우승과 기회를 주면 반드시 갚으라는 약속을 한후에야이학종 선생님을 감독으로 발령을 내주셨다그리고 지성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해에 수원공고는 창단 21년만에 첫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이뤄낸 성과이기에선수들도, 맘조리며 지켜본 학부모들도, 기회를 준 교장 선생님도 어찌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있었을까모두가 하나가 되어 스승을 지켰고, 그 스승과 함게 우승을 일구고, 또 그로인해 우리의 아이들은 대학을 갈 수 있게 되었다지성이가 축구를 시작한 뒤 가장 잊지 못할 일을 꼽으라고 한다면처음으로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을 때다.지성이가 막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 축구 협회로부터 올림픽 대표팀에 발탁이 됐으니내일까지 합류를 하라는 전화를 받았다그리고 바로 축구협회로 가서 대표팀 합류 통지서를 받아 들고너무 좋아 흥분한 나머지 수원 톨게이트를 그냥 지나치기도 했다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도중 전화를 받고 집으로 부랴 부랴 온 지성이 또한대표팀 선수중 누가 부상을 당한거냐며 농담하지 말라고 믿지를 못하다,대표팀 소집 통지서를 제눈으로 보곤 소리를 지르며 온집안을 펄쩍 펄쩍 뛰어다녔다 지성이가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한뒤 혼자 조용히 훈련장을 찾아간적이 있었다지성이가 대표팀에서 어떻게 뛰고 있는지 궁금하고 설레는 맘에 훈련장까지 찾아가게 된 것 이다그때 다른 선수 부모들 틈에서 조용히 훈련을 지켜 보고 있는데 지성이를 보며 소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박지성이 대체 누구야? 어디서 굴러다니던 애야?""무슨 빽을 썼나보지. 아니면 허정무 감독 친척이든가"다른 선수들의 부모가 하는 얘기를 듣고 있자니 화가 났지만지성이는 그당시 연습생 신분이나 다름없는 처지였기에충분히 그런 오해를 받을 수 있었을것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지성이는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면서 외국진출에 대한 꿈을 갖기 시작했다축구를 더 잘하고 싶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중 하나는 선배들의 구타를 견뎌내기엔 지성이는 약했다거기에 학연과 지연에 따라 대표 선수 등락이 결정되는 한국 특유의 축구 문화를 감당해 내기도 힘들었기에 그때부터였을까, 지성이가 한국에서 축구를 했다간 그저 평범한 선수로 머물다은퇴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선배들 등쌀에, 또한 줄서기 좋아하는 일부 사람들의 '사심'에 의해 제대로 성장도 못하고주저 앉을것만 같아 겁이 났다그런 가운데 명지대 2학년 초에 일본 J리그로부터 입단 제의가 들어왔다당시 우리는 J리그에 대해 잘 모르던 터라 그들이 러브콜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그러나 일본에서 활약했던 이학종 감독님도 주변 사람들도 일본 축구는 실력으로만 통한다는 말에 지금 이 제안마져 거절한다면 더이상의 기회는 오지 않을거 같다는 생각에 계약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드디어 2003년 1월 5일 네덜란드로 출국했다 하지만 지성이는 곧 부상을 당했고 제대로 뛰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렇다 보니 스스로 선택한 길어었지만 네덜란드에서의 생활은 점점 더 힘들고 초조하게 만들었다생소한 유럽 생활에서 겪는 고달픔은 '새발의피'였다아인트호벤 팬들의 야유가 지성이를 나와 아내를 너무나 힘들게 만들었다지성이가 볼이라도 터치를 할때면 지성이에게 맥주캔을 집어 던지며 빠지라는 소리와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야유와 비난이 홈구장에 가득 울려 퍼졌다그 관중들 틈에서 아내와 나는 한없이 움츠러 들 어 지성이를 지켜 볼 수 밖에 없었고네덜란드에서의 생활은 지옥이나 다름이 없었다자신이 선택한 길 때문에 하루에도 수십번씩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며마음속에서 전쟁을 치루고 있을 지성이에겐 티를 낼수가 없었다나는 그런 지성이를 보며 "우린 괜찮아. 지성아. 관중들의 야유가 노랫소리라고 생각해.너에 대한 기대가 컸기에 실망도 큰거니깐 그들의 마음도 이해를 해야한다.여긴 한국이 아닌 외국이고, 넌 용병으로 온거니까. 그리고 네 가슴엔 태극기가 그려져 있다는 것도 잊지 말고"란 말밖엔 해줄 수 없었다 "아무래도 네덜란드란 나라가 절 싫어하나봐요.마음먹은대로 몸이 움직여 주질 않으니까 너무 힘들어요.아무 생각 없이 공만 찼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요"지성이는 정신적인 강박 관념에 시달리는 자신과아인트호벤 홈팬들의 야유가 자신을 주저 앉게 만든다는 생각에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힘없는 모습을 보일때마다 남모르게 가슴을 쳐야했다한국 언론에서는 어떻게든 잘해 보려고 이악물고 절치부심하는 지성이에게미확인 소문을 마치 사실인양 1면으로 작성하며 지성이의 부정적인 기사들을 쏟아냈다그로인해 지성이와 우리 가족은 너무 큰 상처를 받았다그후 우리 가족들은 인터넷을 보지 않았다 기자들의 전화 또한 받지 않았다지성이가 축구에만 전념할수 있도록 모든 생활을 지성이에게 맞춰나갔다지성이가 훈련장에 나가면 지성이 몰래 곧장 뒤 따라나가서 훈련하는걸 지켜보며마음속으로 수백번 수천번 응원을 해줬고 지성이가 귀가를 하기전엔 지성이 모르게 미리 집으로 돌아와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해 놓고 기다렸다이때 만큼은 아내와 내가 서로 똘똘뭉쳐 지성이가 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했다2003년 12월 팬들의 야유는 절정에 달했다지성이는 오늘보다 내일이, 내일보다는 모레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그런데 성장이 아닌 정체기, 침체기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큰 자괴감에 빠져,경기장에 서 있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고 말을 하며 점점 자신을 사지로 내몰고 있는듯 했다 급기야 지성이는 "아빠 축구가 이렇게 피 말리는 운동인 줄 알았으면 하지 말 걸 그랬어요"라며내게 SOS를 보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나는 그런 지성이를 보며 가슴이 찢어지는듯 했지만 나는 늘 그랬듯 마음을 굳게 먹고 잡아줘야했다한없이 나약해져 울고 있는 지성이를 앉혀놓고 네덜란드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돌아갈곳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행여 일본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라면 축구 유니폼을 입고서가 아닌 여행이나 가라고 말했다지성이가 이 위기를 잘 극복해 내야 앞으로 어떤 일이 닥쳐도 주저앉지 않고 스스로 일어날 수 있을 것 만 같았다2004년 3월부터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지성이의 플레이가 살아나면서 홈팬들의 야유도 급격히 줄어 들었고오히려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는 팬들이 늘어났다그리고 지성이가 그제서야 웃음을 되찾는걸 보며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조금씩 털어냈다지성이가 축구 선수로 뛰고 있는 한 기자들과의 관계는 굉장히 중요하다일부러 멀리하기도, 가까이 하기도 어려운 사람들이 기자들이다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지성이와 개인적으로 연락이 닿지 못하다 보니나에게 전화를 해서 지성이에 대해 묻곤한다 지성이는 이런 나에게 제발 인터뷰 좀 하지 말라 하지만행여 기자들이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 지성이에 대해 안좋은 이미지라도 생길까봐 나라도 도움이 된다면 기자들과 좋은 관계를 이어 가고 싶었다솔직히 나 또한 인터뷰를 하는게 힘들긴 마찬가지다 나는 혼자고 전화를 하는 기자들은 수십명이다 보니그 전화를 일일이 받기도 힘들고 안받으면 지성이에게 안좋은 기사가 쏟아질때도 있다그러니 내가 나서서 욕을 먹더라도 지성이는 욕먹지 않고 수월한 길을 걷도록 해줘야 했다이건 어쩔 수 없는 부모의 심정인지도 모른다지성이는 구설수에 오르는걸 병적으로 싫어한다네달란드에서 선수 생활 이후 내가 봐도 심하다 할 정도로 매사에 조심, 또 조심하며축구선수로서 자기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망각하지 않으려 한다하지만 이런 지성이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실수를 할때도 있다가령 단골 미용실에서 마주 친 연예인과 찍은 사진 한장이 스캔들로 터질때가 있다선수들은 어떤 기사보다 스캔들 기사로 인해 그날 경기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다지성이는 작은 스캔들에도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 지금은 웃으며 넘기기도 하지만예전엔 아니라고 해명을 해도 기사가 끊이지 않았고 그로 인해 경기전 컨디션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도 했다아무래도 스캔들은 지성이 혼자가 아닌 상대방도 피해를 주는일이라 더 신경이 쓰일 수 밖엔 없다나는 지성이의 신부감으로 "내조를 잘하는 여자"를 원한다요즘 같은 세상에 이 무슨 답답한 소리냐.반문해도 할 수 없다내가 바라는 내조를 잘하는 여자는 강인한 여성이다. 세상 어떠한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지성이를 잡아 줄 수 있는 여자를 원한다그래서 농담 삼아 순댓국집 딸을 며느릿감으로 원한다 했더니 단골 순댓국집에서 우리집에 딸들이 많은데 소개시켜주냐는 말에 한참을 웃었던 적이 있다아무래도 지성이는 일반인들과 다르기 때문에 신경써야 될 부분이 몇십배로 많다조그마한 일에도 컨디션이 좌지우지 되는 직업을 가졌고 그로 인해 경기력에 영향을 줄 수도 있기에가족들은 힘든티도 제대로 낼 수가 없고 언제 어떻게 기자들에게 노출이 되어 구설수가 터질지 모르기에 항상 조심해야한다이걸 다 감당해 내려면 지성이에 신부감인 여성은 강인해야한다 나는 지성이가 빨리 결혼을 했으면 좋겠다 결혼만 하면 지성이에게 두르고 있는 안테나망을 모두 걷어 버리고아내와 함께 박지성 아버지가 아닌 인간 박성종으로 여행도 다니며 잃어 버렸던 시간을 이제라도 되찾고 싶다 그전까진 아마 내 잔소리는 계속 될거 같다그래서인지 요즘 외국에서 함께 지내다 내가 한국으로 들어가는 날이면 지성이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지는걸 느낄 정도다한가지 바램이 있다면 지성이가 아버지가 됐을때, 내가 만약 이세상에 존재 하지 않는다면,내가 아버지의 잔소리를 그리워하듯, 지성이 또한 가끔 내잔소리가 그리워 질때가 있었으면..한다박지성은 어렷을때 죽을고비를 수차례 넘길 만큼 몸이 약했고그로인해 아버지는 박지성이 축구를 시작한다고 했을때혹시나 건강에 무리라도 갈까봐 전국을 돌아다니면 좋다는 개구리까지 잡아서 먹였다 해요그후에도 몸이 약한 아들 걱정에 주말엔 같이 운동을 하며 체력을 키워줬고,박지성이 전지훈련이라도 떠나야 할때엔 박지성 아버지도 같이 가야 할 정도로 초등학교때까진 몸이 약했다네요 그래서 아버지는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시고 박지성 뒷바라지를 하기 시작하신거구요회사를 그만두시고 차린 정육점 일은 어머니가 하시며 생계를 겨우 이어갔다고 해요 중학교를 가야 할때 구타를 당한 아들을 보며 명문 중학교를 포기 하고 집에 서 먼 학교를 보내며 지켜봐야 했고고등학교때도 아버지의 노력으로 이학종 선생님이 감독님까지 되셨어요우승을 한 후엔 선수들이며 학부모들은 박지성 아버지에게 찾아와 고맙다고 따로 인사도 했다 하고교장 선생님도 고맙다고 했다해요 그후에도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박지성을 지금에 자리까지 올려놔주신분이 아버지세요지금도 왜 아버지가 자꾸 인터뷰를 하냐 하시는데 박지성이 인터뷰를 안하니박지성 매니지먼트 이사이자 대표로 박지성 대신 총알받이를 하고 계신거에요혹여나 인터뷰를 안하게 되면 다음날은 추측성 기사들로 박지성은 난도질이 되어 있고매일 아침 자신의 기사를 체크한다는 박지성은 그날 경기에 영향을 받을수도 있겠죠그러니 안할수가 없겠죠 아버지가 괜히 내가 박지성 아버지다 우쭐해서 하는게 아니라요.. 그리고 아시다시피 PSV에서 박지성이 엄청난 슬럼프를 겪었기에박지성 아버지 어머니는 언론에 노출되는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히딩크 감독님과 갖은 노력을 다 하셨다고 하네요그후로 박지성이 성격이 변해 본인이 언론에 노출 되는것도 구설수에 오르는것도 병적으로 싫어하게 됐다고 하구요 그리고 시월드다 뭐다 말도 많은데오히려 박지성이 결혼을 하게 되면 박지성한테 손 떼고 자신의 이름으로 살고 싶다고 하셨으니겪어 보지도 않은 시월드 얘기나 카더라식 루머로 박지성선수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합니다-출처: I Love Soccer (축구동영상)
검선작성일 2013-06-25추천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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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박지성이 들었던 최고의 황홀한 말
나는 수원공고를 나왔다. 어려서부터 축구를 했고,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축구 하나만을 보고 살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당장 프로에 입단할 생각만 했다.
그런데 대기업 프로축구단 테스트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난 그때 별 볼일 없는 까까머리에 말라깽이 고등학생에 불과했다.
프로입단을 희망하는 풋내기 축구선수가 어디 나 뿐이었겠는가? 수십, 수백명의 학생 중에서 계산 빠른 프로축구단의 감독이나 스태프의 눈에 들려면 뭔가 남들과는 달라도 분명히 달라야 했다. 키가 크거나 체격 조건이 좋거나, 그것도 아니면 공격이건 수비건 여하튼 특별히 잘하는 장기라도 있어야 하는데,
난 그런 조건 중에 하나도 맞아 떨어지는 것이 없었다.
게다가 외모도 평범하고 성격도 내성적이라 좌중을 휘어잡는 스타성마저 없었으니 그들이 탐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대학팀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 관동대, 동국대 할 것 없이 다 퇴짜를 맞았다.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명지대학교 김희태 감독님 눈에 들어 어렵사리 대학에 진학했다. 그때까지 내 인생은 늘 그랬다. 남들 눈에 뜨지 않으니 "깡다구" 하나로 버티는 것이었고, 남이 보든 안 보든 열심히 하는 것을 미덕인 줄 알고 살았다.
덕분에 허정무 감독님이 사령탑으로 계시던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했고,
얼마 안 있어 일본 교토팀 선수로 스카우트 되었다. 그리고 지난해 월드컵 평가전에 우리나라 대표팀에 합류했다. 그 당시 나는 일본에서 활동했던 탓에 국내 선수 중에 가깝게 지내는 동료도 딱히 없어 늘 혼자 다녔다.
나를 주목하는 사람도 없었고 각기 포지션에는 이미 이름난 선수들이 꽉 들어차 있어 갓스물 넘은 어린 나에게까지 기회가 올 것이란 욕심은 애당초 부리지도 않고 있었다.
경험 쌓는 거고 본선 떄 한 경기 뛰면 좋겠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평가전에 임했다. 그런데 히딩크 감독님은 평가전에서 나에게 예상 외로 많은 기회를 주었다.
처음엔 10분정도 시합에서 뛰게 하더니 다음번에 20분을, 그 다음번엔 전반적을 모두 뛰게 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감독님은 평가전이 있을 때마다 꾸준히 나를 시함에 내보낼 뿐 다른 언질은 전혀 없었다.
언어소통이 안 돼 감독님이 하는 말 중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오른쪽(Right)", "왼쪽(left)" 뿐이라
다른 말씀을 하셨다 해도 알아듣지 못했을 테지만 언론도 나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난 언제나처럼 눈에 띄지 않는 선수였을 뿐이고, 감독님의 작전지시나 전략은 지금껏 내가 알고 있던 축구와는 또 다른 세계라 그걸 이해하느라 다른 생각을 할 여력도 없었다. 그런데 그 날은 달랐다. 미국 골드컵때라고 기억된다.
나는 왼쪽 다리에 부상을 입어 시합에 나가지 못해 텅빈 탈의실에 혼자 남아 있었다.
잘할 수 있는 기회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보여야 할 그 중요한 때에 하필이면 부상을 당했나 싶어
애꿎은 다리만 바라보며 맥이 빠져 앉아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히딩크 감독님이 통역관을 대동하여 나타났다.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오신 감독님은 영어로 뭐라고 말씀하셨다.
무슨 말인지 몰라 통역관을 바라보았다. "박지성 씨는 정신력이 훌륭하대요.
그런 정신력이면 반드시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얼떨떨했다. 뭐라 대답도 하기 전에 감독님은 뒤돌아나가셨고 나는 그 흔한 "땡큐" 소리 한 번 못했다.
가슴이 두근 거렸다. 늘 멀리 있는 분 같기만 했는데,
그런 감독님이 내 곁에 다가와 내 정신력이 훌륭하다는 말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솟았다. 더욱이 그 말은 내 심중을 꿰뚫고 있었다. 정신력,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나 일지라도 오래전부터 내가 믿어왔던 것은 죽는 한이 있어도 버티겠다는 정신력이었다. 초등학교 땐가 중학교 때 축구부 감독님이 술에 취해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선수들에게 자신이 올 때까지 팔 굽혀펴기를 하라고 지시하곤 휑하니 가버린 일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대충 상황을 파악하고 해가 뉘엿뉘엿 지면서 집으로 돌아가 버렸을 때도 나는 감독님이 오시기만을 기다리며 자정이 넘도록 팔굽혀펴기를 했다. 비록 술에 취해 한 말일지언정 감독님의 지시라 따라야 한다는 고지식한 성격에다 어디까지 할 수 있나 나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은 오기가 생겨 했던 일이었다.
한 가지 덧붙이면 나는 평발이다. 한 병원 의사는 내 발을 보고 평발인 선수가 축구를 하는 것은 장애를 극복한 인간 승리라 말하기도 했다. 난 그렇게 보잘 것 없는 나의 조건을 정신력 하나로 버텼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눈에 띄지 않는 정신력 따위를 높게 평가하지는 않았다.
당장 눈에 보이는 현란한 개인기와 테크닉만 바라 보았다. 그런데 히딩크 감독님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여드름 투성이 어린 선수의 마음을 읽고 있기라도 한 듯 "정신력이 훌륭하다" 는 칭찬을 해주셨던 것이다.
그 말은 다른 사람이 열번 스무번 축구의 천재다,
신동이나 하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더 내 기분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어려서부터 칭찬만 듣고 자란 사람은 칭찬 한번 더 듣는다고 황홀감에 젖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난 그 칭찬을 듣는 순간 머리가 쭈뼛 설만큼 나 자신이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월드컵 내내 그 날 감독님이 던진 칭찬 한 마디를 생각하며 경기에 임했다. 내 정신력이면 분명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며 공을 몰고 그라운드를 누비며 달렸다. 침착하고 조용한 성격이라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달갑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히딩크 감독님이라면 어디선가 또 나를 지켜보며 조용한 눈빛으로 격려하고 있을 거란 생각에 자신감이 생겨났다. 만약 내가 히딩크 감독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라는 사람이 이름 꽤나 알려진 유명 스타가 되었다거나
부모님께 45평짜리 아파트를 사드릴 만큼 넉넉한 형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전보다 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나"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감독님이 던진 채 1분도 안되는 그 말 한마디는 앞으로 내가 살아갈 나머지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면죄자작성일 2012-07-06추천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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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축구선수 삼국지
여포 = 리오넬메시天下第一관우 = 카카 모든면에서 밸런스를 갖춘 엘리트무장 거기에 인격까지갖춘 팔방미인장비 = 호날두 불세출의 영웅들이지만 철이 덜듬조자룡 = 토레스 실력과인격을 모두겸비했다둘다 한세력(클럽)의 충신이다대의를 품고있다마초 = 루니 돌격대장한세력(클럽)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다황충 = 스콜스노장은 죽지않았다활의달인 = 중거리슛의 달인위연 = 발로텔리 골칫거리이지만 실력자라서 계륵과같은존재반골의 상이지만 실력자이기에 제갈량 모른척함 = 실력자이기에 무닝요 그의 경솔함 어찌하지못함 왕쌍 = 피터크라우치 키가 8척문앙 = 가레스베일제2의 조자룡으로 평가받았다 = 제2의 긱스로 평가받고있다호나우두 = 헌제허수아비황제제라드 = 장임기울어져가는 나라의 마지막 충신메수트 외질 = 육손혜성처럼나타나 약관의 나이에 중원의사령관이됨후안마타 = 강유제갈량(비야),조자룡(실바)등이 떠나고 재정적으로 어려운촉나라(발렌시아)의 마지막기둥이청용 = 관흥떠오르는 신예요화 = 박지성 꾸준함의 대명사야망이없이 관우(퍼거슨)만 바라보고 삼하후무 = 이동국 골결정력부족 = 우유부단처음에 그럴싸하게 출전했다가 제갈량에게 기록적인 대패를당하고 위나라에서 쫒겨남 = 처음에 그럴싸하게 잉글랜드진출했다가 영국기자에게 epl최악의 공격수로 평가받고 방출당함조조 = 무리뉴승리를 위해서 사소한것도 중요시한다 기자회견이나 경기장에서의 임기응변제갈량 = 히딩크 전략, 전술, 경영능력에서 이감독을 따라갈자는없다러시아감독때 지각한 선수를 바로 집으로 돌려보냄 (눈물을 머금고 마속참수하다),약한세력에 들어가 뱀의머리가 되는게 더욱 현명한처사라는걸 알고있음(촉나라,대한민국,러시아,호주)원소 = 라파엘베니테즈저수,전풍등의 충신들을 내치고 곽도,봉기,심배를 가까이해 결국 조조에게 대패당함 = 사비알론소라는 충신을 내치고 아퀼라니,글렌존슨등을 영입해 결국 빅4자리를 내줌호지슨 = 조진압도적인 전력을 망쳐버림주유 = 세스크파브레가스"파브레가스를 이세상에 탄생케 하시고 왜 이니에스타를 또 탄생케 하셧습니까!"노숙 = 베베유비 = 퍼거슨출중한 군주였으나 의형제 관우가 떠나고 난폭해짐 = 명감독이었으나 호날두가 떠나고 노망남오질 = 로벤최고의추남차범근 = 전위축구실력은최고이나(무력) 감독능력은최저임(지력)이천수 = 맹달이빨때문에 망함 이곳저곳 떠돌아다님드로그바 = 남만왕맹획 (야야투레 = 올돌골, 아데바요르 = 목록대왕, 에브라=금환삼결)외모가 닮음 원주민삘남 허정무 = 유장 얼굴이 비슷함 둘다 능력없음화타 = 세브첸코경기도중 실신한 존테리를 의술로 구하다예형 = 펠레온갖저주를 퍼붇고 다님그가 입을여는걸 좋아하는이는 세상에 한사람도 없다로시츠키 = 곽가단명하지만 않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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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박지성 감동 돋네...
나는 수원공고를 나왔다. 어려서부터 축구를 했고,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축구 하나만을 보고 살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
면 당장 프로에 입단할 생각만 했다. 그런데 대기업 프로축구단 테스트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난 그때 별 볼일 없는 까까머리에 말라깽이 고등학생에 불과했다.
프로 입단을 희망하는 풋내기 축구선수가 어디 나뿐이었겠는가?
수십, 수백 명의 학생 중에서 계산 빠른 프로축구단의 감독이나
스태프의 눈에 들려면 뭔가 남들과는 달라도 분명히 달라야 했다.
키가 크거나 체격 조건이 좋거나, 그것도 아니면 공격이건 수비건
여하튼 특별히 잘하는 장기라도 있어야 하는데, 난 그런 조건 중에
하나도 맞아떨어지는 것이 없었다. 게다가 외모도 평범하고 성격도
내성적이라 좌중을 휘어잡는 스타성마저 없었으니 그들이 탐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대학팀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
관동대, 동국대할 것 없이 다 퇴짜를 맞았다.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명지대학교 김희태 감독님 눈에 들어 어렵사리 대학에 진학했다.
그때까지 내 인생은 늘 그랬다. 남들 눈에 띄지 않으니 ‘깡다구’
하나로 버티는 것이었고, 남이 보든 안 보든 열심히 하는 것을 미덕인
줄 알고 살았다. 덕분에 허정무 감독님이 사령탑으로 계시던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했고, 얼마 안 있어 일본 교토팀 선수로 스카우트되었다.
그리고 지난해 월드컵 평가전에 우리나라 대표팀에 합류했다.
그 당시 나는 일본에서 활동했던 탓에 국내 선수 중에 가깝게
지내는 동료도 딱히 없어 늘 혼자 다녔다. 나를 주목하는 사람도
없었고 각기 포지션에는 이미 이름난 선수들이 꽉 들어차 있어
갓 스물 넘은 어린 나에게까지 기회가 올 것이란 욕심은 애당초
부리지도 않고 있었다. 경험 쌓는 거고 본선 때 한 경기 뛰면
좋겠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평가전에 임했다.
그런데 히딩크 감독님은 평가전에서 나에게 예상 외로 많은 기회를
주었다. 처음엔 10분 정도 시합에서 뛰게 하더니 다음번에 20분을,
그 다음번엔 전반전을 모두 뛰게 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감독님은
평가전이 있을 때마다 꾸준히 나를 시합에 내보낼 뿐 다른 언질은
전혀 없었다. 언어소통이 안 돼 감독님이 하는 말 중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오른쪽(right), 왼쪽(left)'뿐이라 다른 말씀을 하셨다
해도 알아듣지 못했을 테지만 언론도 나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난 언제나처럼 눈에 띄지 않는 선수였을 뿐이고, 감독님의
작전지시나 전략은 지금껏 내가 알고 있던 축구와는 또 다른 세계라
그걸 이해하느라 다른 생각을 할 여력도 없었다.
그런데 그 날은 달랐다. 미국 골드컵 때라고 기억되다. 나는 왼쪽
다리에 부상을 입어 시합에 나가지 못해 텅 빈 탈의실에 혼자 남아
있었다. 잘할 수 있는 기회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보여야 할 그 중요한
때에 하필이면 부상을 당했나 싶어 애꿎은 다리만 바라보며 맥이
빠져 앉아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히딩크 감독님이 통역관을 대동
하여 `나타났다.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오신 감독님은 영어로 뭐라고
말씀하셨다. 무슨 말인지 몰라 통역관을 바라보았다.
“박지성 씨는 정신력이 훌륭하대요. 그런 정신력이면 반드시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얼떨떨했다. 뭐라 대답도 하기 전에 감독님은 뒤돌아나가셨고 나는
그 흔한 ‘땡큐’ 소리 한 번 못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늘 멀리 있는
분 같기만 했는데, 그런 감독님이 내 곁에 다가와 내 정신력이 훌륭
하다는 말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솟았다.
더욱이 그 말은 내 심중을 꿰뚫고 있었다. 정신력,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나일지라도 오래전부터 내가 믿어왔던 것은 죽는 한이 있어도
버티겠다는 정신력이었다. 초등학교 땐가 중학교 때 축구부 감독님이
술에 취해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선수들에게 자신이 올 때까지 팔
굽혀펴기를 하라고 지시하곤 휑하니 가버린 일이 있었다. 다른 친구
들은 대충 상황을 파악하고 해가 뉘엿뉘엿 지면서 집으로 돌아가
버렸을 때도 나는 감독님이 오시기만을 기다리며 자정이 넘도록
팔굽혀펴기를 했다. 비록 술에 취해 한 말일지언정 감독님의 지시라
따라야 한다는 고지식한 성격에다 어디까지 할 수 있나 나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은 오기가 생겨 했던 일이었다. 한 가지 덧붙이면 나는
평발이다. 한 병원 의사는 내 발을 보고 평발인 선수가 축구를 하는
것은 장애를 극복한 인간 승리라 말하기도 했다. 난 그렇게 보잘것
없는 나의 조건을 정신력 하나로 버텼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눈에
띄지 않는 정신력 따위를 높게 평가하지는 않았다.
당장에 눈에 보이는 현란한 개인기와 테크닉만 바라보았다.
그런데 히딩크 감독님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여드름투성이 어린
선수의 마음을 읽고 있기라도 한 듯 ‘정신력이 훌륭하다.’는 칭찬을
해주셨던 것이다. 그 말은 다른 사람이 열 번 스무 번 축구의 천재다,
신동이다 하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내 기분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어려서부터 칭찬만 듣고 자란 사람은 칭찬 한 번 더 듣는다고 황홀감에
젖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난 그 칭찬을 듣는 순간머리가 쭈뼛 설만큼
나 자신이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월드컵 내내 그날 감독님이 던진
칭찬 한마디를 생각하여 경기에 임했다. 내 정신력이면 분명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며 공을 몰고 그라운드를 누비며
달렸다. 침착하고 조용한 성격이라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달갑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히딩크 감독님이라면 어디선가 또 나를 지켜보며
조용한 눈빛으로 격려하고 있을 거란 생각에 자신감이 생겨났다.
만약 내가 히딩크 감독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라는 사람이 이름 꽤나 알려진 유명 스타가 되었
다거나 부모님께 45평짜리 아파트를 사드릴 만큼 넉넉한 형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전보다 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나‘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감독님이 던진 채 1분도 안 되는 그 말
한마디는 앞으로 내가 살아갈 나머지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 내 삶을 바꾼 칭찬 한마디 - 박지성 >
새터데이작성일 2010-06-29추천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