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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자칭보수는 북한 및 사회주의를 무조건 나쁘게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역사공부를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최대한 객관성을 가지고 역사를 접하려고 하는 사람이구요. 근데 제가 역사를 공부하면 할 수록 자칭보수들은 북한 및 사회주의를 한자의 뜻으로 해석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단어 자체에 불안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제 의견은 앞으로 좀 위험하고 자극적일 수 있습니다. 그냥 역사를 공부하는 하나의 사람으로써 의견을 내는 것이니 제가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조언해주시고 저의 의견을 한번 들어봐주세요. 1. 사실 소련, 중국, 북한식 공산주의는 실패작입니다. 칼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를 운운하며 그에 대한 방법을 제시했지만 위의 세 나라는 그 방식을 따르지 않았고 너무 급진적으로 진행하다보니 안좋은 결과를 내버리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그들의 방식은 그냥 독재이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고 공산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닙니다. 왕권을 이용한 중앙집권체제, 즉 독재입니다. 그리고 애초에 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는 ‘인간의 도덕적 올바름과 서로간의 배려, 믿음’ 이 완벽하다는 뒷바탕이 갖춰져야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유럽 몇몇 소규모 국가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사회주의 이념을 잘 따라가는 국가가 있지만 그 국가들은 애초에 국민에게 요구하는 세금도 어마어마 하기에 눈에 띄게 벌지 않아도 그저 그렇게 노후까지 편안하게 살 수가 있죠. 2. 우리가 말하는 소위 빨갱이는 사실 독립군 및 우리를 도와주려는 중국 국민당의 군대였다. 중국 국민당의 군대의 색은 빨간색 이었죠. 장제스는 우리나라의 독립을 여러가지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자신들을 위해 강력하게 원했고, 우리나라 독립군과 연합하여 자신을 돕고, 우리나라도 돕는 서로 협약관계로 군대를 창설했죠. 장제스 덕에 중국에서 훈련도 받고 무장도 한 것 아니겠습니까? 6.25 전쟁의 영웅 김홍일 장군도 장제스 최측근이었죠. 1만 5천의 수년간 훈련된 중무장한 독립군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장제스, 그리고 그의 빨간색이 도움을 주었죠. 안타깝게도 쳐들어가기 바로 직전에 일본이 항복하여 아무런 활약도 할 수 없었지만…. 이승만이 남한에 미국을 등에 엎고 대한민국 정부를 세우고, 친일파 인사들을 대거 등용하면서 남한에 있던 독립투사들을 때려잡고 고문하고 죽이고 추방하고 난리도 아니었죠. 때문에 현재 가장 논란이 많은 인물 중 하나인 김원봉이 노덕술로 인해 북한으로 도망친 것 아니겠습니까? 다만 6.25 전쟁 전에 북한에서조차 숙청당했지만… 현존 친일파 새끼들은 그냥 빨간색이라면 이유없이 무조껀 나쁜놈! 이라고 이미지를 씌워버리더라구요. 그 빨간색은…사실 일제강점기 중 우리 광복군의 최후이자 최대의 공격이 될 역사적인 사건의 주요 색이 될뻔했는데… 진짜 자꾸 빨갱이 빨갱이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가족마저 등지고 연고지도 없는 머나먼 중국땅에 들어가서 힘든 훈련을 견뎌가며 싸우려고 준비했던 우리 용감하고 멋진 독립투사들을 이딴식으로 무시해서는 절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독립군이 북한 편에 서서 남한을 치고내려온 것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버린 이승만과 친일파 작자들은 그들을 욕해선 안됩니다. 그들에겐 북한 및 독립군을 무조껀 나쁜 인간으로 만들어야겠죠. 그래야 자신들의 잘못이 덮어지니까… 3. 절대 악이란 없습니다. 변질된 악은 존재하죠. 사회주의 및 그 아래 공산주의는 절대 나쁜 이념이 아닙니다. 자칭보수 친일파 쓰래기 새끼들이 자꾸 나쁜 이미지 프레임을 씌우려고 해서 그 단어 자체를 쌍욕과 같은 개념으로 쓰니까 문제죠.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은 완벽히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어짜피 현실에서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섞여서 생활하고 있잖습니까? 결국 우리 인간은 어느 하나의 이념으로 뭉칠수가 없는 100% 객관적이지 못한 인간일 뿐이라는 거죠. 4. 결론 말이 길어졌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빨갱이라는 단어를 나쁘게 좀 쓰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들의 그 당시의 상황, 처절함, 마음을 생각한다면…역사를 눈꼽만큼이라도 공부해봤다면 절대 그런말이 안나올 법 한데 도데체 왜 그러는건지 이해가 안가네요… 우리는 한민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발 그들을 적으로 보지맙시다. 우리의 주적은 일본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나뉘어서 싸우는 것도 결국 일본 때문 아니겠습니까? 북한을 몰아세워서 다시한번 한반도를 전쟁의 땅으로 만들지 말고 일본을 몰아냅시다.
백명훈작성일 2020-09-30추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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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2020년 8월 호국인물: 김홍일 육군 중장
전쟁기념관은 8월의 호국인물로 김홍일(金弘壹) 육군 중장을 선정하였다. 고(故) 김홍일 육군중장은 대한제국 시기인 1898년 9월 23일, 평안북도 용천군 에서 태어났다.그는 계몽주의 독립운동의 본산이었던 오산학교 졸업 후, 황해도 신천의 경신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지만,오산학교 출신자들이 항일운동 혐의로 탄압을 당하자 이를 계기로 항일무장투쟁에 투신하였다. 1920년, 구이저우[貴州]군 소위로 임관 후 무장투쟁이 치열하던 연해주 대한의용군사회에서 근무하였다.1926년 국민혁명군 소령이 된 후, 1927년 용담(龍潭)전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고,1931년에는 상하이 병기창 주임으로서 이봉창·윤봉길에게 폭탄을 제공해 임시정부의 의열 투쟁을 지원하였다. 1938년, 중일전쟁 만가령 전투의 승리를 이끌어 외국인으로서 드물게 국민혁명군 소장으로 진급하였다.그는 임시정부의 권유로, 1945년 한국광복군 참모장에 취임하여 광복군의 육성에 힘썼다.대한민국 정부가 수립 직후, 귀국하여 육군준장으로 특별 임관하였고, 이듬해 소장으로 진급하였다.6·25전쟁이 발발 당시 육군참모학교장이었던 그는 6월 28일 시흥지구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서울 북방에서 분산 철수하는국군 부대를 수습하여 한강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그의 지휘를 통해 국군은 한강에서 6일 동안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였고,미국이 참전을 결정하고 첫 지상군을 한반도에 파견하는 귀중한 시간을 확보하였다. 7월 4일에는 제1군단장에 취임하여 중부전선의 지연전과 낙동강선 방어 작전을 지휘하였다. 이후 육군종합학교장으로서 초급간부 양성에 전념하던 그는 1951년 3월 중장으로 예편하였다.그리고 대만대사, 외무부장관, 국회의원, 신민당 대표, 광복회장으로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그는 1980년 8월 8일, 향년 83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정부는 군인으로서 그의 공을 기려 1951년 7월 26일 태극무공훈장을, 독립운동 유공으로서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수여하였다.그가 타계한 직후인 1980년 8월 11일에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여 그의 공로를 드높였다. [출처: 전쟁기념관 https://www.warmemo.or.kr/front/viewAritcle.do] ------------------------------------------------------------------------------------------------ 몇일전 백선엽 현충원 안장 논란때, 대한민국 참군인으로서 유튜브 '황현필 한국사'에서도 언급되신 김홍일 육군 중장님이 2020년 8월의 호국인물로 선정되셨습니다 이분이야말로 대한민국 명예원수로 추대되어야 한다고 생각되기에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올립니다
아쿨라작성일 2020-07-31추천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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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일제 앞잡이가 영웅 되면 대한민국이 뭐가 되겠나"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박경석 예비역 준장은 “나쁜 것까지 가지고 가는 보수는 참된 보수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박경석 장군(88·예비역 육군 준장)은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야전에서 두루 거친 노병이다. 한국전에서는 화랑무공훈장을, 베트남전에서는 최고 무공 수훈인 충무무공훈장을 수여했다. 그는 이른바 ‘육사 생도 2기’ 출신이다. 1950년 6월1일 첫 4년제 정규 육군사관학교 생도로 입교했다가 20여 일 만에 6·25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임관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전장에 투입됐다. 박경석과 함께 포천 전투에 참가한 동기생 330명 중 86명이 초기에 전사했다. 17세의 초급장교였던 박경석도 전투 중에 수류탄 파편에 맞아 몸의 왼편을 크게 다친 와중에 인민군 포로가 됐다. 그가 포로가 된 뒤 부대에서는 전사자로 처리한 다음 서울 동작동 국군묘지(국립현충원)에 가묘를 설치했다. 집에서는 장례식까지 치렀다. 지금도 동작동 국립현충원 15-2묘역에는 ‘고 육군 소위 박경석의 묘’가 그대로 남아 있다(박경석은 지금도 우울할 때면 자신의 묘지를 찾아가 상한 마음을 달랜다고 한다).인민군 10사단에 포로로 잡힌 박경석은 심문을 받다가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석방됐다. 이후 원대 복귀한 그는 1950년 겨울 평창 전투에 참가해 큰 전공을 세우고 무공훈장을 받았다. 베트남전에서는 맹호부대 초대 ‘재구대대장(강재구 소령 추모 대대)’을 맡아 전공을 세웠다. 귀국해서 군 생활을 휴전선 등 야전에서만 보내던 그는 박정희 정권 아래 독버섯처럼 자라던 군내 정치 사조직에 맞서 입바른 말을 곧잘 했다. 이 일로 일찌감치 정치군인들 눈 밖에 난 박경석은 1975년 늦깎이 장군으로 진급한 뒤 1980년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차장을 끝으로 군을 떠났다. 당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 전두환 신군부가 그에게 진압 부대에 무공훈장을 수여하도록 심사를 맡아달라고 강요했다. 그는 단호히 거부하고 스스로 군복을 벗었다.야전 군인 박경석은 초급장교 시절부터 ‘숨은 문인’이라는 특이한 이력도 갖고 있다. 그는 육군 대위 때 필명 ‘한사랑(韓史郞)’으로 등단해 틈틈이 시와 소설을 썼다. 산전수전 다 겪은 야전 경험을 토대로 지금까지 총 83권의 저서를 냈다. 이 가운데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 시기 명장으로 꼽히는 김홍일과 채명신 등 원로 장성 15명에 대한 평전과 회고록도 포함돼 있다. 현재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등 전국의 군 시설 11곳에는 박경석의 시비가 들어서 있다.군 예편 이후 문인이자 군사평론가, 군사연구자의 길로 들어선 박경석은 왜곡되고 굴절된 한국 군사(軍史)를 바로잡는 데 일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한다. 6·25전쟁 과정의 ‘가짜 영웅’ 실태를 조사하고, 일본과 중국을 오가며 국군 창설 초기 친일파와 독립군 장교를 연구했다. 특히 6·25전쟁 영웅으로 알려진 백선엽이 일본군 간도 특설대에서 독립군을 토벌하는 데 앞장서고 일왕에게 충성을 다짐했던 숨은 행적을 추적하는 데 오랜 기간 매달렸다. 더 나아가 한국전쟁 과정에서 ‘육탄 10용사’ ‘육탄 5용사’라는 일본군과 비슷한 영웅담이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서도 꼼꼼한 사실조사를 벌였다. 그는 6·25 영웅담이 상당수 날조·과장되었다고 주장한다. 당시 일본군 출신 지휘관들이 부하의 죽음을 자신의 공적으로 미화하기 위해 역사를 왜곡했다는 것이다.2010년 무렵 이명박 정부는 백선엽을 한국군 최초 명예원수(5성 장군)로 추대하려고 시도했다. 이때 박경석은 자신이 필생의 과업으로 모아온 친일 행적 근거자료 등을 토대로 앞장서 반대했다. 외로운 그의 외침에 쟁쟁한 군 원로들이 동참했다. 이런 기세에 눌린 이명박 정부는 결국 ‘백선엽 명예원수 추대 작전’에 백기를 들었다.민족사 최대 비극인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또다시 백선엽이 소환됐다. 이번에는 그의 사후 국립현충원 안장을 둘러싼 논란이다. 박경석은 이 논란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대전 유성구에 사는 박경석 장군 자택을 찾았다. 80대 후반의 고령임에도 시종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인터뷰에 응한 그는 한국전쟁 70주년이 되도록 백선엽 미화에 매달리는 보수 진영에 대해 ‘가짜를 알면서도 신봉하면 참된 보수가 아니다’라고 개탄했다.일본군 출신 장교들을 연구해오셨는데.일본 군대 출신 장교라고 무조건 척결 대상으로 보지는 않는다. 비록 일본군 출신이라 해도 독립운동을 직접적으로 탄압하지 않고 해방 뒤 잘못을 인정한 다음 대한민국에 기여한 장군들도 많다. 자칫 잘못하면 백선엽 때문에 그분들까지 한꺼번에 매도당할까 하는 걱정이 없진 않다.일본군 출신 사이에도 차이점이 있다?그렇다. 과거 잘못을 인정하고 안 하고는 천지 차이다. 이종찬, 이한림 장군은 일본군 출신이었지만 과거 잘못을 구체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했다. 김종오 장군도 부끄럽다고 고백했다. 그분들은 백선엽처럼 간도 특설대에 근무하거나 독립운동가를 혹독하게 다룬 적이 없다. 그러나 백선엽, 정일권 같은 일본군 출신은 끝까지 제대로 사과한 적이 없다.간도 특설대 근무가 문제인 이유는?일제 만행을 담은 역사 화보에서 사람 목을 칼로 베는 장면이 바로 간도 특설대가 조선 사람 죽이는 모습이다. 오랑캐의 손으로 오랑캐를 잡는다는 ‘이이제이 전법’을 적용해 조선인 손으로 조선인을 잔인하게 제압하라고, 일본군이 만든 부대가 바로 간도 특설대다. 백선엽은 간도 특설대에 지원병으로 들어간 사람이다. 일본과 중국에서 관련 증거서류를 다 확보했다. 국내에 나도는 백선엽의 간도 특설대 활동 증거는 모두 내가 수집해온 것이다.자료를 어떻게 입수했나?일본에 건너가서 간도 특설대 연구 전문가인 다나카 히사이로 박사를 만났다. 그가 모든 관련 자료를 넘겨줬다. 보니까 기가 막혔다. 백선엽은 한국군 생활을 마친 박정희~전두환 정부 시절에 일본을 오가며 기자들과 인터뷰하고, 일본어판 회고록까지 냈더라. 일본 만주군관학교 동기생들 모임에 나가서 간도 특설대에서 근무한 게 영광이라는 연설도 했다. 독립군과 조선인을 죽인 것도 군인으로서 임무를 수행한 거라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했더라.백선엽은 1993년 일본에서 〈간도 특설대의 비밀〉이란 회고록을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가 전력을 다해 독립군을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일본을 배반하고, 오히려 항일 게릴라가 되어 싸웠다고 해도 대한민국 독립이 빨라졌으리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이 사실이었고,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라는 소회를 밝혔다.백선엽 같은 일본군 출신을 중용한 이승만 정부의 책임이 크지 않나?이승만 대통령이 일본군 출신을 활용했지만 나름 최소한도의 안전장치를 두었다. 국방부 장관을 광복군 출신 독립운동가인 이범석 장군으로 앉혔다. 일본군 출신들에 대해선 후보생으로 받아 한국군 소위에서부터 시작하는 코스를 밟게 했다. 건국과 창군 초기에 어쩔 수 없이 일본군 출신을 썼지만 원칙은 지켰다고 본다.이명박 전 대통령이 야심차게 밀어붙이던 백선엽 명예원수 추대를 좌절시켰는데.간도 특설대에서 독립군을 잡았던 사람이 초대 명예원수가 되고, 영웅으로 부각된다면, 대한민국이 뭐가 되겠나? 대한민국 최초의 명예원수 추대라면 그 의미와 상징성이 매우 크다. 6·25전쟁 참전 원로 장군들이 백선엽 영웅화를 이구동성으로 반대했던 이유도 그것이다.백선엽이 저지른 친일행위보다 6·25전쟁의 공을 더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6·25전쟁사를 모르는 일반인, 특히 정치인들은 마치 낙동강 다부동 전투에서 백선엽이 인민군을 다 막아서 대한민국이 구출된 것처럼 주장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낙동강 전선이 240㎞였다. 그 전선에서 한국군 5개 사단과 미군 3개 사단, 즉 8개 사단이 합심해서 방어해낸 것이다. 백선엽은 그중 일부분이었을 뿐이다.낙동강 방어에서 미군도 큰 역할을 했다.미국 공군 B29 폭격기가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한·미 연합군 8개 사단을 지휘하면서 불퇴전의 결의로 앞장섰던 미군 워커 장군의 공도 컸다. 워커 장군은 나중에 교통사고로 작고했지만 우리 정부도 낙동강 전선의 공로를 기려 그의 이름을 딴 ‘워커힐 호텔’까지 만들었다. 훗날 일각에서 백선엽이 낙동강 전선을 혼자 사수한 것처럼 과장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누가 과장했나?6·25전쟁 공로를 과장해 스스로 영웅화한 주역은 백선엽 자신이었다. 그는 군복을 벗은 뒤 박정희 정부 때부터 30년간 전쟁기념관에 사무실을 두고 출근하면서,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을 자원해 맡았다. 참전하지 않고 당시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이고, 백선엽 장군이 내신 6·25 관련 책이니까’라며 덮어놓고 찬양했다. 그러나 참전 장군들은 다 안다. 그분들은 백선엽 장군을 영웅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6·25전쟁의 진짜 영웅이 있다면?당시 전쟁기를 통틀어 김홍일 장군과 김종오 장군 정도를 꼽을 수 있다. 김홍일 장군은 중국 정규군 중장 출신으로 일제 말기 임시정부 광복군 참모장을 지냈다. 6·25전쟁 초기 김홍일 장군 아니었으면 ‘대한민국’ 글자가 없어질 뻔했다. 이 역사가 아직까지 너무 묻혔다. 일본군 출신 백선엽 때문에 묻혔다. 국민들이 거의 모른다.묻힌 이야기는?6·25 개전 초기 국군이 무너져 내렸다. 개성의 1사단장 백선엽 대령은 전날 서울 육군회관 파티에 외출 나갔다가 6·25가 터진 그날 오전까지 부대에 나타나지 않았다. 사단장이 없는 동안 닥친 전쟁에서 1사단은 속수무책 후퇴했다. 임진강 남쪽의 일부 병사들이 고향 집으로 달아나버릴 정도로 부대는 엉망진창이 됐다. 백선엽에겐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이었다. 유재홍 준장의 의정부 7사단도 무너졌다. 춘천 지구를 방어하던 김종오 대령의 6사단만 제대로 싸우며 3일을 버텼다. 김종오 대령은 (전쟁 발발 전부터) 위기의식을 느끼며 철저히 대비하고 있었다. 대대장 이상 계급에 대해 전부 외박을 금지해두었다.1사단과 7사단이 붕괴되자 김홍일 장군이 군 원로회의를 소집해 신성모 국방부 장관과 채병덕 총참모장을 앞에 두고, (북한군에 쫓겨 내려오는) 부대를 수습해서 한강 방어선을 구축하자고 주장했다. 신성모와 채병덕은 반대했다. 대구·광주·대전의 후방 3개 사단을 서울 근방으로 불러올렸지만 올라오는 족족 인민군의 공세에 붕괴됐다.당신은 어디에서 싸웠나?그때 나는 육사 생도로서 포천 전투에 나갔다. 부대가 완전히 붕괴되어 86명이 계급·군번도 없이 전사했다. 후퇴해서 수원으로 내려와 특공대를 모집해 한강 방어선에 참가했다. 광복군 원로인 김홍일 장군이 신성모·채병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만든 방어선이었다. 김홍일 장군이 한강 방어선을 적극 주장하니까 이승만 대통령이 그를 시흥지구 전투사령관으로 임명했다. 김홍일은 장교와 헌병을 진두지휘하면서, 1번 국도와 야산을 통해 썰물처럼 퇴각해 내려오는 국군 패잔병을 수습해 만든 임시 사단을 한강에 배치했다.그해 6월28일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이 이틀을 주춤한 이유가 있다. 우선 북측은 한강 이북 서울 중심부를 점령한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을 다 차지한 거나 다름없다고 자만했다. 당시 북측은 인민군 2사단이 춘천에서 국군 6사단을 물리친 뒤 이천을 거쳐 수원 남방에 포위망을 구성해서 한국군을 궤멸시키는 작전을 세웠다. 그런데 춘천에서 (김종오의) 국군 6사단이 잘 버티며 그 작전을 무산시켰다.아주 교묘하게 맞물렸다. 김홍일 장군이 한강 방어를 안 했거나 춘천에서 김종오 대령이 인민군을 막지 못했다면 나라가 무너지는 판국이었다. 두 사람의 작전이 맞아떨어지면서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르는 사흘을 얻은 것이다.개전 직후 사흘이 중요했던 이유는?미국 조야에서는 초기 전세로 판단할 때 참전 시점이 늦었다고 봤다. 오키나와로 이승만 정부를 망명시킨다는 말까지 돌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김홍일과 김종오가) 초반 3일을 벌면서 미군과 유엔군의 참전 결정에 실마리를 제공한 것이다. 대한민국 구출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김홍일 장군과 김종오 대령의 공로는 백선엽의 초기 행각에 대비해보면 철저히 과소평가되었다. 이런 구체적인 전쟁사를 요즘 군인이나 군사 전문가들은 잘 모른다. 백선엽 영웅 만들기에 가려져버렸다.백선엽의 1사단 병사들이 개전 초기에 인민군 전차를 육탄 돌격으로 막았다는데.일본군 출신 일부 장군들이 스스로를 전쟁 영웅으로 미화하기 위해 과장하고 날조했다. 적 전차를 육탄으로 부쉈다는 심일 소령과 ‘육탄 5용사’, 적 토치카를 맨몸으로 파괴하고 장렬하게 산화했다는 ‘육탄 10용사’ 사건이 대표적인 해프닝이다. 육탄 10용사 중에서 한 병사가 북한 방송에 나와 귀순 월북을 종용한 사건은 (우리 군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이런 영웅들을 기리는 동상이 아직도 육사에 그대로 남아 있고, 교과서에도 실렸는가 하면 군가까지 만들어 불렸다. 그 뿌리는 일본 군국주의에 있다.어떤 뿌리인가?일제하 초등학교 교과서에 태평양전쟁에서 적의 전차를 파괴하고 목숨을 던진 ‘육탄 3용사’의 영웅담이 게재돼 있었다. 당시 조선 청소년들에게 그 글에 감동하라고, 혈서를 쓰라고 강요하면서 일왕에 대한 충성을 다짐시켰다. 그 영웅담은 일본 패전 후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백선엽 같은 일본군 출신 장군들이 똑같은 수법을 6·25전쟁사에서 되풀이한 것이다.백선엽 장군이 6·25전쟁 가짜 영웅 만들기에 개입했다는 근거가 있나?일본군 출신 장군들이 나에게 구체적으로 육탄 용사 영웅 만들기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일본군 출신인 손 아무개 장군이 나에게 직접 그러더라. “월남전 영웅으로는 강재구 소령이 있지만, 일본군 출신 중엔 영웅이 하나도 없지 않으냐. 백선엽 장군이 직접 나서서 타당성을 주장하시는데 박경석 장군이 좀 도와달라.”심일 소령에 대해서는, 내가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차장으로 당연직 공적심사위원장을 맡았던 1980년대 초반의 1차 조사 당시, ‘이미 허구가 드러났다’고 거절했다. 그랬더니 나를 백선엽 장군 방으로 데려가더라. 백선엽은 그 자리에서 나에게 ‘심일 소령을 영웅으로 만들자’고 이야기했다. 나는 ‘할 수 없다’고 거절하며 그 자리를 나와버렸다. 그런데 3년쯤 지나니까 육군사관학교에 심일 소령 동상을 세우고 ‘심일상’을 제정했다. 내가 손 장군한테 전화해서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손 장군은 “백선엽 장군이 참모총장한테 특별히 부탁해서 성사시킨 거니까 그런 줄로만 알고 잠자코 있어달라”고 했다.역사의식 없는 역대 국방 수뇌부들이 만든 어이없는 해프닝이다. 육사, 삼사 등 군 간부 양성기관에서는 소위 ‘백선엽 도서 코너’를 따로 만들어 그를 칭송한다. 백선엽이 낙동강에서 싸워 혼자 대한민국을 지킨 영웅으로 만들어지니까, 이명박 전 대통령은 한국전쟁 60주년 기념으로 3개 프로젝트를 밀어붙였다. 하나는 명예원수 추대, 하나는 백선엽상 제정, 그리고 정부가 공적으로 간행하는 백선엽 회고록. 이 3개 프로젝트가 이명박 정부에서 결정됐는데, 내가 앞장서서 막았다. 백선엽 영웅화 반대 선언문을 발표했다. 당시 살아 있던 6·25 참전자들이 울분을 토하며 합류했다.백선엽 지지 세력의 방해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맞아 죽더라도 잘못된 군 역사 하나는 바로잡고 죽겠다고 각오했다. 독립군을 잔인하게 죽인 일제 앞잡이가 대한민국의 초대 명예원수가 된다면 대한민국이 뭐가 되겠나. 대한민국 건국이념은 어떻게 되나. 자칫 북한의 6·25 남침이 ‘일제 잔재 소탕 전쟁’으로 정당화되면 어떻게 하나? 이걸 바로잡지 않으면 이 나라가 세계적 웃음거리로 전락하는 거다.보수 진영 내에서는 백선엽을 이순신 장군이나 홍범도 장군에 빗대 칭송하는 사람도 있다.나는 청춘을 야전에서 바친 군인으로서 스스로 보수라 자처하지만 나쁜 것까지 가지고 가는 보수는 참된 보수가 아니다. 가짜와 거짓은 털고 가야지, 속이고 갈 순 없다.백선엽 장군의 국립현충원 안장 논란을 어떻게 보나?비록 현행법상으로 백선엽이 현충원에 묻힐 자격을 가졌다 하더라도 내가 후손이라면 극구 만류하겠다. 그가 만일 국립현충원에 안장되면 역사의 후환을 면치 못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묻힐 곳이 없는 것도 아니지 않나. 백선엽 장군에게는 현충원 대신 인천에서 선인학원으로 ‘형제애’를 나눈 동생 백인엽씨가 묻혀 있는 가족묘가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한다.정희상 기자 minju518@sisain.co.kr https://news.v.daum.net/v/20200709095506265 백선엽은'부관참시' 해야한다!그 후 야스쿠니 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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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김대중 정권 비리 리스트
김대중 정권 비리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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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왕 김대중 요약>DJ처남 이상호 대형사찰 청탁 및 은행채무연장, 경부고속 휴계소 유치 노물수수 등으로 구속DJ처남 이상호 (77) 17세 여고생과 원조교제 하며 200만원 건넨 혐의로 집행유예김홍일 dj의 첫째아들- 나라종금 뇌물수수 건강상의 이유로 불구속 기소 김홍업 dj의 2째 아들-수감 되었따가 이번에 사면복권 국회의원까지 되는 생쇼를 함김홍걸 dj의 3째 아들-수감중에 형 집행정지로 풀려 남 김대현 DJ의 막내동생-굿모닝 시티 대출 비리 의혹 박지원 2전 문공부 장관 및 비서실장-대북불법 송금 구속 임동원 국정원장-대북불법 송금 구속 이기호 경제수석-대북불법 송금 구속 이근영 금감원장-대북불법 송금 구속 한광옥-전 민주당 대표 및 비서실장 구속 박준영 전 공보수석-윤태식 게이트 관련 박주선 전 법무수석 및 민주당의원-옷비리 사건 관련으로 구속 권노갑 동교동계 수장-진승현 게이트 연루 구속 이수동 아태재단 이사-뇌물 수수 구속 황용배 아태재단 후원회사무처장-뇌물 수수 구속 안정남 전 건교장관 및 국세청장 부동산 투기 의혹 김은성 국정원 2차장-진승현게이트 로비스트연루 구속 김태정 전 검찰총장-사직동팀 내사보고서 유출협의로 1년6월구형 신승남 전 검찰 총장-평창종건 뇌물공여사건 수사압력 및 정보누설-불구속입건 신승환 신승남의 동생 6,600만원 뇌물수수 구속 임창렬 경기지사-파크 뷰 특혜분양사건 구속 김방림 민주당 의원-정현준 게이트관련 알선수재 1억원 수수 구속 신광옥 법무차관 및 청와대 민정수석-진승현 게이트 연루로 구속 유종근 전북도지사- 뇌물수수 구속 이남기 공정거래 위원장-뇌물수수-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 이형택 전 예보공사 전무-이휘호의 조카 구속 최성규 청와대 수사과장- 윤태식 게이트 건으로 해외도피김종호 국정원 수사관 윤태식 게이트관련 수배정성홍 국정원 경제과장 구속 김형윤 국정원 경제단장 구속 국중호 전 청와대 행정관구속 최택곤 전 민주당료 구속 김희완 서울시 부시장 구속 여운환 광주 j건설 대표 구속-이용호 게이트 연루 구속 김재환 전 mci 코리아 회장-정현준 게이트 연루 알선수재로 구속 1년6월 확정 박준영 전 청와대 공보수석-윤태식 게이트 연루 김옥두 민주당 의원-파크 뷰 사건-특혜분양 권해옥 주공사장-굿모닝시티 게이트연루-한양매입과정서 억대 금품 수수협의 손세일 민주당의원 뇌물 수수로 구속 정대철 민주당 총재-4억 뇌물수수 수사 중 김영렬 전 서울 경제신문사장 윤태식 게이트로 구속 김현규 패스 21감사-前 의원 윤태식 게이트로 구속 최창신 월드컵 조직위 사무총장- 특가법상 뇌물 수수로 구속 양길승 청와대 부속실장 향응 수수 권노갑 현대 비자금 수수 구속전라도 김재록 게이트 전라도 윤상림 게이트 단 5년만에 단군이래 최악의 부패 정권, 게이트 정권
저야 늘 항상 정치인들은 전부 개들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스탠스를 유지해야 하고 차악을 뽑아야 한다고 말하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은 사실상 여야 2당체제인데, 이 두개당 전부 개쓰레기이죠...
다만 이곳에는 진보를 신성시 여기는 분들이 원체 많은지라 그런류의 게시글만 올라오기때문에 이런 글도 하나쯤은 올라와야 한다는 생각에 올립니다. 다음에는 참여정부 시절의 삽질에 대해서 모아서 한번 올려볼 생각입니다. 어차피 현정부의 삽질은 적나라하게 실시간으로 올라올테니 굳이 제가 할필요가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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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역사로서의 5·18] 유언비어와 무장폭동
‘유언비어와 무장폭동’
역사로서의 5·18
김대령씨, 세계기록유산 등재 분석
영화 ‘화려한 휴가’ 거짓 팔아 흥행
광주사태의 진실 재조명을 위한 ‘역사로서의 5.18’이 전4권, 1,560쪽의 방대한 실증자료로 엮어져 5월초에 발매된다. 저자는 재미 사학자인 김대령씨, 출판은 비봉출판사가 맡았다. 비봉출판 박기봉 사장은 이 책이 5.18관련 묻혀진 진실을 이해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방대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부분을 경제풍월에 제공했다.
묻혀진 진실 재조명의 초석
저자 김대령씨는 프롤로그를 통해 대한민국 건국이념보급회, 이승만포럼 사무국장 김효선씨의 권유와 전 육사교수인 정창인 박 사(한미애국단체연합회장)의 도움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고 밝혔다. 또한 거짓 선전 영화 ‘화려한 휴가’를 관람하고 5.18기록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내용을 읽고 이에 대한 반응으로 집필했다고 한다.
출판을 맡은 비봉출판 박기봉 사장은 서울상대를 나와 증권사 간부로 근무하다 출판인으로 전신하여 국익과 공익을 위한 기획서적을 다수 출판했다. 북한이 공개한 대남공작사를 엮은 ‘북의 지령 따라 움직이는 남쪽 사람들’, ‘붉은 수선화’, ‘통일교향곡’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에 내놓은 ‘역사로서 5.18’에는 △광주사태의 발단과 유언비어, △5.18 무장봉기 주동자들의 실체, △광주 청문회에 드러난 5.18 비화, △5.18재판 법리의 모순 등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전4권 주요목차 별항).
<역사로서의 5.18 전 4권 목차>
<제1권>제1장 : 유언비어 잔치판△고의적으로 유포된 박관현 사망설 △헬기 기총사격 유언비어 △미 항공모함 시민군지원 유언비어 △차명숙과 전옥주의 화려한 유언비어 가두방송 △유언비어로 모집된 시민군
제2장 : 사전준비 폭동인가, 사후 저항운동인가△1980년 이전 무장봉기준비 △사전 무장봉기 계획입증5.18기록물 △탈북자와 윤한봉의 일치된 증언 △민중봉기선동한 5.18설명서 △왕년의 빨치산이 선포한 투쟁선언 전단 △광주사태에 대한 북한의 입장
제3장 : 날짜별 주요 5.18 사건△5월 17일 광주사태 전야 △사태의 발단 △화공에 의한 폭력시위 △차량 돌진에 의한 도시게릴라 방법 △무장시민군의 도청함락 △뜻밖의 반전 △광주 코뮌 권력을 장악한 무장봉기파△전원 자폭결의 △새벽의 마지막 전투
<제2권>제4장 : 외부에서 침투한 시민군△가짜스님 손성모 간첩과 왕년의 빨치산 스님 △김대중이 간첩 손성모 북송 △20사단 지프차 탈취시민군 △무기탈취, 무장봉기 시민군 600명 출현 △불순세력이 있었다는 낌새들 △5.18광주영웅 대남공작원 장중한 △괴한들이 탈취한 지프차들의행방 △군경과 시민군 뒤바뀐 제복 △학생 없는 학생시민군 △북한의 광주사태 개입 낌새와 단서들 △북한방송 청취로 시사정보 입수한 시민군
제5장 : 시민군과 계엄군, 누가먼저 살았나
제6장 : 시위대와 시민군 사상자 발생원인△시민위에 떨어진 돌과 화염.병 △시민군간의 총격전 △시민군 운전미숙 사고 △광주교도소 습격 △시민군의 수류탄 폭발
<제3권>제7장 : 5.18 재조명이 필요한 이유△김대중과 정동년의 광주청문회 위증 △국민인식과 다른5.18재판 판결 △꼼수로 빚은 역사바로세우기 재판법리 △내란설과 제3세력 개입설 △박현채의 민관 선동논리 △사라진 5.18 비밀문서와 보존된 기록들 △1심의 황당한 판단,2심의 황당한 법리해석
제8장 : 5.18판결과 상반된 사실들
△5.18 이전 성명서 대필한 왕년의 빨치산 △시민군이 최규하 대통령에 충성하는 세력이었나 △신현확 물러가라는 구호의 꼴불견
제9장 : 5.18 국민결집 판결과 상반된 사실들△약탈과 도덕성 결여 △무장봉기파와 수습위의 다툼 △무장시민군을 무서워했던 시민들 △코뮌주의자들과 수습위간 다툼 △북한지령문처럼 보이는 5.18 성명서 △차량 약탈한 헌법기관? △경상도 차량 불 지르는 헌법기관? △지역감정 자극 유언비어
제10장 : 중학생 시민군이 헌법기관?△중고생 봉기위원회 △중고생 청소년시민군 △송정리서죽은 영암 고등학생 △윤기권의 월북 △고등학생 시민군 △김효석의 무응답
제11장 : 광주 해방구에 대한 법리해석 문제△광주해방구 주역 코뮌주의 혁명가들 △코뮌주의자들에대한 서로 다른 법리잣대 △코뮌주의자들의 민족민주혁명론
<제 4권>
제 12장 : 5.18 민족민주에 대한 법리해석 문제△자유민주 대항마 민족민주 △남조선 민족해방 전선과 광주운동권 △남조선 민족해방 전선과 북한관계 △5.18의 반미이념 △북한이 주도하는 통일운동 △왕년의 빨치산 전용어 △대남공작용어 혁명역량 △북한 공작금 수령한 민족민주 진영인사들 △김대중 후원자 김일성 △김일성이 문익환에게 보낸 밀사 △가톨릭 농민회 서경원 간첩사건 △광주사태 배후 장기표의 여간첩단사건 △김낙중 간첩사건
제13장 : 광주운동권사에 비춰본 5.18△박현채가 원격조정한 민청학련사건 △인민혁명당과 광주운동권 △광주일고 동문들의 박정희 암살음모 △황석영의 북한 5.18영화 ‘ 님을 위한 교향시’ △황석영의 밀입국 배경 △빨치산과 선후배관계 광주운동권 △에필로그, 부록1~5, 참고문헌 등
‘화려한 휴가’ 유언비어 팔아 흥행
저자는 영화 ‘화려한 휴가’는 실화가 아닌 거짓 선전 유언비어들을 팔아 흥행에 성공했지만 만약 관객들이 이를 사실로 받아드린다면 대한민국 국군은 ‘시민학살 기계’로 낙인 찍혀 완전히 명예가 훼손된다고 지적했다.
저자는 5.18 기록물의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60만쪽에 들어있는 무장봉기 주동자들의 녹취록을 분석하면 5.18 당시 최규하 대통령의 과도정부와 김대중씨의 ‘거리정치’와의 충돌이며 5.18재판은 시민군의 무장봉기를 정당화시켜 준 판결로서 “거짓이 진실을 지배했다”고 풀이했다. 저자는 지난 “30년 이상 5.18담론들은 실상 보다 허상이 많았기에 역사로서 재조명돼야 한다”고 믿기에 이 책을 집필했다고 밝혔다.
전옥주의 화려한 거짓 가두방송
5.18의 발단은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이 여수 돌산으로 가고 있을 때 누군가 “박관현이 죽었다”고 외친 거짓선전으로부터 시작됐다. 살아있는 사람을 죽었다고 선동한 말이 광주시내로 퍼지자 사실 확인도 없이 군중들이 파출소에 화염.병을 던지고 경찰을 납치했지만 5.18재판은 그들을 ‘헌정질서 수호행위’로 판단했다.
유언비어의 위력을 확인한 선전조는 5월 19일 전옥주를 데려다가 ‘죽은 학생이 내 동생’이라는 거짓 가두방송을 시켰다. 그녀는 남동생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전옥주와 박관현은 성씨도 달랐다. 그런데도 전옥주의 거짓 가두방송이 광주사태의 쓰나미를 불러왔다. 영화 ‘화려한 휴가’ 속에 전옥주는 정의로운 간호사로 나오지만 말짱 허상이다.
다음날에는 “전남대 총장이 박관현 사망 충격으로 할복자살 했다”는 터무니없는 유언비어가 나오고 ‘전두환 광주 살육작전’,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사람 씨를 말리려 왔다’, ‘최규하 대통령이 사살되었다’는 유언비어로 발전했다.
저자는 이 같은 사실을 들어 유네스코에 등재된 5.18 기록물이 거짓말을 시위 선동도구로 이용한 문화유산이냐는 말이냐고 반문했다.
비상계엄 전국 확대 전후배경
저자는 5.18재판이 허상을 숨기기 위해 5.18의 전후관계를 짚어 보지 않고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만을 따져 물었다고 지적했다.
당시 DJ세력과 범 운동권은 5월 20일 총궐기로 최규하 정부를 전복시킬 목적으로 신현확 총리에게 19일까지 총사퇴 최후통첩을 보냈다. 최 대통령의 중동순방을 계기로 시위대가 청와대로 진격하려 했지만 경찰은 무방비상태나 마찬가지였다. 괴한이 버스를 탈취하여 경찰관을 압살, 부상시키자 경찰관들은 혼비백산 했었다.
그날 저녁 시위대 본부차량이 서울역에 도착하자 ‘민청협’의 사주를 받던 유시민은 청와대로 밀고 들어가자고 했고 심재철은 시위대의 해산을 주장했다.
1974년 국가전복을 음모했던 민청학련은 빨치산 출신 박현채가 원격조정 했으며 이 사건 관련자들이 ‘민청협’으로 다시 모여 이날 시위대를 원격 조정했던 것이다. DJ는 1980년 4월 이 민청협을 끌어안아 간부들에게 유급 홍위병 역할을 맡겨 가두시위를 주도케 했으며 이 무렵 차기집권용 예비내각까지 구성했었다.
이 같은 배경 속에 5월 20일 총궐기를 계획하고 있을 때 5월 15일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버스를 탈취하여 남대문경찰서 저지선을 돌파하여 시위대가 서울역을 장악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이 버스 탈취 폭도가 탈북자들의 증언과 체포간첩들의 심문결과 북한군 특수부대원일 것으로 추정한다.
이 사건을 운동권 용어로는 국가전복의 기회를 놓친 회군이라는 뜻으로 ‘서울역 회군’이라고 표현한다.
내무부장관, ‘군 개입 불가피’ 보고
이를 계기로 내무부가 치안유지에 한계를 느껴 심재철에게 전화로 시위대의 해산을 호소했고 김종환 내무부장관이 신현확 총리를 찾아가 “경찰로서는 더 이상 치안유지가 불가능하니 군의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요청했다. 이어 신 총리가 중동에서 귀국한 최규하 대통령에게 보고하여 5월 17일 심야에 비상국무회의가 소집되어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선포했다는 요지가 ‘5.18의 전후관계’라는 말이다.
저자는 이 같은 사태발전에 따른 비상계엄 전국확대가 쿠데타가 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5.18 재판이 시민군의 무장봉기를 정당화시켜 주기위해 계엄확대를 쿠데타로 해석할 수밖에 없어 ‘최규하 물러가라’고 외친 시민군을 마치 ‘최규하 수호세력’이라고 억지 판단한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되면 5.18 시민군이 오히려 유신헌법 수호세력이 아니냐는 말이다.
당시 DJ 지지세력은 최규하 대통령과 신현확 총리는 유신헌법에 따라 선출된 ‘유신잔당’으로 개헌을 주도할 자격이 없고 타도의 대상이라고 보고 민중봉기를 통한 정권교체를 목표했다. 1979년 이슬람 과격파가 이란의 팔래비 왕정을 전복시킨 호메이니의 혁명을 염두에 두었는지 모른다.
저자는 결과적으로 5.18이 민주화운동이라는 법적 근거가 전무하다고 해석한다. 5.18 재단 설립자인 윤한봉은 자신이 무장봉기를 총지휘했다고 주장하지만 행동대장일 뿐 배후세력의 하수인에 지나지 않았다고 본다. 배후에는 왕년의 빨치산 세력이 따로 있었다고 보기에 5.18 주동자들의 이념운동도 시민군 전체의 이념이 아니었다. 무장 시민군의 다수는 외지인들이었다.
광주시민도 모르는 외지인 5~600명
저자는 5.18 기록물 자체가 시민군 주동자들에게 자유민주주의 사상이나 이념이 없었음을 입증한 기록이라고 해석한다. 일부 불순세력 외의 시민군들은 이념집단이 아니었으며 배후세력에 원격조정 됐다고 본 것이다. 이념집단이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 ‘민족민주’, ‘인민민주’ 사상을 말한다.
왕년의 빨치산 박현채가 주창한 사회민주주의를 ‘민족민주’라고 불렀다. 1980년 5월 8일,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이 ‘민족민주화’ 대성회를 선포할 때의 ‘민족민주화’가 바로 사회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를 뜻한다.
5월 21일, 전남도청 광장에 모인 인산인해는 광주시민이 아닌 탈취한 차량으로 광주 외곽에서 실어온 사람들이다. 도청 주변 시민들은 피난을 가거나 대문을 닫고 숨어 있었다.
이날 오전 8시 낫으로 무장한 세력이 20사단 지프 14대를 탈취하고 9시에는 아세아자동차에서 수백 대의 차량을 탈취했다. 그들의 일부는 38개 무기고를 털고 나머지 일부는 광주 외곽주민들을 실어 날랐다. 그들의 행동은 일사불란했고 전광석화 식이었다.
반면에 광주시민들은 무기고가 어디에 있는지 위치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외지에서 나타난 5~600명이 도청 함락을 지원한 후 5월 26일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과연 그들이 누구였을까 의문이다. 저자는 어느 누가 중학생을 시민군 특공대로 조직할 수 있었겠느냐고 물었다. 광주 학생운동권의 상징인 박현채가 바로 중학생 빨치산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이름이 공개된 윤상원, 정상용 등 주동자는 코뮌주의자로 민족민주혁명당 사건으로 반국가세력이라는 판결을 받았는데도 5.18 재판이 그들을 헌정질서 수호세력으로 판결했다고 지적했다.
결국 5.18 재판이 진압군은 국헌문란집단, 시민군은 헌정수호기관으로 만들어 냈다. 그렇지만 실상 진압군 가운데 한 명도 국정문관 목적이 없었고 시민군 가운데 한 명도 헌법수호 목적을 말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DJ와 빨치산 출신 박현채
저자는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1980년 봄의 가두시위와 DJ관계를 다시 한 번 소상히 설명했다.
1980년 3월 1일 시국사범들이 복적 되자 DJ는 장남 김홍일을 시켜 사조직 ‘민주연합청년동지회’(연청)를 급조하여 기존 민청협, 국민연합과 함께 전위조직으로 가동했다.
당시 학생운동권은 복적생협의회 조직을 통해 총학생회를 장악했다. 복적생 장기표, 조성우, 심재권, 이현배 등이 간부직을 맡은 국민연합 사무국이 이들을 지휘했다. 사무국장 장기표가 시위계획을 DJ에게 보고하며 1960년대 중국 문화혁명을 방불케 하는 홍위병 역할을 했다.
이들 복적생 중심의 DJ사조직이 비운동권 교수들의 퇴진시위를 벌이고 어용교수로 낙인찍었다. 전남대는 정동년이 퇴직교수를 결정하는 ‘교수 살생부’를 작성했다. 정동년의 전력으로 보면 박현채의 원격조정이 보인다. 1980년 봄 대학 총학생회의 성명서가 획일적인 빨치산 논조로서 박현채가 작성했다.
박현채가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배후였으며 DJ는 1978년 ‘민청협’으로 개칭한 후 이들과 동맹을 맺었지만 YS편에는 한 명도 가담하지 않았다. DJ가 신민당 대신에 민청협과 손잡고 ‘거리정치’에 나선 배경이었다.
DJ가 YS와 결별하고 거리정치에 나선 것은 그에게 문익환과 박현채가 있었기 때문이다.
박현채는 DJ의 성명서 담당비서이자 경제스승이었다. 박의 ‘민족경제론’은 박정희의 중화학공업 육성을 결사반대하는 논리다. 민청협의 이데올로기도 박의 이념 그대로이다. DJ의 ‘대중경제 100문, 100답’도 박이 대필했다. DJ가 박정희의 경부고속도로와 중화학공업 건설 등 조국근대화 프로젝트를 반대한 것도 박현채의 영향이다.
‘민족경제론’은 운동권 양성 교재로서 북한식 경제체제가 박정희의 산업화 모델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이다. 정치적으로는 ‘민족민주’로서 여기에서 ‘주사파’가 나와 북의 세습체제에 충성하는 것이다.
윤한봉도 수수께끼 구술 녹취록
광주운동권의 요람이자 뿌리는 1960년대 후반 통혁당 간첩단 조직이 침투하여 장악한 써클 ‘광랑’(光郞)이다. 이를 통해 양성된 운동권이 1974년 봄 민청학련 사건을 겪은 후 10.26으로 무장봉기 적기가 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막상 5.18이 개시되자 윤한봉도 모르는 일이 벌어졌다. 누가 누군지 모르는 시민군이 등장하자 윤은 ‘큰일났다’고 말하고 그의 여동생을 애인처럼 변장하여 도망쳤다. 그러니까 광주운동권도 모르는 무장세력을 5.18 재판이 헌법수호 세력으로 둔갑시킨 꼴이 되고 말았다.
윤한봉은 생전 구술 녹취록에서 이처럼 수수께끼 같은 사건은 사학자들이 연구할 몫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렇지만 사망 1년전 그의 증언이 5.18 재판의 법리를 뒤집어 놨다고 저자는 비판했다.
또한 저자는 무기를 탈취한 괴한들이 광주시민이 아닌 외지인들이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강조한다.
5월 20일, 북한 방송이 광주사태를 생중계 하면서 ‘봉기군’이란 용어를 사용한 후 시민군이 등장했다. 그들은 매복하고 있다가 20사단 인솔대를 습격하여 지프 14대를 탈취하고 아세아자동차에서 차량 60대를 탈취했지만 결코 오합지졸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특이하다.
과연 그들의 정체는 누구일까. 당시 이름이 공개된 광주사태 공작 간첩 손성모는 스님으로 위장하여 활동했고 왕년의 빨치산들도 광주로 몰려들었다. 간첩 손성모는 2001년 DJ가 북으로 송환했다.
월남참전용사 김 기자의 애국헌신
저자는 ‘역사로서의 5.18’을 집필하도록 용기를 준 김동문 기자의 애국적 헌신을 특기했다. 당시 전남매일 제2사회부 차장으로 나주지사에 근무한 김 기자는 월남전 참전 용사로서 시민군의 나주 공작을 막아낸 영웅으로 묘사된다.
당시 시민군이 해남, 진도, 목포로 진격할 때 나주공략을 막아내지 못했다면 1975년 4월 월남 공화국의 붕괴와 같은 사태로 발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 기자는 나주에 주둔중인 예비군대대와 함께 시민군 진입을 막아내어 시민군들이 광주로 돌아갈 때 송정리 다리에서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하여 광주 ‘해방구’가 고립상태로 무장봉기가 크게 확산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었다.
당시 김동문 기자는 “유신 언론인 집이냐”는 불순 협박전화를 받고 예비군대대로 피신했다. 반면에 나주군수는 금성산 정상에 있는 대공포 진지로 피신했다.
김 기자가 예비군대대로 피신했을 때 대대장 정모 소령은 “무장폭도가 300m 앞 마을 어귀에까지 도달했다”면서 불안한 모습이었다. 이에 김 기자는 “군인의 임무는 부대의 사수”라고 말하고 “나주에 남아있는 유일한 부대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격려했다.
당시 대대의 현역병은 16명, 예비군을 합쳐도 60명에 불과했다. 무기는 소총이 전부이고 탄약과 식량도 바닥이었다. 사정이 어려운 점을 확인한 김 기자가 “월남전 참전동지로서 나와 운명을 함께 합시다”라고 정 소령을 격려했다.
무장 시민군 차량에서 공포탄을 발사하는 위급상황에서 김 기자는 벗은 지 14년만에 군복으로 갈아입고 현역들과 함께 뜬눈으로 부대를 지켰다. 상급부대와 끊어졌던 통신이 무선으로 간신히 연결되어 식량을 요청했더니 헬기가 날라 왔지만 시민군의 위협으로 착륙이 어려웠다.
김 기자가 기지를 발휘하여 침낭 속의 흰 천을 뜯어내 착륙지점을 표시했더니 헬기가 M60 기관총과 실탄상자만 내려놓고 돌아갔다. 정 소령이 다시 본대와 교신으로 “부대의 사수가 어렵다, 폭도들이 공격해 온다”고 다급한 지원을 요청했지만 “발포 절대 불가”라고만 지시하니 고립무원 지경이었다.
고립무원 지경에서 대한민국 사수
다음날 나주군청 내무과장이 새로운 유언비어들을 전화로 알려왔다. “경상도 출신 공수부대가 광주를 떠나 나주로 진격한다”, “광주에서는 수만 명이 학살됐다”, “광주 금남로에 탱크가 출현하여 학살을 자행한다” 등등.
김 기자는 이 같은 소문들이 모두 악성 유언비어라고 일축하고 “진압군 300명이 곧 투입된다”고 역선전하여 시민군에게 전해지도록 했다. 얼마 뒤 군청으로부터 시민수습대책위를 구성하여 시민군과 협상할 테니 진압군의 진입을 유보시킬 수 있겠느냐고 제의해 왔다. 대대가 이를 수락한 후 시민방문객을 맞기 위해 정문에 M60 기관총을 설치하고 담장 철조망 1m 간격으로 거총자세의 병사들을 배치했다.
시민대표 5명이 방문하자 수습대책위가 시민군에게 탈취한 총기류를 반납하고 귀향을 설득토록 요청했다. 그 뒤 영산포 예비군이 시민군차량 수십 대가 나주로 진입코자 재집결한다고 알려왔다. 상황이 위급해지자 정 소령이 현역 16명과 함께 최후 방어선으로 출동했다. 김 기자는 조금 뒤 단신으로 뒤따라 나주 전신전화국의 협조로 확성.기를 설치하여 시민군에게 말했다.
“곧 계엄군이 시내로 진입한다. 무기를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라. 여기는 나주지역 계엄본부다”라고 반복했다. 읍내 예비군과 주민들이 시민군의 동향을 제보해 오기도 했다. 이때 무장버스 1대가 저지선을 돌파하여 100m 앞에 정지했다.
확성.기를 통해 “모두 손들고 나오라”고 하니 학생시민군이 17명이었다. M1소총과 빵과 라면도 실려 있었다. 고교생 시민군은 “아저씨들이 타라고 해서 버스에 탔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시민들에게 “체포된 17명의 무장폭도는 안전하게 보호되어 있다”고 알려주었다. 곧이어 시민대표 6명이 부대를 방문하여 무사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로써 무장 시민군에 의한 나주 함락 기도는 저지됐다. 저자는 김 기자의 용맹정신으로 나주를 넘어 대한민국을 사수했다“고 평가했다.
http://www.econotalking.kr/xe/index.php?document_srl=88724&mid=interview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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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친노비노당]or 김대중비리 사건
보수진영이라 불리는 딴나라당 세력 등만 부정부패와 비리를 저지르는 것으로
여기는 인간들을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정리해둔다.
난 보수정권이든 진보정권이든 비리가 어떤 기준 이상 심하지 않으면 그걸 가지고 정권을 퇴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극단적인 진영논리에 빠져 지가 싫어하는 정권의 경우 사소한 비리 가지고도 퇴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기쪽 정권의 비리의 경우 웬만큼 크지 않으면 뭐 그것 가지고 그래 하는 이중잣대를 들이미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
<비리모음>
김대중 전 대통령, 언론인 도청·사찰 비리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47&aid=0000068545
김대중 전 대통령, 삼성 기아차 인수 지원 비리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55&aid=0000050269&
김대중 전 대통령, 사저건축비용 비자금 일부 비리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0&aid=0000151118
김대중 전 대통령, 한솔엠닷컴 인수비리 몸통 비리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01&aid=0000782643
≪아들 비리≫
김대중 첫째 아들 김홍일, 뇌물수수 혐의로 의원직 상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1423948
김대중 둘째 아들 김홍업, 차명계좌로 100억원 비자금 조성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5&aid=0000102267
김대중 셋째 아들 김홍걸, 사업자 선정 과정에 개입해 뇌물 수수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3&aid=0000007860
≪처남 비리≫
김대중 처남 차모씨, 사찰땅 사취 비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0&aid=0000151617
김대중 처남 이성호, 동아건설서 뇌물 수수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1&aid=0000035677
김대중 처남 이성호, 투자유치 여권 실세 동원 비리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8&aid=0000126173
≪처조카 비리≫
김대중 처조카 이형택, 땅등기 변조비리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0110866
김대중 처조카 이형택, 주가조작혐의 체포 결정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0110456
김대중 처조카 이세작, 신앙촌재개발 연루 비리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8&aid=0000141620
김대중 처조카 이영문, 뇌물수수혐의로 집행유예 선고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8&aid=0000014610
≪기타 비리≫
김대중 일가 친척, 나라종금 로비 비리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8&aid=0000179490
김대중 정부 실세, 로또 사업자 선정 개입비리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47&aid=0000070688
김대중 동생 김대현, 자택공사비 미지급 비리 조사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0813558
▶김기삼, “DJ비자금은 6천억~1조원” http://blog.naver.com/tangohunt?Redirect=Log&logNo=60050680773▶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동아그룹, DJ 정권 '보이지 않는 손'에 강탈"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23&aid=0002100960▶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DJ 정권이 정치자금 내지 않아 20조짜리 회사를 다 뜯어먹었다" "역대 대통령중 김대중이 가장 부패하다" 생생한 육성증언. http://blog.daum.net/altcosmos/8570886
▶강삼재 전 신한국당 사무총장 "DJ가 비자금 670억 원을 조성하여 62억 원을 불법 실명 전환했다"
▶김대중 비자금 1조說(설)http://kr.blog.yahoo.com/ks13456/1137▶김대중 정권, 3000만 달러를 스위스은행 송금http://blog.joinsmsn.com/media/folderlistslide.asp?uid=sd118&folder=28&list_id=7687351 ▶대북 불법송금 5천억
▶이용호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김홍일 dj의 첫째아들- 나라종금 뇌물수수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214&aid=0000018999▶김홍업 dj의 2째 아들- 금품수수로 징역2년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4&aid=0000023757▶김홍걸 dj의 3째 아들-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되어 구속 http://news.nate.com/view/20110819n00936 DJ정부 서해교전 북도발 물증잡고도 공개안해
<김대중 정권 인물들 비리 요약>DJ처남 이상호 대형사찰 청탁 및 은행채무연장, 경부고속 휴계소 유치 노물수수 등으로 구속DJ처남 이상호 (77) 17세 여고생과 원조교제 하며 200만원 건넨 혐의로 집행유예김홍일 dj의 첫째아들- 나라종금 뇌물수수 건강상의 이유로 불구속 기소 김홍업 dj의 2째 아들-수감 되었따가 이번에 사면복권 국회의원까지 되는 생쇼를 함김홍걸 dj의 3째 아들-수감중에 형 집행정지로 풀려 남 김,대현 DJ의 막내동생-굿모닝 시티 대출 비리 의혹 박지원 2전 문공부 장관 및 비서실장-대북불법 송금 구속 임동원 국정원장-대북불법 송금 구속 이기호 경제수석-대북불법 송금 구속 이근영 금감원장-대북불법 송금 구속 한광옥-전 민주당 대표 및 비서실장 구속 박준영 전 공보수석-윤태식 게이트 관련 박주선 전 법무수석 및 민주당의원-옷비리 사건 관련으로 구속 권노갑 동교동계 수장-진승현 게이트 연루 구속 이수동 아태재단 이사-뇌물 수수 구속 황용배 아태재단 후원회사무처장-뇌물 수수 구속 안정남 전 건교장관 및 국세청장 부동산 투기 의혹 김은성 국정원 2차장-진승현게이트 로비스트연루 구속 김태정 전 검찰총장-사직동팀 내사보고서 유출협의로 1년6월구형 신승남 전 검찰 총장-평창종건 뇌물공여사건 수사압력 및 정보누설-불구속입건 신승환 신승남의 동생 6,600만원 뇌물수수 구속 임창렬 경기지사-파크 뷰 특혜분양사건 구속 김방림 민주당 의원-정현준 게이트관련 알선수재 1억원 수수 구속 신광옥 법무차관 및 청와대 민정수석-진승현 게이트 연루로 구속 유종근 전북도지사- 뇌물수수 구속 이남기 공정거래 위원장-뇌물수수-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 이형택 전 예보공사 전무-이휘호의 조카 구속 최성규 청와대 수사과장- 윤태식 게이트 건으로 해외도피김종호 국정원 수사관 윤태식 게이트관련 수배정성홍 국정원 경제과장 구속 김형윤 국정원 경제단장 구속 국중호 전 청와대 행정관구속 최택곤 전 민주당료 구속 김희완 서울시 부시장 구속 여운환 광주 j건설 대표 구속-이용호 게이트 연루 구속 김재환 전 mci 코리아 회장-정현준 게이트 연루 알선수재로 구속 1년6월 확정 박준영 전 청와대 공보수석-윤태식 게이트 연루 김옥두 민주당 의원-파크 뷰 사건-특혜분양 권해옥 주공사장-굿모닝시티 게이트연루-한양매입과정서 억대 금품 수수협의 손세일 민주당의원 뇌물 수수로 구속 정대철 민주당 총재-4억 뇌물수수 수사 중 김영렬 전 서울 경제신문사장 윤태식 게이트로 구속 김현규 패스 21감사-前 의원 윤태식 게이트로 구속 최창신 월드컵 조직위 사무총장- 특가법상 뇌물 수수로 구속 양길승 청와대 부속실장 향응 수수 권노갑 현대 비자금 수수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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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정권에서도 비리가 많았다. 노무현의 가족이 받은 뇌물과 별개로 바다이야기 등의 스캔들에서 얽히고 설킨 비리들이 ?연일 보도되었던 기억이 난다. 노대통령이 자살을 해서 그렇지 검찰이 당시에 언론에 보도됐던 것 이상의 큰 건을 잡고있었다는 얘기는 계속 나왔으며 정황상 근거가 있어 보인다.
노무현 정권이 지금까지의 정권 중 가장 깨끗했다는 데엔 이의를 달지 않는다. 지네들은 통치용 비자금이라고 주장했으나 전두환-노태우 등은 조성한 비자금만 그때 돈으로 수천억이었으며, 김영삼은 노태우에게 통치용 비자금만 3천억을 받았다고고백했고 김대중은 위에 보는 바와 같다.
나는 비리는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지만 어떤 정권이 됐든 정권실세들이 뇌물로 받은 돈이 합쳐서 수백억 수준이라면 지금 시대에 정권퇴진 운동까지 벌일 필요는 없다는 느슨한 기준을 갖고 있다(더 깨끗해진 미래에는 모르지) 그냥 검찰이 제대로 수사해서 사실로 드러나면 감옥에서 살든가 추징금을 내면 된다.
이명박 정권은 아직 이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만일 이명박 4대강 관련하여 조 단위의 뇌물이 포착된다면 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검찰이 엄정하게 수사한 후 엄한 처벌이 당사자들에게 떨어지나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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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권양숙이 대통령 전용기에 100만달러를 싣고 가 국빈특권을 이용
대통령 전용기에 100만달러를 싣고 가 국빈특권을 이용
“7개 돈상자 중 남은 3상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정연
씨의 미국 고급 아파트 구입 의혹과 관련해 ‘정연 씨 측으로부터 환치기로 돈을 받았다’고 말했다는 경모 씨와 친분이 있던 이달호씨가 공개한 돈
상자 사진. 이 씨는 “내 동생이 경 씨의 부탁을 받고 2009년 1월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에게서 13억 원이 든 사과상자 7개를 받아
4개를 먼저 전달하고 보관 중이던 상자 3개를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을 내가 보관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달호 씨 제공
http://news.donga.com/3/all/20120227/443462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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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혁 의원이 공개한 노정연-경연희씨의 미국 아파트 이면계약서 ⓒ뉴데일리
노무현 전 대통령 가족들의 뇌물사건도 몰랐다는 민정수석 출신
문재인노무현 정권 당시 대통령 가족을 총괄 관리하는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은 문재인의 자리였다. 그는 놀랍게도 일국의
퍼스트레이디인 권양숙씨가 청와대에서 100만달러의 뇌물을 받는 것도 몰랐다고 한다. 그 100만달러를 대통령
전용기를 통해 미국으로 밀반출한 것도 몰랐다고 한다. 이 정도 수준이니 당연히 대통령의 아들과 딸이 뇌물 수수 사건에 휘말리게 된
것도 당연히 몰랐을 것이다.이미 전임인 김대중 정권 시절 김홍일, 김홍업, 김홍걸 등 아들 세 명 모두가 뇌물을 받아 구속되는
참사가 벌어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가족 모두가 뇌물 사건에 개입했고, 민정수석 출신 비서실장 문재인은 이를 몰랐다는 것이다.
탁현민이 공개한 문재인과 그의 딸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이들은 대통령과 그의 가족은 별개라는 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대통령의 부인, 아들과 딸을 민정수석 출신 비서실장으로서 제대로 관리했을 리가 없는 일이다.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 친인척 비리가 거의 없었다. 박정희 직계로서 정치활동을 한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박정희 정권 시절에 친인척들에 대해 정보원들이
미행하며 감시했다”고 밝힌 적 있다. 이 때문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인이 불만을 터뜨리며 죽을 때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사이가 편치 않았다.
이런 분위기였기 때문에 불시에 퍼스트레이디직을 이어받은 박근혜 전 대표가 무리없이 직을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처칠의 경우는
2차세계대전 당시 아들과 딸 모두를 전쟁터로 내보냈다. 미국의 씨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경우는 아들 두 명이 각각 1차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에서 전사했다. 전시 상황의 국가의 지도자의 가족들이 어떻게 처신해야한는지 대표적인 사례들이다.2012년의 대한민국은
북한에서 핵미사일을 개발하고 있고, 3대세습의 불안정성 탓에 언제 어떤 무력 도발이 시도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런 시대의 지도자는 군대에 가
있는 남의 아들과 딸들에게 조국을 위해 목숨을 버리라는 명령을 내려야할지 모른다. 문재인이 “내 가족은 스스로 판단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지도자로서 심각한 결격사유가 된다. 가족 전체가 대통령직 수행을 위해 희생과 헌신을 각오할 자세가 아니라면, 자기 딸의 주장처럼 일찌감치
대통령의 꿈을 포기하는 게 맞다.노무현 자살의 원흉 문재인,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인그러나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아버지의 대통령직 도전과 자기 삶이 별개라고 주장하는 딸을 마치 자랑스러운 듯 공개하는 문재인 캠프의 지적 수준이다. 특히 자신이
모시던 전임 대통령이 자신의 가족들의 뇌물사건으로 자살까지 이르게 한 데 대한 무한 책임을 져야하는 문재인이라면, 더 그렇다. 이번 탁현민의
문재인 딸 관련 연출로 문재인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인이 되어버렸다.마지막으로 노무현 아저씨 사건으로 무섭고 슬프다는 문재인
딸이 안심할 만한 내용을 확인해준다. 문재인 딸이 처칠의 딸처럼 전쟁터로 가거나, 혹은 박근혜 전 대표처럼 불시에 퍼스트 레이디직을 맡는 것은
애초에 기대조차 하지 않겠다. 다만 노무현 가족들처럼 대통령 몰래 검은 돈에 손만 대지 않으면 그와 같은 대통령의 비극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은
안심해도 될 것이다.
요약
대통령 뻘건 마나님께서 뇌물로받은 돈을 국가의 재산(전용기) 을 이용해서
밀반출(외환거래법위반)
이걸 아는 국민은 가만이
있다------------자살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정이 너~~~~~~~~~~~무
많아~~~
그 나라의 국민들은 그
수준에
맞는 대통령을 갖는다!!!!!!
[일베 글 옮김]
석종대작성일 2013-07-19추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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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국정원 사건을 한번에 덮는 단어, '종북'
국정원 사건을 한번에 덮는 단어, '종북' [난 아직도 ing님 글]
최소한 새는 한쪽 날개로만 날 수 없듯, 보수 세력 혼자만의 힘으로 정치나 사회 전반의 모든것들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옛것을 지키고 더욱더 굳건히 하자는 보수와 그리고 새로운것들을 계속 받아 들이며 사회의 변화, 발전을 추구하자는 진보. 이 두개가 첨예하게 맡붙어 사회는, 그리고 정치는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참 이상한것들이 스스로 보수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중 옛것을 지키자고 이야기 하자는 사람은 없고 그냥 나와 생각이 다르면 종북세력, 홍어 좌빨세력이라 욕하고 비아냥 거린다. 이번 국정원직원 사건에서도 국정원녀가 하루에 수만페이지를 넘겨봐가며 모니터링 하고 IP추적을 했던 이유가 이 오유라는 사이트가 '종북'사이트라 그런다고 한다. 그 모든것을 한번에 덮어 버리는단어, '종북' 이란 단어. 소름끼치게 무섭다.
오유가 종북이라고?
내가 봐온 오유는 이랫다. 시시껄렁한 농담들, 그리고 'X싸고 여친 생겻어요.jpg"라며 온갖 유머 웃긴이야기들이 올라오는 곳이다. 간혹가다가 정치나 시사 글들도 올라오고 자취생들이 살면서 자기 사는 모습 갖다 찍어 올리고, 길고양이 밥이나 갖다 주며 동영상 촬영해서 인증샷이라 갖다 올리고 이거 말고도 리빙, 여행, 카메라, 온갖 갖가지 부류의 정말 시시껄렁하거나 혹은 웃기거나 또는 감동적이거나, 혹은 진짜 할짓없다 싶거나.
그 사이트의 전체적인 프레임과 그리고 틀은 보지 않고 단 한가지 껀수를 잡아 이 사이트는 종북사이트다, 종북세력이 활동하는 사이트 라고 손가락질 하는건 요즘 패륜의 극치라고 불리워져 손가락질 받는 '일베'라는 사이트를 범죄자 양성소라고 이야기 해도 할말 없을것이다. 껀수하나 잘 잡았다 싶기도 하다.
사실 그동안 일베와 그리고 오유라는 사이트는 서로 대립각을 세워 싸워왓다. 'X선비' 라고 조롱하고 '일베충'이라 조롱하고. 사실 그동안 사회에서 경악하게 만드는 사건들 예를 들자면 김홍일 사건때도 이 일베라는 사이트는 언급되었으며 6살 조선족 여자아이 성폭행 모의, 자기 누나의 속옷을 찍어 인증, 위안부 할머니 조롱, 맥도날드 할머니 괴롭히고, 엄마를 따먹고 싶다는둥, 엄마의 가슴이 어떻다는둥, 엉만튀(엉덩이 만지고 튀기), 슴만튀(가슴 만지고 튀기), 이거 말고도 일베 회원들끼리 모여서 성폭행 모의 이런 글들이 잊을만 하면 꼭 올라오는 사이트를 보고 과연 그 어떤 사람들이 '건전한 대한민국의 보수사이트' 라고 이야기 할수 있나.
국정원은 그런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하고 있는 사이트보다는 이 일베라는 사이트를 우선적으로 감시하고 모니터링 했어야지 맞는것이다. 국정원 포함, 그리고 경찰들 까지도. 얼마나 할짓이 없었으면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졸졸졸 올라오고 있는 사이트는 눈에 쌍불을 켜고 감시를 하고 어쩌면 정말 사회에 물의를 일으킬수 있었던 어쩌면 정말 이 사실만으로도 사회가 뒤집혀도 몇번은 뒤집혀야 되는데, 새누리당과 대한민국 정부는 이런것들은 그냥 모른척 싹 덮어두고 건전한 보수 사이트라며 새누리당 차원에서도 의견이 나올수 있었을까.
단지 이명박을 조롱하고 이명박을 비판하였다고 해서 종북 프레임을 덧씌우며 손가락질 하려거든, 먼저 이 일베라는 사이트부터 범죄자 양성소라고 인정하라. 그리고 정말 저들이 그렇게 좋아라 하는 네이버는, 그리고 다음은 종북포털인가? 그냥 검색어 하나로 그냥 찾아 돌리면 정말 저들이 그렇게 찾고자 했고 좋아라하는 김씨3부자를 추앙하며 그들을 그리워 하는 자들이 만들어 낸 '종북 블로그'가 수백 수천개가 나온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말이 말처럼 들리지, 말도 말같지 않은 소리를 해놓고서는 이걸 말이라고 들어 달라니 속이 여간 답답한게 아니다.
국정원직원이 내놓은 근거가 한없이 웃긴다.
아직도 나는 너무 궁금하다. 왜 국정원 직원은 40여개의 아이디가 필요했을까? 오유라는 사이트는 비밀번호 혹은 아이디를 따로 만들지 않아도 얼마든지 글 모니터링이 가능한 부분이다. 그것도 말이지, 종북 게시글이라 내어놓았던 증거중에 하나를 보면 참으로 우습지 않은 부분이 한군데 존재하고 있다.
북한의 선군 경제전략이 뭔지도 잘 모르겠지만, 이 동영상이 올라온 게시글의 실제 해당 추천리스트를 보면 04:00 21한대련 04:00:50 6.15 통일연대 등을 비롯해 교통연대, 내륙도매연합, 녹색연합, 농가주부모임, 목포여성회, 미디어센터 등 각종 단체들이 열거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수 있다.
해당 게시물에 추천은 1차로 4시경에 1~2분단위로 집중적으로 이뤄졌고, 이후 8시경에 2차 추천이 1~2분 단위로 이루어졌다. 100여개의 추천 닉네임이 일관되게 특정기관의 이름으로 한다는 것 자체가 일반적으로 없는 일이다. 세상 어떤 정신나간 얼빠진 종북세력이 나 종북세력입네 관등성명 대고 종북짓을 한다는 말인가. 실제로 그 사람들이 모두다들 종북세력이라면 국정원은, 그리고 경찰은 그 IP를 끝까지 추적해서 그 IP관련 자들을 모두다 소환 그리고 조사하면 되겟네.
분명히 이런다면 실제로 그 언급된 단체가 아닌 뜨끔하는 세력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을것이다. 나는 오유가 종북세력이 아니라는것을 확신한다. 국정원은, 그리고 경찰은 너무나도 당당하다면 끝까지 그 IP를 추적해서 그 IP로 그 게시글을 추천한 사람들을 모두 찾아내 조사하라. 그리고 끝까지 일벌백계해서 모범으로 삼고 지금처럼 시끄럽게 조사하라. 그리고 그 배후는 누구였는지, 그사람은 어디 소속이었는지 낱낱히 밝히고 그 가족의 3대까지 찾아내 조사하라. 하라는 조사는 안하고 왜 뒤에서 그 사이트가 종북입네 아닙네를 논하고 있나.
하기야, 유무선 인터넷 모두 차단이 된 농협 전산망을 해킹해서 몇일이고 농협의 전산망을 망가트리고 사회의 혼란을 가져다주고, 박근혜 당선인 인수위 기자실 해킹을 덮어놓고 무조건 덮어놓고 ‘북한 소행’이라 우기고, 대선 수개표 요구 집회 현수막 글씨체가 북한 글씨체라며 수사 운운하는 일도 있었다. 이쯤되면 ‘묻지마 종북론’ 수준이니 자신의 그 과오를 덮으려면 종북세력으로 덧씌워 어떻게든 빠져 나갈 궁리를 하는거. 그럴수도 있겠 싶기도 해서 웃음이 그냥 나온다.
실제로 따지고 보면, 국정원 직원의 대선관련 찬반표시 시점은 2012.8~12월. 기사 속 국정원 직원이 추적했다는 오유 종북글 게재 시점은 2011.2월과 2012.5월. 대체 앞뒤는 맞춰는 보았나. 그냥 그 게시글 하나만 가지고 자신이 대선관련 찬반표시한 2012년 8월~12월까지의 행적들은 덮어두고 가자는 말인가? 40여개의 아이디로 2012년 8월 부터 시작해서 12월까지 그 곳에서 어떤 종북세력의 글을 찾아서 실적을 올렷는지. 그리고 그 40여개의 아이디는 어떤 이유로 그렇게 만든건지 국정원 직원은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모든것을 한번에 덮어버리는 '종북'이란 단어
얼마전 참 우습지도 않은 사건이 있었다. 정미홍이라는 kbs 전 아나운서가 박원순 서울시장이 종북세력이 라며 맹비난을 한적이 있었지. 그리고 그 근거를 물어보니 출처는 일베. 참 여러 관점에서 그 정미홍 전 아나의 행동분석이 나왔다. 내 생각으로는 저번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 공천에서 떨어지고 난후 무언가 새누리당의 이목을 사로잡을 사건이 하나 필요했구나 싶다.
현 자칭 보수세력이 진보세력을 싸잡아 비난하기 위한 이 종북이라는 단어, 항상 현 정부를 비판하고 손가락질을 하면 항상 따라오는 단어 종북세력. 나는 저번에도 이야기 했지만 애국가도 잘부르고 국기에 대한 경례도 잘한다. 아주 곧 잘 하지. 그리고 나같은 사람은 북한 건너가면 당장에 쌍욕으로 김씨3부자 맹비난하다 아오지탄광 급행열차타고 끌려가 착취 당하고 배급도 못받고 굶어 죽을 사람이다. 이런 나더러 심심하면 북한 건너가라 뭐해라 소리 하는데, 내가 내 살기좋은 대한민국 버리고 쌍욕 튀어 나오는 왜 건너가야 되는데.
종북세력이네 어쩌네 말만 하지 말고 실제로 그 오유에 게시글을 올린 IP와 그리고 추천인들의 IP를 조사하라. 그리고 그 결과물로 판단하자. 누가 잡혀 들어가고 누가 뒤에가서 웃는지 명확하게 밝히자는것이다. 스스로 그 추천한 사람들은 뒤에가서 추천리스트에서 지워달라 어쩌라 징징짜는 소리 하지말고, 스스로 한일에 있어서 책임을 지자. 그런 생각도 없이 그런 글에 추천을 하고 댓글을 달고 그런글로 사람들을 선동한건 아니겟지만 말이다
가자서작성일 2013-01-29추천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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