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산업의 팽창으로 자동차를 하나의 이동 수단으로 보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자동차는 각국의 제조업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하고 때론 대중을 열광시키는 스포츠로 변신한다. 자동차가 아우르는 영역은 경제부터 문화까지 다양하다. 파생 산업도 큰 폭의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명품 업체들과의 제휴를 통해 자동차 관련 액세서리 시장은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페라리는 자전거, 만년필, 시계, 유아용품은 물론 모자 드라이빙 슈즈 등 100여 가지가 넘는 상품을 제작, 판매 중이다. 이들 제품에는 하나같이 페라리의 고유 엠블럼이 찍혀 있다. 평범한 자전거도 페라리 엠블럼 하나만 박히면 가격이 수백만 원으로 치솟는다.
이미지 메이킹이 중시되면서 엠블럼은 미다스의 손과 같은 역할을 한다. 소비자 입장에서 엠블럼은 자동차를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이미지며 고유 가치인 셈이다. 현대자동차가 세계 프리미엄 브랜드와 경쟁하기 위해 내놓은 제네시스가 독자적인 엠블럼을 사용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기아차 오피러스도 마찬가지다. 엠블럼은 해당 자동차의 이미지를 어떻게 구현하느냐와 직결돼 있다. 반드시 고객의 이목을 사로잡아야 한다.
엠블럼은 크게 알파벳 이니셜을 사용하는 것과 동물, 자연, 창업 당시 업종, 창업자의 자동차 철학을 형상화하는 것으로 나눠진다. 렉서스(LEXUS)는 알파벳 ‘L’자에서, 혼다(HONDA) 역시 자사의 영문 이름의 맨 앞글자 ‘H’를 엠블럼으로 사용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의 쌍두마차인 현대차와 기아차 역시 자사 영문 이름으로 엠블럼을 만들었다. GM대우는 옛 대우그룹의 엠블럼을 새롭게 디자인한 것을 사용하고 있으며 르노삼성은 태풍의 눈을 엠블럼으로 만들었다. 일본과 한국 등 아시아 자동차 회사들은 실용성에 무게를 두는 반면 자동차 역사가 오래된 유럽 차들은 엠블럼 하나에도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볼보
인피니티
BMW
가장 독특한 것이 영국 차 재규어다. 동물 이름을 자동차 브랜드와 엠블럼으로 동시에 사용하는 것은 재규어가 유일하다. 재규어 자동차 보닛에는 실제로 펄쩍 뛰어오르는 재규어 모습을 조각한 리퍼(Leaper)가 달려 있다. 재규어의 시작은 1922년 윌리엄 라이온스가 오토바이 제작 업체인 스왈로 사이드카(Swallow Sidecar Company)를 설립하면서부터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 라이온스는 회사 이름으로 무엇을 쓸까 고민하다가 기품과 우아함, 강력한 힘을 가진 맹수 재규어를 떠올렸다. 북미에서 덩치가 가장 큰 맹수인 재규어는 라이온스가 추구하는 자동차 철학을 그대로 상징했다. 지금도 재규어는 전통과 현대미를 적절하게 조합하는 자동차 브랜드로 유명하다. 다른 브랜드들이 왜건, 쿠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 다양한 세그먼트를 개발하고 있는 것과 달리 재규어는 지금도 오로지 세단만을 고집한다. 그러나 퍼포먼스 하나만큼은 다른 어떤 브랜드에 뒤지지 않는다. 스포츠카와 세단의 절묘한 조화라고나 할까. 내·외부도 전통미를 기반으로 디자인됐다.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이동훈 사장은 “희귀종이자 세계 3대 맹수인 재규어의 기품과 우아함, 강력한 힘과 민첩한 이미지가 엠블럼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설명했다. 한발 더 나아가 재규어는 지난 2005년부터 멸종 위기에 놓은 재규어를 보호하기 위해 ‘재규어 보호기금 마련’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북미지사에서 1980년대 중반부터 재규어 서식지를 관리하는 환경 보호 단체들에 자금을 지원했던 것을 본사 차원으로 강화한 것이다. 야생 재규어 보존을 위해 재규어는 매년 미국 야생동물보호협회에 100만 달러를 기증하고 있다. 재규어와 재규어 자동차는 한 운명체인 셈이다.
사브
캐딜락
닷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슈퍼카 페라리는 도약하는 말을 엠블럼으로 사용하고 있다. 원래 이 문양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의 영웅이었던 조종사 프란체스코 바라카가 자신의 비행기에 그려 넣었던 것이었다. 이 때문에 당시만 해도 이 그림은 바라카의 말(Baracca’s Cavallino)로 유명했었다. 1923년 자동차 레이서로 활약하던 창업자 엔초 페라리는 우연히 첫 우승을 차지했던 사비오 레이스에서 바라카의 부모를 만났고 엔초의 환대를 받은 그들은 행운을 기원하는 의미로 아들의 엠블럼을 선사했다.
프랑스 대중차 푸조의 엠블럼인 사자에 얽힌 일화도 재미있다. 사자는 맨 처음 푸조 공장이 설립된 벨포르 시의 상징이다. 이 도시를 다스리던 프랑셰 백작도 자신의 방패나 깃발 등에 사자를 문장으로 사용했다. 엠블럼의 사자가 상징하는 것은 강인함, 품질, 신뢰다. 이 엠블럼은 쥐스탕 블라제라는 화가가 맨 처음 디자인한 이후 여러 차례 변형돼 지금의 모습이 됐다.
맨 처음 푸조의 엠블럼은 사자의 발 아래 화살이 놓여 있는 것이었다. 이 마크는 당시 프랑스 자전거 생산 업체인 사이클의 엠블럼과 너무 비슷했다. 결국 푸조는 1936년부터 방패 속에 사자가 있는 지금의 모습을 공식 엠블럼으로 채택했다. 지금 엠블럼은 지난 2002년 새롭게 디자인된 것이다.
크라이슬러 계열의 닷지는 숫양을 공식 엠블럼으로 사용하고 있다. 원래 닷지를 창업한 닷지 형제는 파랑색과 하양색 2개의 삼각형이 겹쳐진 다윗의 별을 공식 로고로 사용했었다. 1938년 크라이슬러가 인수한 뒤부터는 금빛 날개가 달린 방패 모양의 엠블럼을 사용했다. 현재의 강력한 빨강색 숫양 머리 모양의 엠블럼은 1990년대 후반부터 사용됐다. 이는 원래 1930년대 승용차와 트럭에 한정적으로 사용하던 것으로 이 엠블럼이 달린 닷지 트럭은 출시되는 모델마다 소비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결국 닷지 경영진은 대담성과 파워를 상징하는 이 엠블럼을 전 모델에 달 것을 결정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됐다. 스웨덴 사브는 신화 속 동물 그리핀을 공식 엠블럼으로 채택해 사용하고 있다. 이 엠블럼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84년부터다. 그리핀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상반신 독수리, 하반신 사자인 동물로 모든 새와 짐승의 왕이다. 사브 공식 엠블럼에는 모든 차들의 제왕이 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셈이다. 그리핀은 1992년 봄 출시된 사브 최고급 모델인 9000의 이름으로도 사용됐다.
부와 명예를 상징하는 벤츠의 트라이포인트 엠블럼은 창업자의 자동차 철학에서 유래됐다. 세계 5대 유명 상표 중 하나인 벤츠 공식 엠블럼은 회사를 설립한 다임러가 ‘육지, 바다, 그리고 하늘’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뜻을 담아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유럽의 자동차 회사는 대부분 항공기 엔진도 만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동력 엔진이 비단 땅 위에서뿐만 아니라 하늘과 바다에서도 진가를 발휘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BMW 로고 변천사
독일 차 BMW도 벤츠와 마찬가지로 항공 산업과 연관성이 있다. BMW는 항공기 엔진 제작 회사에서 출발해 모터사이클을 거쳐 오늘날 자동차로 사업 영역을 확장한 메이커다. 초기 BMW는 항공기 엔진을 주로 생산했다. 이 때문에 1917년부터 비행기 프로펠러를 형상화한 지금의 엠블럼을 사용하고 있다. 미국 명차 캐딜락의 엠블럼은 1702년 디트로이트 시를 세운 프랑스계 탐험가이자 훗날 루이지애나 총독을 지낸 앙트완 드라 모드 카디약의 문장에서 유래됐다. 캐딜락이라는 이름 역시 여기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캐딜락 공식 엠블럼은 1905년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고 30여 차례의 수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됐다. 전체적으로 십자군이 사용한 방패를 형상화했다. 지혜를 뜻하는 흑색과 부를 뜻하는 금색이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 적색은 용기와 담대함을, 은색은 청결 순결 자비 풍요, 청색은 용맹함을 상징한다. 크라이슬러 엠블럼은 금색 빨강 파랑 등 3가지 색상의 리본 실과 은빛 날개로 구성돼 있는데 리본 실은 졸업 증서나 각종 상장에 붙는 리본을 의미하는 것으로 출고된 차량이 완전한 상태라는 것을 의미한다. 안쪽에 있는 2개의 번개는 알파벳 ‘Z’를 뜻하는데 이는 크라이슬러 최초의 자동차 엔지니어 프레드 제더(Fred Zeder)의 이름에서 따왔다. 옆에 붙은 은빛 날개는 바이킹의 헬멧을 본떠 만들었다는 설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헤르메스의 날개를 뜻한다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이 모두 역동성과 민첩성을 상징한다.
초창기 메르세데스 벤츠 광고
메르세데스 벤츠 자동차 박물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스웨덴 차 볼보는 엠블럼 역시 내구성과 안정성을 강조하는 아이언 마크를 사용한다. 아이언 마크는 스웨덴 철강 산업의 수호신인 마르스(Mars)의 상징으로 창업자인 아서 가브리엘슨과 구스타프 라슨은 회전하는 베어링을 형상화한 화살표 모양으로 아이언 마크를 새롭게 디자인했다. 1927년부터 사용된 이후 80여 년 넘게 지금까지 모든 차종에 사용되고 있다.
아우디를 상징하는 4개의 링은 오늘날 아우디를 있게 한 독일 색스니 지방의 4개 전동기 엔진 회사 아우디, 반더러, 호르히, 데카베를 뜻한다. 오늘날 아우디는 1934년 이들 회사가 아우토 유니언 AG 켐니츠라는 회사로 합병된 데서 출발한다. 처음에만 해도 이들 회사는 각자의 브랜드를 고수했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군에 강제 수용당하는 아픔을 겪었고 1949년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아우디라는 통합 브랜드를 만들면서 놀라운 성공을 만들게 된다. 공식 엠블럼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 밖에 닛산의 프리미엄 브랜드 인피니티의 엠블럼은 지평선을 향해 끝없이 뻗은 길로 무한 질주해 나가는 것을 형성화했고 독일 차 폭스바겐은 회사 이름인 ‘Volks Wagen’의 앞글자인 ‘V’와 ‘W’를 아래위로 나란히 배열한 것을 공식 엠블럼으로 채택해 사용하고 있다.