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검색 결과(26);
-
-
[스포츠] '놀라운 회복세' KIA 12승 에이스, 실전 점검도 문제 없었다...KS 1차전 선발 준비 '청신호'
올 시즌 KIA 타이거즈 선발진에서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낸 외국인 투수 제임스 네일이 복귀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네일은 14일 광주-KIA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한국시리즈 대비 연습경기에 선발 등판해 3이닝 1피안타 무사사구 4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투구수는 31개로, 구종별로는 투심(11개)이 가장 많았다. 스위퍼(10개), 커터(6개), 체인지업(4개)이 그 뒤를 이었다. 투심 최고구속은 150km/h를 나타냈다.이날 롯데는 황성빈(좌익수)-윤동희(중견수)-손호영(3루수)-나승엽(1루수)-이정훈(지명타자)-정대선(유격수)-신윤후(우익수)-이호준(2루수)-정보근(포수) 순으로 라인업을 구성했다. 올 시즌 1군에서 주전 또는 백업으로 활약한 선수들이 대거 선발 출전했다. KIA와 네일로선 컨디션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였다.9일 상무와의 연습경기(2이닝 1피안타 1피홈런 무사사구 2탈삼진 1실점) 이후 나흘간 휴식을 취한 네일은 초반부터 순항을 이어갔다. 1회초 황성빈-윤동희-손호영을 삼자범퇴 처리했으며, 2회초에도 실점 없이 이닝을 마감했다. 3회초 정보근-황성빈-윤동희를 범타로 돌려세우면서 자신의 임무를 마쳤다.네일은 올해 정규시즌 26경기에 등판해 149⅓이닝 12승 5패 평균자책점 2.53의 성적을 올렸으며, 특히 홈구장인 광주에서 11경기 66이닝 6승 3패 평균자책점 1.77로 좋은 기억을 남겼다.하지만 지난 8월 24일 NC 다이노스와의 원정경기에서 6회말 선두타자 맷 데이비슨의 강습타구에 얼굴을 맞으면서 부상을 당했다. 검진 결과 턱관절 골절 소견을 받으면서 8월 25일 턱관절 고정술을 진행했다. 정규시즌 잔여경기는 물론이고 한국시리즈 등판 여부도 불투명했다.하지만 선수 본인의 의지가 강력했다. 네일은 27일 광주로 이동해 구단 지정병원에 입원했고, 사흘 만에 퇴원했다. 선수 본인의 의지에 따라서 지난 3일부터 홈구장인 광주-KIA챔피언스필드에 나와 실내 훈련을 진행했으며, 11일부터는 단계별 투구 프로그램(ITP)에 돌입했다.팀 입장에서는 네일이 무리하지 않길 바랐지만, 빠른 회복세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범호 KIA 감독은 지난달 말 네일에 관한 질문에 "한국시리즈에서 선발로 등판하는 게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고 이야기했다.네일은 정규시즌 잔여경기에 등판하지 않고 불펜투구를 통해서 컨디션을 끌어올렸고, 9일 상무전에 이어 14일 롯데전까지 두 차례의 연습경기 등판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한국시리즈 전까지 지금의 흐름을 계속 유지한다면 한국시리즈 1차전 선발 중책을 맡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한편 네일을 포함한 KIA 선수단은 14일 연습경기 이후 합숙에 돌입했다. 15~16일 훈련, 17일 휴식 이후 18일 자체 연습경기를 통해서 마지막 리허설을 진행한다. 이후 19일 훈련, 20일 휴식으로 한국시리즈 대비 훈련을 마무리하고, 21일부터 플레이오프 승자와 한국시리즈(KS·7전4선승제)를 치른다.
마크42작성일 2024-10-17추천 0
-
-
-
-
-
-
-
[무서운글터] 2007년 크보의 미스테리
1. 이현곤 타격왕 이전까진 타격이랑 거리가 멀었으나 이 해에 타신이 들렸는지 양준혁과의 타율 경쟁에서 1리 차이, 정확하게는 0.3378과 0.3371의 7모 차이로 타격왕 + 최다 안타왕에 등극했다. 그리고 2007년을 제외한 모든 시즌에서 3할은커녕 그 근처도 가지 못했다. 대신에 광고소환에 눈을 떴다. 2013시즌 NC 다이노스에서도 처참한 성적을 보여줬다 이후 세이버메트릭스의 스탯 중 하나인 BABIP를 계산해본 결과 이현곤의 2007년 BABIP는 .379로, 개인 커리어 평균이었던 .308, 리그 평균 .311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았다. 쉽게 말해서 세이버매트리션들의 입장은 "천운을 타고난 시즌". 2. 이승화, 이대형의 3할 타율 3할이랑 거리가 멀었던 그들이지만 이 해 들어 이승화는 비록 규정 타석은 채우지 못했지만 .301의 타율을 기록했고, 이대형은 .308의 타율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골든 글러브까지 수상했다. 그런데 2007년 이후에는 3할은 커녕 2할도 힘든 이승화와 도루말고는 깝깝한 이대형으로 돌아왔다. 근데 2013에는 도루도 깝깝하다.이에 대한 분석으로 가장 유력한 것은 내야안타의 비율이 높았고, 이에 대한 시프트를 포함한 대응책이 마련된 뒤로는 그 시절 성적이 안나오고 있다는 것. 두 명 모두 실질적으로는 2007년이 첫 풀타임 시즌이었기 때문이다. 3. 김동주 두 자릿수 도루 + 최준석과의 더블스틸 도루랑은 거의 관계가 없는 김동주였으나 이 해에만 11개를 기록했다. 참고로 11개는 전준호(타자), 이승화와 동률이었으며 정수근, 박한이보다 1개 많은 수치였다. 역대 커리어 상에서도 이 해를 제외하면 두 자릿 수 도루를 한 적이 없다. 사실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 최준석과의 0.2톤 더블스틸에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4. 투수 20승 및 200이닝 약빤 리오스가 234⅔이닝 투구에 22승을 거두었고, 류현진은 211이닝을 투구했다. 이후로 20승 및 200이닝은 나오지 않다가 2012년에 넥센의 나이트가 208⅔이닝 던지면서 5년 만에 200이닝을 넘긴 투수가 나왔다. 그리고 2013년은 리즈가 또다시 202⅔ 이닝을 투구하면서 또다시 200이닝 투수가 나왔다 5. 우규민 30세이브 후반기 체력이 떨어지면서 13블론세이브를 기록하긴 했지만 우규민은 2007년 30세이브로 오승환의 뒤를 이은 세이브 2위자리를 찍으며 LG의 새 수호신으로 우뚝 서는 듯했다. LG팬들은 김용수, 이상훈의 뒤를 잇는 철벽 마무리 투수의 계보에 이름을 올리길 바랬지만…. 현실은 서울 불바다.. 다행이도 이후 경찰청 야구단에서 선발 투수로서 준수한 성적을 냈고, 2013시즌 우규민은 선발 투수로 뛰면서 완봉승도 거두고 이젠 우규민 완봉하는 소리란 드립을 칠 수 없으려나 두 자릿수 승수도 올렸다. 6. 양준혁의 20-20 양준혁이 이전에 20-20을 달성했던 적은 3번 있었지만 가장 최근이 1999년, 2002년 이후로는 두 자릿수 도루는 커녕 5개 이하의 도루 개수를 기록하다가, 2005년에 10개를 하고 2006년에 12개를 하더니 2007년에는 20개를 해서 만 38세의 나이로 덜컥 20-20을 달성해버렸다(…). 이로써 역대 최고령 20-20 달성. 발 빠르던 선수들도 나이를 많이 먹으면 도루 개수가 점점 주는데 마흔이 다 되던 나이에 20도루를 했으니… 7. 이호준의 3할 1998년 해태 시절 때 0.303의 타율을 기록한 것을 제외하고 평생 3할 타율과는 인연이 없을 것 같던 이호준은, 공익근무요원으로 이탈했다가 부상으로 1년만에 돌아온 후 복귀한 2007년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391 타석으로 규정 타석(390타석)을 아슬아슬하게 채우며 타율 .313을 달성했다. 103경기를 뛰면서 당시 팀내 타점 1위, 타율은 정근우에 이어 팀내 2위이자 전체 8위, 홈런은 팀내에서 4위를 기록하며 2007년 SK의 통합 우승에 큰 이바지를 하였다. 2008년 이호준이 FA 신분을 획득하였고, 팬들은 프랜차이즈라 할 수 있는 그를 꼭 잡아야 한다고 하며 FA 릴레이까지 펼쳤다. 그리고 결국 4년 34억에 FA 계약을 체결했고 팬들의 기대는 컸다. 하지만 2008년은 달랑 8게임 뛰고 시즌을 접고 말았고 2009년에는 타율 .298을 기록하면서부터 다시 반등세(?)를 타는 듯 했지만 2010년과 2011년에는 기대에 못 미치고 말았다.그리고 2012년 시즌, 504타석에 .300의 타율과 18홈런, 78타점으로 괜찮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이호준이 이렇게 괜찮은 성적을 낸 이유가 다음 해가 FA라 FA로이드를 빨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팬들의 의견이었다. 기타 6월 13일에 그 나오기도 어렵다는 무보살 삼중살이 나왔다. 2013년 현재 한국 프로야구를 통틀어서 유일무이한 기록. 자세한 내용은 무보살 삼중살 항목 참고. 이와 비슷한 시즌으로 2009년이 있다. 백업 내야수에서 역대급 플루크 시즌을 보내며 MVP를 차지한 KIA 타이거즈의 김상현이나 CK포로 같이 활약한 최희섭, 역대급으로 운이 따라주면서 BABIP과 FIP에 비해 0.53이라는 터무니없이 낮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유동훈, 준수한 성적과는 거리가 멀던 삼성 라이온즈의 강봉규와 신명철이 동반으로 20-20 클럽에 가입하기도 하는 등, 커리어에 길이 남을 플루크 시즌을 보낸 이들이 많았다.
-
-
-
[자유·수다] 조인성-김민희 커플탄생 -_-ㅋㅋ
[Dispatch=송은주·서보현·김수지기자] '톱스타' 조인성(32)과 김민희(31)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한 봄날을 보내고 있다. 10년 전 모델로 활동하며 시작된 인연이, 10년 후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꽃을 피웠다.그 봄, 사랑에 빠졌다. 조인성과 김민희가 4개월째 열애중이다. 올해 초, 지인들과의 만남에서 마음을 열었고, 이달 초 밀렸던 사랑을 나누고 있다. 그리고 '디스패치'가 두 사람의 만남을 단독으로 포착했다.
조인성과 김민희의 데이트는 '극비'에 가까웠다. 둘의 관계를 아는 사람이 손에 꼽힐 정도였다. 그 만큼 비밀스럽고, 조심스러웠다. 대부분의 만남은 차 안에서 이루어졌다. 밖에서 움직일 때는 시간차를 유지했다.단, 연애의 온도는 뜨거웠다. 시간을 쪼개고 쪼갰다. 그도 그럴 것이 둘은 그동안 연애를 즐길 여유가 없었다. 본격적인 만남을 시작한 게 불과 1달 전. 지난 1월 연인의 감정을 확인했지만, 드라마와 영화 홍보에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둘의 데이트는 주로 몰아치기였다. 일례로 지난 6일, 김민희는 무대인사 스케줄을 끝내자 마자 조인성에게 향했다. 잠실 근교에서 만나 올림픽 공원 인근 주차장에서 데이트를 즐겼다.해외 일정이 있을 때는 앞뒤로 붙여 만났다. 조인성이 광고 촬영차 히말라야로 떠나기 전, 그리고 해외에서 돌아온 다음 날, 어김없이 만났다. 지난 7일에는 둘이서 드라이브를 즐겼고, 17일에는 지인들과 어울렸다.
밖에서 만날 때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각각 지인을 동반한 채 만났으며, 한 차로 옮겨탄 뒤 이동했다. 지난 17일 데이트가 그랬다. 이날 조인성은 김C가 진행하는 라디오에 출연했고, 그와 함께 움직였다.김민희의 경우 스타일리스트 A씨와 동행했다. 이들은 각각 한남동 모처에서 합류했고, 스타일리스트의 차를 이용해 이태원 경리단 길로 향했다. 차에 내릴 때도 시간차를 뒀고, 길을 걸을 때도 각각 걸었다.
그렇다면, 조인성과 김민희의 사랑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지난 17일 데이트가 그 답이다. 김C가 사랑의 오작교인 셈이다. 우선 조인성은 김C와 베프다. 그리고 김C는 스타일리스트 A씨와 인연이 있다. A씨는 또한 김민희와 막역하다.지난 1월, 조인성과 김C, 김민희와 A씨가 사석에서 종종 만남을 가졌다. 둘의 한 측근은 "편안한 사람들끼리 모인 자리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눴다"면서 "서로에게 호감을 보였고, 자연스레 관계가 진전됐다"고 귀띔했다.비슷한 관심사도 둘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두 사람 모두 모델 출신이다. 2000년대 초반 비슷한 시기에 활동을 시작했다. 배우로서의 독특한 색깔도 비슷하다. 모두 신중하게 작품을 고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민희의 한 측근은 "두 사람 모두 연예계 생활을 오래 했다. 비슷한 길을 걷다보니 서로 통하는 점이 많았다. 대화가 잘 통했다"면서 "서로 공개연애를 지양한터라 비밀스럽게 만났지만 서로에게 상당히 의지하고 있다"고 전했다.한편 조인성은 지난 달 SBS-TV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종영 이후 차기작을 검토 중이다. 이번 작품으로 다시 한 번 스타성과 흥행성을 입증했다. 김민희는 개성있는 캐릭터로 독보적인 포지셔닝을 구축하고 있다. 최근 개봉한 '연애의 온도'는 185만을 넘기며 흥행 중이다.< 사진=김용덕·이승훈·이호준·송효진기자, 사진출처=KBS >
-
[엽기유머] 야구선수 범죄리스트
-기아 이호성(일가족4명살인)서정환(음주운전) 김종국(아버지 아들 병역비리로 구속) 성영재(의병전역위해 뇌물제공 구속) 김응룡(심판구타) 김성한(김지영 구타) 김진우(음주폭행) 병역비리 유동훈(구속) 이현곤(불구속) 이상2명-현대(넥센전신) 위재영(병역법위반 현대구단직원 돈건네 구속) 박진만(아버지 병역면제위해 뇌물 불구속) 병역비리 박우호,박장희,김민우(이상 구속) 정성훈,신동민,마일영(이상 불구속)이상6명1991년11월 병역기피혐의로 태평양선수6명 연행 정민태(병역법위반 뇌물제공 구속) -SK 최정(대구시민 폭행)박경완(혼인빙자 간음)채병룡(공익근무중 이탈후 코치로 활동)위대한(퍽치기) 병역비리(조진호 윤형국 윤현식(이상 구속)) 이진영,이호준,안용휘(이상 불구속) 채종범(미검거)이상6명 -두산강병규(도박,폭행)이종민(음주운전 단속경찰매달고 170미터질주) 이용찬(음주운전,뺑소니) 김명제(음주운전) 강혁(뺑소니) 윤승균(강간)박성남(강간)김동주(간통) 박명환(약물) 병역비리 이재영(구속) 이재우,손시헌,노경은,채상병,김재호(이상 불구속)이상6명임태훈(따먹튀, 송지선투신)김재환(약물) -LG 김성현(승부조작)김재현(음주운전3회(측정거부,중앙선침범))이병훈(음주운전)김상훈(음주운전)백인천(간통,장모폭행) 채종국(강간)봉중근(부인폭행)정상흠(학부모에게 뇌물받아 체포) 서용빈(병무청직원에 뇌물제공 구속) 박철홍(병역비리로 아버지가 뇌물구속) 신윤호(길거리폭행 구치소)서승화(윤재국 선수생명절단, 2군에서 야구방망이로 후배폭행)병역비리 김광수,김용우,이경민,김광회,심수창,양현석(이상 구속) 손기현,이동현(이상 불구속) 박용진(미검거)이상9명오상민(사기,도박,혼인빙자,동거녀 자살(오상민이 동거녀명의로 도박빚을 지고, 거짓말까지..))-롯데 박기혁(음주운전3회, 0.149%면허취소) 김수화(일반인 폭행)정수근(음주운전, 술먹고 폭행)노장진(음주의혹후 무단이탈, 와이프 음독자살) 롯데도박파문선수(1명) 병역비리 김장현,서정호(이상 구속) 변인재,김주찬,허준혁(이상 불구속) 조성환(섬으로 도망가서 미검거, 공소시효 한달 앞두고 시효정지, 자수)이상6명 -삼성 임창용(간통,여자폭행) 채태인(도박) 진갑용(약물)장준환(강간)- 삼성도박파문선수(13명) 병역비리 정현욱,오상민,박정환,지승민,현재윤(이상 구속) 윤성환,김형근,이정호(이상 불구속)이상8명-한화 박노민(낙태2번시킨후 여자버림)한대화(부당이익을 취한 혐의로 고소,뇌물)최진호(뺑소니도주후 살인)도박파문선수(2명) 조성민(부인폭행,처남폭행)병역비리 신민기(구속) 마정길,고상천,조규수,한상훈,전경일,조현수(이상 불구속)이상7명
-
-
[엽기유머] 김가연이 밝히는 슬레이어스 해체 이유
슬레이어스팀을 해체하고 이에 대한 전반적인 모든 것들을 밝히는 이유는, 추후에라도 임요환의 수석코치발령과 관련해서 슬레이어스팀의 해체가 연관이 있다라고 추측이 나을 수도있고, 정확한 연유를 밝히지않고 팀만 해체한다면 그동안 응원해주신 팬들에게 실망감을 줄수도 있고, 왜 팀을 해체할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사실을 알려주는게 남은 팬들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하여 공식적으로 발표를 합니다.이번 11월3일 GSTL을 마지막 경기로 슬레이어스팀의 근 2년간의 행보를 정리하려합니다.그동안 응원해주신 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오랫동안 함께 하려햇던 것들이 지켜지지 않아 개인적으로 매우 아쉽고 속상합니다. 하지만 선수들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데 도움을 게속해서 줄 생각이며 여전히 남아있는 선수들은 훈훈하게 최선을 다해 마무리를 지을것입니다. 구단주로서 때로는 감독으로서 때로는 강경하게 때로는 과감하게... 울고 웃었던 지난 2년간의 기억을 좋은 추억으로만 간직 할수가 없어서 아쉬울 뿐입니다.언제나 저희를 믿고 응원해주셨던 국내외 팬분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예전에는 팀 내부적인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알릴 생각이 없었다. 어설프게 이야기를 해봐야 오해와 억측만 난무할 상황이라 밝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이제는 이야기할 시점이 됐다고 판단했다. 또한, 슬레이어스팀에 관련된 모든 것을 밝히고 털어내야 할 건 털고 싶다. 너무 많은 사건들이 한번에 터져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었다. 대인배의 마음으로 묻고 넘어가기엔 너무나 큰 상처들이다.슬레이어스의 현재문성원, 양준식은 2군으로 강등시켰고, 최근 어떠한 문제 발생으로 양준식은 방출할 예정이다(본인에게는 아직 통보하지 않았다). 김동원은 현재 집에서 게임을 하고 있고, 정승일은 원래 집에서 게임을 하면서 가끔 숙소에 합류하는 상황이었으며, 최재원은 탈퇴가 아닌 방출이다. 김상준, 최종환, 황도형은 진로 고민으로 생각할 시간을 준 상황이었고 현재 리그오브 레전드를 선택하여 전향하여 연습 중이다.원래는 GSTL 출전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실상 메인전력이 절반 이상이 빠진 상태라 고민이 많았다. 아직 계약기간이 남은 선수들 중 GSTL출전을 거부하는 선수들이 있어서 더더욱 결정이 힘들었다.하지만 남은 선수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출전을 원했다.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더라도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해서 그런 취지로 출전을 결정했다. 지금은 승패가 중요하지 않다. 남은 사람들끼리 한마음으로 뭉쳤다는데 의의를 두고 싶다.진로 고민 중인 3명을 제외하고 2군이었던 4명의 선수와 1군중 남은 4명으로 GSTL에 출전했다. 지난 GSTL때부터 출전을 아예 기피했던 양준식은 엔트리에서 완전히 제외하였다.임요환이 SK텔레콤 합류한 이유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슬레이어스 창단 시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과거의 이야기들을 해야 한다.슬레이어스와 스타2 협의회와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슬레이어스는 인텔이라는 후원사를 포함해서 가장 부유하게 출발했다. 임요환도 있었고. 그런 상황이라 협의회에서는 슬레이어스의 가입을 원했다. 하지만 단체의 성격도 파악되지 않은 상황이라 상황를 지켜보기로 했다.그때 터진 사건이 김동주 사건이다.김동주 사건당시 김동주는 IM 소속이었다. 김동주가 성상훈 코치에게 임요환의 팀에 합류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혔다. 나와 임요환은 전혀 들은 바가 없는 얘기였다.그 일로 인해 IM 측에서 협의회에 요청하여 GSL 출전 정지를 내부적으로 받은 상태인데 정확히 6개월인지 일 년인지 확정이 안 되었다고 들었다. 강동훈 감독이 김동주가 IM 팀에 대하여 외부인에게 안좋은 얘기를 하고 슬레이어스에서 김동주를 몰래 데려가려 했다는 내용으로 협의회에 말해 선수를 제재했기 때문에 김동주는 게임을 포기하려는 상황이었다.우리 입장에서는 우리가 선수를 몰래 빼 가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기에 그런 오해를 풀기 위해서라도 이 문제의 진실을 파악해야 했다.그래서 김동주가 확보한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한 내용을 확인해보니 정작 선수가 잘못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협의회 감독들을 만나 진상파악을 위해서 확보한 증거자료를 제공하고, 김동주와 정종현까지 입회한 상황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랬더니 그 자리에서 모든 증거 앞에서 할 말이 없어진 강동훈 감독이 본인이 오해한 거 같다고 김동주에게 왜 본인에게 진즉 말하지 않았냐, 라고만 했다.어쩌면 제2의 피해를 본 우리팀에게 사과를 할줄알았는데 본인들의 일과 무관한 타팀의 이미지를 대외적으로 그렇게 만든것에 대해서 사과조차 없었다. 협의회라는 단체에서 선수를 위해 어떤일이 발생했을때 양측에게 명확하게 진상조사를 하지 않고 한쪽의 일방적은 얘기만 듣고 문제를 처리하더라.그 사건으로 인해 협의회가 선수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일을 진행하는 단체라고 생각해서 가입을 포기하게 됐다. 들어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에 이운재 감독 사건이 터지면서 협의회의 문제점이 또다시 대두되었다. 그런데 이후에 사건이 또 터졌다.NASL 보증금 사건NASL 사건이다. NASL 시즌1이 진행되고 임요환을 비롯한 선수들이 출전하려고 준비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원종욱 감독이 연락해서 NASL 측에서 "본선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에게 비행기값을 대주지 않는다.", "이런 대우를 받고 해외경기를 나가면 안 된다.", "출전을 보이콧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준비를 한 상황(후원사에서 비행기나 호텔을 제공)이라 출전해야 했다.보이콧한다더니 결국 다른 팀들도 출전해서 이호준이 우승했다.NASL 시즌2가 시작되면서 또다시 보이콧 요청이 왔고, 슬레이어스도 합류하길 원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보이콧을 통해서 부당하다고 생각한 보증금 제도에 대해서 만족할만한 결과치를 얻을 수 있다면 이번에는 동참하겠다고 했다.원종욱 감독은 곰TV와 협의회가 일을 진행해서 얻을 것을 쟁취하겠다고 약속해서 NASL 시즌2에 불참했다. 그런데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NASL측와 어떤 대화라도 시도했는지, 양측 사이에 이메일이라도 오고 갔는지를 보여달라고 했으나 원종욱 감독은 그런 게 없다고 했다.사실상 NASL 측의 보증금 제도는 필요한 상황이었음을 어느 정도 나는 인정한다. 예선전이 방송경기를 통해서 오랜 시간 이루어진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본선 진출이 확정되지 않는 선수들은 경기를 마지막까지 참여 안 하고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그래서 선수들이 그러한 행동을 하면 보증금에서 돈이 깎이도록 벌금을 부과할 수밖에 없다는걸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인지했다. NASL 시즌3이 진행돼서 또다시 고민이 됐다. 시즌2에서 보이콧을 했지만 얻은 결과도 없었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참가를 지시하고 보증금도 납부했다.슬레이어스는 8명이 예선을 통과했더니 이후 최윤상 감독에게 연락이 오더라. 우리 팀에 서운하다는 말이 요지였고 FXO 는 예선 참가했다가 급히 출전을 포기했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러므로 예선 통과한 8명을 포기시키라고 말했다.나는 원종욱이 나에게 결과를 보여주기로 했는데 그 결과는 아무것도 없고 나는 더이상 그 보이콧에 참여할 의미가 없다고 최윤상 감독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분명히 오해하고 있을 다른 감독들에게 전달하길 원했지만, 이상하게도 공유되지 않았다.심지어 원종욱 감독은 슬레이어스팀의 입장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었는데 그걸 전달하지 않아 타팀들에게 오해를 여전히 안겨주더라. 그리고 왜 그걸 전달하지 않았느냐고 내가 물었을 때 원종욱은 NASL 2차 보이콧때 나와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말을 하더라. 참으로 운영진들이 책임감 없는 단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NASL에 출전했기 때문에 슬레이어스 선수들의 연습을 도와주지 말고 왕따시키라는 결정을 했다고 하더라. 연습을 도와주지도 않을뿐더러 래더상에서 채팅조차 못하게 한 것으로 알고 있다.개중에 정말 친해서 어쩔 수 없이 도와줄 선수들은 본인의 다른 아이디로 우리 팀의 선수를 도와주곤 했다. 그래서 그 내용으로 원종욱 감독에게 여의도에서 직접 만나서 따져 물었더니 "치사하지만 이렇게라도 슬레이어스팀에게 제재할 생각이다." 라고 당당하게 말하더라.선수들끼리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고, 우리가 잘못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슬레이어스를 왕따시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항의했다. 원종욱감독은 우리팀이 따로놀고 자기들을 도와주지 않는다면서 그들의 단체에 들지 않았기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 했다.몇 번 항의를 했지만 여전히 해답도 없고 연습거부에 대한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어서 선수들이 힘들어했다. 보다못해 미국 경기장에 가 있던 원종욱 감독에게 "나 때문에 우리 팀 선수들이 피해를 받는 걸 원치 않는다. 우리 팀을 해체할 테니 슬레이어스 선수들 모두 데려가라"고 요청했다.또한 "우리 팀을 해체하게 됨으로써 후원사들에게 받은 후원금이나 손해배상에 대해서 정식적으로 책임을 묻겠다"고 하자 원종욱 감독은 회의를 통해서 결과를 주겠다고 말을 했다. 그제야 그나마 발 빠르게 이메일로 제재를 풀겠다고 보내왔다.(기자에게 해당 이메일을 보여주고 확인함) 누가 누굴 무슨 권리로 왕따시키고 제재한다는 것인지.하지만 그 이후로 우리 팀 선수들에게 확인을 해보니 말로는 제재를 풀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선수들의 연습을 도와주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하더라. 이건 현재는 해외팀 소속인 전 OGS소속의 선수가 해준말이다.그렇다. 왕따 때문에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사이가 벌어졌다. 그때부터 다른 팀과 슬레이어스는 물과 기름 같은 관계였다. 비전 선포식 직전에 연락이 왔는데 연맹을 결성해야 하기 때문에 슬레이어스 합류를 요청했다.마음대로 제재하더니 임요환이 필요하니까 합류를 요청했는데 어이가 없었다. 동업자의식을 운운하는 걸 보면 정말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동업자라 생각해서 우리 팀 선수들을 왕따를 하라고 시켰던 것인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서 전혀 죄의식도 없는 단체이다. 그래서 당연히 참가를 거절했다.그들이 나에게 화해를 요청한 적도 없었다. 왕따를 포함한 연습 거부가 진행될 때 계속해서 원종욱 감독에게 재차 연락해서 확인했지만, 연습 거부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수들은 감독님 지시로 여전히 연습을 도와주지 말라고 했다고 말을 한다. 뭐가 진실인지 모르겠다. 선수들이 그런 감독의 지시를 너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도 우습다.그러면서 정작 우리 팀 선수들에게 연습을 도와달라고 본인들은 말하고 우리 팀 선수가 도와달라고하면 팀에서 못하게 한다고 한다, 이 무슨 이기적인 상황인가. 실제로 우리 팀선수가 타 팀의 선수들 연습을 도와준 인터뷰를 종종 봤을 것이다.현재 무소속이지만 우리 팀에서 연습을 하며 머물고있는 김성한도 같은 피해를 받고있다. 단지 슬레이어스팀에 머물고 있다는 이유로 말이다. 현재진행형으로 이것은 계속 자행되고있다. 원종욱 감독이 자신있게 자신은 팀 선수들에게 해제했다고 자신있게 말하는데 내말이 거짓이라면 정식으로 항의하길 바란다.우리 팀에 현재 연맹 소속이었던 선수가 있다는 걸 기억한다면 부정은 못할 것이다. 본인의 팀 선수 중 누가 한 말인지 삼자대면으로 가르쳐줄 것이다.문성원 사건우리팀에 한때 해외파트를 맡아 하던 J 매니저가 있었다. 그 친구가 원래는 임요환 선수에게만 관심을 두었는데 처음부터 문성원과 친한건 아니지만 문성원이 성적을 잘내던 시점부터 문성원의 경기에 지극정성으로 찾아다녔다.슬레이어스팀을 좋아하기 때문에 본인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맡아 해외팬들과 소통하겠다고 하여 그 일을 맡기면서 본격적으로 우리팀의 해외파트 관련 매니저 일을 맡겼다. 지난 1월 우리가 두 개의 후원사와 계약 종료되기전 사실 후원사들과 계약연장을 위한 작업과 협의가 진행되었다.그걸 그 친구가 맡아서 했는데 이상하게 후원사의 요구조건이나 우리와의 방향이 어긋난다고 보고를 받았다. 나는 나대로 후원사가 성적을 잘 내고 있는 우리팀에게 왜 이럴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조건을 제시받았다. 결국 나도 후원사와의 재계약을 포기해야하는 일이 생겼다.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나는 후원을 따로이 받지 않아도 충분히 운영이 가능하다고 판단하여 별이상없이 팀을 그래도 운영하고 추후에 후원사작업을 따로 하려했다. 그런데 선수들이 자꾸 뭔가 어수선한 분위기에 J 매니저의 행동에 의심스러운 점이 포착되어 내가 조사를 시작했다.결과는 충격적이었다. J매니저는 나와 후원사들간의 사이에서 서로 다른 보고를 했다. 즉 나에게는 일이 잘 진행되고 있고 또는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된다고 얘기를 했는데 알고보니 실제로 그 후원사들과 어떠한 접촉들도 없거나, 거짓으로 오히려 조건협상을 엉터리로해서 그 후원사와의 협상을 결렬되게 만들었다.더 어처구니 없는건 선수들에게 내가 후원사로부터 팀선수들 이름으로 후원금을 받아서 그걸 내가 착복했다는 것이다. 우리팀은 분명히 임요환 개인 후원금과 후원물품들로 팀 지원을 받았다. 그걸 분명히 선수들이 요환씨가 개인돈으로 이렇게 팀을 운영하는걸 알고있는데 어떻게 그 매니저말을 믿는지 정말 이해할수가 없었다.특히 문성원은 내가 어떤 후원사로부터 본인 개인후원이 들어온걸 내가 중간에 커트했다는 J매니저의 말에 혹한게 정말 실망스러웠다. 내가 그렇게 애정으로 케어해온 내 선수들이 나보다 2달 밖에 안된 매니저의 말을 믿을수있는건지, 정말 억장이 무너지고 이루말할수없는 실망감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J매니저는 문성원과 몇몇 선수들에게 함께 나가서 팀을 만들자고 했다고 한다. 본인이 스폰서를 받아오겟다고, 중요한건 문성원은 이 부분은 어떠한 확인조차 없이 그 말만 믿고 J매니저와 일을 진행하려했다가 내가 진실을 파헤치자 그때서야 사실을 털어놓앗다.게다가 선수들중 아무도 나에게 이걸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는게 충격이었다. 정말 그땐 그 매니저를 법적으로 처벌하려했다. 그런데 선수들을 위해서 참아야했다. 내가 눈치를 채고 알아내서 이 사건이 파헤쳐진것이지, 아마 몰랐다면 어느날 갑자기 선수들이 나간다고 했을것이다. 이후로 문성원의 팀탈퇴 발언이 시작되었고 나도 문성원을 무조건 믿었던 신뢰가 깨지기 시작했다.문성원의 주장에 의하면, 문성원을 비롯해 외국 대회에 주로 출전한 선수들의 말을 들어보면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고, 여전히 왕따를 시키면서 슬레이어스와 내 욕을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면서 외국 팀으로 가면 일정 수준 이상의 연봉을 받을 거라면서 이적을 권유하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 문성원, 양준식, 최재원, 김동원 외국 대회에 나갈 때마다 그것 때문에 슬레이어스 선수로 활동하기 힘들다는 말을 너무 자주 들었다.그것이 문성원이 팀을 나가겠다고 주장하는 표면적인 첫 번째 이유였다.문성원이 징계 받을 이유가 따로 있었다. 일단 앞선 연맹팀의 왕따의 이유는 상황 설명(NASL출전에 관련된 사건)을 하고 이해를 시켰다. 이후에 문성원이 최재원가 자주 어울리기 시작했다. 둘이 무슨 말을 나눴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재원이 팀 분위기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다는 말을 시작했다. 선수들이 연습에 집중하고 GSTL 준비를 해야 하는데 말도 듣지 않고 게임도 하지 않는다고 말하더라. 당시 임요환이 어깨가 아파서 쉬는 상황이었는데 아무래도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팀에 합류시켜서 선수들을 봐달라고 부탁을 했다.그럼에도 최재원의 말은 감독님에게 말을 하고 임요환도 왔는데 팀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이 없는데 도대체 뭘 했냐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나느 최재원의 말에 굉장히 미안했다. 선수가 계속 불만을 토로하는데 변화가 없다고 하니 답답하기도 했다.그런데 어느 날 최재원이 목이 아파서 집에서 쉬어야겠다고 말하더라. 디스크 초기라서 쉬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GSTL 4강을 앞둔 상황이었다. 본인은 준비한게 있으니 집에 가서 해도 도니다고 했다. 그래서 홍승표 코치에게 물었더니 준비한 맵에 준비한 빌드가 있어서 집에 가서 연습해도 지장이 없다고 해서 귀가시켰다. 하지만 최재원은 홍승표 코치에게 집에 가면 나는 게임을 하지 않을 테니 비밀로 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그 주말에 경기를 앞두고 엔트리에서 빼달라는 요청이 왔다. 몸이 너무 아픈 것 같아보여서 메신저로 이야기를 걸었는데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메시지를 남겼다. 엔트리에 넣긴 할 테니 몸과 마음 잘 추스르고 경기장에서 보자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후에 최재원으로부터 홍코치에게 문자가 왔다. 누나는 나에게 대체 왜 그러냐고 햇다고 한다.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 경기장에서 보자고 한말이 무슨 나쁜말인가...홍승표 코치가 그제서야 최재원이 게임 그만둔다고 했다는 말을 하더라. 그래서 최재원에게 나에게 직접 말을 하지 왜 그랬냐고 물어보니 정말 쉬고 싶다는 내용이었고, 외국 팀으로 이적하거나 다른 팀으로 옮길 생각이 없으니 제발 자기를 놔달라고 하더라. 최재원이 나가는 것을 막을 생각도 없었고, 본인이 게임을 하지 않고 쉬겠다고 해서 슬레이어스를 나가는 것을 동의했다.그런데 이후에 다른 사람을 통해 들으니 해외 팀을 구한다면서 방송을 하고 있다더라. 그래서 왜 나에게 거짓말을 했느냐와 프로 답지 못한 자세를 지적하였다. 문성원이 왜 팀을 나가려고 했는지 아느냐고 되묻더라. 최재원의 말은 자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본인이 팀 분위기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나가고 싶다고 하니 문성원도 같이 나가자고 말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문성원에게 그 말을 확인했더니 아니라고 하더라.최근에는 최재원이 전화해서 자신의 게이머 인생을 망칠 생각이냐며 김동원, 양준식, 문성원 문제를 나에게 엮느냐고 항의하더라. 그러면서 나에게 소리를 지르는데 너무 어이가 없었다.아무리 그래도 본인을 키워주던 게임단의 구단주에게 어따 대고 소리를 지르냐고 말했더니 똑같이 그러는 누나는 어따 대고 그러냐며 말하는데 기가 차더라.옆에서 듣다못한 임요환이 전화를 받자, 형은 뭐했냐며 역시나 소리를 높였다. 최재원은 올해말까지만 스타2를 할 생각이라고 그래서 편하게 겜할려고 팀 나간거라고 주장하는데 과연 그런건지는 지켜봐야겟다. 나중에라도 그런적 없다고 딴소리 할까봐 통화녹음도 해두었다.2년간 억대의 돈을 쏟아 부으면서 지극정성으로 팀을 꾸렸는데 오히려 선수들에게 욕을 얻어먹는 상황에서 임요환이 충격을 받았다. GSTL 결승전까지 가게되었음에도 팀 분위기는 너무 좋지 않았다. 팀의 분위기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문성원과 최재원에 대한 조취를 취해야햇다. 그래서 문성원을 집으로 보냈고, 최재원은 방출을 결정했다. 팀원으로 있을 수 없는 행동을 했고 분위기를 흐린 것에 대한 징계를 할 수 밖에 없었다.그래서 문성원에게 이를 통보하려했으나 문성원은 주말에 외출했는데 팀에도 복귀하지 않고, GSTL 연습도 도와주지 않고 사람이 달라졌다. 나와 임요환은 문성원 대신 김동원에게 얘기를 했다. 사실 동원이가 그전에는 나랑 농담도 잘했는데 어느순간 어려워하면서 눈도 못마주치더라. 그래서 무슨 문제가 있는건지를 얘기하고싶었다. 문성원이 이미 전에도 2차례 팀을 나가고 싶다고 얘기 했고, 그때마다 그 이유를 들어주며 상황을 이해시켜주고 어루고 달래서 끌고 갔다.하지만 다시한번 이러한 문제가 나오기 시작했고 이번에는 김동원등 같은 팀원에게도 전이되고 있는것 같기에 4강 진출에도 불구 하고 이정도라면 심각하다 판단되었다. 김동원이 그에 휩쓸리지 않고 제대로 된 길을 갈 수있도록 하기 위해 임요환은 제살을 베는 기분으로 문성원은 지금으로서는 팀에 암적인 존재이니 니가 잘 생각하고 판단했으면 좋겠다 라고 했고, 김동원도 혼란스러웠는지 집에서 쉬면서 게임에 집중하겠다고 하여 그리하였다.문성원은 그 다음날이 되서야 숙소로 복귀하였다. 아마도 김동원에게 얘기를 전해들었는지 임요환과 얘기를 하기도 전에 이미 짐을 다싸놓았다. 임요환이 문성원을 불러놓고 얘기을 시작하려고 하니 문성원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것같다고 했다. 임요환이 문성원에게 2군 강등이고 집으로 귀가하라고 말하니 그럴필요 없이 자기가 팀을 나가면 된다 말했다.임요환이 팀과 계약이 된 선수라고 말을 하자 문성원은 그건 계약이 아니고 노예계약이라고 말하더라. 우리가 선수와 한 계약서는 후원사 제출용으로 계약 기간 1년에 상금쉐어비율(선수가 대부분 수령)을 책정 했지만, 실제로는 받지도 않았다. 우리가 돈을 받기위해 계약서를 작성한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걸 노예계약이라고 하는 순간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계약서 작성한 선수는 문성원 김동주 포함해서 총 5명이었다.임요환의 심정 변화우선 노예계약이라는 말에 크게 상심하였다. 임요환은 십수년전에 선수들이 아주 어렵게 생활해 온 기억을 살려서 가능한한 선수들을 위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했다. 많은 비난을 맞으며 고향을 떠나 스타2로 먼저 넘어왔지만 선수생활를 계속하고, 후진을 양성하여 그들로 하여금 이스포츠의 미래를 맡기고 싶어 했던게 임요환의 꿈이였기에 그가 애지중지 키운 문성원의 언행에 큰 좌절감을 맛보았다.당시 임요환은 군단의 심장 발매 전에 복귀를 하기 위해 준비하는 상태였지만 오히려 게임을 그만두려고 했다.임요환은 관리자로서, 선수로서의 열정이 급격히 사그라들고 있었고, 그걸 지켜보고 있는 나도 매우 힘들었다. 평소 선수들에게 프로선수로서의 10년이 넘는 경험을 내외적으로 가르치고 있었지만 선수들은 쉬이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T1에게도 도움이 되고 또한 남겨진 선수들에게도 자극적이며 동기부여를 줄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의를 했다. 임요환은 며칠간 많은 고민을 하더니 이내 그러는게 좋겠다고 했다.양준식과 김동원김동원은 문성원의 그늘에 가려있었고, 문성원을 많이 따르고 친했다. 임요환이 문성원을 챙겼다면, 나는 김동원을 챙겼다. 그런 사건이 터지면서 문성원에게 물들까봐 김동원과 격리시킬 필요가 있었고, 마침 손목도 좋지 않아서 집으로 보냈다. 집으로 보냈더니 성적도 잘 내더라. 김동원은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GSTL에서도 최선을 다했다. 그렇지만 김동원도 이유없이 문성원 따라하는 행동이 실망스럽기는 하다. 왜 그러한 행동을 하는지는 물었을때 김동원도 어느순간 신뢰를 잃었다고 말햇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를 물었으나 대답은 못하더라.양준식은 과거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슬레이어스 창단 멤버가 아니라 연습생으로 합류시킨 선수다. 뭘 시켜도 솔선수범했고 성실한 선수였다. 그런데 외국 대회를 나가면서 뭔가 다른 모습이 보였다. 사람이 돈과 명예를 쫓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우리 팀은 시작부터 모든 것을 갖추고 화려하게 시작했다. 여의도 숙소 시절 밴과 승용차를 모두 쓰면서 애들을 챙겼다. 일도 시작하고 김포로 옮기면서 홍승표 코치의 비중을 높였다. 애초부터 헝그리정신 자체가 없이 시작했다. 시작이 어려웠다면 상황이 좋아지면서 감사해졌을텐데 처음에 좋았더니 거꾸로 나빠진다고 생각하고 불만만 생겼다.양준식의 불만은 해외 대회에 출전하고 귀국할때 공항에 마중나오지 않아서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경기장에 감독이 직접 안 데려다줘서 짜증난다는 것이 이유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한숨밖에 안나왔다. 그래서 곧바로 집으로 보냈다. 내가 뭐를 잘못한 것이 아니라 이런 이유라니 기본이 안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이번 10월 6일까지 원래는 별도의 통보가 없으면 계약기간이 자동적으로 연장된다. 양준식은 아무런 통보를 해오지 않았고 사실상 계약연장이라 할수있다. 하지만 나는 양준식을 팀에서 퇴출할것이다. 밝힐수 없는 이유가 하나 최근에 일어났다.법적으로 문제가 될 치명적인 문제이고 용서할수 없는 일이지만, 연관된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여 밝히지 않겟다. 이후라도 분쟁이 생기면 그때가서 봐야할거같다.한규종을 KT로 보낸 이유한규종은 문성원과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불안했다. 문성원에 휩쓸려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그의 길을 만들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도 가야하고 성적도 나지 않는 상황에서 지켜보기 안쓰러웠다. 다른 식으로 꿈을 펼칠 기회가 있다고 설득했고, 마침 KT에서 코치 영입 제의가 왔다. 처음에는 홍승표 코치를 생각했다가 테란 코치를 원해서 한규종을 설득해서 보낸 것이다.슬레이어즈 해체에 대한 외부 소문웅진 류원 코치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슬레이어스 해체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더라. 연맹 팀에게 해체 이야기를 들었다는 이야기가 요지였다. 연맹측이 왜 그런 말을 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당시 해체는 결정되어 진 바 없었다.연맹-협회 선수 협약에서 슬레이어스가 빠져 있어서 그런 말이 나오는 거 같은데 실제로는 빠져있지 않다. 연맹에서 그 내용을 발표할 때 우리에게 어떤 내용의 통보도 없었다. 선수 협약 역시 전혀 몰랐고, 발표되고 나서야 알았다. 왜 우리 팀이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슬레이어스는 연맹 입장에서 케스파입장에서나 외국 팀이나 뭐가 다른가. 실제로 외국팀에 소속된 한국선수에 대한 규정 자체도 안정해졌다.우리팀의 선수가 필요로해서 데려갈 팀이 있다면 난 언제든지 보낼것이다. 그게 내가 남은 선수들에게 해줄 유일한 배려이다. 앞으로 선수 영입 제안이 오면 보낼 생각이다. 이전에도 그랬고, 이후에도 이적료 발생없이 보낼것이다. 내가 선수들 이적료 챙길려고 팀을 만든게 아니잖는가.우리가 애초에 원했던 대로 모두가 함께 창단팀으로 갈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차피 선수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그게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전에 문성원은 나중에라도 케스파에 영입되어서 연봉받고 좋은팀에 갈 기회가 생기면 보내주겠다고 말했는데 본인은 협회 소속 게임단으로 죽어도 안 간다고 장담을 했고 기존 케스파 프로게임단에서 이미 해봤기 때문에 다신 그 생활을 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 케스파 프로리그에는 절대 출전하지 않겠다고 확언했다. 과연 진실인지는 두고 볼 생각이다.계약서를 안 쓴 선수들은 당연히 잡지 않고 계약되어 있어도 그들이 진정 원할때 보내주었다. 계약한 선수들은 계약기간이 끝나면 팀을 남을수도 본인이 원하는 팀으로 가겠지 않는가? 김동주도 계약서를 썼지만 원해서 보내줬다. 내가 원하는건 선수들이 신의를 저버리는 행동은 안하고 적어도 프로다운 마무리를 했으면 좋겠다.계약한 선수들은 11월에 계약이 끝난다. 단언컨대 계약서 내용에 문제가 있거나 내가 지키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면 꼬투리를 잡아서 팀을 나겠지만, 팀에서 지키지 않은 내용은 하나도 없고 선수들에게 10원도 받은 적이 없다.오히려 임요환에게 배당된 금액도 선수들에게 모두 나눠서 주고 그렇게 팀에 투자했다. 내가 알기로 양준식은 이미 갈 해외팀을 정했다고 얘기를 전해들었지만 본인은 아무말도 하지않고있으니 사실여부를 알수는 없다. 다만 다른 팀에 가서는 그런 행동 하지 않기 바란다.일반적으로 후원은 팀 운영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필요한 부분이다. 굳이 후원을 하지 않아도 지금처럼 내가 운영비를 투자해서 꾸리면 된다. 굉장히 좋은 조건의 좋은 기회들이 있었지만 이기적인 선수 덕분에 날아갔다.최근에 들은 얘기인데, 우리팀은 내가 선수들에게 돈을 받고 그 돈으로 팀을 운영한다는 루머가 있다고 한다. 원래 외부적으로는 모두가 우리팀이 임요환 개인후원금으로 운영한 것을 알고있는데 내부인이 그런 루머를 말했기에 그걸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하는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추측컨대 팀을 빠져나가기 위해 팀과 나에게 위해가 되는 루머를 퍼트린게 아닌가 생각된다.실제로 예전 협의회팀중에서는 선수들에게 월마다 돈을 받고 아마추어 숙소처럼 운영을 했었다. 나중에 협의회 규정에 의해 선수에게 못 받게 했으나 어느팀은 여전히 차명계좌로 받고 있었던 것을 알고있엇다. 지금은 후원금을 받고있으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그래도 팀을 꾸리기 위해서는 후원도 필요하다. 이미 맨땅에 헤딩한 상황이다. 이미 몇억대가 운영비로 쓰여졌다. 처음부터 수익을 바라고 한건 아니지만 모두가 잘되는 그림을 원햇던 상황이었기에 아쉽기는 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팀을 운영했던 이유는 남은 선수들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성적이 저조한건 사실이다. 그리고 여전히 슬레이어스를 지켜보고 응원해주는 팬들이 있어서 함부로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선수들이 GSTL에 출전할 엔트리도 못 채울 수준이 된다면 그렇게 될수도 있고,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나도 예측을 못했었다. 상황들이 급변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결정을 내리려고 한다.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슬레이어스를 처음 만들 때 임요환을 필두로 엄청난 팀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이제 임요환이 없고, 그런 상황에서 나를 믿고 따르는 선수들에게 부모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선수들이 신의를 저버리는 행동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슬레이어스팀에서 타팀으로 이적한 선수들에 대한 오해김동주와 윤영서.조명환.김성한은 팀을 나갈때 문제 없는 케이스다. 윤영서는 본인이 가고 싶다고 요청해서 보내줬다. 외국 팀이 아니라 다른 팀으로 옮겨서 활동하고 싶어했고, 그 과정에서 팀리퀴드의 요청이 온 것이다. 옮겨서 잘하고 있고 볼때마다 너무 기특하고 뿌듯하다. 연습을 많이 하거나 노력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성적을 내는 것을 보면 문성원이 노력형이라면 윤영서는 정말 천재형이다. 아마 정말 시스템안에서 훈련되어진다면 내가 볼땐 최고의 선수가 될것같다.마지막으로이렇게 세세하게 밝히는건 팩트를 밝혀야 남은 선수들에게 억측과 오해가 난무하지 않을거라 생각하고 판단한거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을 각 당사자들의 입을 통해서 들었다. 오늘 이 기사를 보고 각자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겟다. 내가 몰랐던, 나에게 말안했던 진실을 또 털어놓을지, 아니면 정말 다른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할지는 지켜봐야겟다.결론은 누가 옳고 그르다 보다는 적어도 왕따같은 일들이 다시는 자행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최근에 연맹의 한 선수는 부캐릭으로 슬레이어스숙소에 머물고 있는 김성한에게 슬레기라고 채팅으로 욕하더라. 왕따도 시키는데 뭐라고 욕인들 못하겠냐만 소양교육을 시킨면서도 왕따를 지시하는 모순적 행동이 어린선수들에게 어떤영향을 미치는지 연맹측은 생각해봐야할것이다.이 모든걸 조용히 묻어버릴수도 있었다. 오랜시간 고민했다. 연맹측은 내가 동업자 의식이 없다고 말한다. 과연 우릴 동업자라 생각해서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인가? 하나의 단체가 세력을 형성하고 파워를 갖는건 그 단체가 앞으로 일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요건이라 생각한다. 허나 연맹측에서는 운영진의 기본 마인드부터 제대로 갖춰지 않은 상태로 단체의 파워만 보일려고 했다.진정 이스포츠가 발전하길 원한다면 제한적인 협약보다는 선수들이 자유롭게 뛸수 있을 공간과 상황을 더 갖춰주려고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표면적인 이유로 그럴싸하게 포장을 할뿐. 실제적으로는 자기 밥그릇 보존에 신경쓰는것이라 보여지기때문에 나는 이후에라도 신뢰할수있는 운영진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연맹에 가입할 의사가 없다.임요환의 skt코치행 기사에 슬레이어스팀의 연맹 비가입이유를 알거같다는 헛소리가 더이상 나오지 않게 이유를 명확히 밝히는것이다. 이것이 팬들이 궁금해 하는 "슬레이어스팀이 연맹에 가입하지 않았던 "단호한 이유"이다.이 많은 얘기들을 자세히 하는건 우리가 억울하다 이런것이 아니다. 어차피 팀은 없어지면 기억에서 사라지겠지만 선수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의 영역에 있어야한다. 오해가 쌓이고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게 될 루머들을 모두 정리 하고싶었다. 이것 또한 팬들이 알고싶어했으나 내가 그동안 말을 아껴왔던 이유이다.진흙탕 싸움이 될수도 있겟지만 난 거짓을 말한게 하나도 없다.난 정말 그들이 나에게 말안한 진실이 있다면 스스로 밝혀주길 바란다.출처 - http://www.inven.co.kr/webzine/news/?news=48785
http://www.thisisgame.com/board/view.php?id=1315257&category=102
면죄자작성일 2012-10-18추천 4
-
-
[정치·경제·사회] 매국노 이완용
위키펌성명이완용(李完用)출생1858년 6월 7일, 경기도 광주사망1926년 2월 12일, 일제강점기 조선(67세 7개월 5일)분야장사꾼정치주요활동일제의 대한제국 국권 침탈에 적극 기여함평가매국노, 팔 수 없는 것을 팔아 누릴 수 없는 것을 누린 자비고친일인명사전 등재젊은 시절늙은 모습(1916년)여러분은 인간이 원숭이로 진화한 장면을 보고 계십니다그도 갔다. 팔지 못할 것을 팔아서 누리지 못할 것을 누린 자. 이제부터는 천벌을 영원히 받아야지.[1]- 동아일보, 이완용의 사망 직후대한제국 내각총리대신으로, 친미, 친러, 친일 코스를 차례로 밟다가 결국 친일파로 진로를 결정해 한일 병합 조약 체결을 주도한 매국노의 필두.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이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매국노로 대한제국을 일본에 앞장서서 팔아 넘긴 매국노의 수장이다.[2]악명이 너무나 자자하여 을사오적이라고 하는데 웬만한 사람은 이완용 빼고 다른 인간들은 이름이 생각이 안 날 정도이다. 심지어 근현대사, 국사를 배울 때 을사오적 이야기가 나오면 거진 모든 아이들이 이완용 빼고 나머지를 잊는다.[3] 덕분에 자기 혼자 주야장천 까이느라 다른 지구가 끝나는 날까지 가루가 되도록 까도 시원찮은 자들의 방어막이 되고 있다(프렌드 실드?).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된 우봉 이씨 족보를 보면 족보에 이완용의 이름은 의도적으로 삭제한 듯 빈칸으로 남아있고 연필로 간단히 적혀있을 뿐 사실상 족보에 이름이 파였다.위의 설명이 너무 길어 보이면 그냥 '쳐죽일 존재'나 '인간말종', '인간 쓰레기', '천하의 개쌍놈', '나라를 판 만고의 역적 쉐키',[4] 당장 전차를 몰고 가서 머리통을 날려버려야 할 새퀴, '견공자제분', '한국 역사상 최대최악의 간신' 등등으로 줄여서 말해도 문제 없으며 대놓고 깐다 해도 누구 하나 말릴 사람 없는 몇 안 되는 작자.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가루가 되도록 까도 시원찮은 인간. 어떤 의미로는 대단하다.[5]"○○○ 개.새.끼해봐의 가장 올바른 예Contents1 이완용의 생애1.1 을사조약 이전까지의 삶과 매국노로 까이는 이유1.2고종 폐위, 군대 해산에 참여하여 총리직을 얻다1.3 다시 살아난 후 합병 전야까지1.4 강제 병탄 후, 그리고 그 말로2 이완용의 성품3 이완용에 대한 떡밥4 변명은 아닌(?) 이야기5 관련 어록6 기타1 이완용의 생애 ¶1.1 을사조약 이전까지의 삶과 매국노로 까이는 이유 ¶이완용은 1858년 6월 7일 경기도 광주시 낙성면#에서 출생하였으며, 그의 부친은 우봉 이씨 이석준(李奭俊, 다른 이름은 이호석(李鎬奭))이고 생모(어머니)는 신씨였다.그의 집안은 고려시대의 잠성부원군 이공정의 후손이었다. 이공정의 아들 이자의는 문하시중을 지냈고, 조선조로 와서도 그의 조상들은 대대로 고관을 역임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이완용의 생가 15대조인 이길배가 태종 때 도관찰사를 지낸 것을 비롯해 문과 급제자 40명, 우의정 1명, 대제학 1명을 배출한 대표적 양반 씨족 가운데 하나이다.[6] 16대조 이교(李喬)는 판서, 15대조 이방년(李芳年)은 밀직이며 14대조 이순(李淳)은 과거에 급제해 감사를 역임했으며, 조선 성종 때의 유명한 청백리였다. 생가의 11대조 이세명(李世銘)은 을묘사화에 연루된 선비였으며, 10대조 이간(李人+間)은 무과에 급제해 수군절도사를 지냈다. 9대조 이의원(李義元)이 동지중추부사였고 8대조 이우(李寓)가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것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관직을 배출하지 못해 몰락한 양반으로 가난하였다. 이완용의 생가 직계 가문은 9대조 이래로 이렇다할 벼슬살이를 한 사람이 없어 우봉 이씨 가문 중에서도 가세가 가장 빈한한 편에 속했다. 따라서 그의 생부 이호석은 겨우 선비의 체면을 유지하며 어렵게 살아온 것으로 추정된다.원래 몰락양반가문이었지만 이호준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권력의 핵심부에 들어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고 양자여서 출세욕이 강하였다.1882년 증광문과에 급제한 뒤 고종이 축하연주를 하라고 하였다.[7] 세자를 가르치면서 순종과는 사제의 인연을 맺었고 탄탄대로를 달리던 이완용은 또다시 변신할 기회를 맞이하는데 국제업무를 담당할 신진관료를 교육하기 위해 고종이 육영공원을 만들었는데 거기서 헐버트를 만나게 되었고 이때 영어를 배웠다.미국은 조선과 거리를 멀어 침입할 우려가 적고, 부국이니 덕을 볼 것이고, 종교지상주의 국가이니 야심이 적을거라 판단, 미국은 부강함이 천하제일이라는 당시 조선 분위기에 미국주재 공사로 나가게 되었다. 이는 청의 극심한 반대에도 무릅쓴 고종의 결단이었다. 미국에서 2년 5개월간 주미 외교관으로 근무한 기간은, 그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관계의 현실과 근대화된 서구열강의 모습을 보면서 친미파 관료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일본을 피해 미국공사관으로 고종을 피신시키려 시도한다(춘생문 사건).[8][9] 이후 참찬관으로 미국으로 다시 건너갔다가 재차 트러블을 일으켜 미국 정권에 달라붙어 있기 어려워지자 미국의 반대세력인 친러파로 변신, 국내의 친미파 세력을 견제한다.하지만 친러파 내에서도 트러블을 내고 찍혀 활동이 어려워졌고, 1898년 3월 11일, 이완용은 전북관찰사로 발령을 받고 좌천되었다. 정치적 영향력 확대와 국내 이권을 노리는 러시아에 대해 독립협회를 중심으로 반러여론이 커지자 독립협회에 속해있던 이완용도 정치적으로 힘을 잃은 것이다. 그리고 관찰사로 부임한지 닷세만에 직무태만으로 감봉, 공금횡령으로 파직위기를 맞고 독립협회에서도 제명되었다.이완용은 독립협회의 위원장, 부회장과 회장을 지냈으며 독립협회 존속기간의 3분의 2 이상을 이끌었다(회비도 가장 많이 냈다고 한다). 독립문 현판도 이완용이 썼으며 의무교육을 처음 정착시킨 사람이기도 했으니..[8] 나름대로는 친일 이전의 경력을 보자면 전형적인 엘리트의 삶을 살았고는 할 수 있는데... 이후의 행적으로 말짱 부질없는 약력이 되고 말았다.일부 이완용을 옹호하는 시각에서는 그가 초창기 애국계몽운동가로서 활동하면서 조선의 개화와 독립을 추진하던 중, 초반에는 일본이 조선을 둘러싼 열강 중 가장 힘이 없어서 일본과 친했다가, 카츠라-태프트 밀약을 비롯한 일련의 미국이 조선을 버리는 스탠스를 보이며 미국을 신뢰할 수 없게 되자, 스스로 자포자기, 매국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시각도 있다. 사람들이 이완용을 특히 매국노로 기억하는 것은 초반의 애국 개화사상가 이미지에서 돌연 변신을 한 데 대한 배신감이 커서 그렇다고 하는 견해도 있다.어쨌거나, 인생의 말로를 천하의 매국노로 보내기로 한 것은 스스로 선택한 일이며, 그 이전 활동이야 어쨌건, 결국 그는 자신의 이익과 영달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일 뿐이다.1.2 고종 폐위, 군대 해산에 참여하여 총리직을 얻다 ¶본격적인 나라 팔아먹기의 서막새로운 힘을 찾던 이완용은 이번엔 친일파로 변신해[10] 일제의 무력을 등에 업고 고종을 협박, 을사조약을 체결시켜 을사오적의 수뇌로 불리게 된다. 그런데 웃긴 건 이때 이완용의 대사가 "나라를 위해서 이 조약을 체결한다"였다. 물론 개뿔, 아주 뻔뻔함의 극치다.[11]을사조약을 체결시킨 실적 덕분에 이토 히로부미의 추천으로 내각총리대신이 되었으며 헤이그 특사 사건이 대외적으로 공표되자 이를 빌미로 고종의 양위[12]를 강요, 사실상 한 국가의 왕을 갈아치웠다. 역적 놈의 새퀴.이미 그 전부터 이토 히로부미는 을사오적 일원인 박제순[13]에게 넌지시 고종 퇴위를 제의하나, 의외로 별로 동조하지 않자 그를 물러나게 하고 이완용을 참정대신으로 앉힌 것이었다.여하간 고종은 황제 대리를 주장하며 끝까지 버텼다. 궁내부 대신 박영효마저도 그 꼴을 보기 싫어서 그 자리를 피했으나 이완용은 스스로를 궁내부 대신 서리에 임명하고(;;) 그 일을 행했다. 그 직후 (20일) 메이지 일왕의 "순종 즉위" 축하 메시지가 오자 즉각 반응, (22일) 대리청정을 황제로 바꾸어버렸다. 그리고는 24일 정미7조약(한일 신협약)으로 내정까지 통감의 지배를 받는다라는 안을 하나 수정하지 않고 통과시켰다. 황실보호 따윈 언급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8월 1일에는 군대를 해산시켰다. 그리고, 정미의병이 한창 일어났을 때 이완용은 일본군 대장 하세가와를 매일 찾아가 의병토벌에 대해 논의했었다고 알려져 있다. 거기서 '조선인 현병보조원 제도'를 계획하는 데 크게 일조했고, 의병장 허위가 체포되었을 때, 허위를 처벌할 것을 순종한테 상소를 올린 것도 이완용이었다.[14] 이토 히로부미는 고종에게 자꾸 요구를 하고, 결국 고종은 넘겨주면서 백성들과 의논한다고 했지만 이토는 폐하가 언제 백성들과 정사를 의논했습니까?라는 말에 데꿀멍.이 시기에도 총리대신을 해먹으면서 형 이윤용을 궁내부 대신으로, 사돈 임선준은 탁지부대신으로, 승녕부 총관(고종의 비서실장)은 처남 조민희, 아들 이항구는 승녕부의 시종을 시키는 등 인척 내각을 이룩했고, 황태자 책봉 문제에도 참여하여 콩고물을 챙겼다.1909년, 이토 히로부미는 통감에서 물러나면서 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사법권을 넘기는 작업을 계획하고 있었다. 심지어 사돈까지 반대하면서 내각 총사퇴를 주장했다. 내각내에서도 반대가 빗발치고 내각 총사퇴가 사실상 기정사실화 되자 그는 2대 통감 소네 아라스케와 자기 멋대로 조약에 서명하고는 회의는 없다고 통보해 버린다. 이건 무슨.....어차피 이 시기 일본 내각에서는 한일 강제합병 계획이 통과된 상태이긴 했다.12월 4일에는 일진회의 한일합방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양심은 있었는지 아니면 합방의 공을 빼앗기기 싫었는지, 그도 아니면 명목상이라도 총리 자리를 계속 하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그는 반대성명을 내고 열을 내고 반대한다. 그가 그나마 변호 될 수 있는 것은 이 부분이지만, 1910년 8월 22일 체결된 한일합병조약은 일진회의 계획보다도 한국에게 훨씬 불리했다.이런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이완용의 집은 민중들에 의해 불타버렸고 자신 또한 12월 22일 명동성당 앞에서 이재명 열사[15]의 습격을 받는다. 그러나 우연히 인력거꾼 박원문이 그의 앞을 막아서는 바람에 목숨을 건진다. 불행히도 박원문은 대신 부상을 당해 절명하고 만다. 이재명 열사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그 자리에서 재차 이완용을 공격했지만 치명상을 입히지는 못 하고 체포된다. 이재명 열사는 합병 후 박원문을 살해한 죄로 1910년 9월 교수형에 처해졌다.여담이지만 당시 이뤄졌던 외과 수술에 대한 기록은 몇 남아 있지 않은 중요한 의학사 자료로 인정된다. 동 시기의 다른 외과 수술 기록이 전부 파기된 데 비해 재판의 증거로 사용되었기에 남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수술은 대한민국 최초의 흉부외과 수술로 기록되어 있으며, 한국 의학사를 연구하는 학자분들이 "한국 의학의 발전이 5년만 늦었어도......"라는 말을 하게 만든다. 실제로 모 의대의 흉부외과 총론 시간 첫 수업에서 이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의업에 충실한 것이 민족과 역사에 죄를 짓게도 한다."라는 농담을 했다고 한다. 흠좀무? #또한 맹꽁이 서당에서도 경술국치 당시 이용직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며 나는 너님처럼 길거리에서 칼빵맞기 싫다며 디스한 장면도 나온다.1.3 다시 살아난 후 합병 전야까지 ¶5월 30일 부로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제3대 통감에 오른다. 군부 출신으로 강경파였던 그는 일방적으로 경찰권 회수를 통보했고, 내각은 데라우치가 한국에 입국하기도 전에 무기력하게 통과시켜버렸다. 7월 23일, 한국 합병에 대한 세부사항 논의까지 마치고 데라우치는 입국했다. 이즈음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는지 이완용도 요양을 마치고 상경했다.이완용은 8월 4일부로 비서 이인직("혈의 누" 작가)을 통해 합병을 먼저 제의했다. 아마도 송병준의 일진회 등에게 선수를 뺏기기 싫었던 모양. 통감부마저도 "그물도 안 쳤는데 물고기가 뛰어들었다."라는 반응을 보냈다. 합병 조약문에서 이완용은 "국호 한국과 황실의 왕 칭호만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라면서 추가를 요구했는데, 황실 보호가 아닌 어디까지나 황실의 지지를 통한 자기 입지 강화를 위해서였다. 일본 입장에서도 황실이 고분고분한 것은 결코 나쁘지 않았기에 이를 받아들였다.주저하는 이들을 데라우치에게 일러바쳐 압력을 행사하고, 반대하는 학부대신 이용직을 일본 수해 위문 사절단으로 동경으로 보내는 등 (이용직은 이를 간파하고 가지는 않았다.) 갖은 수단을 써서 순종의 윤허를 받았다. 고종에게는 "신이 하지 않아도 송병준과 일진회가 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는데, 이완용이 물러 난 후 고종은 "'신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런 매국의 거사는 하지 않겠다.'고 한 자는 바로 이완용 아니던가! 그가 무슨 낯으로 짐을 본단 말인가!"라고 통곡했다.그리고 8월 22일, 이완용은 이용직에게는 통보도 하지 않고 최후의 내각 회의를 열고는 한일합병조약을 통과시켜버렸다. 이후 1주일 동안은 숨겼다가 8월 29일자로 순종의 이름으로 발표 된다.그의 나이 52세, 그는 그렇게 나라를 팔아먹었다.1.4 강제 병탄 후, 그리고 그 말로 ¶1916년 8월 4일자 매일신보. 이완용이 기고한 글로 순종의 장남, 왕세자 영친왕(이은)과 일본 귀족과의 강제결혼 결정을 '내선융화'로 미화한 내용의 글이다.(이 문서의 이전 버전에 '이왕가'라는 표현이 보이는데 이는 경술국치 이후 일본이 대한제국 황실을 하대하면서 사용한 용어이다. 이왕가, 이왕직,등은 모두 황실을 격하시켜서 낮춰 표현한 것. 단 이조는 좀 다르다. 일본에서는 한반도를 모두 조선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지리적 위치와 국가의 호칭을 구별하는 것이다. 일본인 입장에서 조선 백자라고 하면 그게 한반도에서 나온 것을 말할 뿐 삼국시대인지 고려인지 조선인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우리 입장에서는 쓰지 말자. 사실 합방 이후의 '조선' 표현 자체도 멸칭이다. 합방 직후에 일본은 '대한'을 모조리 '조선'으로 바꾸는 작업부터 했다)강제 병탄이 이루어지자, 일본으로부터 훈1등 백작 작위를 받았다. 조선인이 조선인을 감시하는 "조선인 헌병제"도 이 자의 아이디어였으니, 1910~1919년 사이의 헌병 경찰 제도는 사실상 이자가 만든 것이었다.[16]명목상의 총독 자문기관인 중추원의 고문과 부의장을 지냈다. 3.1 운동 직전에 민족대표가 가담을 요청했다는 떡밥이 있으나 그것은 뒤로 미루도록 한다.3.1 운동 직후엔 "어리석은 조선인들"이란 내용으로 시작되는 뻘글을 3번이나 발표했다가[17] 다시 집이 불탔다. 이 뻘글 발표로 다음 해 후작으로 승급하였고 팔아 먹을 나라도, 국민도 없어지자 조용히 살다가 1926년, 68세의 나이에 폐렴으로 뒈진다뻗는다.진작 좀 죽었으면 좋았으련만,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시망했다니 분통 터지는 것은 당연한 일. 다만 사망원인을 보듯이 이재명이 찌른 칼날이 평생 그를 옥죄어 왔던 것은 사실이다.(1926년 2월 13일자 매일신보 기사. 신문 1면에 이완용 사망소식을 대서특필로 다뤘다.)사후는 생전보다 더 화려했는데, 일본인과 조선인으로 이루어진 50명의 장례위원들이 참석했고 조선총독부 중추원부의장정2위대훈위후작이공지구란 휘황찬란한 깃발을 들고 장례가 치뤄젔다. 그의 장례 행렬은 그의 3천평짜리 집 옥인동부터 광화문까지 이어졌는데 고종 사후 이후 최대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한편 그때까지 명맥만 존속하던 대한제국 황실은 그에게 훈 1등 이화 대수장과 금척 대수장을 수여했다. 에라이...하지만 당시에도 민중에게는 증오의 대상이었으니...1926년 2월 13일자 동아일보 1면 사설에 실린 기사. '무슨 낯으로 이 길을 떠나가나'라는 제목으로 이완용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여기서 동아일보는 "그도 갔다. 팔지 못할 것을 팔아서 누리지 못할 것을 누린 자"라는 희대의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가면 어찌된 일인지 해당 기사 부분만 기사가 지워져서 볼 수 없다. 그러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한국근현대신문자료에 가면 원문 이미지를 볼 수 있으니 참조하자. 옛날 신문이라 한자가 좀 많다.그밖에도 동아일보 "횡설수설" 란에는 이틀 연속으로 그의 죽음에 대한 짤막한 촌평을 달아두고 있다. 이건 네이버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어떻게 보면 요즘말로 고인드립 수준이지만, 그가 저지른 짓을 생각하면 이 자한테는 그래도 된다.2월 12일 : 구문(口文 : 흥정을 붙여 주고 그 보수로 받는 돈) 후작 이완용은, 작일(作日 : 어제) 황천객이 되엿다고, 지옥행하노라고 무던이 고달풀걸2월 13일 : 구문 공신 이완용은 염라국에 입적하엿스니, 염라국의 장래가, 가려(可慮 : 걱정이 되어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18]그의 묘는 전라북도 익산군(現 익산시) 낭산면에 있었는데, 매국노다 보니 지속적인 훼묘사건이 빈번이 일어났고, 해방 이후에는 당연히 매우 심하게 훼손되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1978년에 이완용 후손(정확히 말하면 증손자 이석형)이 파묘를 하였다. 오늘날, 이완용의 묘가 있었던 곳은 채석장으로 바뀌었다. 파묘할 때 지속적으로 훼손된 묘였지만 붉은 명정에 쓰인 '조선 총독부 부의장'이란 글은 상하지도 않고 그대로였다고 한다. 이 관은 박물관에 있다가 이완용의 손자뻘 친척이라고 상당 기간 오해받던[19] 국사학자 이병도가 사비로 구입해 자택에서 불태워 버렸다.[20]직함도 참 여러가지로 받아서 조선귀족원 회원, 농사장려회 회장, 조선물산공진협찬회 명예회원, 일본제국군인후원회 조선지부평의원, 조선귀족회 부회장, 농림주식회사고문, 교육조사위원, 총독부산업조사위원, 조선미술전람회심사원, 조선사편찬위고문, 조선농업교육연구회고문, 선만노몽(조선, 만주, 러시아, 몽골)연구협회고문 등을 지냈다.이런 모습 때문에 그는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조사,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에 포함되어 있고,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이완용과 그의 손자인 이병길의 재산을 국가로 환수하기로 결정하여 환수작업이 진행 중이다. 또한 2009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이완용의 이름이 당연히 그리고 당당히 들어가 있다. 안 들어가 있었으면 높으신 분들은 암살당할 뻔했다.2이완용의 성품 ¶처세엔 뛰어나고 영민한 인물인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초기에는 그의 영민함을 감탄했던 선교사 겸 의사인 앨런(알렌)도 후에 이런 평을 남겼다.이완용? 그는 한마디로 기계 같은 사람이다.즉, 머리는 잘 돌아갈지 몰라도 줏대라는 것은 찾아 볼 수가 없는 인물이란 평.[21 참고로 알렌은 고종을 어떻게 평가했냐 하면, 매천야록에는 "내가 구만 리에 사천 년의 역사를 봤지만 조선 황제 같은 인종은 처음 보는 인종이었습니다."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알렌은 조선을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개인으로 보기에는 '매국노'의 이미지와는 조금 거리가 있긴 하다. 집에서는 항상 한복을 입고, 치부에는 애썼지만 첩 하나 거느리지 않는 면모를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개인적인 도덕성 등이 그를 결코 정당화할 수 없었다는 것은 알아두자. 단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이미지와 조금 다르다는 것.그러나 그 치부에 애쓴 것이 장난이 아니었다. 민영휘[22] 다음 가는 조선에서 두번째 부자가 그였다.[23] 그것도 물려 받은 것은 거의 없이 그의 대에 나라 팔아먹어 대부분을 벌어들인 것이다. 땅으로는 경기도와 전라도 일대에 여의도 2배 면적을 보유했으며,[24] 집을 여러번 옮긴 부동산 투기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한일 신협약 때 10만원, 합병 때 15만원의 은사금을 일본에게서 받았다.한국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은 그를 가리켜 '마음이 바르고 나라를 자기 목숨보다 중히 여기는 정치가', '대한(大韓)의 몇 째 안 가는 재상', '황상 폐하를 보호하여 우리나라 자주독립의 권리를 튼튼케 한 인물'로 평했다고 하지만...... 앞에도 밝혔지만 이완용은 당시 독립협회의 중심 간부였다. 더구나 당시엔 친러/친미파로 그다지 매국노 티를 내지 않았었다.3 이완용에 대한 떡밥 ¶이완용의 행적에 대해 대한제국의 근대화를 꾀한 인물이란 평가를 하는 자들이 있으나 한 마디로 말해서 헛소리이고, 여러 마디로 말해서 근거가 없다.게다가 그런 소리를 지껄이는 자가 김완섭 같은 작자이다. 뉴라이트같은 자들조차도 이완용 미화는 좀 자제하는 편. 그러나 일제 강점지가 축복의 시대라고 열광하는 자들이잖아? 아마도 환호하고 위대한 인물로 찬양할거야그 같은 주장의 증거로 자주 제시하는 것이, 당시 독립협회와 얽혔던 일인데, 이는 당시 조선 지식계층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지 이완용의 위치를 말해주는 대목은 아니다. 게다가 정황으로 보았을 때 이완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보신에 신경 썼던 사람이므로, 그가 민족이나 대의를 위해 행동했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가끔씩은 "황실을 보호했다"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하는데, 위에서 보았듯이 결코 신경을 쓰지 않았으며 단지 황실에게 조금이라도 환심을 사고 입지를 넓히기 위해서였다. 이 떡밥 때문에 명성황후(드라마)에서도 마치 그 시절에는 조선 왕실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처럼 묘사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도리어 그는 고종 독살설의 가장 강력한 용의자이다.3.1 운동 때엔 민족대표들이 선언에 참여해 달라고 권유했으나, 최소한의 염치가 있었는지 "내가 말아 먹은 것을 다시 민족대표라고 어떻게 얼굴을 들이미냐?"라고 말했다는 주장이 있다. 추측하자면 본심은 일본한테 밉보이기 싫었던 것으로 보인다만, 그래도 그런 사건이 모의되고 있다는 것을 총독부에 고해바치지는 않았다고 한다. 정말 마지막 양심은 있었던 것일까…[25]“내가 이제 와서 이런 일에 참여함은 무안한 일이며 알긴 아는구나 이 일이 잘 되면 먼 동네 사람을 기다릴 것도 없이 이웃 사람에게 맞아 죽을 것이오. 응? 이번 운동이 성공해서 내가 맞아 죽게 된다면 차라리 다행한 일입니다.뭐라고? ” #근데 학계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어디까지나 루머이다.[26] 정말 마지막 양심이 있던 측은 이용직 같은 인물이 있다.이완용의 평판이 얼마나 안 좋았는지, 아들 이승구가 요절하자, 이완용이 며느리와 간통해서 그걸 안 아들이 남 보기 부끄럽다고 자살한 거라는 소문까지 돌았다.[27] 하지만 이승구는 을사조약이 체결되기 이전인 1905년 음력 7월에 자살이 아니라 병으로 죽었다. 어렸을 때부터 몸이 허약했던 이승구는 사망 당시 26세였다.순종때인 1908년, 이완용은 한국 최고의 매국노 답게 조선시대에 간신으로 취급받은 사람들의 복권을 건의했고 결국 받아들여졌다. 순종은 실권이 없었다. 그 때 복권된 대표적인 사람이 윤원형. 다만, 복권자를 자세히 보면, 정쟁에 휘말려 역적 취급된 소론, 남인, 북인계 인사들이 있었고, 이인좌의 난에 가담한 사람들, 여기에 고종을 시해하려한 사람들이 대표적이었다. 그래서 그 와중에 임진왜란의 의병장이었던 정인홍이 복권되긴 했다.[28] 어쨌거나 당대 간신으로 취급받던 사람들임에는 맞다. 다만 그건 당대의 시선이고, 오늘날 정인홍을 간신으로 보거나, 숙종 대의 남인계 대신들이나, 영조 초반의 소론계 대신들까지 간신으로 취급하지는 않으니, 이 부분은 역사의 판단에 맡길 문제인 듯. 애당초 이 취급의 발단은 순종의 즉위 기념 대사면령의 일환이었다.1909년, 이재명 의사가 명동성당에 갔다 온 이완용을 암살하다 실패한 사건 때문에 이완용이 기독교인이라는 루머도 있는데, 이는 안티기독교의 개드립에 불과하다. 암살 시도가 있었던 그 날 명동성당에서는 벨기에 왕 레오폴드 2세의 서거로 추도식이 열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총리대신 자격으로 추도식에 참석한 것일 뿐이었다. 결정적으로 그는 일본에게 아부하고 충성했지만 일본의 문화는 불교밖에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죽는 순간까지도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29]성균관대학교 홈페이지에 역대 총장 명단에 이완용이 포함되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성균관 대사성. 어찌되었던 총장급 인물로 성균관대학교 홈페이지에 적혀있다. 컨트롤 + f키를 이용하여 직접 찾아보자. 덕분에 성대는 훌리건들에게 '친일파가 총장한 학교 ㅋㅋㅋ'라고 억울하게 테러당한다. 정작 성균관대에서도 게재는 할지언정 흑역사로 취급하고 있건만...단, 이 당시의 '대사성'의 실질적인 위치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대사성이 당대 성균관을 총괄하던 직책인 것은 맞지만 실질적으로 현재의 총장과 비슷한 급의 인물이었다고 보기 힘들 것 같다. 조선 초기에는 실제적으로 대사성이 권위를 가진 직책이었으나, 이후 성균관은 정계진출에 그다지 유리하지 못한 뻘코스 취급을 받고 그에 따라 대사성의 지위도 급격히 추락하였다. 고종 때 와서는 그냥 좀 어느정도 실력만 되면 대사성 타이틀만 붙여줬다고 봐야 할 듯. 실제 저 페이지로 들어가보면 고종대의 대사성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80년대 동시대를 다룬 KBS 대하사극 독립문에서는 태조 왕건에서 왕건 큰 장인으로 나온 고 김진해씨가 이완용으로 열연했다. 역시 이 드라마에서는 매국노 시전을 적절히 보여주었다. 후대의 사극 명성황후에서는 충신으로 나오지만. 가문의 보정?4 변명은 아닌(?) 이야기 ¶물론, 지나치게 혼자만 대표로 까인다는 평은 있을 수 있다. 그럴 만큼 하도 나라 팔아먹는데 물불 안가리고 나서기도 했지만….학계에서 보는 이완용은 매국노로서의 위치를 제외하면 '줏대없는 개화파 정치인' 정도이다. 친미파-친러파-친일파로 변한 그의 모습도 주도적으로 변했다기 보다는 아관파천 과정에서 친러파로,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는 과정에서 친일파가 되었다. 개화를 하기는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생각을 유지하는 전개에서는 스윽 밀려나가는 인간형이었다고 보면 된다.앞에서 말했듯이 영어에 능통하고, 글도 좀 쓰고 평판도 괜찮은 등(물론 을사조약으로 매국노가 되기 이전 이야기) 얼굴마담으로서 갖추어야 할 요소는 모조리 갖추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30] 이후에도 훌륭한 얼굴마담으로서의 역할을 해내었기 때문에, 일본 측에서도 높은 평가를 하는 이유가 되었다. 의외로 멀쩡한 시대에 태어났으면 고만고만한 좋은 관료로 살았을지도 모를 인물. 그랬다고 해도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릴 수는 없는 거고......5 관련 어록 ¶우리는 미국 같은 부강한 근대적 국가를 건설해야지, 남의 나라 노예가 되는 핀란드 같은 나라가 돼서는 안 된다.- 1896년 7월, 이완용 <독립협회 강연>중 발언 해가 아직 바다 속을 떠나지 않았을 땐 온 산이 어둡더니, 하늘로 떠오르니 온 세상이 밝아지는구나.[31]- 이완용이 일장기에 써 넣은 글 6 기타 ¶웃기는 일이지만, 일본어는 죽을 때까지 한 마디도 할 줄 몰랐다. 이토 히로부미나 데라우치 마사타케 등과 대화할 때는 반드시 영어로 했다고 한다. 처음 육영공원에서 배운 영어는 형편없는 실력이라서 미국에 파견되었을 때 같이 간 이상재의 자조(반벙어리)를 면치 못했지만, 오랜 미국생활로 인해 그의 영어실력은 일취월장. 총독부의 인간들보다도 한 수 위였다고. 흠좀무.[32] 알고 있는 일본인 인맥도 넓지 않아서, 이토 히로부미나 데라우치 총독 정도만 알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자가 1906년 학부대신(일종의 교육부/교과부 장관) 시기에 공교육의 일본어 시간 도입을 추진하고, 가장 교육시간이 많은 과목으로 만들어 버렸다. 일본에서는 이완용이 아니면 할 수 없었던 일이라며 칭찬했다.근대 문물에 관심은 있었던 것 같다. 낭비가 심하기로 유명한 궁중식단(상다리가 부러져라 차린다는 표현이 여기서 시작되었다)의 병폐를 비판하고 샌드위치를 점심으로 가져왔던 사람이 이완용. 당시 궁중식단의 경우 그렇게 거하게 상을 차린 후 윗사람이 다 먹지 못한 음식들은 그대로 아랫사람에게 주었다. 먹다남긴 거나 먹으라는 의미가 아니라 덕을 나눠준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반찬을 집을 때에는 결코 남이 먹다 남긴 것처럼 헤집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절대 임금이 그 많은 음식을 혼자만 먹고 남겨서 버리는 거 아니다. 다만 그러다 보니 식사시간이 한정없이 길어지고 임금부터 다 먹고나면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르곤 했다. 음식 쓰레기 문제가 아니라 그런 비효율성이 문제였던 것. 그리고 그 비효율성을 타파하고 덤으로 음식 쓰레기도 줄인 그는 효율적으로 나라를 팔아먹고 자신이 쓰레기가 되는 위업을 달성한 꼴이 된 것이다.앞에서 말했듯이 글씨는 꽤 잘 써서 당대의 명필축에 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독립문 현판의 '독립문'이라는 글자는 그가 쓴 것.[33] 하지만 행적 때문에 글씨의 수준과 관계없이 가격은 바닥을 긴다.또한 재테크에도 뛰어나 조선 팔도 곳곳에 이완용의 사유지를 늘려갔다. 그가 병탄 이후 벌어들인 돈이 400억 원이 넘는다고 하며 자기 재산의 3배를 늘렸다. 최근 그의 후손들이 땅을 찾는다 어쩐다 한 것도 그 때문이리라.여담으로 이완용이 같은 친일파의 추천으로 하마터면 종묘에 모셔질(배향될) 뻔한 사건이 있었다. 이게 실현됐다면 종묘에서 여러 사람 뒷목을 잡았으리라...애니메이션 코드 기아스 반역의 를르슈에 나오는 쿠루루기 스자쿠의 행동이 마치 이완용을 떠올린다 하여 스완용이라 불리며 종종 언급되기도 한다. 하지만 스완용은 별로 생각 없이 애니 보는 사람들이 스자쿠보다는 이완용을 까기 위해서 만든 용어일지도...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을 낚아서 코기 팬들을 늘리는데 일조했었는데, 매천야록에서 일본식으로 바꾼 이름이 주작 - 즉 스자쿠라는 떡밥이 돌았다. 그러나 매천야록에는 주작이란 말이 등장하지 않는다. 정식으로 창씨개명한 이름은 리노이에 칸요우(李家完用). 그냥 이씨 가문의 완용이라는 이름이다.마지막으로, 어쩌면 유일하게 긍정적인 점이다. 대한제국 최초로 의무교육을 실시한 건 이완용이었다. 하지만 그런 점이 그의 과오를 덮어줄 수는 없다. 앞 항목에서 본 그의 성품 때문에 그의 행적을 덮어줄 수도 없다. 아돌프 히틀러 항목을 참조하자. 따지고 본다면 모든 후손들이 '의무로' 자기를 욕하게끔 배우도록 한 희대의 병크.국가가 지정한 100퍼센트 매국노이니 애국열사다 뭐다라고 포장하는 짓을 하면 그 즉시 매국노로 몰린다. 아니 그 전에 포장할 만한 건덕지도 없다.그리고 이렇게 여러 가지 의미로 유명하다 보니 다른 동명이인들의 삶도 완전히 망쳐버렸다. 즉 이 인간 때문에 이완용이라는 단어는 대한민국 내에서 언급만 해도 부정타는 단어의 상징이 되버린 셈이다.[34] 어찌보면 이것도 악업에 추가해야 할지도?여하간, 인간으로서는 참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갔다.그런데 얼마전 이완용에 대한 평전이 나왔다.(한겨레 출판사) 저자에 따르면, 이완용은 '합리적인 근대인'이었기에 ‘충군(忠君)’과 ‘애국’이라는 이데올로기적 가치를 위해 용기를 내거나 제국주의의 폭력에 분노하기보다는 자신을 포함한 다수가 문명화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 절대로 분노하지 않는 이성적 인간이었다. 그로 인해 을사조약과 한일병합조약을 주도하면서 평소 자신의 소신이었던 왕과 왕실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고 한다. 아무래도 미.친 것 같아요. 이 자식 안 되겠어 빨리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시험문제에서도 신랄하게 까였다. #국사선생님의 분노라고 치면 다 나온다.3.1 운동에 경고하는 개소리를 하기도 했다. 뒤질수록 깔 거리만 나온다.참고: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1] 그의 사망 다음날인 1926년 2월 13일자에 실린 사설이다. 하지만 일반인이 가장 접근하기 쉬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수록되어 있는 버전은 당시에 검열을 받았던 건지 해당 부분이 훼손되어 있어서 판독할 수 없다.[2] 역시 대세에 대한 감각은 뛰어났는지, 죽기 전에 아들에게 남긴 말이... "내가 보니까 앞으로 미국이 득세할 것 같으니 너는 친미파가 되거라." 후덜덜. 역시 희대의 매국노답다.[3] 사실 이 매국노 목록을 외울 필요는 없지만 이완용이 매국노라는 것 정도는 안 외워도 다 알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다. 학생들은 다만 이 사실을 배우면서 이완용이 얼마나 악랄한 친일파였나를 배울 뿐이다.[4] 대한제국의 시각으로 봤을 땐 명백히 역적 맞다.[5] 이러다보니 후대의 동명이인들은 그저 안습.[6]윤덕한, 《이완용 평전》 (중심, 2005) 23페이지[7]고종실록 1882년 11월 2일.[8] 1895년 11월에 있었던 고종의 경복궁 탈출 미수 사건. 이범진이 주도하였고, 이완용, 이윤용, 윤치호, 민상호 등이 참여하였다. 목표는 고종이 경복궁을 벗어나 미국 대사관으로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병력 동원을 위해서 참여시킨 훈련대 대대장 이범래, 이진호가 이를 일본에 밀고해서 실패하였다. 이 사건에 참여했던 이들은 이후 고종의 높은 평가를 받게 되는데, 이는 이완용도 예외가 아니었다.[9] 작가 송우혜는 이 사건의 주도자를 엄비로 보고 구국의 화신 엄비 운운한다. 그러다 잊혔다. 북한에서는 일단 미국이 개입했다는 것과 이완용이 침여했다는 점을 들어 미제국주의자 대위 훈련대장 다이와 매국노 이완용, 윤치호가 작당한 고종 납치극이라고 주장한다. 전자나 후자나 흠좀무.[10] 이완용은 근본적으로 친미파였고, 1904년까지만 해도 철저한 배일(排日)세력이었다. 1890년대 아관파천을 주도하고, 친러파로 활동했던건 일시적이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권력과 돈에 민감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러일전쟁을 계기로 친미주의자에서 친일파로 변신하게 된다.[11] 당시 사람들은 이완용을 처벌할 것을 강력하게 호소했다. 이완용은 오히려 '시국은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종묘사직을 지키고자...' 하는 내용의 X소리만 남발했다.[12] "고종의 양위를 사죄의 표시로 하여 만족한 일본이 더 이상 보복을 하지 않도록" 하려고 했다나.[13] 을사조약 시기 외무대신. 이후 참정대신 한규설이 항의표시로 물러나면서 참정대신을 맡게 된다. 을사조약 시기에도 초기엔 반대하던 입장이었다. 그래봐야 매국노지만. 경술국적도 된다.[14] 의병장 허위는 결국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하고 만다.[15] 당시 현역 군인이었다. 물론 사병.[16] 헌병보조원 제도는 사실, 정미의병 때 부터 있었다.[17]1차는 4월 5일 "황당한 유언에 속지 마라."였고, 4월 7일에 "돌이켜 자신을 구하라."라는 협박성 뻘글을 다시 썼다. 5월 29일, 3.1 운동이 가라앉자 조선은 일본의 통치 아래 복지가 증가했으며, 실력양성에 힘써야 한다는 최종 뻘글을 썼다. 이런데도 그가 민족대표를 할 뻔했다고?[18] 쉽게 말해서 염라국도 팔아먹을까봐 걱정된다는 이야기(...). 왜 염라대왕도 독살하시게?[19] 이병도의 조부와 이완용의 항렬이 같아 손자뻘이란 거지 실상은 그냥 남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머나먼 친척이다. 촌수로 따지면 30여 촌 정도 될 꺼라고 하니.[20] 이에 대해 정지환 기자는 이병도가 자신의 실증주의를 져버린 행위라고 비판했다.[21] 그런데 이 부분은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 즉, 기계처럼 매뉴얼에 따라 딱딱 행동한다는 것이다. 마치 일본처럼 말이다.[22] 민씨척족 세도가문에서 권세를 누린 수구파 관료. 일제에 합병되고 난 이후에 악질 친일파로 변신했다. 일제시대 동안 가장 많은 재산을 가진 조선인 중 한 명.[23] 죽기 직전에 보유한 자산이 당시 돈 300만원으로, 지금 돈으로 450억원 가량 된다.[24] 이중 훗날 국가에서 귀속시킨 것이 10,900평방미터(3천평 남짓), 그의 땅의 1% 밖에 되지 못한다.[25] 이완용은 일제 경찰로부터 비밀리에 감시당하기도 했었다. 뭐, 본인은 이걸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다..[26] 이 때 민족대표는 마찬가지로 박영효 에게도 같은 권유를 했었고, 이 사건 때문에 제법 까인 감이 있다. 박영효도 그 정도인데 이완용을?[27] 매천야록에 자세히 나와 있다.[28] 이완용이 자기가 찔려서 간신들의 복권을 추진했는데 그 와중에 광해군의 간신으로 취급받고 인조반정때 처형된 정인홍이 복권되었다. 문제는 근현대로 오면서 정인홍은 조선을 구원한 위대한 세 사람 중의 1인으로 까지 취급되었고 인조 는 조선 최악의 암군으로 까이고 있으니 아이러니.[29] 부연하자면, 레오폴드 2세는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 나눠먹기 행사에 동참하여 콩고라는 벨기에 영토의 50여배나 되는 식민지를 넘겨받은 위인이다. 그리고 그 땅을 왕실의 사유지 형식으로 다스렸는데, 고무 등 천연자원을 워낙 악랄하게 수탈하여 제국주의가 한창이던 유럽에서도 대차게 까였으며 인격도 별로 좋지 않아 독일의 입방정 황제 빌헬름 2세에게 사후 디스당하기도 하였다.[30] 그 전에 다른 을사오적들은 정말 평판이 안 좋았다. 이미 을사조약 한참 전부터 노골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반대로 이완용은 그런 점이 별로였기 때문에. 그래서 을사오적에 포함된 인물 중에서는 이완용이 가장 의외의 인물로 평가받았다. 또한 이완용은 조선 말기에 임금으로부터 신임받았던 근왕주의 엘리트 관료였기에 그는 일개 매국노 정도가 아니다.[31] 未離海底千山暗 及到天中萬國明[32] 때문에 정사를 맡을 때도 이토 히로부미와 같이 영어를 그나마 할 줄 아는 일본인과 영어로 대화하며 일했다.[33] 사실, 독립문 건립에 가장 앞장섰던 사람도 이완용이었다.[34] 이완용이란 이름 가진 것 하나 때문에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TV로 나올 정도이니...... 동명이인이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나왔을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이건 한국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식의 동명이인들이 까이는데 예를 들자면 미국의 경우 독립전쟁 당시 영국과 내통하여 반역을 저지른 베네딕트 아놀드와 이름이 같은 동명이인들도 독립전쟁이 끝난 지 200여 년이 넘은 지금도 자국내에서 까이기도 한다. 히틀러의 경우는...... 말 안해도 알 거다. -------------------------------------------------------------------------------------------------------------- 밑에 LOD 보고있냐? 니놈이 말한 이완용이 진정 나라를 위해 나라를 팔았다고 생각하냐?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면 넌 진짜 정신나간 놈이다. 어떻게 하면 너처럼 될 수 있냐. 맨날 일본애니 보면서 수음 좆나게 치면 그렇게 될 수 있는거냐? 좀 알려줘라 내 주변사람들한테 절대로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게.너의 댓글을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한국인이 어떻게 이완용이를 두둔할 수 있는지.. 진성 친일파매국노인 그새끼를.. 아직 늦지 않았다. 너의 그 잘못된 생각을 바꿔라. Lod쪽지보내기회원정보 보기닉네임 검색 12/04/26 13:04:46 [124.xxx.xxx.xxx]추천신고아뭐니이거 아주 환상속에 국가를 꿈꾸는 사람이군이런걸 매국노라고 하지 잘나가는 이완용집안이 돈때문에 나라를 판건줄 아나조선의 시대발전을 위해 나라를 판거다 현실을 보지못한 우매한결과가 남기 역사적 범죄다.일본의 군대부활은 생각도 못하지죠 님은 한반도 미군철수후 벌어지는 일은 단순한게 아닌데요일본군대 다시 생기고 중국 러시아 영토분쟁 시작 대한민국 국방력 경제력 딸림 결과 완벽한 패배2차대전 독일과 같은 기술적우위도 없고 전략전 우수한 지휘관도 없음 미군이 대한민국 군대 덜떨어져서 전시작전권 안주는건 아시나요그렇다고 전쟁을 치룬 국가에 절대적인 공포감도 못주고 전쟁은 끝남 결과 그냥 호구로 평생살아야함 그리고 영토분쟁에 동맹은 없는거 아시나요.백두산의 반은중국 소유입니다. 러시아는 일본과 영토분쟁이라고 하지만 엄연이 러시아도동해에대한 어느정도의 미약할정도의 주장권이 있는게 현실입니다. 그리고6.25 북한동맹군 이였던 나라입니다.일본은 독도먹으려고하고 한반도를 노린나라 러시아 중국 일본 동맹을 누가 해줄까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때와서 미국찾을 까요ㅋㅋㅋㅋㅋㅋㅋ 이제는 별힘도없는 UN이 뭔가할까요.
순강도작성일 2012-04-26추천 5
-
[엽기유머] 프로야구 용어 정리
ㄱ가을의 전설- 월욜 저녁에 방송하는 프로, 대놓고 롯까방송
갑드래곤-진갑龍선수의 별명, 진주장
깝대형- 이대형의 별명... 깝작대는 것 때문에 성적이 오르지 않는 & 도루하기전에 깝짝대는 모습
강풍기-롯데 강민호의 공은 보지 않고 선풍기처럼 배트만 휘두르는... ..기타:돌민호
갸- 기아를 짧게 부르는 발음(개아=개+기아, 기아를 낮춰부르는 이름)걸사마- 김재걸
경유현호-경헌호 선수의 방화하는 모습을 보고개킹카- 한명재캐스터, espn에도 방송을 탄 "원뜨리 개킹카 한명재"권병장- 엘지의 권용관, 현역출신
궈넥-권혁 발음이 안되는 허구연 때문에 생긴 별명. 기타:궈녁, 권노예강영감- 강병철감독을 낮추어 부르는 말고제트- 수비범위가 넓은 고영민을 일컫는 말 = 이익수
고향만두- 삼성에서 sk(인천,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박진만김석류- 아나운서, 차일목과 뽀뽀할뻔한 사이, 정보명과 손잡은 사이(결국 김별명에게로)
김돈줘- 연봉 협상 과정에서 일본행과 잔류등 여러가지 방향을 모색하다가 책 잡혀 얻은 김동주의 별명.김태균- 그 자체가 별명, 김+ㅇㅇ = 모두 김태균 별명, 김꽈당 등등
김별명-김태균(한화) 선수에 수식어는 모든게 별명
김별멍-김태군(lg)선수의 별명, 김태균의 이름에 한획이 모자라는 군을 빗대어 '명'대신 한획이 작은'멍'....김ㅋㅋ- 김태균의 별명이 아니라 김재호가 자주 웃는데서 유래된 별명곤조- 2군본즈, 2군 명예의 전당 헌액 대상자(엘지분들의 표현) 김상현선수를 일컫는 별명 =곤잘레스 킴의 준말(=김상사)공두오- (권준헌의) 공 두개로 오실점에서 시작, 한만두 다음가는 투수의 굴욕금지어- 우담 이순철코치를 엘지팬들이 일컫는 말귀찮투- 손민한의 완급조절 피칭이 귀찮아서 설렁설렁 던지는것 처럼 보이는데서 유래된 단어
궈낵- 권혁. 허구연이 권혁선수를 부를때 발음이 부정확해서 붙여진 별명.(허구연식 선수 이름은 부록으로 정리)
꼴리건-롯데 자이언츠의 훌리건과 다름없는 팬들을 일컬어.. 꼴데와 훌리건의 합성어.꽃범호- 이범호의 외모에서 나온 별명..이스픈의 화면처리로도 유명. 이범호는 한마디로 그냥 '꽃'임.꽃보단범호- 한화팬이면서 한화팬을 싫어하는 유저, 친구의 친구가 안영명친구 충대송혜교 =한펠본까- ~~의 안티까다- ~~를 비방하다.까임방지권- 경기중 특출난 활약을 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까임 방지할수 있는 권리(대게 부도수표)깐풍기- 육망성 스트라익존으로 유명한 김풍기 심판을 낮추어 부르는 말
꼴데 - 꼴찌를 밥먹듯이 하는 롯데의 이름
99.9- 2008 베이징 올림픽때 등판만 하면 점수를 줬던 한기주의 방어율을 빗댄 별명
기계-타격기계 김현수를 의미... 사람이 아닌 기계라는 뜻
국노- 삼성 정현욱이 선동렬의 사노예에서, wbc의 일본전 호투로 국노(국가의 노예,조선의 국노)로 승격되어 나온 별명
꼴리검- 09년 5월 6일, sk박재홍 타석때 부산의 한팬이 장난감칼을 들고 난동 부린 사건의 칼...전설의 칼로 불림=엑스꼴리버
꼴레!(ggolleh!) - 롯데를 부르는 최고의 감탄사! 롯데가 지면 wow!... 롯데가 연패하면 ggolleh!!!~
끝판대장-오승환을 의미, 오스왈트,오뎅,돌부처 등의 별명도 있다.
ㄴ
나믿가믿(nmgm)- 나는 믿을꺼야 가코를 믿을꺼야의 약자. 류중일 감독의 가코를 믿는다. 아니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
내원석- 빅4가 내원사를 놀러가서 술을 먹은것이 갈마에서 물의를 빚어 원석이에게 생긴 별명= 싸이원석내려갈팀은 내려간다- 현대시절 김재박감독이 경험적 사실에 근거하여 주장한 이론 혹은 말, 전력이 불안한 팀에겐 사형선고니노타임- 롯데시절 2사만루 범타 혹은 2사후 주자없을적에 영양가 없는 단타를 치던 손인호를 비꼬던 별명노예규진- 윤규진의 등판이 너무 많아지자 한화팬분들이 지어준 별명..엘지에는 마당재복이 있음
노송빠- 야갤에서 유입된 저질분란유저, 노송은 엘지선수 41번 김용수
네잎글로버-대니글로버
뇌주찬- 뜬금없이 생각없는 플레이를 하는 김주찬 선수의 별명... 뇌를 장착하라는 팬들이 비꼬아서 부르는 별명ㄷ단두대매치- 꼴지를 걸고 겨루는 7,8위팀의 승부!!달감독- 김경문(moon:달)감독
따귀동맹(=싸대기동맹)-삼성과 두산의 관계를 의미, 절대 연승 또는 연패를 하지 않는 2승 1패 경기를 하는 두 팀의 매치더블종범- 한게에서 최근에 나온 새로운 학설인 채종범영입으로 인한 종범신의 시너지효과두목곰- 김동주. 두산의 두목
대갈장군- 이진영 선수... 머리가 大돼랑이- 이대호..요샌 돼랑이도 아니고 돼지로 불림돼준석- 이대호 친구 최준석
돼호- 이대호+돼지 = 돼호. 돼듬이- 이대호 선수 헬멧구멍사이로 항상 나와 있는 몇가닥으 머리카락을 보고...디엘(dl)- 분란등의 사유로 잠시 글쓰기가 금지되는 기간
dtd이론- 김재박의 '내려올 팀은 내려간다'(down team is down)는 이론, 본인이 직접 보여줌동맹- 말그대로 동맹, 동맹간의 비방과 분란은 특히나 꺼려진다. 한게에선 엘롯기동맹이 특히 유명똑딱이- 장타보단 단타위주의 타자를 일컫는 단어 혹은 장타력이 떨어진 거포를 놀리는 별명 ex)김똑딱, 이똑딱
똥줄야구- 불팬이 불안해서 끝날때까지 똥줄타는 야구하는 팀들의 야구스타일ㄹ라뱅- 이병규, wbc때 성의없는 수비가 라면사러 슬리퍼끌고 동네나가는듯하여 붙여진 라면병규의 준말랜디영식- 랜디존슨+강영식= 랜디영식 롯데팬들이 부르는 별명..삼팬분들은 부정랜덤원상- 짱개식으로 계산시 완투시 200개 이상의 공을 던져야할정도로 제구가 나쁜 유원상의 별명로나쌩- 롯데만 나오면 쌩큐한 선수들의 모임 주로 삼성선수들(배영수,전병호등등)이 많음, 명예회장은 선동렬
로꼴통-로이스터 감독의 별명,로또준- lotto+이호준, 홈런포가 뜬끔없이 튀어나오데서 유래롯국지- 제리현덕,향운장,가르익덕이 사직결의를 맺는데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사직벌 대하 드라마라이언킹- 분란으로 유명해졌으나 이제는 개그유저로 인식되는 유저 "민족삼성 대동단결"은 유명한 명언류딸- 류현진의 싸이에 그의 친구가 딸맨식히라고 남겨둔 글에서 시작된 별명 =류뚱리쿠-리틀쿠바, 박재홍의 별명
롯데 레이져스-2008년 삼성과 준플레이오프때 관중들이 삼성선수들에게 레이져를 쏴 붙여진 팀 별명.ㅁ마포- 마해영(=마공갈)마스터피스- 병살계의 거장, 463이도형을 일컫는 말
마징가-sk박정권. 얼굴 각이 마징가처럼 생겨 붙은 별명,막장매치- 엘롯기, 본헤드,폭병,힛바이피치볼 이 모든것이 하나로 어울어지면 우리는 막장매치라고 부른다!!
만루변태- 삼성의 안지만. 만루에 출격해도 깔끔하게 잔루 처리하는 모습을 보고. 애간장을 녹여도 확실히 끝내주는 변태성향
무사만루 노스트라이크 3볼에서도 깔끔한 마무리!ㅇㅇ매직- 선수나 코치에 의해 선수본인의 능력보다 +@혹은 -@가 되게 만드는 지도력 ex)상군매직, 광환매직, 용달매직 등등메트로박- 지하철 홍보대사를 한 박용택을 일컫는 별명먹튀- 연봉에 비해 실력을 못보여주는 선수, 폭넓게 응용이 가능 ex) 먹튀수근, 심먹튀, 이상먹 등등맥꾸역- 안타를 맞아도 일단 이닝을 먹어준다는데서 유래된 맥클레리의 별명 =맥나잇, 운클레리모두가라- 롯데팬끼리 분란을 유도하다 바뀐 한게에서 첫 안드로 대상자, ip바꿔 종종 출몰
문리바- 롯데 문규현의 별명. 포수가 놓친공을 리바운드(농구)캐치해서 붙여진 별명
민지- 제구가 안되면 뺨을 부풀리는 모습이 "민지 와쪄요~ 뿌우" 하는것 같다고 붙여진 장원준의 별명밍키- 엘지투수 김민기ㅂ바람의 아들- 이종범 =종범신 , 손자는 이용규바깥솨- 조인성..앉아쏴에서 바깥쪽으로 공을 요구한다는것으로 진화 = 조바깥박속닌- 본인조차 실생활에서 쓰는 별명 "박속닌"으로 부터 유래된 박석민의 별명, 제일동포 선수 고지행이 불러 시작
발근우-sk정근우의 2루 베이스 러닝 슬라이딩때 상대방 2루수에게 발로 위협가한후 붙여진 별명
버퍼링 박-박한이의 타격전 특이한 준비자세로 붙여진 별명, 기타 별명으로 박카닉,킁킁이
뼈기혁-뼈밖에 남지 않은 듯한 박기혁의 외모를 보고벌때야구- 불펜야구, 출첵야구 여왕벌은 정대현!!배추- 박명환, 배추를 모자속에 넣어둔 사건으로 부터 유래
박담비-박명환이 토요일에만 등판하는 것을 보고 이동현이 붙여준 별명 봄데- 찌라시에도 종종 등장하는 봄에만 성적이 좋다는 롯데를 비꼬는 별명북경수- 엘지의 박경수, 올시즌 뛰어난 활약으로 북경올대를 뽑히길 기원하는 뜻에서 시작된 별명북한용병- 얼굴이 수척한 김원섭을 일컫는 별명 =인민용사, 인민용병분식회계- 승계주자실점, 구원투수가 앞투수의 자책이 되는 루상의 주자를 불러들인후 피칭하는 행위 혹은 점수볼빨간 감독- 뺨이 붉그수레하신 김인식감독을 귀엽게 부르는 별명 = 국민감독, 노인식(까)배열사- wbc때 망언을 한 이치로를 향한 힛바이피치볼로 열사라는 칭호를 얻은 배영수의 별명=배수근, 배영구(까), cmb백골프- 백인천...골프가 붙어진 이유중 가장 널리 알려진것은 덕아웃서 골프연습봉미미- 메존의 미미한 선수에서 시작된 봉중근의 별명, 최근 봉타나로 업그레이드(=봉크라이,봉타나봉중근 의사 - wbc에서 일본을 힘으로 누르며 생긴 별명
비싼남자- 구걸송이 있을정도로 안타가 드문 박기혁을 일컫는 별명빅4- 김수화, 이왕기, 강민호, 이원석으로 이루어진 롯데 젊은선수 4인방의 모임(늘 유망주는 많은 롯데)빵종범, 빵재홍- 한국야구사의 미스테리중 하나인 기아 빵사건에서 유래된 별명 = 브래드재홍, 뚜레재홍이 있음빠- ~~의 팬병역브로커- 이승엽의 활약으로 인해 wbc 4강, 올림픽 금메달로 수많은 병역면제 혜택을 동료선수들에게 줌.
브콜돼- 박석민이 파머 머리하고 헤드밴드했을때 붙여진 별명, 브로컬리 돼지
빌리장석- 선수들 팔아서 구단운영하는 히어로즈의 이장석 사장을 빗댄말. ml 오클랜드의 '빌리 빈'단장과 비교 됨.
ㅅ
싸대기동맹(=따귀동맹)삼성과 두산의 관계를 의미, 절대 연승 또는 연패를 하지 않는 2승 1패 경기를 하는 두 팀의 매치
김경문감독과 선동열감독의 친분에서 나온 양팀간에 좋은 감정과도 관계있음, 한대씩 주고 받는다는 의미.
쌍권총- 최고의 계투조 권오준, 권혁 콤비
서쟁- 서재응
선뚱- 선동렬. 설명이 필요없는...
성큰- 성큰옹. 입성근..김성근 감독의 별명소울메이트- 김상현과 채상병은 뭐다??? 소울메이트!!!(실수를 사이좋게 경쟁하듯한데서 유래)송회장님 - 송진우 선수. 2000년 선수협 회장 직후 획득. 한국야구의 살아있는 전설.송지선- 아나운서, 두산의 승리의 여신
송집사- 히어로즈 송지만의 별명. 신앙심이 유별나서.
송시구- 과거 삼성전에서 1회 공 1개만 던지고 강판된 송은범선수의 별명스고이- 스포츠동아(전 osen) 김영준기자, 완급조절의 달인, 병주고 약주고...
순페이- 이순철. 순fe(철의 원소기호 fe를 붙여 부른 별명ㅇㅇ신- 야구에 대하여 존경스런 선수에 한하여 붙여지는 극존칭의 별명 ex) 종범신, 양신, 민한신등등-성득옹- 부산 지방방송 knn의 명(?)해설가, 롯데팬을 위한 맞춤해설자석정환- 막걸리 해설로 돌아서기 전에 서정환감독을 낮추어 부르던 말..요즘은 사용빈도가 뜸해짐
세일러유- 유동훈 투수의 별명... 관중들 패킷에서 비롯된 별명. '마법의 싱커로 너를 용서치 않겠다!'
셀프병역브로커-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획득에 엄청난 사기유닛으로 자신의 군면제를 시킨 추신수
시방새-sbs
시범데-시범경기만 좋은 성적거두는 롯데를 의미. 정규리그에만 들어가면 ㅠㅠ
식빵- 두산베어스 오재원. 안타를 치거나 아웃되거나 항상 카메라에 18~ 이라고 말하는게 잡혀, 18 대신 순화하여 식빵이라고
하는데서 유래됨.신경질 - 신경현 포수를 이르는 말. 표정과 이름의 절묘한 조화.
신남연- 한화출신의 제이 데이비스의 한국 이름, 데이비스가 신라면을 즐겨먹었던데서 유래 (신라면→신라면)승리의 ㅇㅇㅇ : 경기중 혹은 경기후 무언가 껀수가 생겼을때 불러보는 외침
ex) 승리의 엘롯기, 승리의 민한신 **반대용의: 패배의~~스플리터- 손가락 벌렸죠?? 그러면 이거임cob- curse of bullpen 염장유저에게 저주를 건다는 의미로 불펜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 한게의 저주로 cokcmb- 삼성팬 녹투님에의해 시작된 초절정미소년배영수의 영어 이니셜
슭충 - 각 포털 게시판에 sk를 꼴불견스럽게 벌레같이(?) 응원하는 일부 sk팬
슬레이브정-정노예, 삼성의 정현욱의 잦은 등판땜에 붙여진 이름
사못쓰 - 2008년 시즌 두산 김현수의 뛰어난 타격을 빗대어, '4할도 못치는 쓰레기' 라는 반어법(오못쓰, 육못쓰 등)ㅇ아름다운 2군행- 일본진출 초기 이승엽에 대한 모찌라시의 "아름다운 2군행, 팀에 피해주기 싫어 자청"에서 나온 말아스정- 두산 마무리 정재훈, 등장하면 경기가 아스트랄해진데서 유래 =정작가
아기곰- 두산의 임태훈. 아기곰처럼 생긴 외모를 빗대어.
안경쪼다/안쪼-kia 타이거즈의 양현종을 의미.
안드로메다- 디엘을 넘어선, 엠팍에서 영원히 글을 못쓰는 상태안쌤- 안경현
안정권- 안지만,정현욱,권혁으로 연결되는 삼성의 막강 불펜, 이 세명이면 5회 이전에 삼성이 이기고 있으면 승리는 안정권
안쳐용-2008년 잠깐 반짝하다가 그 이후 타격이 영 아닌 안치용선수를 두고...ㅇㅇ어린이- 각팀의 주축 젊은 선수들의 뒤에 붙여주는 별명 ex) 석민어린이, 태훈어린이
운민한- 롯데 손민한 선수의 별명. 공의 위력에 비해 승리를 챙기는 투수.(이런게 실력인 것을)원아웃(만화)- 투타의 대결의 심리묘사가 탁월하게 그려진 만화, 노게임 강우콜드를 노릴시 가끔 언급됨
원쓰리(13)- 장원삼의 별명. (원.삼)유혹의 명철신- 종류가 다른신..등장음악이 유혹의 소나타에서 유래된 신명철의 별명
윤태자- 선동열의 황태자라 불려져 붙은 별명야신- 김성근 감독을 일컫는 극존칭의 별명(김응룡감독이 한국시리즈에서 붙여준 별명) 다른 별명으로 성큰감독 성큰신 등
여왕벌- sk 벌때 마운드의 마지막인 정대현의 별명우담- 우리 히어로즈를 보통 일컫는 말= 우히, 우리오식빵- 오재원, 에러를 해도 안타를 쳐도 카메라에 잡히는 그의 입모양은 ㅅㅂ
오승왈트- 오승환(ml의 로이 오스왈트에 비교) = 돌부처, 끝판대장,오푼이- 일본에 진출한 이승엽이 시범경기 타율이 0.05였던것을 악의적으로 낮추어 부르는 별명= 승삽
옥춘이- lg 용병 옥스프링의 별명옹박- 이종욱의 외모에서 유래, 이종박등양아들- 실력에 비해 유독 감독의 사랑을 받는 선수들을 지칭하는 말..보통 각팀마다 있음ㅇㅇ옹- 원로하신 선수들을 일컫는 말 ex)현승옹 준호옹 민재옹등일격수- 추승우의 일루수비에서 유래된 별명이스픈-espn민지 이쁘다- 롯팬사이에서 "이게다 노무현탓이다" 와 같이 별 상황에 이유없이 사용되어짐인사이드파크호텔- 박노준이 올스타전 이택근의 inside the park homerun을 인사이드파크호텔로 잘못말한데서 유래,
명작만화 이블승엽의 올스타전 전야제 장소
인민무력부장- 김원섭의 별명. 북한 사람(?)을 닮은 외모때문.ss201- 손인호(s), 신명철(s) 이 둘(2)은 영원한(0) 1할(1)타자다!! 에서 유래(둘 다 롯데를 떠나 팀해체)522- 전설의 롯기막장매치, 마무리는 헤드샷...612- 국내최초 리얼야생버라이어티 야구 1박2일!!
6668587(6) - 전화번호 아님. 롯데의 8888577에 버금가는 lg의 성적... 그 비밀의 번호를 풀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입재박-말을 조심하지 않고 한번씩 입으로만 야구하는 김재박 감독을 일컬어 붙여진 별명
2호기-심광호(소녀어깨-박용택도 가지고 있는별명). 한화에서나 삼성에서나 늘 주전은 못하고 대기해있는 포수육못쓰 - 2009년 시즌초반 6할에 가까운 타격을 보인 김현수를 빗대어..6할도 못치는 쓰레기...
입재박- 입으로만 야구하는 김재박 감독의 별명... 최고의 걸작 :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결국 자기팀이 내려갈 팀이었다는...
인천예수- 김성근 감독. 슭충팬들이 김성근을 광적으로 감싸는 모습으로 생긴 별명. (슭충은 용어사전 참조)
이오수- 두산 출신의 다니엘 리오스의 한국 이름
잉금님- 잉여+임금님의 합성어. 2010시즌 조인성이 잉여 취급을 받다가 자신의 커리어하이를 찍으며 발전한 모습을 보여준다.
ㅈ자이로볼- 만화 "메이저"의 주인공이 던지는 직구의 일종인 마구, kbo에서 던질수 있는 선수는 가을야구하는 비밀을 푼 맥클뿐작가- 등판하면 해당팀 팬들의 심장을 뛰게만들고 담배를 물게 만드는 해당팀의 마무리 ex)임작가, 정작가등등.. 최고는 임경환잘치용- 4타수 2안타의 사나이 안치용의 별명장스나- 스나이퍼 장성호의 준말
장돈건- 두산 최준석의 잘생긴 프로필 사진을 보고 관중이 지어준 별명. 豚
장민지-볼에 바람을 자주 넣는 장원준 선수를 의미.... 유래 민지 뿌~
장원삼성-장원삼 선수의 별명. '장원삼은 원래 삼성선수'다라는 의미도 있음
작토마-lg 작은 이병규의 별명(=작뱅)
적토마-lg 큰 이병규의 별명(=라뱅,큰뱅)
정득병-득점권 병살 전문 타자라는 의미, 롯데 정보명.
정지훈- 시즌중 연패팀의 구세주 혹은 연승팀의 찬물로 다가오는 비를 은유적으로 표현정줄놓- 정신줄을 놓다재주리게스- 이국적 풍모의 이재주선수를 일컫는 별명 = 쟂스패로우중력이론- 엘지팬 한무님의 엘롯기 세팀 중 한팀이 치고 올라가려고 하면 순위표 밑바닥 중력에 이끌려 결국 내려온다는 이론
조닭매직- 조계현이 코치로 있는 팀은 투수진은 막장을 달리고, 그가 없어지면 최강이 되는 투수진(삼성에서 두산으로 옮긴해
삼성은 최강의 불팬 및 투수진을 이뤘으나, 두산은 최강 투수전력임에 그 힘을 다 못내고 있는 상황. 그리고 부상...)조뱀- 조범현 감독의 준말..낮추어 부를때 사용..
조라이더- 한 때 슬라이더로 한국프로야구를 주름잡은 조용준의 별명
조갈량-조뱀으로 불리던 조범현 감독이 우승후에 공식적으로 붙여진 별명
조원수 트리오- 삼성의 막강 불팬 a조에 비해, 불지르는 원수같은(?) 불팬 b조(조현근,최원제,김상수:김상수의 이적으로 해체)
조평신-삼성 조용훈의 별명... 조*..
조핑크-핑크색을 좋아한다는 조정훈 선수주찬신, 주처님- 김주찬... 신을 아무에게나 붙여지게 됨.. 롯데팬에게 그는 이미 신급
정노예- 삼성 정현욱의 별명... 노예저럼 부르면 나와서 열심히 던진다고.. 비슷한말 '슬레이브정'좌상바- 좌투수상대로*^^* 혹은 좌타자상대로*^^* 의 준말, 우상바와 반대짐승- 동물적인 수비능력을 보여주는 김강민의 별명
조바깥 - lg 포수 조인성의 수비위주의 볼배합을 위해 바깥공 싸인만 낸다는...
정ㅋ벅ㅋ- 1. 정복, 2. 상황이나 대상을 아우르는 기쁜 마음 : 야구에서는 삼성의 오정복 선수를 의미.(오정복덩어리)
제빵왕 김식빵- 최근 김현수 선수가 화면에 식빵!식빵! 하는 모습이 포착된후 드라마 제목과 합성된 별명(식빵=18의 순화된 단어)jokka- 삼성이 바라는 최강의 계투진(정현욱, 오승환, 권혁, 권오준, 안지만). 아직 완성된 적은 없음. 발음상 문제 때문인가?
ㅊ
차바시아- 2010년.. 과거와 전혀 다른 투구를 보여주고 있는 삼성의 차우찬의 별명... ml의 최고좌완중 하나인 cc.사바시아와 합성어 찰목- 기아포수 차일목
초구찬- 초구를 좋아하는 김주찬의 별명추타조- 긴다리 작은머리 추승우의 별명 =추조리, 일격수채이스비- 최희섭= 희삽초이채리본즈- 채태인+ 배리본즈 =에로채
채띵-채태인의 별명, 기타 : 채천재(타자 전향후 그 짧은 시간에 팀의 중심타자가 된 모습을 보고),채타짜(도박사건)등
최코디- 정준하의 매니저 최코디 닮은 삼성 강봉규의 별명
최쓰이- 최형우, 최근에는 '최잉여'라 불리우고 있음. 잉여킹철가면- 세이브상황에서도 무표정한 오승환선수의 별명 =돌부처
치킨스 - 한화 이글스를 비꼬아 부르는 명칭, 마스코트가 독수리보다 치킨을 더 많이 닮았다나...
칠쥐- 7위를 밥먹듯 하는 lg를 지칭... 꼴데보다는 앞선.ㅋ
쿠옹- 한화 구대성, 메이저리그 시절 쿠~라고 미국사람들이 응원한데서 비롯, 나이들어 옹자가 붙어 쿠옹
카턱- 카도쿠라의 별명, 턱이길어서..
크보- kbo
크루세탁-크루세타
캐백스,캐백수- kbs스포츠캐넌- 캐넌히터 김재현을 일컫는 별명
킁킁이-타격전 헬멧의 냄새를 맡는 박한이 선수 별명, 바카닉,버퍼링박 등
키스도사-사도스키를 거꾸로 읽은 별명
코사장- 코끼리 덩치의 삼성 김응용 사장의 별명
ㅌ턱돌이- 히어로즈의 마스코트 = 조성환, 홍성흔, 카도쿠라등도 비슷한 별명
택근브이- 이택근 선수의 별명.토그너- 토마스(한화)+빌리 와그너(메츠의 좌투 마무리)텔미- 김태완, 텔미텔미 테테테텔미퇴근본능- 경기후반 작렬하는 심판들의 오심, 태평양존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단어
퇴근창희 - 수비중 혼자 3아웃인줄알고 불팬으로 뛰어들어오다가 붙여진 이름ㅍ피자도형- 청주구장에선 장모님이 피자를 돌리시는 이도형의 별명ㅇ포- 보통 포수들의 뒤에 붙는 말 ex)진포, 홍포, 조포등등폭삼, 폭병- 폭풍삼진, 폭풍병살...수비하는 팀의 응원팬들이 힘을 모아 외쳐보는 주문!!8888577- 롯데팬들을 열어주는 비밀번호포카리박-박기남 선수의 별명.(포카리스웨트 물병을 들고 승리세레모니 하려던 박기남선수를 보고 선수들이 지어준 별명)
ㅎ
한만두- 한이닝에 만루홈런 두개(ml 박찬호 선수의 치욕적인 기록)
할매- 두산 전상렬, 할머니 같은 인상이 구수하다 하여 홍포가 붙여준 별명한만두- 한경기 만루홈런 두방, 유래는 박찬호 선수의 한이닝 만루홈런두방에서..한남자- 한남자가 있어~ 널너무 사랑한~ 이 노래를 부른 가수 김종국과 동명이인 기아 김종국의 별명
허당- 말 그대로 허당. 삼성의 허승민허구라- 허구연 해설을 일컫는 말. 최근에는 쓸모없는 그의 해설을 비꼰 별명홍미륵- 홍현우의 삭발한 머리에서 유래된 별명
홍포- 두산에서 홍성흔은 포수라는 의미였으나, 롯데 이적후에는 홍성흔의 한방있는 대포를 의미
홍대화(해태화)- (홍어+한대화, 해태+한대화의 합성어) 기아 16연패를 끊게 해준 한대화 감독의 용병술을 비난하는 뜻으로
생긴 별명. 한대화 감독은 해태타이거즈 선수였기도...형저메- 형 저 메이저리거에요 에서 유래된 최희섭의 별명, 진화형으로 저메신- 형저메인다이등이 있음(=최희삽)형저인- 형 저 인천고에요. sk 2루수 정경배 선수를 낮추어 부르는 별명 = 감저인향운장- 투구 인터벌이 너무 짧아 녹차가 식기전에 이미 세이브를 올린다 하여 지어진 최향남의 별명 =향기남흑인천- 로이스터감독을 낮추어 부르는 별명. 사용시 분란가능성 다분흑마구- 120이하의 직구로 변화구, 완급조절의 피칭을 하는자에게 붙는 작위.. 시조는 성준, 집대성은 전병호, 계승자는 임동규
흑마신- 위의 흑마구를 던지는 전병호(현 삼성코치)를 이르는 말, 최대 피해팀은 롯데흑종국- 현 야쿠르트 발데스, 실력이 김종국과 흡사
흑션- 삼성 최악의 용병투수 탐션의 흑인 버전, 크루세타의 별명.해담- 바다이야기(한자로 海談)를 즐겨하여 갈마등에서 물의를 일으킨 정수근의 별명
햄종- 양현종의 이름과 햄토리의 합성어
황청이- 황재균+멍청이에서 나온말... 히어로즈 선수들이 황재균선수에서 붙여준 별명
힙지만- 힙합모자를 쓴것처럼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투구하는 안지만의 별명
부록 i <롯데 팀 별명, 인기도 있고 안티도 많아 별명도 많다>
꼴데-항상 하위권 성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롯데의 별명
꼴데 레이져스 - 롯데 자이언츠의 관중들이 2008 준플레이오프 당시 삼성선수들에게 레이져 포인터를 쏴 붙여진 이름
꼴매미-7년을 굼뱅이로 살다 잠깐 여름 한철 시끄럽게 하는 매미처럼고 8년가까이 꼴지하다 08년 준플레이오프 3일 만에 생을 마친..
오물 자이언츠, 오물 투척스-관중들의 오물 투척이 잦은 롯데팬들을 비꼼
봄데 - 봄에만 잠깐 호성적을 거두고 순위에서 사라지는 롯데 성적보고.
시범데-봄도 모자라 시범경기만 잘하는 롯데를 의미, 시범경기가 있는 '봄의 롯데는 양키스가 와도 못막는다'는 이야기도 있음.
족발 투척스 - 꼴데 레이져스 별명이 붙여진 준플레이오프에서 부산관중들이 던진 족발 사건으로
꼴레!(ggolleh!) - 롯데를 부르는 최고의 감탄사!
참고 : 롯데 外 각 구단 별명
sk (스크, 슼충, 슭, 출첵, sk고등학교) 두산 (약산, 뚱산, 두점 베어스) 한화 (개콘이글스, 치킨스, 조폭스, 꼴닭스)
삼성 (돈성, 삼점 라이온스) 기아 (개아, 꼴아, 갸) lg (꼴지,꼴쥐,칠쥐) 넥센 (타이어즈)
-8개구단 한자로 정리 : 슼(sk), 돈(삼성), 뚱(두산), 꼴(롯데), 개(기아), 쥐(lg), 빈(넥센), 칰(한화)
부록 ii <허구연의 몹쓸 발음 때문에 생겨난 용어(별명)>
루헨진 (류현진) , 배나구 (변화구), 궈낵 (권혁), 씡킹 빼스트뽈 (씽킹 패스트볼), 쀍킹볼 (브레이킹볼), 홍셰완 (홍세완)
셰입 (세이프), 호셰 (호세), 췌인지 압 (체인지업), 쒀클 췌인지 압 (써클 체인지업), 메카니즘 (매커니즘), 이핸곤 (이현곤)스라이다 (슬라이더), 이대허 (이대호), 에수에푸볼 (sf볼) , 롯데 자이"안"쓰 (롯데자이언츠), 소낵 (손혁), 김뱅헨 (김병현)바캔승 (박현승), 장셩호 (장성호), 오승한 (오승환), 조배맨 (조범현) , 졔리로이쓔터 (제리로이스터) , 하나이글스 (한화이글스)메쟈리그 (메이저리그), 셰드뤽 (세드릭), 갤국 이런 핸상은(결국 이런 현상은), 엔터리(엔트리), 껨(게임), 보수토온 (보스턴)힛빠이피치드볼 (힛바이 피치드볼), 방맹환 (박명환), 빠떼리코치 (배터리코치), 씨리볼 (쓰리볼), 콘츄롤 (컨트롤)�z수틴 뤠이어 (저스틴 레이어), 투슈로테이숀 (투수로테이션), 크브볼 (커브볼), 스로 크브 (슬로우 커브), 루태캔 (류택현)숀미난 (손민한), 우셰한 상황 (우세한 상황), 뤠이붠 (레이번), 블롸운 (브라운), 옥슈프링 (옥스프링), 히로즈 (히어로즈)정보맹 (정보명), 고옝민 (고영민), 민뱅헨 (민병헌), 셰답맨 (셋업맨) , 호셰리마 (호세리마), 큐바 (쿠바), 콘디숀 (컨디션)
씨리볼 (쓰리볼), 셰답맨 (셋업맨), 드림캄쓰루(드림컴트루), 정대언 (정대현) , 신갱핸(신경현), 숀미난 (손민한) , 대쓰요 (됐어요)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프로야구 최고의 명언은 dtd.......
-
[연예인] 대.......박
김혜수·유해진,
2010 첫 스타커플…"2년간 비밀 데이트"
[스포츠서울닷컴ㅣ임근호·김지혜·나지연·서보현기자] 2010년 첫 스타커플이 탄생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엣지녀 김혜수(40)와 연기파 배우 유해진(40)이 그 주인공이다. 영화 '신라의
달밤'과 '타짜'에 동반 출연한 둘은 지난 2008년 동료에서 연인으로 발전했고, 2010년 새해 첫
공식커플이 됐다.
스포츠서울닷컴은 김혜수와 유해진의 데이트 현장을 단독으로 포착했다.
연예계에 떠도는 가장 황당한 루머 중 하나가 김혜수·유해진 스캔들이었다. 열애설부터 결혼설
까지 끊임없이 소문이 나돌았지만, 그 어떤 매체도 실체를 확인할 수 없었다. 게다가 둘은 소문
이 나돌 때 마다 터무니 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스포츠서울닷컴이 둘의 데이트 과정을 확인하는데 걸린 시간은 약 30여일. 지난해 11월 중순부
터 둘의 만남을 지켜봤다. 김혜수와 유해진은 일정한 패턴으로 데이트를 즐겼다. 매주 금요일
밤마다 만났다. 때로는 주말을 함께 보내기도 했다.
연인의 날인 크리스마스에도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 24일 가족과 함께 이브 파티를 즐긴 김혜
수는 집에 돌아온 뒤 곧바로 유해진을 만났다. 유해진은 자신의 차를 끌고 김혜수 집 앞으로 왔
고, 둘은 차 속에서 오붓하게 성탄을 맞았다.
베일에 가려있던 두 사람의 데이트 장소는 청운동과 구기동이었다. 청운동은 김혜수가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집. 구기동은 유해진이 지난 2008년 새로 산 집이다. 청운동과 구기동은 종로
의 대표적인 부자동네. 인적이 드물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다.
특히 김혜수와 유해진이 살고 있는 고급빌라는 요새나 다름없다. 김혜수의 청운동 빌라에는
단 4가구만 살고 있으며, 유해진의 구기동 빌라는 북한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단 5분 거리
의 두 집을 차로 왔다갔다하면 그 누구도 눈치채기 힘들다.
게다가 김혜수는 유해진을 만날 때면 머리카락 보일라 꽁꽁 싸맨다. 한 밤 중에 만나더라도 선
캡을 꼭 착용한다. 집 밖을 나설 땐 사람이 있는지를 세심히 살피고, 아무도 없을 때 나온다. 요
새같은 집과 철저한 변장이 둘의 열애를 2년간 비밀로 지켜온 원동력이었다.
유해진의 한 측근은 "유해진이 구기동으로 이사를 갔고, 김혜수가 5분 거리인 청운동으로 집
을 옮기면서 둘 사이가 급속히 가까워졌다"면서 "평일에는 스케줄을 소화하고 주말 밤에만 몰
래 만나다보니 비밀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한편 대한민국 엣지녀 김혜수는 유해진의 어떤 매력에 반했을까. 유해진을 아는 사람이라면 하
나같이 그를 완벽한 남자라 평한다. 한 측근은 "유해진은 정말 똑똑하다. 최고로 재미있고, 한
없이 자상하다"며 "유해진과 이야기를 나누면 그에게 빠지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혜수의 사랑도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시작됐다. 2006년 영화 '타짜'를 찍으며 서로를
알아갔고, 그 이후 전화를 하거나 직접 만나며 부지불식간에 빠져 들었다. 외면보다 내면의 아
름다움을, 그리고 그 가치를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둘의 사랑은 결혼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김혜수와 유해진은 각각 1970년 생으로 올
해 마흔을 넘긴 불혹커플이다. 둘 다 결혼 적령기를 지나친 만큼 열애에 이은 관심사는 결혼이
다. 한 때 둘의 결혼설이 급속히 퍼지기도 했었다.
본지 확인 결과 우선 김혜수의 집에서는 유해진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 우선 유해진이 김
혜수의 집에 들어가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또한 가족파티가 열렸던 지난해 11월 19일에
는 유해진이 김혜수의 집에 초대받아 언니, 동생, 매형 등과 함께 어울려 놀기도 했다.
하지만 양쪽 측근은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지금 이대로의 관계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는 것. 유
해진의 한 측근은 "오래된 연인인 만큼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또 언
제 결혼을 결심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서로에 대한 믿음 하나로 진실한 사랑을 쌓고 있는 김혜수와 유해진. 그들의 사랑이 좋은 인연
으로 귀결되길 기대한다.
<사진=김용덕·이승훈·이호준·송지원기자>
- 대한민국 스포츠 연예 뉴스의 중심 스포츠서울닷컴
Copyrights ⓒ 스포츠서울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